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람은 주어진 모든 것에 적응한다.
그래서 처음이 어려울 뿐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생활 환경, 노동 환경, 심지어 자연환경까지도……. 분명 초기에는 절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다가도 지속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함을 느끼고 아무렇지 않게 감내하기 마련이다.
노인이 키메라 제작에 필수적으로 동반된다는 통증을 연거푸 강조했음에도, 내가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지난 열흘간 이어진 ‘고문’을 버텨 오며, 아픔을 참는 것 하나만큼은 지겹도록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헌데.
화르르르륵―
화르륵!!
“끄으읍! 끄으으으……!!”
아니었다.
바늘이 살을 뚫고 그 위에 실을 얹을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이제껏 경험해 온 그 어떤 통각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꿰매지는 것 같았다.
그래.
마치 내 영혼을 강제로 찢어 작은 틈을 만든 뒤, 맞지 않는 또 다른 영혼의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기분이었다.
“끄으으으읍!!”
술기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천 조각을 꽉 문 치아 사이로 터져 나오는 비명이 지하실을 몇 번이고 울렸다.
그러다.
후욱―
‘아.’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뭐지?
어떻게 된 걸까.
기묘한 감각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단순히 묘하다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모를까, 그 직후부터 전신을 불태우는 것 같았던 통증이 점차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신음도 튀어나오질 않았다.
그저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아주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을 듯한 충동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
끔뻑거리는 눈꺼풀의 무게가 천근같이 무거워졌다.
툭―
‘……?’
그렇게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 쏟아지는 수면욕에 완전히 눈을 감으려는 찰나.
무언가가 내 손에 부딪쳤다.
가까스로 잠을 몰아낸 나는 시선을 돌려 손끝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초록색 빛깔의 빈 병, 조금 전 내가 마시고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던 술병이 있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물건.
내용물을 잃어버린 채, 쓰임새를 다한 뒤 이제는 버려질 일만 남은 물건일 뿐인데.
“아아… 아……!”
어째서인지 그 비루한 소주병을 본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소주병에 불현듯 예전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후.
한순간에 무너진 일상을 비관하며 매일같이 술만 마셨던 세월이, 욕으로 하루를 맞이해 욕으로 하루를 흘려보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머저리.
아무런 잘못도 없는 부모님께서 내 절망과 슬픔이 당신들의 탓이라며 눈물로 통곡하게 했던 머저리의 삶이 사진이 되어 한 장 한 장 시야를 채워 나가고 있었다.
그 비참한 과거에 눈을 감으려 했다.
보고 싶지 않았다.
후회로만 점철된 과거 따위 되뇌고 싶지 않았기에 눈을 감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평안히 잠들고…….
‘일어났어?’
스르륵 내려앉는 눈꺼풀을 따라 세상도 검게 물들어 가던 순간 한 장의 사진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귓가를 파고드는 작지만 또렷한 음성에 움찔하고 몸이 굳었다.
얼어 버린 채로 가만히 있는 내 눈앞에 다시 새로운 사진이 떠오르고, 그에 맞춰 훨씬 크고 밝아진 소녀의 미성이 울려 퍼졌다.
‘배 안 고파? 밥해 줄까?’
‘누나랑 바람 쐬러 갈래? 꽃 많이 피었더라.’
‘글쎄 그랬다니까?! 인턴이라고 막 부려 먹는데 아주 그냥! 으으…….’
‘누, 나?’
누나였다.
다시는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그 아련한 목소리가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와 어느새 커다란 파도가 되어 나를 두드리고 있었다.
굳게 닫혀 가던 문이 열린다.
완전히 떠진 시야 너머로 누나의 모습이, 누나의 얼굴이, 나와 마주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웃음을 잃지 않았던 누나의 미소가 새겨진 사진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누나!”
무엇보다 밝고 환하게 빛나고 있는, 낯설지만 익숙한 천사가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3년 전처럼.
자그마한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절망에 빠져 살아가던 머저리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주듯 기다리는 천사를 향해 나도 팔을 뻗었다.
그날처럼.
스으으윽―
탁―
꽈아아아아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급 키메라 제작」에 성공했습니다.]
오늘도 누나의 손을 붙잡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 * *
…게!
…나 보게!!
…자네! 어서 일어나…….
어느 순간.
머리를 울리는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귀를 막아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음성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 눈을 뜨자.
“으으음…….”
“아아! 드디어 일어났구먼! 드디어 일어났어!”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나를 발견한 노인이 크게 웃는다.
그러더니.
덥석―
“됐네! 됐어! 성공했단 말일세!”
내 왼팔을 쭉 끌어당겨 어딘가에 얹어 놓는다.
밧줄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진 왼손에 두툼하고 거친, 딱딱하면서도 겉면에 덮인 털이 부드러운 느낌을 선사하는 감촉이…….
“어떤가! 새로운 팔이!”
“…아!”
멍하니 손을 주물럭거리던 찰나 들려온 노인의 외침에 방금까지 뭘 했는지 떠올린 나는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나 오른쪽 어깻죽지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애써 외면했을 자리를.
그곳에는.
“이, 이거…….”
“그래! 성공했네! 성공했단 말일세!”
노인의 선언처럼.
괴물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나의 것이 된 거대한 오른팔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아아.
이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팔을 더듬었다.
언제나처럼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이게 진짜 내 팔이 맞는 건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손끝부터 어깨까지 빠짐없이 만지고, 누르고, 또 움켜쥐었다.
그러자.
꾸욱―
툭―
스으으윽―
내 손의 움직임에 호응하듯 오른팔에서도 조금씩 촉감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단순히 촉감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끝의 따스함도 느껴졌고, 공기 중의 서늘함도 느껴졌다.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후우, 후…….”
지금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쾌감? 희열? 행복?
그 어떤 단어로도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할 만큼 벅찬 감동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심호흡하며 마침내 명령했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명확하게.
‘움직여!’
정말 내 것이라면.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움직이라고 소리치자.
툭―
투둑―
모형 같았던 팔이 미세하게나마 꿈틀거렸다.
그 떨림이 익숙해질 즈음.
좀 더 큰 활동을 명령했다. 무릎 언저리에서 골반으로, 골반에서 심장 앞으로 끌어당겨 본 것이다.
뇌에서 내려진 신호를 따라 힘을 받으며 이동하는 오른팔.
곧.
커다란 손바닥이 가슴 위를 덮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 위로 따스한 온기와 심장의 박동이 교환되는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100% 확신했다.
“아아… 아!!”
정말로.
오른팔을 되찾았구나, 라고.
*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되찾은 팔에 푹 빠져 옆에 노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 거의 통곡하다시피 울며 몇 번이고 허리를 숙였다.
알겠다며,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노인이 만류하기를 포기할 정도로 계속 이어진 감사 인사.
결코 끝나지 않을 듯했던 행동을 멈춰 세운 건.
[축하합니다!]
[「오르그」의 ‘오른팔’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인간성’ 10%를 소모합니다.]
[「인류 최초의 키메라」가 된 당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립니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을 습득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입니다.]
“감사……?”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허락되게 만드는 고대의 비술을 통해 서로 다른 영혼이 하나로 묶여 탄생한 괴물(怪物) 중 오로지 ‘최초’에게만 전승되는 능력.
새롭게 연결한 육체에 담겨 있는 ‘기억의 일부’를 잡아먹어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단, ‘포식’에 실패할 시 ‘이성’을 상실한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의 습득을 축하하며, 처음 1회에 한하여 무조건적인 포식 기회가 주어집니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이 발동됩니다.]
[당신의 영혼이 〈포식의 땅〉으로 이동합니다.]
슈화아아아아악―
시야를 가득 채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사라진 뒤 등장한 붉은 세계 때문이었다.
“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과 지하실 풍경이 사라지고, 나 홀로 시뻘건 하늘 아래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 위에 서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며 주변만 돌아보던 그때.
후우우우웅―
쿠우웅!!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대지를 뒤흔드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
고릴라를 닮은, 그러나 고릴라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흉포한 기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워어어어어어!!”
쾅!
쾅!
콰아아앙!!
거친 포효와 함께 출현한 놈은 이 땅의 모든 걸 부숴 버릴 듯 주먹으로 대지를 두들겨 대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전신에 새겨진 푸른색 줄무늬만큼이나 시린 눈동자가 공간 전체를 천천히 훑다 멈춘다.
당연히 그 끝에는.
“이런, 미친……!!”
내가 있었다.
이 붉은 세상에 존재하는 거라고는 놈과 내가 전부였으니까.
쾅―
쾅―
“그워어어어어어어!!”
먹잇감을 찾았다고 소리치듯 다시 한번 포효한 괴물은 지체 없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뻗을 때마다 급격하게 좁혀지는 거리감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와 나를 짓누른다.
“젠, 장할!”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허나.
원하는 대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몸이 왜…….”
도망치겠다는 생각과 달리 몸이, 내 몸이 되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실에 걸려 마음대로 조종당하는 마리오네트처럼.
나는 의지와 상관없이 앞으로, 또 앞으로 걸어가 괴물과의 거리를 좁혀 가는 중이었다.
100m, 50m, 30m.
“그워어어어어!!!”
쿵!
쿵!
줄어드는 거리만큼 더욱 흥분하는 괴물과 서로의 호흡마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탁―
가볍게 다리를 굽혔다 편 몸이 거침없이 하늘로 뛰어올라 괴물의 머리 위로 안착했다.
그러고는.
눈앞의 괴물과 똑 닮은 검푸른 오른팔을 뻗어 그대로 놈의 머리통을 부수고 들어갔다.
후우우우욱―
콰아앙!!
터져 나오는 폭음.
평범한 주먹질에 불과했으나,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주먹에 박살 난 두개골 밖으로 허연 뇌수가 쏟아져 나왔다.
후두둑―
탁 소리를 내며 땅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는 그것들을 멍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인지 부조화라도 일어난 것처럼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이런 내게.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습니다.]
한 줄의 메시지가 찾아왔다.
참 신기하게도.
“아, 이게…….”
그 문장을 본 직후 내가 처한 상황이 전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존재 이유와 괴물 ‘오르그’의 등장 배경은 물론, 귀신에 홀린 듯 행했던 행동이 의미하는 것까지도 전부.
동시에.
마주하게 되었다.
[대상 「오르그의 오른팔」에 담긴 ‘기억’을 포식합니다.]
[‘인간성’ 10%를 소모합니다.]
그워어어어―
쾅!
우드득―
이제는 내 몸의 일부가 된 오른팔이 본래 주인과 생활하며 담아 두었던 기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