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1화 (1/232)

1화

【 프롤로그 】

사람들은 항상 궁금해한다.

아니.

적어도 나는 항상 궁금했다.

어느덧 80억에 다다른 인류, 허나 그 방대한 숫자로도 아직 이 지구를 다 파악하지 못했는데…….

저 우주에는 왜 이렇게 행성이 많은 걸까.

이런 작은 지구에도 인류를 비롯해 수천, 수만 종(種)이 넘게 살아가는데 왜 우주로 나간 탐사선은 생물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걸까.

정말.

이 우주에는 인간 외에 그 어떤 지성체도, 그 어떤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수십 년간 고민해 왔다.

그렇다.

정확히 39년의 연구 끝에 한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장벽……. 그래. 장벽이었어.”

인류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 지구 문명의 능력으로는 외계 종족과의 만남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우리 은하계는 자체적으로 장벽을 세워 두고 인간이 일정 수준에 다다를 때까지 지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따라서.

우리는 지구 이외의 생물을 마주하기 위해 장벽을 부숴야만 하기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CERN, 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진행 중인 연구는 단 하나.

수백억 년 전 우주 탄생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빛의 속도로 가속시킨 양성자를 충돌시켜 ‘인공 블랙홀’을 생성해 내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우주 장벽을 부수는 데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우주에서 블랙홀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물질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약 15년의 세월을 투자했고.

콰아아앙!!

쩌어어억!

“돼, 됐다!!”

마침내 우린 블랙홀과 마주할 수 있었다.

“아아…….”

생성된 순간부터 빛을 포함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친 환희가 목구멍을 타고 세상으로 터져 나왔다.

자.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미칠 듯한 기대감을 표현하듯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나는 블랙홀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계산대로 우주 장벽에 영향이 갔다면, 이제 곧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이 나타날…….

삐이이이이이익―!!

[위대하고도 잔혹한 업적!]

[인류 스스로 「차원 보호 결계」를 열었습니다.]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차원 : 테라〉로 향하는 「침략의 문」이 개방됩니다.]

[「침략의 문」이 개방되어 있는 ‘?일’ 동안 〈차원 : 테라〉의 지배종인 ‘인간’은 반드시 5% 이상 생존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침략의 문」이 개방되어 있는 동안 ‘인간’의 수가 5% 미만으로 감소할 시 〈차원 : 테라〉의 지배권은 기록 당시 가장 많은 카르마를 축적한 침략군에게 귀속됩니다.]

[또한 ‘특수 조건 : ?’가 성사될 시, 인간의 숫자와 관계없이 해당 조건을 충족한 침략군에게 ‘지배권’이 이전됩니다.]

[반대로 인간에 의해 ‘특수 조건 : ?’이 성사될 시, 모든 침략군은 즉시 추방됩니다.]

[따라서 전쟁과 생존뿐 아니라 ‘특수 조건’과 ‘침략의 문 개방 일자’의 비밀을 찾아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럼…….]

[전쟁을 시작하겠습니다.]

환상일까?

공기의 흐름을 따라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문자의 파도가 출렁거린다.

허나.

나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쿠웅―

쿵―

세상의 에너지를 양분 삼아 순식간에 2~30m까지 증폭된 블랙홀의 안쪽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마치 검붉은 흑염(黑炎)으로 휘감겨져 있는 듯한 생물이.

그 찬란한 육체를 목도한 순간 바로 알아차렸다.

나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 땅에.

외계(外界)의 주인들이 내려오고 있음을 말이다.

“…유레카! 유레카!!”

10월 3일.

동방의 어느 나라에선 ‘하늘이 열리는 날’이라 부르는 오늘, 나는 그 옛날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 * *

쏴아아아아아아―

세차게 쏟아지는 비, 하늘 가득 낀 먹구름으로 인해 달과 별조차 가려진 검은 세상. 그 무엇도 보이지 않던 공간에 자그마한 빛이 나타났다.

어째서인지.

‘…천사?’

빛을 목격한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 홀로 반짝이는 모습은 오직 천사만이 가능한 연출일 테니까.

찬란하게 빛나는 천사는 마치 춤을 추듯 세상을 뛰어놀았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땅을 살피기도 했으며, 꽃과 나무에 다가가 말을 걸 듯 손을 뻗었다. 그 아름다운 움직임이 이어질 때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상이 어둠에서 벗어나 제 색을 찾아갔다.

그렇게 모든 어둠이 사라질 즈음.

스윽―

차분히 대지 위로 내려온 천사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천사의 입가에는 눈부신 미소가 함께였다.

그런데.

‘슬, 픔?’

이상하게도 그 미소를 마주한 나는 행복이나 환희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 대신 지독하리만치 절망적인 슬픔을 느꼈다.

왜?

모르겠다.

분명 봄 햇살만큼이나 따스한 미소일진대,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다. 그 감정의 끝에서 나도 모르게 천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붙잡아 주고 싶었다.

누나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도…….

‘…누나?’

파도처럼 일어난 감정에 휩쓸려 천사의 슬픔에 완전히 몰입하던 찰나, 묘한 이질감에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무의식중에 천사를… ‘누나’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그런 거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만 껌뻑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천사를 누나라고 부른 건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스윽―

진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천사가 다시 움직였다.

한 걸음, 두 걸음.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뒤로 물러나 조금씩 멀어지는 천사. 그 길의 끝자락에는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이 있었다.

천사는 새어 들어오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창가에 올라섰다.

언제 설치된 것인지.

창문 아래로 피처럼 붉은색의 계단이 천사의 길이 되어 주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걸까.

“…….”

창가에 올라선 채로 아무런 말 없이 젖어 가는 천사를 보고 있자니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솟구쳤다.

허둥지둥 일어나 천사에게로 달렸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기서 그녀를 잡지 못하면, 여기서 그녀를 막지 못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영원히.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허나.

아무리 달려도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도리어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빨리, 어서 붙잡아야 하는데…….

하염없이 쳇바퀴를 돌 듯 같은 자리에서 뛰어가는 나를 향해.

스윽―

스윽―

천사는 고개를 저었다.

온몸으로 이별을 거부하는 내게, 이별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듯.

그러고는.

후욱―

깊게 눈을 감으며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 *

정신이 번쩍 든다는 게 이런 걸까.

“…흐읍!”

순간적인 호흡과 함께 떠진 눈.

100m 달리기라도 한 듯 쿵쾅거리는 심장과 거칠어진 숨소리가 서라운드처럼 귓가를 맴돈다.

뭔가.

아주 지독한 악몽을 꾼 느낌. 그러나 으레 그렇듯 무엇도 기억나지 않는다.

“후우, 후…….”

영혼이 짓눌린 것 같은 기분에 목 언저리로 손을 가져가 무언가를 꽉 쥐었다.

자그마한 십자가 목걸이.

이 세상에선 다신 만날 수 없는 누나의 유…….

“어? 어! 할아버지! 일어났어요!”

“……?”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목걸이를 꽉 쥐던 차에 들린 낯선 목소리.

눈을 부릅뜨며 급히 고개를 돌리니 초등학생 정도 될까 싶은 나이대의 아이가 활짝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는데 끼익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며 또 다른 낯선 사람이 등장했다.

조금 전에 아이가 찾았던 ‘할아버지’로 추정되는 노인이었다.

자그마한 소쿠리에 감자와 고구마 몇 개를 가져온 노인은 아이의 곁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내게로 다가와 다리에 걸쳐져 있던 이불을 걷어 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이불을 덮고 있었다는 걸.

더불어.

“…끄으으읍!!”

내 다리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큼지막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들불처럼 일어난 고통을 참으려 반사적으로 이를 악무는 사이 노인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상처 위에 바르기 시작했다.

아픈 와중에도 놀라서 다리를 뒤로 빼려 했으나, 다친 탓인지 고작 노인의 힘조차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러다.

털썩―

정신을 잃었다.

* * *

…려요.

…할애비가…….

…녕히 주무세요.

“으음…….”

귀를 간지럽히는 대화 소리에 조금씩 깨어나는 정신.

무시하고 더 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꾸우욱―

뭔가가 다리를 짓누르는 듯한 촉감과 동시에.

“…흐읍!!”

왠지 익숙한 통증이 내 정신을 한순간에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벌떡 일어나 정면을 바라봤다. 더 정확하게는 다리, 통증을 유발한 원인을 찾고자 주변을 더듬었다.

그런 내 눈에 보인 건, 이번에도 상처에 뭔가를 바르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대, 대체 뭘 하는……!”

그 모습에 당장 멈추라며 소리를 지르려던 내게 노인이 검지를 입가에 붙이며 다른 손으로 옆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자는 아이가 보였다.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얘기하며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준다.

툭―

“약이네. 자네 다리에 나 있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바른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말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절반 정도 사용한, 몸통에 ‘마X카솔’이라는 단어가 딱 박혀 있는 연고였다.

“아…….”

그것을 보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괜한 경계심으로 날 치료해 준 사람을 의심한 게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죄송한 마음과 별개로 자학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작금의 세상은.

노인이나 아이라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지옥이었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사과를 안 할 생각은 아니었기에 곧바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변명 없이, 잘못을 인정하자.

노인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새로운 것을 건넸다.

차게 식은 고구마였다.

“사과는 됐고 그거나 먹게. 사흘이나 내리 자서 배고플 테니.”

“감사… 예? 사흘, 이요?”

왼손으로 고구마를 받아 들던 나는 노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사흘이나 내리 잤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묻자 소쿠리에서 감자 하나를 꺼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손주와 함께 바깥에 나갔다 오는 길에 자네를 봤네. 무슨 일인지 다리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더군. 곧장 이리로 데려와 치료했고, 그게 사흘 전이었네.”

“아…….”

노인의 설명이 끝나자.

단순히 치료뿐 아니라 아예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는 날 구원해 준 것이라는 사실에 재차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젠장.”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욕설이었다.

당연하게도 절대 노인을 향해서 내뱉는 건 아니었다. 사흘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게 감자 껍질을 모두 벗긴 노인이 물 한 잔을 따라 주며 물었다.

“불곰파인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

놀란 마음에 노인을 쳐다봤다.

어떻게 알았냐는 무언의 질문에 자신의 컵에도 물을 따른 노인이 대답했다.

“자네 외에도 벌써 다섯이나 더 있었지. 넷은 손주의 힘으로도 치료가 어려웠고, 다른 하나는……. 여하튼 이유를 들으니 전부 불곰파 때문이라더군. 세상이 이리되기 전부터 패악질을 일삼더니. 고작 한 달 만에 완전히 악마가 돼 버린 게야.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노인의 얘기를 들어 보니 내 상황을 짐작한 이유가 있었다.

동시에.

빠득―

불곰파를 향한 분노가 더욱 커졌다.

최소 다섯이나 피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이, 그것으로도 부족해 무엇보다 소중했던 ‘누나’의 운명까지 비극으로 끝내 버린 개자식들을 향한 살의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허나.

그게 전부였다.

“젠장, 젠장, 젠장……!!”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달려가 그놈들을 찢어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주어진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했다.

다리의 상처도 상처지만.

설령 다치지 않았더라도 난 불곰파는커녕 그곳까지 가기도 전에 쓰러져 죽을 판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운 좋게 목표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놈들이 지닌 힘.

일반인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이 세상을 무너뜨린 ‘침략군’들을 상대로 싸워 이겨 손에 넣은 그 힘을 생각하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의 발끝조차 건드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젠장… 젠장……!!”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절망감.

그 속에서 눈물이 흘렀다.

화가 나는데, 억울한데, 복수해야 하는데!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무력감에 정신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

노인은 그런 나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눈물이 마를 때까지 가만히.

그러다.

“내가 조금 전, 자네 이전에 다섯을 더 보았다고 했었지.”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중 넷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었지만, 다른 하나는 아니었네. 팔에 상처가 있었지만, 손주의 치료 덕분에 살아났고, 나아가 완쾌했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주체가 되지 않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며 고개를 들었다.

“그 청년도 자네처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네. 자기 아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며, 복수를 원하나 무력하다며. 나를 붙잡고 울기만 했지.”

“…….”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네.”

잠시 말을 멈춘 노인이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결심한 듯 숨을 들이켜며 얘기했다.

“극히 미약하지만, ‘가능성’이라도 얻고 싶다면… 내 도와주겠다고.”

가능성?

가능성을 얻게 도와주겠다고?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저 가능성이라는 단어만 곱씹어 보는 나를 앞에 두고 노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나는 지난 50년간 인형을 만들어 왔다네. 그래서였을까. 세상이 이리되고 내 자식과 며느리를 잡아먹느라 상처 입은 괴물을 죽였을 때 ‘키메라 제작’이라는 능력을 얻게 됐지.”

“키메라, 제작?”

“그래. 키메라 제작. 원하는 대상에게 다른 동물 혹은 괴물의 팔이나 다리 따위를 붙여 그것으로 부족한 점을 채워 주거나 없던 장점을 만들어 주는 괴상한 능력이었지.”

“그게 무슨…….”

“무슨 소리인가 싶지? 나도 처음엔 당황스러웠네. 허나 손주를 지키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 생각했기에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네. 마침 우리 곁엔 백구가 있었네. 손주에게는 미안하지만, 언젠가 잡아먹으려 했던 녀석이었지.”

“…….”

“나는 백구 녀석에게 술을 먹인 후 괴물의 시체에서 다리를 잘라다가 교체했네. 쉽지 않았지. 백구의 몸에서 쏟아지는 피를 막지도 못했고, 괴물의 다리가 백구의 몸에 비해 컸지만 ‘초심자의 행운’이 따른다며 처음은 반드시 성공할 거란 말대로 실험은 성공적이었네. 덕분에 이제 백구는 괴물과 싸워도 승리할 만큼 강해졌지. 지금껏 나와 손주의 목숨을 살려 준 것도, 자네와 다른 이들을 찾은 것도 다 그 녀석의 역할이었네.”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를 끝낸 노인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짝―

그러자.

“헥, 헥헥…….”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노인의 말처럼.

“……!”

평범한 몸뚱어리 아래로 무척 이질적인 ‘여섯 개’의 발가락과 발등에 뿔을 달고 있는 녀석이었다.

노인은 그 녀석, 백구를 가리키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이 힘을 바탕으로 그 청년에게 말했네. 이처럼 괴물의 것을 달게 된다면 최소한의 가능성은 생길 거라고. 내가 미친 게야. 아무리 복수를 꿈꾼다지만, 사람의 몸에 괴물의 것을 붙인다니……. 그래도 제안을 아니 할 수도 없었네. 그 청년도, 자네처럼 ‘장애’가 있었으니까.”

“…아.”

“완쾌한다고 하더라도 살아도 산 게 아닐 목숨이 너무 가여웠기에 제안했고, 결국 그 청년은 제작 실패라는 문장을 남긴 채 목숨을 잃었네. 그래서 영원히 묻어 두려 했건만……. 내가 또 미쳐 가는 모양이야. 또다시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

“하여간, 이쯤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을 테니 딱 한 번만 묻겠네.”

자네도, 그 가능성에 목을 걸 수 있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