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 청년도, ‘장애’가 있었으니까.
“…….”
노인이 쏟아 낸 장문의 이야기 중.
다른 말보다 유난히 크게 다가온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내려갔다.
3년 전.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끝내 절단해야 했던 오른팔. 무려 1,000일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않은……. 어쩌면 죽는 그날까지도 끝내 익숙해지지 않을 공허함으로 가득한 소매 밑.
이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기에 복수를 갈망하면서도 절망감에 파묻혀야 했다.
그런데.
‘팔을, 팔을 되찾을 수… 있다고?’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꿈속에서나 보고, 만졌던 오른팔을… 허상이 아닌 실제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아서.
나아가.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노인의 말대로 ‘최소한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으리란 희망이 나를 흥분케 만들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청년의 결말은 죽음이었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이제껏 키메라 제작을 시도한 네 번 중 성공한 건 여기 백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사람을 대상으로는 그 청년이 전부였고.”
내 열망 가득한 눈빛을 읽은 걸까.
노인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라는 듯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괜한 동정심에 이끌려 멀쩡한 사람을, 그것도 직접 사흘이나 간호해 치료했던 환자를 또다시 사지로 밀어 넣은 건 아닌지 후회하는 것 같았다.
노인의 마음이 어떠했든 간에.
결국 앞서서 키메라화를 시도했던 청년은 죽음이라는 참으로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었으니까.
허나.
“…하겠습니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생각 없이 결정을 내렸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었다.
단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저 노인이 내민 동아줄 외에는 복수에 이를 수 있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돌아갈 집, 합류할 동료, 앞으로 맞이할 온갖 위험을 견뎌 낼 능력까지……. 어느 하나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
외팔이에게 종말은.
숨고 또 숨어야만 하는 지옥이었으니까.
즉.
노인과 아이의 도움을 받아 완쾌해 이 자리를 벗어난데도 결국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니…….
다시 말해 차선책이라는 게 없는 나로서는 설령 눈앞에 놓인 것이 썩은 동아줄이라 할지라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식, 받고 싶습니다.”
“정말인가.”
“예.”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하라는 듯 두 번 세 번 되묻던 노인은 한결같은 대답에 내 결심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깨달은 듯.
“알겠네.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시간을 끌어 봐야 쓸데없는 정만 생길 터이니.”
“알겠습니다.”
“따라오게.”
스윽―
짙은 한숨을 크게 내쉰 노인은 먹다 만 감자를 소쿠리에 내려놓은 후 방을 나섰다.
아이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저릿한 다리 통증을 참고 뒤를 쫓아가자.
“이게…….”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는 거실이 보였다.
부서진 벽과 집 안 곳곳을 굴러다니는 가재도구들, 쌓이다 못해 눌어붙은 먼지로 칙칙하게 변색된 바닥까지.
온전한 거라고는 방금 나온 방이 전부일 정도로 어지러운 현장에 놀라 입을 벌리자 앞서가던 노인이 피식 웃으며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변했다.
“아들과 며느리를 보낸 이후로 하루도 치운 적이 없다네.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이렇게 해 둬야 안전했거든.”
“안전, 이요?”
“폐허가 돼 버린 공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람이든 식량이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 단정 짓게 만들 테니까. 그조차 거르고 들어온다면 백구 녀석의 힘을 빌려야겠지만 말일세.”
“아……!”
노인의 설명에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삶의 지혜란 게 이런 건가.
문득 우리도 이렇게 해 놓았더라면 지금쯤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금세 잡념으로 치부하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과거를 후회해 봐야 늘어나는 건 슬픔뿐이기에.
쿵―
그사이.
힘겹게 거실을 지나 한쪽 구석에 도착한 노인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반파된 장롱을 치우더니 흙더미 아래에 깔린 비닐까지 걷어 내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걸까?
도와줘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어물쩍거리는 동안 짧은 청소를 끝낸 노인이 뭔가를 붙잡았다.
미닫이 형태의 철문이었다.
그걸 옆으로 열자 곧 숨겨진 지하실로 들어가는 어두컴컴한 길이 나타났다. 밤이라 그런가, 창밖으로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마치 지옥으로 가는 갱도처럼 느껴지는 통로였다.
집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니.
“조심해서 내려오게.”
TV로만 보던 광경에 신기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조심조심 벽을 짚어 내려가자 또다시 철문이 나왔다.
평소에는 잠가 두는지.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 노인이 문 옆에 설치되어 있던 양초에 불을 붙여 내부를 비췄다.
작지만 환한 불빛을 통해 살펴본 지하실은 일종의 대피 시설로 통하는 듯.
꽤 넓은 공간 곳곳에 식량과 식수, 각종 생활용품을 비롯해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침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만.
진정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촤르륵―
“저건…….”
맞은편 벽에 설치되어 있던 천막을 걷어 내자 드러난… ‘사체’들이었다.
팔이나 다리 등.
괴물들의 각종 신체 부위가 수십 개나 걸려 있었다.
“어떤가. 키메라 제작의 부가 능력으로 부패를 최대한 지연시킨 것들이라네. 외유 중에 수거해 오거나 백구의 도움으로 하나둘 모으다 보니 벌써 저렇게나 많아졌지.”
“대단…하네요.”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니 어서 자네에게 붙일 재료나 정하게. 미리 말해 두지만 다른 부위는 힘드네. 백구와는 경우가 달라. 이미 달린 팔이나 다리를 교체하려다간 그전에 출혈로 사망할걸세. 손주가 도와준다고 해도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뭔가.”
노인의 충고를 머리에 새긴 나는 선택의 시간을 가지기 전에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내 치료를 도왔다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거론되었던 인물.
“손자분, 말입니다. 어르신처럼 능력을 얻은 겁니까?”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였다.
아니.
정체라기보다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들어 보면 나를 포함해 총 여섯 명의 환자들을 치료한 실질적인 인물은 노인이 아니라 아이였다.
그렇다는 건.
꼬마 아이도 능력자라는 소리일 터. 그래서 궁금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어떻게 능력을 얻었을까.
다행히 불편한 질문은 아니었던 듯 노인은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괴물을 죽이면 능력이 생긴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손주 또한 최소한의 힘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지. 그래서 억지로 백구가 다 잡아 놓은 괴물의 목을 찌르게 했다네. 이제 겨우 열둘인 손주에게는 미안했지만… 내가 영원히 곁에 있을 수는 없으니.”
아아. 역시. 그런 거였나.
대충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은 처사였을 텐데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조금은 슬픈 눈으로 말을 마친 노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궁금한 것도 해결했으니, 이제 내 일을 할 차례였다.
“오른팔, 오른팔…….”
부위별로 정리해 둔 시체 칸에 내게 필요한 오른팔 총 일곱 개가 존재했다.
도마뱀의 다리가 거대해지면 딱 저러하겠구나 싶은 것부터 말미잘을 연상시키듯 손가락이 열 개가 달린 것까지.
전부 다 괴물(怪物)의 신체라는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으음…….”
그런 탓에 거의 즉답하다시피 했던 키메라 수술 결정과 달리 어떤 키메라가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꽤나 길어졌다.
거부감이나 혐오감이 느껴져서라기보다는, 과연 저런 걸 붙이고도 내가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 때문이었다.
당장.
열 손가락 달린 팔만 해도 그랬다.
손가락이 여러 개라면야 그만큼 응용성은 커질 테지만, 막상 접합했을 때 평생을 다섯 개의 손가락만 인지하던 뇌가 갑자기 늘어난 손가락을 온전히 인식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만약 그런 이슈가 발생한다면…….
“백구도 원래는 발가락이 다섯 개였다네.”
뒷모습만 보고도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아는 듯.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려 주던 노인이 던진 한마디에 머릿속의 전구가 탁 켜졌다.
“그래, 그랬었지.”
생각해 보면 그랬다.
백구 역시 정형화된 종족적 한계를 깬 상태였다. 뻔히 표본을 보고 와 놓고서 인식이니 뭐니 늘어놓고 있었다니.
큰 깨달음을 준 노인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 나는 더 이상 형태에 대해 얽매이지 않고 선택을 진행했다.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
오로지 새로운 신체가 나와 얼마나 잘 융화될 것인지 그거 딱 하나만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10여 분을 흘려보낸 나는 마침내 명확히 손을 뻗었다.
약 12~13cm에 가까운 두꺼운 팔뚝, 검은색 피부에 푸른 줄무늬가 새겨진… 비유하자면 전체적으로 ‘고릴라’와 비슷한 형태의 팔이었다.
많고 많은 선택지 중 이 팔을 고른 건.
나, ‘인간’이라는 종(種)에게 가장 익숙한 형태이기도 했거니와 그런 만큼 추후 단순 전투 활동 이외에 뭔가를 잡거나 쓰는 등의 복합적인 활동에도 큰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에는 ‘도구의 사용’이라는 혁신이 있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 고로.
비록 팔뚝 두께만큼이나 손가락도 굵은 탓에 일반적인 도구는 다루기 힘들겠지만, 가능하다면 도구 사용 기능 자체는 가져가야 했다.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네.”
노인은 내가 무엇을 골랐는지 슬쩍 보더니, 고개만 끄덕이고는 지하실 한쪽을 가리켰다.
비닐이 깔린 것으로 보아 가서 누우라는 의미 같았다.
이에 자리를 옮기며 혹시 이 팔이 어떤 괴물의 것인지 설명해 줄 수 있느냐 물었는데, 노인은 외유 중에 주워 온 것이라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 그나마 말해 줄 게 있다면 자네가 처음 확인했던 도마뱀의 팔 같은 것 있지 않은가.”
“예.”
“그 팔의 주인이었던 도마뱀 괴물, ‘라세르타’ 두 마리를 홀로 찢어 죽인 녀석의 것이라네. 결국 세 번째 라세르타를 상대하다 죽긴 했지만, 멀리서 지켜본 결과 평범한 괴물은 아니었네.”
“흐음.”
비록 원하던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괴물 두 마리를 상대로 싸워 이겼다는 소리에 오히려 마음은 더 편해졌다.
“상의는 벗게. 확신은 없지만, 이식 부위 근처엔 아무것도 없는 게 좋아.”
“예.”
스윽―
벗은 옷을 잘 개어 둔 뒤 비닐 위에 앉았다.
서늘한 공기와 함께 급격하게 밀려오는 긴장감 탓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귀를 때렸다.
심호흡하며 안정감을 찾아 가던 와중에 노인이 뭔가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초록색 병 안에 찰랑이는 물.
“술, 입니까?”
소주 두 병이었다.
“마셔 두게. 말했다시피 키메라 제작의 기본은 이식 대상과 접합 재료를 실로 꿰매는 것부터라네. 당연히 맨정신으로는 못 버틸 테지.”
“아…….”
백구를 수술할 때처럼 마취제 대용이란 소리에 일말의 주저 없이 그대로 병을 입에 물었다.
원래도 술을 잘 마시는 체질이 아닌 데다가 한 병도 아니고 두 병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니 금세 몸이 벌게지며 취기가 밀려왔다.
빠르게 풀려 가는 눈동자.
스으으윽―
꽈아아악!
“몸을 묶겠네.”
최대한 정신을 붙잡으며 눕자, 밧줄을 가져온 노인이 팔과 다리를 단단히 묶어 문이나 무게감 있는 상자에 연결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존재해선 안 되는 수술.
통증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쳤다가 일이 틀어지면 큰일이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 후.
입에 천 조각까지 물며 완전히 준비가 끝났을 때.
“그럼, 시작하겠네.”
화르륵―
칙―
큼지막한 바늘을 불에 달구고 물에 씻으며 깨끗하게 소독한 노인이 괴물의 팔을 가져와 내 어깨 근처에 대고는 마법 주문을 외듯 나지막하게 몇 개의 단어를 읊조렸다.
“키메라 제작. 대상 지정, 재료 선택, 제작 시작.”
우우우우웅―
그와 동시에 접합 지점에서 빛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굉장히 따스한 기운이 내 어깨를 감싸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찰나였다.
푸욱―
“끄으읍!!”
술로 잠재운 정신이 번쩍 깨어날 만큼 강렬한 고통이 전신을 불태우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