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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421화 (421/432)

421화 - 제80장. 천제전(天祭戰), 검은 태양의 날 (1)

결전을 앞둔 전야제.

뜨거웠던 열락의 밤이 지나고 전열의 정비를 마친 진도건을 비롯한 창천의 결사대들은 마침내 북진을 하기 시작했다.

눈이 쌓여 온통 하얘진 세상.

밤은 그런 세상마저 한 차례 덮었고 결사대는 불침번을 서면서 마지막 잠을 보충했다.

해가 떠오르고 난 후, 다시 출발하여 마침내 모두는 마귀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확하게 눈에 비치는 그 형상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두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도록 발산되는 마기였다.

“문이 없군.”

“있었는데…… 없네요.”

천무경의 중얼거림에 한 개방 고수가 난감해하며 대답했다.

금태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환도술로 세웠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럼 박살 내버리면 되지.”

“그럴까.”

쓸데없이 힘을 빼는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성 자체가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금태하가 막 뱉은 말임에도 그리 나쁜 의견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짓이 실행될 일은 없었다.

성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아아아아……!

정말로 기이했다.

결사대를 향한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앞으로 더 뻗어나가 기암괴석을 형성했다.

성내는 안개 속에 비친 그림자들도 이상하게 뒤틀려있어서 그 형체를 유추하기 어려웠다. 간헐적으로 지붕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집까지 만든 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씩 드는 정도였다.

천무경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결사대들도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마귀성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안개를 뚫고 시야가 닿는 범위가 새롭게 나타날 때마다 지형은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났다. 뒤틀린 건축물처럼 보였던 것들은 괴이한 형상을 갖춘 암석이 되어갔다.

처음엔 원래의 아단지모 지대로 변하는 건가 싶었으나 그보다 훨씬 크고 높았으며 또 매우 기형적이었다.

마침내 안에 진입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변화로 생겨난 지형들에 의해 무리가 조금씩 조금씩 쪼개지면서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른 곳에 강제로 꾀어내는 것은 아니나 무심코 계속 가다 보면 100여 명의 집단이 삼삼오오 수준의 소집단으로 산개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즈음이 되자 마침내 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초로 나타난 적은 바로 100여 명을 나눠버린 지형지물.

그것들이 처음 보는 괴물과 같은 형상이 되어서 사방을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 시팔!”

“밀리지 마!”

순식간에 난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흉측한 외형과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토괴(土塊)들이 날뛰는데 그 공세가 매우 위협적이었다. 자칫 잘못 얻어맞으면 절정고수의 호신강기마저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마귀성의 중심에서 강력한 마기의 파장이 확산되어 일대를 뒤덮은 순간, 토괴들은 더 크게 폭주하여 날뛰기 시작했다.

“고작 이따위 환술로!”

정예 중의 정예만 추린 결사대는 강했다.

토괴들로는 제대로 된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하하하! 이 쓰레기 같은 마괴들로 뭘 어쩌겠다……!”

푹!

사파 일문의 문주가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토괴 속에서 튀어나온 검이 쇄골 사이를 정확하게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부릅뜬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토괴의 두꺼운 목을 가르고 나타난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초점을 잃고 넘어가 버렸다.

“기, 기습!”

“괴물 속에서……!”

흐르는 흙으로 만들어져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괴물들이었으니 그 속에 습격자들을 숨기는 것 또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위험요소.

그런 적습이라고 대부분 생각했지만, 천무방의 적멸당, 백무당 소속 무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 이런 정신 차려!”

“나야! 못 알아보겠어?”

“어째서……, 큽!”

당황스러워하는 감정적 동요가 그들에게서 일어났다.

토괴들 속에서 기습을 가한 자들은 다름 아닌 사라진 황검당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흐르는 토사와 짙은 마기, 환영 속에 숨어서 기습의 기회를 엿보았던 자들.

그들의 실력 또한 결사대의 대다수와 비등한 수준이었으니 이 기습은 치명적이었다.

천무경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마라! 망설이지 마라! 우리가 싸우는 것은 천마신교다!”

콰르르릉!

천무경이 주먹을 연거푸 휘두르는 순간, 푸른 벽력의 광화가 함께 뿜어져 나갔다.

토괴가 폭발하듯 터지고 황검당원 둘이 거의 동시에 피를 뿜고 살갗이 그슬린 채로 쓰러지니 그 행동이 특히 천무방 무인들에게 상징적으로 꽂혔다.

쉬익!

날카로운 파공성에 천무경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진도건이 그의 곁을 지나쳐 앞을 가로막았다.

챙!

공중에서 핑그르르 회전하는 한 자루의 검이 눈에 들어오고,

“아버지!”

근처에서 천서은이 부르는 외침도 귀에 들려왔지만,

“이혁성……!”

천무경의 관심과 시선은 전방에 나타나 수백여 자루의 장검을 동시에 공중에 띄우는 이혁성에게 꽂혔다.

엄청난 투기와 마기가 동시에 느껴지고 있었다.

비뢰어검술 천천뢰파공우(天千雷破空雨).

쐐애애액-!

천서은도 앞으로 튀어 나가고 진도건도 더 앞으로 튀어 나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붉고 푸른 전광이 검강과 함께 백여 갈래로 뻗쳤다.

카카카카캉!

천무경의 전방으로 쇄도하는 어검술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그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자 다른 나는 검들을 튕겨냈다.

하지만, 여파가 미치지 못한 검들도 다수 존재했다.

“으악!”

“컥!”

사방에서 비명들이 또다시 쏟아졌다.

자기편까지 꿰뚫는 비뢰검은 때때로 방어할 기회마저 앗아가 버렸다.

서파파나 에마 같은 원래 실력이 뛰어난 자들은 그 사이에서도 결사대를 위협했지만, 정신을 빼앗겨 자신의 진짜 무공은 음공은 써보지도 못한 채 옥적만 휘두르다 맥없이 쓰러지는 여희선도 있었다.

그것이 하필 진도건과 천서은의 눈에 들어왔으니, 천서은이 알아보고 달려가 쓰러지는 여희선을 품에 안았다.

“언니!”

여희선이 정신 지배에서 벗어났는지 눈빛이 돌아왔지만, 명치를 정확히 꿰뚫리는 바람에 그곳에서 흘러나온 피가 금새 화려한 궁장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눈가로 떨어뜨리는 눈물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운명이 가져오는 안타까움에 슬퍼하기 때문일까?

“그이를… 죽여줘. ……당주를…… 멈춰줘……!”

여희선은 그 말만을 남긴 채 숨이 끊어져 버렸다.

그 잠깐 버텨낸 게 고작이었을 치명적인 상처를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가 마음을 주었던 황검당주 비뢰검 이혁성이었다.

천서은이 진도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도건!”

진도건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이혁성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카카카카카카……!

쾌검과 쾌검.

내리찍는 번개조차 두려워 울부짖고 달리는 빛조차 겁에 질려 흩어질 만한 극쾌의 검격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천무경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도 여희선이 누군지 기억에 있었다.

이혁성과 어떤 사이가 되었는지는 몰랐지만, 천서은과 진도건이 터뜨리는 분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무경이 하늘로 뛰어올랐다.

“단지운! 단원진! 모습을 드러내라아-!”

꽈르르르릉!

파천신공 개벽.

공력의 방출이 사방을 두들기는 순간, 파마의 힘이 미치며 근방의 토괴들이 형체를 잃고 무너지고 마귀성의 구조물들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거나 토사가 되어 흘러내렸다.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던 황검당원들의 움직임도 일시 주춤하게 만드니 삼십여 명이 순식간에 반격을 허용하면서 쓰러졌다.

그들을 베고 찔렀던 백두기와 남궁평, 적멸당과 백무당의 무인들 모두 어금니를 세게 깨물고 쓴 분루를 삼켰다.

같은 편이었던 자.

단순히 그 정도 수준을 넘어 오랫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지를 죽인 자들이 느낀 슬픔의 고통은 분노의 불길로 치환된다.

전장을 휘감는 그 분노의 불길을 마주하기 위해 다시 한번 마귀성 곳곳에 길이 열리더니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쪽으로 열린 길엔 금빛 번개를 튀겨대는 금강저와 불타는 화룡도를 양손에 든 위타천 스칸다가,

동쪽으로 열린 길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붉은 불길을 끌고 다니는 천마신교의 호법이자 마니사 주지인 야마,

북쪽으로 열린 길에 괴이한 갑피를 형성하고 있는 탈혼갑을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둘러 얼굴만을 드러낸 채로 두 눈으로 푸른 광망을 뿜어내는 양자성이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단순히 마기라고 묘사하기에 너무나 부족할 정도로 몹시 이질적이었다. 뭐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그런 기운들은 순식간에 전장에 있는 모든 자의 이목을 끌 만큼 위압적이었다.

“뭐, 뭐지? 저것들 그때 봤을 때와 기세가 완전히 다른데?”

“크흐흐흐흐! 갈수록 재밌어지는구나!”

안효철과 금태하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들로부터 달아난 양자성과 스칸다가 뿜어내는 기세가 완전히 달라져 오히려 그들을 능가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금태하가 외치면서 몸을 날렸다.

“저 새낀 내 거야.”

그가 향한 곳은 위타천 스칸다.

정면으로 대면하는 순간에 금태하도 멈칫했다.

눈앞의 스칸다가 자신이 아는 그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뭐, 뭐지? 알 수 없는 존재감이……!’

스칸다에게서 마치 후광처럼 비치는 거대한 환영.

아이의 그것과 닮은 동안의 얼굴에 육중한 갑주를 걸치고 금강저와 검을 양손에 들고 있는 모습.

아직 황검당원을 상대로 생사투를 벌이던 범굉대사와 사대금강들이 그 환영을 잠깐 목도하고 하나같이 같은 이름을 떠올린다.

‘동진보살(童眞菩薩) 위타천……!?’

결사대의 핵심적인 절대고수들이 각각 상대를 찾아 신형을 옮기는 것을 본 안효철과 당혁수도 동시에 몸을 날리니 야마의 앞으로 떨어졌다.

당혁수가 안효철을 흘끔 보며 말했다.

“우리 인연이 가볍지 않았나 보군.”

“당문주님과 함께 싸우게 되어 영광이긴 한데……, 어째 너무 위험해 보이는군요.”

반면 안효철은 야마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야마의 주위를 휘감은 채 일렁이는 검붉은 불길로부터 느껴지는 위험에 솜털이 절로 곤두서고 있었다.

야마는 첫 등장부터 두 사람이 당도할 때까지 두 눈을 감고 장승처럼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말 한마디씩 모두 듣고 나자 비로소 입술이 움찔거렸다.

“소승 야마라고 합니다. 소승의 비천한 실력은 감히 두 분 중 한 분을 상대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일 테지만, 다행히 소승에게 천문이 열려 염라대왕의 신통력을 손에 쥐게 생겼으니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

“염라… 대왕?”

안효철과 당혁수가 의아해하며 반문하는데 그 순간, 야마의 눈이 뜨였다.

누군가는 눈을 뜬 줄 몰랐다고 할 수도 있었다.

눈동자부터 흰자위까지 새까맣게 변해있었으니까.

하지만, 안효철과 당혁수는 저마다 눈빛을 맞추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받으면서 온몸이 얼어붙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마의 입술이 다시 한번 움찔거리면서 귀에 꽂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싸늘해지는 듯한 무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심판을 시작하겠다.”

한편 양자성이 모습을 드러내자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몸을 날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양자성을 대면하는 자리에 서서 멈추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강정학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은 내가 멈춰야 한다.”

강도혁이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몸으로 위험합니다, 아버지.”

천서은이 이를 악물면서 두 부자가 아닌 양자성을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 두 분께 죄송하지만, 제가 저놈에게 오랜 빚이 있어서요. 양보는 기대하지 마세요.”

그 세 사람을 스윽 훑어보면서 양자성은 탈혼갑으로 얼굴까지 마저 감쌌다.

오직 드러낸 것은 몹시도 차갑고 혹독한 인상으로 파고드는 푸른 광망의 두 눈빛뿐.

“천제전(天祭戰)이 시작되었다……! 죽음의 안개가 대지를 뒤덮고, 심판의 불길이 영혼을 휩쓸며, 천제(天祭)를 위한 천둥과 화염이 하늘을 뒤덮으리라……! 새로운 신과 천상의 질서가 이 땅에 강림할지니. 기뻐하라! 울부짖어라! 진정한 천마의 탄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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