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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424화 (424/432)

424화 - 제80장. 천제전(天祭戰), 검은 태양의 날 (4)

그것은 일방적으로 밀리던 싸움의 기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몸속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운은 그의 파천진기가 아니었다.

제석천의 가호였고, 거스를 수 없는 강대한 신력이었다.

창천벽력의 일격을 펼쳐내는 순간, 그가 일으키던 푸른 벽력의 기운은 황금빛 뇌광에 가려질 정도로 삽시간에 분출되었고 마치 어둠을 걷어내듯 단지운이 일으킨 천마신공의 마기를 떨쳐버렸다.

꽈르르르릉……!

단순히 진기의 강력함으로 표현될 것이 아니었다.

성스러운 뇌광은 뒤틀린 섭리를 풀어내는 성력을 갖추었으니 아들의 몸을 차지한 단원진의 영혼들을 뒤흔들 수 있는 위력이었다.

“끄으으윽……!”

단원진이 신음과 함께 주춤하자 천무경이 기세를 맹렬하게 일으키면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황금 뇌광이 도처로 뻗어나가 단원진이 구축했던 마귀성을 여기저기 때려댔다.

천무경의 주먹과 함께 뻗어나간 뇌력은 단원진에게 그대로 쏟아져 나갔다.

제석천의 신력이 단원진의 무릎을 꿇기엔 부족했는지 격렬히 저항했다.

두 사람의 주먹이 연달아 교차하면서 서로의 공격을 막거나 밀어내거나 혹은 온몸으로 두들겨 맞기도 했다.

마기와 뇌기는 그들의 주위에서 맹렬히 부딪치면서 그들의 전장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부족하다……!’

기세를 역전시켜야 했지만, 황금 뇌광은 점점 사그라들어갔고 단원진의 마기는 더더욱 기세를 키워나갔다.

뇌광이 가득 찼던 영역이 급격하게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단원진이 힘을 더했다.

천마신공 멸천마라황(滅天魔羅慌).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거부할 수 없는 마기의 파도, 그 난폭한 질주가 오직 천무경 하나만을 노리고 일대를 다 함께 휩쓸었다.

천무경으로선 거대한 마의 그림자에 휩싸여 공포마저 느낄 정도였다.

꺼져가는 제석천의 가호도 더는 그를 지켜주지 못한 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죽음의 장막에 온몸을 휘감긴 느낌이었다.

심연으로 끌려 들어갈 듯한 기분이었다.

화악!

그 순간 그를 뒤덮었던 칠흑의 장막이 걷혀버렸다.

기진맥진하고 공허한 기분을 느끼면서 비틀거리는 그의 시선에 휘몰아치는 핏빛 광망을 보았다.

분명 같은 마기로 섬뜩하기 그지없으나 소용돌이치는 그 모습을 보면 어쩐지 혈기가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진도건……!”

“진도건!”

그 이름을 부르는 두 목소리는 두 사람의 입에서 각기 다르게 흘러나왔다.

천무경의 목소리엔 안타까움과 작은 간절함이 동반되었으나 단원진의 목소리는 분명 환희 그 자체였다.

단원진의 손에서 형성된 칠흑의 검강이 진도건이 휘두른 붉은 검기와 충돌했다.

카앙!

마치 허공을 찢어놓는 듯한 소음과 함께 그 충격파에 대기가 요동쳤다.

“널 기다렸느니라!”

목소리나 어투가 미묘하게 달랐다.

“단지운을 어떻게 했지?”

“내 아들을 걱정해주는 것이냐? 크흐흐!”

단원진이 조소를 흘리면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그 순간 어둠이 사방을 뒤덮었다.

어둠이 마귀성 전체를 휘감았다.

마천경.

그 지배적인 마경이 펼쳐지는 순간, 진도건의 안에서 혈마가 반응하여 반사적으로 사방에 혈광을 뿌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진도건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의식이, 그 의식의 시선으로 본 장면이 흘러들어와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

이미 한 번 보았던 구도였다.

지금의 커진 전장에 비해선 광장 안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축소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왼쪽에 스칸다, 중앙에 양자성, 오른쪽에 야마.

그 셋이 낭패스러운 몰골로 서 있었다.

시선이 비스듬히 위를 향한다.

“내려오십시오, 아버님.”

“클클클! 그럼 어디…….”

셋이 물러나고 기다렸던 하나가 허공을 밟으며 내려온다. 그러다 도중에 화살처럼 쏘아져 쇄도해왔다.

싸움은 격렬하고 또 치열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취한다는 그 법칙이 아들과 아버지를 옭아매고 있었다.

몹시도 닮은 마기가 거울을 보고 성질을 부리듯 다투었지만, 실질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꺾을 수 없었다.

넝마가 된 옷자락과 전신에 새겨진 피멍, 입술 사이로 피를 가득 머금은 단원진의 모습이 두 눈에 가득 담겼다.

왼손으로 어깨를 부러질 듯 쥐어서 제압하곤 두 발이 땅에 떨어질 정도로 들어올린다. 그리고 오른손바닥 장심을 중단전에 대었다.

“이젠 편히 쉬시지요, 아버지.”

“크흐흐흐!”

단지운의 목소리는 냉혹했으며 단원진은 조소를 멈추지 않았다.

감각이 느껴졌다.

흡성대법의 감각이.

하단전의 내공을 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중단전에 흡성대법을 시전하는 것으로도 상당한 내공을 흡수할 수 있으니 그것은 그저 덤일 뿐.

단지운의 목적은 단원진이 가진 환도술의 힘과 천마조사로부터 이어받았을 그가 모르는 무언가까지 취하기 위함이었다.

영혼에 새겨진 모든 것을 가져가기 위함이었다.

그 순간 단지운은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듯했다.

그의 내면에서부터 일어난 영격이 그를 집어삼켰다.

‘천마성……!’

어둠이 눈 앞을 가렸다.

아버지의 조소 어린 시선이 알몸이 되어버린 그의 온몸을 샅샅이 훑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선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아갔다.

* * * *

“자신을 죽여 영혼이 되었고 그 상태로 단지운을 삼킨 거야. 하지만 어떻게?”

진도건이 단지운의 몸을 차지한 단원진과 검을 부딪치면서 중얼거렸다.

그것은 마치 혈마가 처음 진도건의 영혼을 삼키려 했던 것과 유사했다.

그때는 혈마의 영적 기세가 폭주하는 수준이었기에 그로선 정말 위태로운 순간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단지운의 영격이 단원진에게 그리 쉽게 굴복하게 될 거라고는 여기기 힘들었다.

단원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클클클!”

굳이 대답해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진도건은 단원진의 눈빛 속에 있는 깊은 심연을 엿보았고 단지운의 기억의 편린 속에 있던 그의 마지막 내면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점차 진실에 접근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천마성……, 설마……!”

진도건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오는 순간,

“혈마의 마정을 내놓아라!”

단원진의 외침이 그의 귀에 꽂혔다.

사위의 권리를 재차 쟁탈하는 마천경의 어둠 속에서 진도건에게서 붉은 마기가 폭주하듯 솟구치더니 혈마의 존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불길과 같은 모습으로 바깥에 드러났다.

“크하아아아……!”

혈마가 비명과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격렬히 요동치는 피의 불길이 마치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때 단원진이 손을 휘두르자 전장 주위로 팔색마정(八色魔精)이 떠올랐다.

흑풍신마의 명마, 일월신마의 혼마, 염황신마의 염마, 사혈신마의 소마, 적룡신마의 용마, 광혈신마의 광마, 환도신마의 환마 그리고 양자성이 남긴 검마의 마정까지.

팔색마정이 저마다 색을 품은 광휘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혈마의 형체로부터 마기가 새어 나오면서 공중에서 마의 결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어떤 것보다 피처럼 붉은 마정이 형성되어 허공을 가르더니 다른 팔색마정과 더불어 구궁의 구성을 갖추었다.

동시에 대지 위로 황금빛 술진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단원진이 환희에 가득 차 웃으며 외쳤다.

“이로써 나는 신(神)이 되리라……!”

두근, 두근, 두근……!

단원진의 외침에 진도건은 귀로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요했다.

휘황찬란한 마정의 광휘가 세상에 머물고 술진의 빛무리가 여전히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단원진의 환희에 찬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 마귀성을 울려댔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원진이 당황한 모습을 하늘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뭐냐……. 왜 아무 일도……. 대답해라! ……알리 라 다바스으……!”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마치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미치광이와 같은 광증이 떠오른 모습이었다.

마정을 구성하는 것으로 존재까지 멸하지 않기에 혈마가 본능적으로 외쳤다.

“……베어버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온 신경을 쏟아내고 있는 단원진의 모습은 허점 그 자체였으니 진도건의 두 발이 지면을 박찼다.

퉁!

땅을 울리는 진각.

두 다리로 소리를 쫓을 수는 없지만, 초절의 쾌검과 단전에서부터 검을 쥔 오른손으로 폭발하듯 쏟아내는 파천진기의 뇌력이 극쾌의 검기를 방출한다.

그 검기가 진각의 울림보다 먼저 단원진에게 도착했다.

스컥!

섬뜩한 소리.

단원진의 고개가 반쯤 돌아간 상태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선으로 관통한듯 짙은 혈선이 몸에 새겨지고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해 상처 아래를 흠뻑 적시기 시작했다.

불길처럼 일어났던 혈마의 영체가 다시 진도건에게로 스며들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끝났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진도건도, 혈마도 그저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반응했을 뿐이었다.

검에 전해진 감각은 확실했건만, 진도건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진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 오히려 상황이 악화된 것 같다. 믿을 수 없는 존재를 깨운 것 같아…….”

혈마는 곧장 진도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단지운의 육신은 두 동강으로 갈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관통했음에도 오히려 속에서부터 다시 이어붙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라진 검상을 기점으로 피륙이 뒤집어지듯 꿈틀대기 시작했다.

피가 철철 넘쳐흘렀고 섬뜩한 칠흑의 마기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마천경의 어둠은 여전히 세상에 머물렀고 구색마정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오직 ‘그’만이 끔찍하게 빛나고 있었다.

피륙을 까뒤집어 재구성하여 드러난 육신이 고통에 찬 몸짓으로 웅크렸다가 다시 비틀거리면서 일어난다.

충분히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순간이라 여겨졌음에도 진도건이나 마천경 안에 든 천무경과 다급히 달려온 천서은조차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 거부할 수 없는 허무가 영혼을 속박하는 것이다.

‘그’가 마침내 피투성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가? 내가…… 단용후로서 서야 만이 조건을 갖출 수 있는 것인가?”

단지운도, 단원진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단용후라 말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단용후였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에 조화와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서로 다른 정수의 비호를 받아 피로 이어진 영혼 셋이 하나가 되면…… 내가 그러했듯 신격을 갖출 수 있게 되니……. 단용후여, 신이 되고자 하는가? 천외천에 오르려 하는가? 어떤 하늘에 이르고 싶은가?”

단용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 목소리는 진도건도 알고 있는 목소리였으니 바로 ‘알리 라 다바스’의 것이었다.

‘신이 된다고……? 단용후가 신이 되고자 했다고……!?’

진도건도, 천무경도, 천서은도 지금 단용후를 쳐야 한다는 생각에 가득 찼지만, 감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찍 단용후에게 드리워진 ‘신격’이 그들의 의지를 억눌러 육신과의 합의에 괴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놀라움에 휩싸일 때, 단용후가 광의에 찬 웃음을 흘리며 외쳤다.

“나 단용후, 천마의 이름으로 제칠천(第七天)의 주인이 되어 욕계의 질서를 다시 세울 것이니……! 알리 라 다바스여, 의식을 거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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