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상에는 수많은 과학 이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론이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 어떠한 이론을 주장했을 때, 그것을 성립시키는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검증 당시 데이터를 조작 또는 연구 자체에 부정행위가 개입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결과만 보지 않고 전체적인 과정까지 중요하게 확인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탓에.
미국의 어느 심리학 교수가 주장하는 ‘세포 기억설(Cellular Memory)’ 역시 정식 과학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의사 과학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그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을 외면하는 과학계를 향해, 나아가 전 세계를 향해 외치고 또 외칠 뿐이었다.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크고 성능 좋은 장치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허나 지난 20여 년간의 데이터를 확인해 본 결과, 장기 이식을 받은 수혜자들이 절대 알지 못할 기증자의 과거를 떠올리거나 습관 혹은 성격을 닮아 가는 등의 사례를 보았을 때! 인간의 기억이란 단순히 뇌를 넘어 세포 전체에 각인되는 것임이 확실하다.]
[일례로 심장을 이식받은 직후부터 꿈을 꿀 때면 소년이 되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악몽에 시달렸던 제니퍼라는 소녀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부모에게 알렸다.
부모 또한 딸의 말이 심상치 않다고 느껴 결국 경찰서까지 가서 한 장의 몽타주를 완성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제니퍼가 그려 낸 몽타주는 실제로 그녀에게 심장을 이식해 주었던 랄프라는 소년을 살해한 범인이었다.]
[이 외에도 수혜자가 전에 없던 우울증을 겪거나 식습관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는 등 무려 70여 건에 달하는 사례가 존재하고 또 늘어나는 중이다.
그렇기에 나는 ‘세포 기억설’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정식 과학으로 채택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다짐.
어쩌면.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자신의 이론이 증명되리란 사실을 말이다.
* * *
“그워어어어어어!!”
쿠웅―
쿵―
거친 포효와 함께 땅을 두들기며 짜릿한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던 순간, 어디선가 달려든 라세르타가 날카롭게 벼려진 이빨로 내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사아아악!
“키에에엑!”
콰드득―!
끔찍한 소리를 내며 살점을 찢고 들어가는 수백 개의 칼날 같은 이빨.
부지불식간에 당한 기습인 데다가 이미 라세르타 두 마리와의 혈전으로 상처 입고 지쳤던 나는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육중한 무게에 깔려 옆으로 쓰러졌다.
“그워어어억!!”
후우웅―
후웅―
몸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저항하려 했으나, 좀처럼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전투의 여파가 상당히 크게 누적된 탓이었다.
우득―
으드득―
그러는 사이 살가죽을 뚫고 들어온 이빨이 근육과 뼈를 넘어 신경까지 건드렸는지, 신체 곳곳의 반응이 급격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로는…….
지난날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설령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끝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 나는 저항을 포기했다.
당연히.
허무하게 목숨을 내어 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르륵, 그륵…….”
기운이 다한 척 쓰러지며 라세르타 모르게 남은 힘을 오른팔에 담았다.
어차피 살 수 없다면, 적어도 혼자 가진 않을 생각으로 흔들리는 정신을 단단히 붙잡으며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그워어어어어!!”
한순간에 한쪽 팔로 땅을 밀어내며 몸을 뒤집었다.
날 깔아뭉개며 이미 승리했다고 판단했을까?
“키엑? 키에에엑!”
갑작스럽게 반전된 상황에 당황한 듯 놈은 뒤집힌 채로 땅바닥을 구르고 있음에도, 제 몸통에 주먹이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후우우우웅―
콰아아앙!!
아지랑이처럼 휘날리는 기운으로 뒤덮인 주먹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에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쏟아져 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몸통 위로 눈만 부릅뜬 놈의 대가리가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르륵, 그륵… 그워어어어어!!”
절로 포효가 나왔다.
조금 전보다 훨씬 작아진 음량이었으나, 승리를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한 차례 힘을 다해 승전을 알린 나는 손을 뻗어 놈의 머리통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목덜미가 찢어진 탓에 턱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지만 억지로 씹어 삼켰다.
나름의 복수였다.
날 건드린 대가로 시체조차 남겨 두지 않겠다는.
으적―
으드득―
각진 이빨에 씹혀 산산이 부서지는 머리통. 악착같이 살점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삼키자 몸이 자연스레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승리로 장식된 최후였으니까.
그것이.
“그르륵…….”
털썩―!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축하합니다!]
[이식된 「오르그의 오른팔」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기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추출 완료!]
[「종족 전용 기술 : 오르그의 파괴 본능」을 습득합니다.]
[마력이 4 상승합니다.]
【 첫 번째 진화 】
“…….”
“…이네, 응? 자네 괜찮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억에 묘한 기분을 느끼다 불현듯 노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흔들며 어영부영 대답하자 노인이 한층 깊어진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잘 끝난 줄 알았던 수술에 부작용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듯했다. 수술 성공 대상이라고는 개 한 마리가 전부니 불안해할 만도 하다.
허나.
나는 정말 괜찮았다.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이게, 기억 포식의 효과.’
정말이지 신기하고 기이하다.
뇌도 아니고, 팔에 기억 일부가 담겨 있다는 점도 특이할 따름인데…….
‘포식의 땅’이라는 심상의 세계에서 되살아난 본체와 싸워 이기는 것으로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일을 내 과거인 양 흡수하는 능력이라니.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오르그의 최후 전투는 몇 번을 되돌려 봐도 위화감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런 데다가.
《기술 : 오르그의 전투 본능》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인 「오르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다. 육체 중 가장 강인한 팔에 에너지를 담아 타격 대상을 파괴한다. 간혹 지성이 뛰어난 오르그는 팔에 모은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갑옷이나 방패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분명 마지막에 사용했던 기술이야!’
기술까지 얻었다.
지구를 종말로 몰고 간 ‘침략군’을 사냥해야만 얻을 수 있는 힘을, 나는 단순 이식만으로 손에 넣었다.
그렇다는 건.
‘새로운 신체를 이식할 때마다, 기억을 포식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기술을 늘릴 수 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됨을 의미한다.
굳이 피가 튀고 살점이 찢겨 나가는 전투를 치를 필요가 없었다. 그저 여기 지하실에 널려 있는 괴물의 신체만 이식해도 안정적으로 보유 기술을 늘릴 수 있다.
이는 곧 복수를 향한 시간이 단축된다는 의미.
물론.
해당 과정에는 크나큰 제약이 따른다.
“인간성.”
“음?”
“아니,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어 버린 단어.
오르그의 육체를 이식하면서 소실된 ‘인간성’이 바로 그것이었다.
《특이 사항 : 인간성》
- 오로지 괴물(怪物)로 창조되었어야 할 「프레데터」이나, 스스로 「인간」이길 바라는 영혼의 모순이 뒤엉켜 만들어진 제약이다.
보유한 ‘인간성’을 상실할 때마다 ‘이성(理性)’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하여 더욱 ‘괴물’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괴물의 신체를 이식받고도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최후의 장치.
만약.
이를 무시하고 강해지기 위해 마구잡이로 괴물의 신체를 이식했다간 복수고 뭐고 이성을 잃은 채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세상을 떠돌게 될 터.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
다른 건 몰라도.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복수를 위해서는, 그 개자식들의 입에서 제발 죽여 달라는 외침이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조심해야 할진대…….
‘소모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으면 사람의 피를 마시라니.’
회복 조건이 너무 괴랄하다.
뱀파이어처럼 매일같이 피를 마셔야 하는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나 흡혈을 해야 한다는 방식 자체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심리적인 것도 심리적인 것이지만, 무엇보다 피를 구할 길이 너무 막막했다.
이 시국에 피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제일 좋은 방법은 병원이라도 털어서 수혈용 혈액이라도 찾는 건데, 세상이 망가지고 한 달이나 지났으니 멀쩡할 리가.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생각해 봐야겠어…….’
반드시.
《기술 :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
-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키메라 「프레데터」는 자신이 사냥한 개체의 신체 조직을 ‘흡수 이식’ 또는 ‘변형 이식’해 끊임없이 성장한다.
다만 발아한 터의 영혼이 인간이길 바라는 제약으로 매 이식마다 「인간성」의 일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 현재 등위에서 이식 가능한 신체 : 팔, 다리, 이미, 꼬리
- 다음 등위까지 필요한 최소 이식 수 : 1/5
- 현재 이식에 필요한 인간성 : 10%
‘인간성’만 해결되면 앞으로는 이 능력을 통해 노인의 도움 없이도 무한정 이식이 가능해질 테니까.
당연하게도.
‘기억 포식’의 기회 역시 늘어날 테고.
그러니.
내게 있어서 ‘인간성’이란 문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답을 알아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개인 정보.”
그런 생각을 하며 ‘개인 정보’를 열람했다.
한번 쭉 보고 싶었다.
새롭게 태어난 나를.
《개인 정보》
*기본 사항
- 이름 : 아윤
- 종족 : 키메라 - 프레데터
- 칭호 : 인류 최초의 키메라
-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신체
- 근력 : 17
- 체력 : 7
- 내구 : 13
- 순발력 : 5
- 마력 : 3
*기술
- 프레데터의 하위 진화론
- 오르그의 파괴 본능
*특이 사항
- 인간성 : 90% / 미약한 분노 조절 장애
시야 한쪽을 꽉 채우며 출력된 홀로그램 화면을 보자 진정으로 능력자가 되었음이 체감됐다.
아직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수준이다.
허나.
“이제 시작일 뿐이야.”
나는 부정적인 상념을 모두 지워 버리곤 왼손으로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쥐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리 길지 않을 테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제 더럽고 추잡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 남매에게 파멸을 선사했던 불곰파의 이덕구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목을 전부 뜯어내 바칠 테니 부디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누나에게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