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튜토리얼 : 크루톤》
- 마침내 태어난 「프레데터」는 이제 막 첫 포식을 마친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최상위 포식자라는 이명(異名)에 걸맞지 않게 무척이나 미약한 상태입니다.
그런 당신의 힘에 입맛이 동한 행성 ‘어맨다(Amanda)’의 지배종 「크루톤」 세 개체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감히 최상위 포식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날뛰는 미물들을 모조리 찢어발기십시오.
(0/3)
“역시… 전투였네.”
쫙 펼쳐지는, 드디어 공개된 ‘튜토리얼’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지고 전신이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조여들기 시작한다.
이미 당연시되어 버린 괴물과의 결전.
그래서 의연하게 맞이하려고 했지만, 생각과 달리 마음은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두렵다, 라고.
“…….”
꽈아아아악―
아닌 척.
이를 악물고 주먹을 힘껏 쥐며 애써 부정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이 공포는 자꾸만 한 달여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느닷없이 ‘차원 보호 결계’가 해제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물음표로 점철된 ‘특수 조건’의 비밀을 알아내 달성하라는 문장의 파도가 밀려온 직후.
정말로 외계 종족이 급습해 지구를 종말시킬 듯 날뛰어 문명이 무너지고 간신히 회복되어 가던 나의 일상, 아니, 나와 누나의 삶을 절망으로 밀어 넣었던 10월 3일의…….
짝!
“이럴 때가… 아냐.”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던 상념을 깨부수기 위해 스스로 뺨을 후려쳤다.
그래.
이럴 때가 아니었다. 나는 도심 한복판에서 한가로이 과거나 떠올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무섭고, 두려운 건 맞지만.
그런 마이너스한 감정에 묶여서 가만히 서 있다 죽으려고 바깥에 나온 게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정신 차리고 어서 빨리 전투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노인은 어떠했을지 모르나.
사방이 탁 트인 평지에서 다수와 싸우는 것보다 멍청한 행동은 없는 법.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우세한 형태로 전투를 이끌려면 상대의 운신의 폭을 제한할 만한 장소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튜토리얼’이 시작된다는 문장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도로를 뛰어다니던 차에.
‘아, 저긴…….’
제법 괜찮아 보이는 장소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다.
임대로 비워 둔 1층 위로 2층에 카페와 3층에 수학 학원이 있는 상가 꼭대기 옥탑방이었다.
건물 좌측에 설치된 계단을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저곳이라면 날아다니는 개체가 아닌 이상 계단만 잘 점거하고 있어도 상대가 몇이든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군다나.
계단 자체도 사람의 신장에 맞춰진 탓에 괴물들이 날뛰기엔 공간도 협소한 데다가 위에서 아래를 내리치는 위치적 이점도 가질 테니 말이다.
워낙 기상천외한 괴물들이 많아 어디까지나 ‘일반적일 경우’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여하튼 마음이 확 기울었다.
문제는.
‘그런데… 저 옥탑방에 누가 살고 있으면 어쩌지?’
자칫 호랑이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나듯 예상치 못한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제집에 찾아온, 그것도 뒤에 괴물들을 주렁주렁 달고 온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 주진 않을 테니까.
‘…일단 가 보자.’
그 불안감으로 인해 잠시 발걸음을 멈췄던 나는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옥탑방으로 달렸다.
이모저모 다 고려하기엔 급한 상황.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몸으로 부딪쳐 보고 다음을 생각하자는 쪽으로 확실하게 마음을 정한 나는 어둠을 헤치며 옥탑방이 있는 건물에 도착해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탁탁탁―
‘2층… 없고, 3층도… 없다.’
비어 있는 1층을 지나 2층과 3층으로 올라갈 때는 사방을 주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리창도 깨지고 내부도 어지러운 상태라 사람이 살기엔 부적합해 보였으나, 괴물이나 짐승이 들어가기에는 충분하니 경계는 필수였다.
그렇게 도착한 옥상.
‘열려, 있다?’
마지막까지 선입자의 존재를 걱정하며 옥상에 발을 들인 나는 활짝 열려 있는 옥탑방 문을 볼 수 있었다.
즉.
저 안에는 아무도 없단 뜻이었다.
“후…….”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불곰파.
혹은 그에 준하는 악연으로 뒤틀린 상대가 아니라면 되도록 사람과의 전투는 피하고 싶었던 터라.
그러니 이젠 딱 하나만 신경 쓰면 된다.
“그어어어어어!!”
“그어어악!!”
쿵―
쿵―
쿵―
‘왔나……!’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타이밍에 등장한 괴물들.
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쿵쾅거리는 소리로 사방을 도배하며 건물로 다가오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만.
툭―
나는 크루톤이라는 괴물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마자 움직이기 편하게 가방부터 내려놓고 계단 앞에 섰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아니, 한다!’
꽈아아아악―
그리고 주문을 외듯 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하게 주먹을 틀어쥐고 지하실에서 했던 그대로 복싱 자세를 잡아 간다.
그와 동시에.
“그어어어어!!”
쿠우웅―
꺾어지는 계단 사이로 마침내 괴물 크루톤이 나타났다.
“그어어어어!!”
화통하게 울부짖으며 나타난 처음 마주한 행성 ‘어맨다(Amanda)’의 지배종 크루톤은 인간의 입장에서 괴물 그 자체라고 부를 만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2m는 될 법한 신장에 녹색 피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어의 것을 확대한 듯한 흐물거리는 다리가 무려 여섯 개나 달려 있었기 때문.
그뿐인가?
머리 또한 도마뱀과 악어를 반씩 섞은 듯한 데다가 오르그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두꺼운 손은 피부색이나 세 개뿐인 손가락을 빼면 사람과 비슷했다.
아마 저 양팔로 먹잇감을 붙잡고 짓이기거나 찢어 버리는 방식의 사냥법을 구사하는 듯했다.
허나.
외모적인 부분에서 내가 제일 주목할 점은…….
‘크다!’
2m의 신장과 어울릴 만큼 무척 ‘뚱뚱’하다는 것.
더 정확하게는.
그런 탓에 비좁은 계단을 한 번에 둘 이상 같이 올라오지 못하고 세 마리가 일렬로 쭉 늘어서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단히 뛰어다니며 얻어 낸 지리적 이점이 적용되는 상대였으니까.
‘됐다!’
예측대로 된 덕분인가?
괴물을 마주하기 전엔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영혼마저 잡아먹힐 뻔해 놓고선 막상 마주하고 나니 자신감이라는 감정이 밑바닥부터 솟구쳐 전신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예 두려움에 먹혀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의 감정 상태를 놓치지 않고 당장 싸워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다는 걸.
‘흐으읍!!’
탓―
후우우우우욱!!
숨을 확 들이켜며 왼발을 내디딘 나는 스트레이트 자세로 주먹을 쭉 뻗었다.
있는 힘을 다해.
본능적으로 허리를 살짝 비틀었다 되돌리며 회전력을 추가하고 위에서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까지 더해 내질러진 주먹은 선두로 올라오던 크루톤을 강하게 찍어눌렀다.
“그어어억!”
첫 일격.
단박에 치고 들어간 공격에 크루톤 역시 가만히 당해 주지 않으려는 듯 팔을 뻗어 온다.
격전의 결과는 금세 드러났다.
쿠우웅―
서로의 주먹이 맞닿은 순간.
여러 이점이 더해진 오르그의 오른팔이 마주쳐 오는 놈의 팔을 부숴 버리고도 모자라 몸통마저 뒤로 밀어내는 것으로 말이다.
콰드드득!
“……! 그어어억!!”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에서 올라오는 다른 크루톤 때문에 고꾸라지거나 계단을 구르는 사태로 번지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가죽을 찢고 튀어나온 부러진 뼈가 몸통을 찌르는 처참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어억! 그어어…….”
고통이 상당한 듯 신음을 토해 내는 크루톤의 갈라진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고작 인간의 공격 한 번에 이 꼴이 된 게 믿기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런 놈에게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정신을 차릴 시간 따위, 회복에 필요한 잠깐의 틈조차 줄 생각이 없었다.
후우욱―
콰앙!
쾅!
한 번, 두 번, 세 번.
우뚝 선 채로 전신을 짓이겨 버릴 기세를 담아 연속으로 쳐 내는 주먹이 순식간에 크루톤의 가슴을 함몰시킨다.
양팔처럼 상체도 인간과 유사한 신체 구조를 가졌는지 짓눌린 가슴을 중심으로 박살 난 갈비뼈가 곳곳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촤아아악―
피부색만큼이나 진한 녹색 핏물을 흘리며.
“그어어어억…….”
삽시간에 만신창이가 된 크루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팔을 허우적거린다. 나는 요동치는 놈의 눈빛에서 하나의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내 대답은 간결했다.
“죽어.”
쿠웅―
괴물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죽음 직전에 놓였을 때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해짐은 똑같은 듯하나, 그렇다고 해서 살려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튜토리얼’을 위해서는 반드시 죽여야 했거니와 날 잡아먹으려 한 대상을 살려 줄 만큼 착하지 않았으니까.
우드득―
최후를 장식하는 주먹질에 심장이 부서진 듯 힘없이 쓰러지는 크루톤.
생각보다 간단한 결말이었다.
제아무리 계획대로 됐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끝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원래 괴물을 죽이는 게 이리도 간단한 일이었나?
되레 놀란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자연스레 오른팔로 시선을 던졌다.
이유를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이게… 괴물의 힘.”
내게 이식된 것이 무엇인지.
그래.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가진 힘은 결코 미약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얻은 이종의 팔, ‘오르그’라는 괴물의 신체가 지닌 힘은 여느 괴물과 비교하더라도 절대 부족하지 않음을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었다.
나 또한.
괴물(怪物)이 되었다는 진실을.
“그어어어어!!”
동족의 죽음의 흥분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먹잇감에 다가가는데 앞쪽의 시체가 거슬렸던 건지, 중단에 있던 크루톤이 죽어 버린 동족을 붙잡더니 그대로 뒤로 던져 버린다.
순간적으로 확 비어 버린 상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며 그렸던 몇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가 그대로 펼쳐졌다.
‘기회!’
나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않고 시체가 사라져 비어 버린 공간으로 몸을 던지며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욱―
쿵!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주먹은 크루톤의 가슴을 정확히 두드렸다.
우드득―
또다시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두에 있던 개체를 죽이며 인지했다.
크루톤의 방어 능력이 형편없거나, 혹은 이놈들의 방어 능력을 웃돌 만큼 오르그의 오른팔이 가진 공력이 대단하다는 종(種)의 상성을.
이를 증명하듯.
“흐읍!”
부우웅우웅―
콰직!
“그르럭―”
가슴을 맞고 휘청거리는 크루톤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찍자 마치 망치에 가격당한 것처럼 쇄골이 박살 나며 으깨진 대가리가 살가죽에 파묻혔다.
더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처참하게 죽었으니 다시 살아날 걱정 따윈 하지 않아도 될 터. 그러니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나는 곧바로 다음 상대…….
촤르르륵!
빠악!
“크읍!”
세 번째 크루톤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찰나 뭔가가 오른팔을 강하게 후려쳤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통증에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이나 물러나며 오른팔을 살피니 어두운 와중에도 팔에 새겨진 기다란 녹색 선이 보였다.
이게 뭘까.
그에 앞서서.
‘팔이…….’
뚜둑―
뚝―
팔은 왜 마비라도 된 듯 딱딱하게 굳어 가는 걸까.
분명.
상처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데.
눈을 찡그리며 의아해하는 내 앞으로 조금 전 팔을 때렸던 무언가가 스멀스멀 되돌아가는 게 보였다.
문어와 비슷한 형체.
본래의 길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던, 크루톤의 몸을 지지하는 여섯 개의 다리 중 하나였다.
[「크루톤의 촉수 독」에 당했습니다.]
[‘타격 부위(오른팔)’의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느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