7화
외계 종족들이 지구를 침공한 뒤로 살아남은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식량과 식수? 안전한 주거지? 외계 종족을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얻는 특별한 능력?
아마도.
각자의 가치관과 처한 상황에 따라 백 명에게 묻는다면 백 개의 답이, 천 명에게 묻는다면 천 개의 답이 나올 것이다.
맞다.
이는 정답이 없는 질문,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대답이 정답이 될 수 있는 질문이다.
따라서.
나 또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내 환경에 맞춰 이러한 대답을 내놓게 될 것이다.
외계 종족의 정보.
상대해야 할 괴물들의 형태가 어떠하며 또 그들이 지닌 능력은 외형에 걸맞은지,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능력인지…….
이렇듯 괴물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만큼 중요한 건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래야만.
무엇을 마주치더라도 살아남을 대처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독……!’
나는 흐물거리며 돌아가는 크루톤의 다리를 보고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설마.
독을 쓸 줄이야.
특수 능력에 대해서야 당연히 경계하고 있었으나, 파충류와 비슷한 머리에 오르그와 인간의 것을 조금씩 섞은 듯한 팔을 본 순간 ‘오르그의 전투 본능’과 비슷한 기술을 쓰지 않을까 추측했다.
헌데.
‘독이었다니……. 젠장, 어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격에 이를 악물며 몇 걸음이나 더 뒤로 물러난 나는 우선 아예 계단을 벗어났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이 상황을 타개할,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간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를 전투 전황을 뒤집을 만한 방법을 떠올릴 시간이.
“그어어어어어!”
빠르게 거리를 벌리는 동안.
내가 독에 중독되었음을 확신한 크루톤은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났던 다리를 원형으로 돌려 놓고도 바로 쫓아오지 않고 한 차례 포효를 터트렸다.
독에 당한 이상.
승리는 이미 결정 났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빠드득―
무척이나 느긋한 크루톤의 움직임에 한껏 인상을 찌푸린 나는 이를 갈며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허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오른팔의 마비가 평생 풀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걱정 때문이었다.
만일 그런 거라면 복수라는 꽃은 채 피기도 전에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꼴이었으니까.
‘아니다. 아닐 거다.’
머리를 흔들며 부정적인 상념을 털어 냈다.
분명 괜찮아질 거다.
그러니.
지금은 이 사태를 벗어날 방법만 떠올리는 데 주력한다. 나는 부단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계속해서 방안을 떠올렸다.
정말로.
방법이 없는 걸까?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는 벌레처럼 가만히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딱 한 번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팔을 움직일 수 있다면, 한 번만 주먹을 휘두를 수 있다면 될 텐데.
‘이대로는……!’
입술을 깨물며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옥상에서라도 뛰어내려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불현듯.
지잉―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
뭐지?
갑작스러운 이상 반응에 의아함을 느낀 찰나.
찌릿―
찌리릿―
이번엔 신체 두 곳이 저릿하게 울려 왔다.
거의 굳어 버린 오른팔과 관자놀이를 중심으로 한 저림이었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허나.
바늘로 찌르는 듯하던 자극은 삽시간에 기름 부은 불길처럼 강렬해지더니 이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직후.
지이이잉―
‘……?!’
강한 진동과 함께 머릿속으로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 * *
“그워어어어!!”
푸르른 녹음(綠陰)으로 가득한 공간 속.
양팔을 축 늘어트린 한 마리의 괴물이 보였다. 검은 가죽 위로 푸르른 줄무늬가 인상적인 ‘오르그’였다.
또 있다.
“케륵! 케르륵!”
창처럼 생긴 뾰족한 무언가를 들고 있는 빨간 생물. 민머리에 뾰족한 귀와 오르그의 절반도 못 미치는 체구가 특징이라면 특징인 괴물이.
두 괴물은 격전이라도 치르는 건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헌데.
뭔가가 이상했다.
얼핏 보기에는 오르그에게 한주먹거리도 안 돼 보임에도 불구하고 대치 중인 둘 사이에서 웃고 있는 쪽은 그 빨간 괴물이었다.
“그워어어어!!”
거칠게 포효하는 모습과 달리.
툭―
투욱―
오르그의 장기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팔이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빨간 괴물에게 당한 건지.
혹은 다른 어떤 문제였는지는 모르나 팔을 쓰지 못하는 탓에 감히 오르그를 상대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케르륵, 케륵.”
그렇게 몇 분간 치명적인 상태에 빠진 오르그를 한껏 비웃어 대던 빨간 괴물이 마침내 한 걸음, 한 걸음 거리를 좁혀 갔다.
10m, 9m, 8m…….
금세 서로의 숨소리마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양측.
“케르르륵!!”
빨간 괴물은 오르그가 사정권에 들어오자마자 몸을 크게 부풀리며 두 손으로 창을 힘껏 쳐들었다.
단번에 몸통을 꿰뚫으려는 듯 호흡을 크게 들이켜며 내지르는 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제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일지라도 휘두르지 못하면 어린아이 장난감보다 못한 법.
안타깝지만.
아무리 봐도 이제 오르그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었…….
탁―
“케륵?”
후우우욱!
승리와 패배가, 삶과 죽음이 갈리기 직전.
가만히 서서 날아오는 창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오르그가 별안간 몸을 뒤틀더니 오른쪽 어깨를 우측에서 왼쪽 아래로 홱 돌렸다.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행동에 빨간 괴물이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축 늘어져 있던 오른팔이 어깨의 움직임을 따라 바람을 타고 곡선을 그린다.
흡사.
채찍을 연상케 하는 기예에.
우우우우웅―!!
강렬한 ‘빛’을 담아.
“케륵! 켁…….”
그 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여유롭던 빨간 괴물의 몸을 뒤덮었다.
* * *
“아.”
느닷없는 두통과 동시에 보게 된 짧은 영상.
무엇인가.
“기억.”
오른팔이 담고 있던 오르그의 과거였다.
일전에 ‘오르그의 전투 본능’ 기술을 얻으면서 나는 이미 하나의 기억을 보았다.
헌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단지.
‘포식의 땅’에서 접한 장면은 가장 최근이자 죽음 직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제일 강렬했던 기억일 뿐, 애당초 하나의 기억만 흡수된다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깔끔하게 정리하자면.
‘기억 포식’은 기술 ‘오르그의 전투 본능’이 발현됐던 모든 과정 중에서 일부를 골라 흡수했다는 뜻이었다.
그로 인해 비슷한 위기에 처하자 자연스레 수면 아래에 묻혀 있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 것이었고.
“이런 식이였나…….”
나는 ‘기억 포식’과 관련한 새로운 발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더불어.
“그 방식을 차용하면……!”
달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전구를 켠 듯한 감정에 휩싸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단 한 번이지만.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한 대책이 주르륵 머릿속에 그려졌다.
‘해 보자.’
나는 살길이 보인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영혼을 짓누르던 불안과 걱정만큼은 사라졌다.
꽈아아악―
주먹을 쥐어 본다.
완전한 마비가 아닌지라 느릿하지만 온전하게 쥐어지는 주먹. 그것을 느끼며 발을 뒤로 물렸다.
반보.
오른발을 빼 양다리를 교차로 두고 단단히 지지한다.
그러면서.
“제, 젠장!”
얼굴로, 또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연기했다.
기억 속에서도 오르그는 상대를 확실히 속이기 위해 끝까지 죽음 직전에 놓인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나도 연기한다.
최대한 구석까지 내몰린 척, 불쌍한 척, 살고 싶은 척!
아니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진심이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방법이 실패한다면 진정 죽게 될 테니 거짓 하나 없는 진심으로 가득하다.
그 덕분일까.
“그어어어어! 그어어어어!!”
어느덧 몇 걸음 앞까지 다가온 크루톤이 더욱 흥분한 눈빛으로 괴성을 질렀다.
입가에 줄줄 흐르는 침.
아직 결정 난 건 아무것도 없건만 벌써 어느 부위부터 먹어 치울지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스으으으윽―
‘다섯 걸음, 네 걸음…….’
나는 그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주시하며 신중하게 간격을 쟀다.
긴장감 때문인지.
자꾸만 말라 가는 입술에 침을 묻히며.
그렇게.
“그어어어!!”
부우우우웅!
세 걸음까지 다가온 크루톤이 천둥소리같이 시끄러운 포효를 내지르며 양팔을 치켜들고 날 덮쳐 온 일촉즉발의 순간.
‘…지금!’
후욱―
누군가 끌어당기기라도 하는 양 내 오른쪽 어깨가 뒤로 쭉 비틀렸다.
그러자.
우측으로 돌아간 오른팔이 기묘한 각도를 취하며 마치 오락실에서 펀치 기계를 치기 직전의 자세로 변했다.
내가 바라던 그대로.
“후아!”
나는 그 자세를 유지하며 짧은 기합과 함께 왼손으로 오른팔을 단단하게 고정한 채 앞으로 몸을 던졌다.
독 때문에 오른팔에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빛이.
밤의 어둠을 몰아낼 만큼 밝은 빛이 오른팔을 휘감고 있었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 싸움을 끝마치기에는 말이다.
우우우우우웅―
콰아앙!!
* * *
“으윽…….”
어지럽다.
밤새 술을 마시고서 자고 일어난 것처럼 띵하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이게.
‘에너지’라는 걸 소모한 대가인가.
난생처음 경험해 본 이상 반응.
허나.
“킥, 푸흐흐흐흐…….”
아이러니하게도 내 입에선 웃음이 튀어나왔다.
힘들다, 지쳤다, 쉬고 싶다는 감정을 통해… 비로소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난 살아 있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푸흐흐.
정신없이 웃어 젖히며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그에 맞춰.
[〈튜토리얼〉 과제를 달성하셨습니다.]
[모든 상태 이상 및 소모된 체력이 회복됩니다.]
[〈튜토리얼〉 달성 보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1’ 상승합니다.]
승전을 축하하는 문장이 나타났고.
우드득―
뒤이어 뼈가 삐거덕거린다 싶더니 마법처럼 피로가 싹 가시고 사라졌던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
‘튜토리얼’ 완료에 이런 보상이 있었구나.
꽤나 신기하고 신비로운 감각에 멍하니 몸을 돌아보던 나는 오른팔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승리와 별개로 영영 굳어 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음엔 조심해야지.”
혼자 조심한다고 해서 될 건 아니나, 그래도 되도록 피할 수 있으면 피해 보리라 다짐한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전방에는 아주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복부에 지름 50cm는 될 법한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는 크루톤과 놈이 흘린 핏물로 옥상 전체가 더럽혀져 있는.
다만.
역겹다거나 구역질이 나오진 않았다. 고문을 당하며 지옥을 오간 탓인지 아니면 이 또한 괴물이 된 영향인지.
모르겠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터벅―
터벅―
나는 쓸데없는 상념을 털어 내며 크루톤의 사체 앞에 섰다. 전투는 끝났으나 아직 해야 할 게 남아 있었다.
괴물을 사냥했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행위가.
그것을 위해.
툭―
사체에 손을 대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추출.”
추출,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