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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422화 (422/432)

422화 - 제80장. 천제전(天祭戰), 검은 태양의 날 (2)

쿠쿠쿠쿠……!

양자성이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섬뜩한 목소리로 외치자 마귀성이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으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풍경은 그야말로 마계(魔界)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장황한 마경의 변화들은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듯 펼쳐지고 있었으니 어림잡아도 10척 가까이 이르는 높이까지 솟은 파순대좌 위의 사내, 천마 단지운이었다.

카앙!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진도건과 이혁성의 신형이 떨어졌다.

진도건도 단지운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단지운……!’

승부욕이 가득 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대는 이혁성이라는 걸 알았다.

그와 같은 초절한 쾌검을 구사하는 자를 내버려 두었다간 다른 싸움에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다.

그때 하늘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천무경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신형이 치열한 전장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떨어져 단지운을 올려다보았다.

단지운과 눈빛을 맞추었던 천무경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넌…… 단지운이 아니군……!”

진도건이 자기도 모르게 천무경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이혁성의 검광이 번갯불처럼 날아들었다.

천뢰삼검식의 일섬뢰가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진도건의 볼을 스치며 지나갔다. 진도건의 검도 그사이에 움직여 2차로 덮쳐올 참격을 막고자 이혁성의 검을 쳐냈다.

캉!

‘단지운이 아니라고……?’

진도건은 잠깐 머릿속이 혼란해지는 걸 느꼈다.

한눈을 판 대가였는지 수십 가닥의 검광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면서 일거에 진도건을 덮쳤다.

“큭……!”

치명적인 공격들은 피해냈지만, 진도건의 전신에 수십 개의 검상이 새겨지면서 출혈을 일으켰다.

코앞에서 검격을 전개하는 이혁성의 눈빛은 말 그대로 허무.

“정신 차려라!”

혈마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도건도 본능적으로 사태가 심각함을 직감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그쳤다.

‘더욱 극한으로……! 내 검은 모든 검보다 빠르니!’

카카카카카……!

연속해서 얽히는 두 자루의 검.

모든 일검이 살초로서 목숨을 노리기 위한 직선을 그리고 교차하길 순식간에 백여 합에 이를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

누군가 그 경합을 느린 장면으로 보았다면 진도건의 몸이 더 커졌다고 느꼈을 것이요,

두 눈을 바로 가까이 두고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면 선명하게 불거져 오른 전신의 핏줄을 보았을 것이다.

끊어지지 않을 듯한 강철의 비명 위로 출혈들이 혈무처럼 번져나간다.

검격의 충돌로 인한 후폭풍에도 혈무는 무겁게 그들의 어깨 위에 덮여갔다.

누구의 피였나 하면 대부분이 이혁성의 것이었다.

잠깐 밀렸던 이후로 다시 진도건이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의 균열이 이혁성의 자세 속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순간, 진도건의 군자검이 빛을 삼키는 묵색 검신을 뚫고 눈부신 검광을 뿜어냈다.

검과 검이 충돌했다.

힘에서 밀린 이혁성의 검이 주인의 가슴까지 밀려나 반대편 칼날이 피부로 박혀 들었다. 호체진기와 호신강기가 동시에 밀어냈지만, 진도건이 검격에 실은 힘은 그보다 더 강력했다.

쩍!

검과 피골을 동시에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선명한 파장으로 전장에 퍼졌다.

솟구치는 핏줄기와 열십자로 갈라져 무릎을 꿇기도 전에 상체가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빛을 잃어버린 이혁성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고였다 떨어졌다.

진도건이 달려들어 무너지는 이혁성의 육신들을 끌어안았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혈마의 마기가 이혁성의 몸속을 가득 채웠던 마기를 샅샅이 훑어내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진도건의 눈앞으로 이혁성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혁성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아유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엔 다르파라는 고승이 두 손을 모은 채로 한쪽에 서서 마찬가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양 차분하게 서 있었다.

천마신궁에 들어와서 소수 남아있던 마교도들, 그리고 성혈궁의 승려들과 잠깐 싸웠지만, 이곳에 오르기까지 층마다 머물고 있던 승려들은 모두 그들에게 올라가 보라는 말과 함께 순순히 길을 터준 것이다.

아유타가 이혁성과 황검당 고수들을 쓱 훑어보고는 이혁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천무방의 황검당 당주 비뢰검 이혁성. 느껴집니다. 당신이 쌓아 올린 검공의 지고한 경지를. 번개를 쫓는 당신의 쾌검은 여느 사람들이 말하는 무공의 경지, 그 수준 정도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강호에서 당신의 경지에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단 한 명뿐일 것이고, 운이 좋게도 그는 당신과 같은 편이로군요.”

“……성녀라는 고결한 부름과 달리 당신도 상당한 것 같군.”

“강철이 단단하다 한들 망치에 두드려지지도 않고 날도 서지 않은데 무슨 위협이 되겠습니까? 여러분들 앞에 제 목숨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낙엽과도 같지요.”

“흐음.”

이혁성이 다르파를 흘끔 보았다.

성혈신마 빌게포첸을 떠올렸는데 다르파에게서 느껴지는 기도 또한 크게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서도 싸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랄까?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천마신궁까지 직접 쳐들어오신 당신과 황검당의 패기라면 제 의견을 받아줄 것 같아서 말이죠. 한 번 들어보시겠나요?”

“말해봐.”

“천마신교의 머리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주 단지운이 아닌가?”

“역시 그렇게 생각하실 수밖에 없지요. 그는 천마신교의 교주이면서 동시에 고금제일의 고수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강력한 무인, 강력한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천마신교의 진정한 머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의 뜨거움은 천마신교를 움직이는 심장이라 볼 순 있지만, 천마신교의 존재 이유를 결정하고 작금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태를 예견하고 기획하는 머리를 담당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건 바로 태상교주 단원진이지요.”

“요주의 인물이란 건 인지하고 있다.”

“교주 단지운은 지금 옥문관에서 결전을 치르기 위하여 떠나있습니다만, 태상교주 단원진은 이곳에서부터 북쪽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지요. 그것도 혼자서 말입니다.”

“……태상교주가 혼자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는 그동안 천산 박격달봉 아래의 비처에 숨어 지냈지만, 오늘에 이르러서 마침내 바깥으로 나와 마지막 계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무공은 아홉 명의 신마들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니 이곳까지 발을 들인 여러분들에겐 충분히 노릴 수 있는 목표가 되었지요.”

서파파가 말했다.

“살문주가 보여준 마지막 기괴한 모습에서 우리는 그 어떤 마교놈들을 상대로도 얕잡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거든. 하물며 마교의 태상교주를 고작 구주신마보다 조금 낫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여기에 아무도 없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느냐?”

서파파의 의심에도 아유타의 표정은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태상교주 단원진은 만마의 흑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자. 교주가 복귀하기 전에 그를 꺾을 수 있다면 천마신교는 존속할 수 없게 될 정도입니다. 오늘과 같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 반드시 잡을 필요가 있으니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요.”

이혁성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왜 성혈교가 직접하지 않지? 그래도 천마신교에서 가장 큰 아홉 개의 세력 중 하나인데…….”

“성혈교 단독으로 보면 세력이 크지 않다는 걸 올라오시면서 충분히 느끼셨을 것입니다. 빌게포첸과 여기 다르파 정도가 훌륭한 고수라 할 수 있지만, 다른 승려들은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단 태상의 환술이 매우 뛰어나 혼자서도 일당백이 능히 가능하게 하지만, 그 환술은 제가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에 반해 빌게포첸이 일찍 돌아올 상황이 아닌 이상, 우리가 일을 도모하기엔 실질적으로 그의 심장을 찌를 칼이 부족하지요. 그래서 이 당주님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 당주님, 도와주십시오. 단 태상을 지금 꺾어둔다면 단 교주와 직접 전쟁을 치르는 창천맹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혁성이 서파파와 여희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의심스럽긴 하지만, 저 마래로라면 분명 좋은 기회임엔 틀림없긴 해. 빌게포첸의 움직임도 확실히 그렇고……”

“당주님 판단에 따를게요. 전 황검당은 아니지만요.”

여희선이 싱긋 웃었다.

이혁성은 신중하게 생각하였고 이윽고 대답을 내놓았다.

“좋다. 태상교주 단원진을 치지.”

마귀성이라 했다.

이름처럼 성으로 보이지 않았고 검붉은 기암괴석의 드넓은 지대가 모래바람 사이로 보였다.

이혁성과 아유타, 황검당과 성혈교는 아단지모의 중심으로 자신들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태상교주 단원진과 조우할 수 있었다.

아유타의 말처럼 그는 혼자 있었지만, 혼자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기암괴석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수십 명의 사람이 나타났을 때는 꾐에 빠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에게 느껴지는 기도라는 것이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 반사적으로 느낀 위협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걸 깨닫자 의아했다.

그들은 무영각의 무영들이었고 각자 기암괴석의 꼭대기를 하나씩 점유한 채로 서 있었다. 공격할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기운은 한곳으로 모여 연결되어 있었으니 모든 흐름의 중심에 단원진이 서 있었다.

“성에는 지키기 위한 병사도 필요한 법이지, 크크크……!”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이혁성 등은 자신들이 어느새 거대한 성벽 안에 갇혀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들어올 때는 사방이 트인 아단지모 지대였는데, 지금은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듯이 성벽의 벽면이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채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또한 기암괴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무영을 집어삼키면서 기괴한 풍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만들어지는 풍경은 그들에게 위협적이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뭔가를 만들어내더니 갑자기 창처럼 변하여 쇄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아유타가 손을 높이 들자 눈부신 광휘가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며 쇄도하던 것들이 모두 다시 흙으로 돌아가 흩날렸다.

또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빛은 사방을 감싸고 있는 마기를 제거하면서 환술로 만들어진 풍경들을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이에요!”

아유타가 외치는 순간, 이혁성은 자신들과 단원진 사이로 길이 열렸음을 깨달았다.

눈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라 사방을 어지럽히던 마기로부터 기운이 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혁성과 황검당, 다르파와 성혈교 승려들이 일제히 단원진을 노리기 위해 경공을 펼쳐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후후후후……! 흐하하하하……!”

알 수 없는 웃음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이혁성 등도 자리에서 멈칫했다.

그 웃음소리가 워낙 기괴하면서도 듣지 않을 수 없는 듯한 마력을 내포하고 있어서 모두의 신경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꺄아아악……!”

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그들의 고막을 때렸다.

고개를 돌리자 비명을 내지르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무릎을 꿇는 아유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려움 반, 분노 반이 뒤섞인 듯한, 평소 아유타에게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의 표정을 드러낸 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단원진이 아닌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니 그녀가 참지 못하고 노성을 내질렀다.

“마라 파피야스……! 알리 라 다바스……! 네까짓 것들이 감히……!”

이혁성이나 다르파 및 다른 사람들은 아유타가 뭐라고 얘기한 것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놀랐던 것은 그 목소리가 아유타의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오래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단원진이 재차 일으킨 환도술의 마기가 순식간에 사방을 휩쓸면서 그들을 가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단원진의 목소리가 그들의 뇌리에 꽂히니,

“복종하라. 그리하여 나의 마구니가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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