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나저나, 이럴 때가 아니네. 자네도 곧 시작될 테니.”
“예?”
홀로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노인의 한마디에 현실로 돌아왔다.
곧 시작이라니?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조금 지쳤는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른 노인이 말을 이어 갔다.
“자네의 상태가 어떠한지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개인 정보를 열람한다는 건 고유 능력을 손에 넣었다는 뜻일 터. 맞나?”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허, 됐네. 인사받자고 꺼낸 말은 아니니까. 여하튼 그렇다고 하니 ‘아카식 레코드’라는 단어도 보았을 것이네.”
“아카식 레코드……. 아, 예. 있습니다.”
노인의 말에 허공을 둘러보던 나는 아직까지 남아 있던 문장 중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입니다, 라는 대목을 발견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아카식 레코드. 그게 뭔지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하네. 허나 분명한 건… 나도, 손주도 같은 문장을 보았고 이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안에 ‘튜토리얼’이란 게 진행됐다는 것일세.”
“튜토리얼…이요?”
“그렇네. 손주 말로는 인터넷 게임을 막 시작한 유저가 게임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라던데, 여기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 마치 손에 넣은 힘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활용하는지 교육하는 것처럼 고유 능력과 관련된 임무가 주어졌지. 병 주고 약 주듯이.”
“아.”
쭉 흘러나오는 노인의 말에 불현듯 과거가 떠올랐다.
고문을 받으며 피폐해져 있던 당시.
잠깐잠깐 짬이 생길 때면 불곰파의 악마들은 고통에 허덕이는 나를 앞에 두고 지루함을 달랠 겸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늘어놓았었다.
대체로 전설에 등장하는 용사의 무용담인 양 허풍에 가까웠지만.
언젠가 복수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전부 머릿속에 박아 넣었던 기억 중엔 ‘튜토리얼’에 관한 내용 역시 들어 있었다.
“내 경우엔 키메라가 된 백구로 괴물을 사냥하는 임무였네. 숫자는 셋이었지만, 그나마 괴물치고는 그리 위험한 개체가 아니었기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고……. 손주는 상처 입은 대상 셋을 치료해 주면 됐지.”
“으음.”
“자네는, 우선 백구와 같은 키메라가 되었으니 전투가 되지 않을까 싶네만, 시간이 얼마 없으니 지금부터 준비해 둬야 할 걸세. 그 밖에…….”
노인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하듯 시계도 없는 손목을 두드리며 자신과 손자가 겪었던 튜토리얼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쩌면 현 시국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추가로 알려 줄 만한 건 내가 싸웠던 괴물의 정보겠군.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갑작스레 찾아온 괴물들은 회색 몸체에 코뿔소처럼 흑갈색 뿔을 달고 있는 ‘풀루스’라는 놈들이었지. 돌진하는 게 특기인데 직선 질주밖에 하지 못해 좌우로 몸을 피하며 상대하니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네.”
“풀루스…….”
괴물의 정보까지도 서슴없이.
나는 그 부분에서 특히 감명받았다. 노인의 말대로 나 또한 전투가 주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인 만큼, 아니, 꼭 ‘튜토리얼’이 아니더라도 향후 행보에 있어서 괴물들의 정보는 반드시 비축해 놓아야 할 자산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풀루스, 흑갈색 뿔에 직선 돌진. 확실하게 기억했습니다.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닐세. 그보다 어서 간단한 운동이라도 해 두게. 익숙해질 수는 없더라도 어색하진 않아야 해. 혹여 정말로 괴물과 싸워야 한다면 나와 달리 직접 해결해야 할 텐데 새로운 팔이 어색하면 목숨 걸고 이식한 게 물거품 아닌가. 내가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손주처럼 특수한 능력이 아니라면 ‘튜토리얼’은 혼자 해내야 하니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순식간에 ‘튜토리얼’에 관한 얘기를 끝낸 노인이 손을 휘휘 저으며 서둘러 준비할 것을 권유한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한 얼굴.
꾸벅―
나는 노인에게 감사의 의미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지하실 중앙에 서서 가볍게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뇌의 명령에 따라.
자연스러운 듯 부자연스러운 듯 스멀스멀 움직이는 오른팔로 주먹을 꽉 쥐어 본다.
꽈아아아아악―
팔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힘을 주는 순간 머릿속으로 노인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익숙해지진 못하더라도 어색하진 않게.’
앞으로 ‘튜토리얼’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아카식 레코드’라는 단어가 나타난 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라고 했으니 짧으면 대략 3~40분.
그 안에 어색함을 지워야 하는데…….
가능할까?
‘아냐.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그래.
지금은 가능성을 따질 때가 아니다. 반드시 이뤄 내야 하는 상황이지.
해낸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어느새 노인이 떠난 지하실에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후우우우욱―
파앙!
어색하게 펼쳐진 동작이었으나, 바람 가르는 소리만큼은 무척이나 매섭게 울려 퍼졌다.
* * *
“작은 동작부터 하자.”
나는.
흡사 재활 치료를 하는 사람처럼 오른팔을 움직였다.
까딱―
까닥―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가볍게 접었다 펴 보기도 하고, 서로 붙였다 떼기도 하며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해 보았다.
눈을 감은 채.
왜?
‘공기, 느껴진다. 차가워. 하지만 왼팔보다는 덜해.’
이종의 육체에 대한 어색함을 지우는 동시에 기존의 육체와 얼마나 다른지를 한꺼번에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엄연히 종(種)이 다른 신체다.
같은 온도, 같은 충격, 같은 무게일지라도 다르게 느끼는 게 당연하니 감각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연구의 결과.
“둔감해. 사람보다 훨씬.”
나는 인간의 육체와 오르그의 육체가 가진 가장 큰 차이는 ‘민감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털이 거의 없는 인간의 경우.
온도든 충격이든 바로 피부에 닿는 데다가 두께도 상당히 얇은 편이라 뇌로 전해지는 전달 과정이 극도로 짧아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허나.
오르그는 고릴라의 그것처럼 털로 뒤덮여 있을 뿐 아니라 피부도 훨씬 두꺼워 온도나 충격이 잘 느껴지질 않는다.
단점인가?
“아냐. 단점은 아니야.”
민감하지 않다고 해서 그게 꼭 문제로 작용하진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분명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나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될 수도 있다.
우선.
온도에 덜 민감하니 만일 적의 주력 무기가 차갑거나 뜨거운 것이라면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
아직까지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고유 능력’을 통해 혹은 본래 가진 능력으로 불이나 얼음을 부리는 사람과 괴물이 곳곳에 즐비하다고 하니 말이다.
또.
두꺼운 털과 피부로 충격을 덜 느낄 수 있으니 웬만한 상처나 고통도 참고 버텨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전투 지속력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쯤 하면 됐어.”
나는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정립한 여러 가지 이론을 뇌리에 확실하게 박아 넣으며 일차적인 연구를 마쳤다.
감각적인 부분은 충분히 확인했다.
좀 더 세부적인 부분, 이를테면 회복력은 어떠한지, 어느 정도의 충격까지 버틸 수 있는지 등등 몇 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지만…….
전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팔에 상처를 낼 수는 없는 터라 생략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양팔로 턱과 관자놀이를 막았던가?’
실전 훈련.
어떤 괴물과 싸우게 될지는 몰라도 기본적인 전투 형태 정도는 갖춰 놓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복싱 자세를 잡았다.
운동.
그것도 싸움과 관련해서는 아는 게 전무하다시피 한 탓에 뻔하지만 웬만하면 복싱 자세로 대응해 볼 작정이었다.
‘잽, 스트레이트!’
훅―
후우우욱!
기억에 남아 있는 자세를 토대로 어설프지만 뻗어 내는 주먹.
처음엔 가만히 서서 그러다 조금씩 스텝을 밟아 가며 섀도복싱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오른쪽 상체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종족의 오른팔을 사람의 몸으로 휘두르고 있으니 육체가 빨리 지치는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동시에.
“오래 끌면 안 된다.”
이런 육체로는 단기 결전만이 정답이라는 걸.
전투가 길어질수록 나는 상대적으로 더 빨리, 더 심하게 지칠 테니까.
꽤나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괴물의 신체를 이식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복수는 코앞에 놓인 것처럼 여겼었는데, 세상이란 게 그리 간단할 리가 없구나.
“후.”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와 주저앉았다.
알게 모르게 불안해진 모양인지.
마음 같아선 더 뛰어 보고 싶었으나 이대로 계속 오른팔을 혹사했다가는… 아니, 오른팔에 의해 몸을 혹사시켰다가는 되레 진짜 목적인 ‘튜토리얼’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군가 그랬다.
훈련으로 거둔 성과를 실전에 100% 활용하려면 적당한 휴식은 필수라고.
명언이다.
내가 아무리 싸움이나 운동 쪽으로는 문외한이라더라도 휴식의 중요성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히나 성공과 실패가 생과 사를 결정짓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또한.
* * *
앉아서 쉬기를 대략 10여 분.
서서히 몸이 괜찮아지고 있음을 느끼던 차에.
“…떠나야겠지?”
문득.
‘튜토리얼’ 시작 전에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하는 주제에 이 야밤에 가긴 어딜 가나 싶으면서도, 정말로 전투와 관련된 ‘튜토리얼’일 경우 여기서 치렀다가는 노인과 아이에게 적잖은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곳은 그들의 터전이다.
목숨을 구해 주고, 복수의 기회까지 손에 쥐여 준 이들의 소중한 주거지가 나로 인해 훼손되길 원치 않았다.
제아무리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존재했다.
“…가자.”
그런 마음으로 미련 없이 계단으로 향하던 찰나.
끼이이익―
“혹시나 해서 내려와 봤더니, 정말로 떠나려 했던 모양이군그래.”
“……?!”
당황스럽게도 잡지도 않은 문이 열리더니 노인이 들어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따로 말하지 않았음에도 속을 훤히 꿰뚫어 본 듯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날 향해 싱긋 웃어 준 뒤.
“가기 전에 이것 좀 챙겨 가게.”
그대로 지나쳐 지하실 한쪽에서 자그마한 가방을 가져와 고구마와 감자, 거기에 물과 라이터 등 몇 가지 물건을 담았다. 그러곤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돌아보는 내게 두툼해진 가방을 건넸다.
무심하게 툭.
그러나 거절하지 말라는 확고한 눈빛으로.
“…감사합니다.”
떠나는 건 말리지 않겠으나 받지 않으면 보내 주지 않겠다는 태도에 결국 나는 계속 그래 왔듯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같은 말만 반복해야 했다.
인사를 하는 내내 코끝이 시큰거렸다.
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거나 수십 년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는 의인들은 TV 속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아직도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노인에게 약속했다.
언제가 됐든.
이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도와주리라고 몇 번이고 굳게 다짐했다.
“알겠으니, 이거나 두르고 가게. 그대로 돌아다니기엔 팔이 너무 눈에 띌 테니 말일세.”
노인은.
항상 그렇듯 듣는 둥 마는 둥 넘겼지만 말이다.
“예.”
스륵―
가방을 등에 메고, 마지막으로 천막용 비닐을 잘라 만든 커다란 장포를 걸친 나는 두꺼운 팔이 완전히 감춰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지하실을 나왔다.
“부디 다음에 다시 봤으면 좋겠군. 물론 좋은 얼굴로 말이야. 혹여 다치더라도 우린 웬만하면 이곳을 벗어나지 않을 듯하니 치료가 필요하다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들르게.”
마지막까지 따듯한 한마디를 건네주는 노인을 뒤로하고서 세상을 향해 발을 뻗었다. 정말로 다시 만날 때에는 서로 좋은 얼굴이길 바라며.
그렇게 배웅하는 노인의 모습이 어둠에 휩싸여 사라져 갈 즈음.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 기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대상 ‘아윤’의 기록을 바탕으로 〈튜토리얼〉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침내 ‘튜토리얼’이란 것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