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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408화 (408/432)

408화 - 제77장. 백련교(白蓮敎) (3)

“단원진은 어떤 인물입니까?”

진도건이 물었다.

방달은 고민이 깊어지는 듯 눈살을 찌푸리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하오문이 여기 고창성뿐만 아니라 신강, 청해, 서장 어디 가릴 거 없이 서역이라 통칭되는 지역이라면 모든 곳에 발품을 팔고 사람을 사가면서 밑바닥 정보까지 싹싹 긁어모았지만, 천마신교 교주 자리를 맡았던 단씨 삼부자 중에서도 현 태상교주인 단원진에 대한 정보가 가장 적어요.”

“그 정도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임기도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요. 일찍 제 아들에게 물려주고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구주마종을 이룬 세력들 중 일부는 단용후 대에 들어온 곳도 있고 단원진 대에 들어온 곳도 있습니다. 아마 세력 포섭 같은 모종의 이유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만한 절대고수가 어디서 사고 치지 않고 음습한 데만 골라 다니면 저희 같은 놈들로선 꼬리를 밟기가 어렵지요.”

“천산 용암비동에서 꽤 오래 칩거해왔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오.”

빌게포첸이 방달의 설명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단지운에게 교주 자리를 물려주고 난 뒤에 그 용암비동에 칩거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갖기 전의 행적도 있을 텐데요?”

진도건이 빌게포첸을 보며 물었다.

“빈승도 아는 바는 많지 않으나 지금 단 태상과 교주가 서로 마찰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천마조사의 자식된 입장 이상으로 천마조사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모양이오. 아마 어릴 때부터 신임받아서 용암비동의 구조를 만드는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의 혼인이 좀 늦었다는 걸 고려하면 그럼 얼추 이해되지 않겠소?”

지금이야 치열한 전쟁 때문에 천마신교의 세력 자체가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지만, 단원진 대야말로 세력이 서역 안에만 국한되어서 어디에도 적수가 없었던 시기였다.

오래 자리를 비우더라도 부하들이 충성을 다해 보필하면서 천마신교를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했을 것이었다.

진도건이 다시 방달을 보았다.

“천마신궁을 나왔던 이 당주님과 황검당 그리고 성혈교 승려들 모두 실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태상교주의 함정이었습니까?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판단이 힘들군요.”

“그게…… 그 지점이 저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두려워하는 지점입니다. 그래서 섣불리 말씀드리기가 어렵죠.”

“아는 걸 말씀해주십시오.”

“사막이나 황무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긴 시간 풍화가 일어나 기괴한 모양을 한 암석지대가 생기곤 합니다. 그런 지역을 아단지모라고 부르는데, 뭐 감숙에도 있고 청해에도 있고 북방에도 있고… 여기 신강에도 있고 그런 흔한 지역입니다. 그런 곳은 아무래도 바람이 세게 부면 그렇게 기이한 지형들 때문에 바람 소리가 섬찟하게 들리곤 하는데 몽골족들은 그런 곳들을 수무하크라고 부릅니다. 그 수무하크를 우리말로 하면 ‘마귀성’으로 해석할 수 있지요.”

안효철이 흥미롭다는 표정이 되었다.

“수무하크, 마귀성이라…….”

천서은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교놈들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후후.”

“그렇지요. 우연의 일치도 아니고. 아무튼 이 지역 회골족들이 얘기하는 대표적인 마귀성이라고 하면 오로목제에서 북쪽에 있는 곳을 꼽습니다. ……몽골족들조차 매우 을씨년스럽고 무서워서 발길을 두지 않는 곳인데, ……그런 곳에 어느 날 갑자기 토성이 나타났습니다.”

“토성? 토성이라고 했습니까?”

“예. 입구도 없고 근처 언덕지대도 없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경공으로 높이 뛰어서 보려고 해도 뭔가 운무 같은게 짙게 껴있어서 안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지요. 기이한 것은 아단지모의 규모가 대단히 넓은데 그 토성은 그 전체 면적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 정도로 신기한 일입니까? 발 길이 끊긴 곳이라면 여기 쿠초 왕국이나 서하, 또는 몽골족의 대부족이…….”

“에이, 잘 모르셔서 그렇지 그게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진도건의 의문에 방달이 손사레를 치면서 그의 말을 끊었다.

“게다가 저희가 그 지역 근처에 발길을 두었던 게 불과 7, 8개월 전인데 그만한 토성을 쌓아 올리려면 못해도 5, 6년 이상 필요할 겁니다. 그것도 금송 정도의 국력의 나라가 인부들을 대거 동원했을 때나 가능한 규모지요. 사람 키보다 서너 배 높은 성벽에 작은 요새 수준도 아닌 중원의 일개 성 규모의 토성입니다. 5, 6년?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모를걸요? 하지만, 오로목제도 그렇고 이 근방에서 그만한 인력을 동원할 정도로 인구가 많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존재 자체가 불가사의, 그 자체입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환도마종의 환술이겠지.”

안효철의 말에 진도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덧붙인다.

“신의 힘이 더해졌을 수도 있고요.”

안효철은 환도마종이 사천 성도성 전체를 거대한 환진으로 덮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진도건은 이미 천신들에 이세계에서 넘어온 신의 존재까지 알고 있는 마당이었으니 인지의 범주를 거기까지 당연하다는 듯 확대하여 생각했다.

이를테면 육도 중 천상도에는 여섯 개 하늘이 있는데, 다섯 번째 하늘인 낙변화천은 거기 사는 천인들이 자유롭게 뭔가를 만들고 그것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는 곧 ‘창조’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점을 하나도 모르는 방달은 이해를 하나도 못 했으니 안효철이나 진도건이 그저 마교와 단원진을 우습게 보고서 짐짓 놀란 척 너스레 떠는 듯이 보였다.

“그리 얘기하실 게 아닙니다. 멀리서 감시하던 저희 측 은신 전문가들의 얘기로는 성이 꿈틀거리면서 제 마음대로 입구를 열었다 닫혔다 하기도 하고 운무에 비친 내부 그림자가 꿈틀거려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 거 같다는 얘기도 하곤 했습니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에요.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이미 환도마종의 환술도 그렇고 그보다 더한 것도 보았으니까요.”

“쓰읍, 걱정이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강호의 명운이 달린 일인데.”

방달이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데 진도건과 천서은, 안효철이 일제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들이라고 불안감이 아예 없을까?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과 부담감이 상시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선 감히 상상하기 힘든 경험을 쌓아오고 있었다.

십 할 준비되었다고 할 순 없어도 목표를 향한 기대치에 대비하여 이만큼 준비될 수도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현장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즉각적인 선택뿐.

그에 따른 최종적인 결과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일월교 위치는 알고 있습니까?”

“천산산맥 가장 끝자락. 여기서 동북쪽에 있습니다. 원래 본사(本寺)가 있었는데 천마신교 예하에 들어가면서 이쪽으로 옮긴 듯합니다. 서역무림에서 도는 평가로는 일월마종이야말로 천마신교가 다룰 수 있는 최강의 방패라고 얘기하더군요.”

“그 최강의 방패가 저들 머리를 찍게 생겼군.”

안효철의 농담에 진도건과 천서은뿐만 아니라 빌게포첸까지 실소를 흘렸다.

“빈승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소이다.”

“믿을 수 없다는 얘기인가요?”

“신임의 문제로 얘기한 건 아닙니다만, ……냉소평은 단원진의 가장 가까운 친우였으니까요. 하지만, 일월교는 무림정복에 더 큰 뜻을 가졌던 천마신교와 달리 종교사상적 가치에 무게를 두었던 곳이니까. ……지나오면서 보았던 것들을 되새겨본다면 일월신마의 선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배신을 두려워해야 하나 싶었던 진도건 등은 빌게포첸이 그 점에 대해선 선을 긋자 조금씩 안도했다.

사실 같은 의심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성혈신마 빌게포첸도 크게 다르게 볼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천마신교 중추에 가까이 붙어있었던 것은 성혈교도 마찬가지였고 빌게포첸도 성혈신마로서 일월신마 냉소평과 염황신마 혁련제와 함께 구주신마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기 때문이었다.

진도건이 방달에게 다시 얘기하였다.

“일월교와 혈마종이 이곳으로 올 예정입니다. 여기 쿠초 왕국의 협력을 구하면 천마신교 영향력을 지역에서 지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를 했었거든요.”

“아, 그럼…….”

“언제쯤 도착할 지 한 번 알아봐 주십시오. 말씀하신 백련교 설명을 돌이켜보면 마찰이 불가피한데, 돕고 가야 할 상황인지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나흘 이상 걸리면 먼저 떠날 생각입니다.”

방달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무조건 충돌하지요. 일월교 태생이 백련교에서 시작된 건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월교야 천마신교에서 서열 2위의 자리에 있었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지만, 백련교는 다릅니다. 독자적 교단으로 있으려는 의도가 구주마종에 들어가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는 맞지만, 저희끼리는 농담 삼아 아버지가 어떻게 자식 밑으로 들어갈 수 있겠냐고 떠들곤 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후후! 그럴듯하군.”

안효철이 방달의 말에 적극 동의했다.

그게 사람 사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견해기 때문이었다.

진도건 일행은 일단 하오문 안가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정했다.

냉소평 등과 혈마종이 오고 있는 상황은 다음 날 오전 중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거란 얘기를 들었으니 어떻게 어디로 움직일지는 그때 가서 정하면 되었다.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면서 진도건과 천서은은 안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느 객점 전각의 지붕 꼭대기로 올라갔다. 당연히 지붕에도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진도건이 앉을 자리를 바람을 일으켜 털어내곤 준비한 짚단을 펼쳐서 앉아도 엉덩이가 젖지 않도록 챙겼다.

“어때?”

“호호, 아늑한데요? 도건은 괜찮아요?”

“물론이지.”

“그래도 신강 땅에선 가장 큰 성이라고 들었는데 무척 조용하네요.”

“그러게. 천무방이 있는 태원이나 창천맹, 사패련이 있었던 도시는 그래도 술시가 넘어도 꽤나 불야성이었던 거 같은데 말이야.”

“좀 재미없는데, ……그래도 좋네요.”

“뭐가?”

“당신과 단둘이서 조용히 바람 쐴 수 있으니까요.”

“그건 나도 그렇네, 하하하.”

“아버지께서 절 호출하시고 당신을 서하로 보냈을 때 혹시나 다시 만나지 못할까, 또 전처럼 3년 동안 못 보는 꼴이 될까 얼마나 두려웠다고요.”

“그래도 그 몇 달 사이에 더 강해진 거 같아. 천하오절을 놓고 다퉈도 될 거 같은데?”

“치. 난 못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고 얘기하는데, 도건은 강해진 거 같다느니 천하오절을 놓고 다투라느니. 그런 얘길 지금 이런 자리에서 여자에게 한단 말이죠?”

“……내가 실수했나?”

“그럼요. 무척 실수했죠.”

천서은이 꽤 단호하게 선 긋자 진도건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정말 그런 건 아니었지만, 묘한 긴장감이 차가운 땀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못 본 새 더 이뻐진 것 같아.”

“늦었어요.”

“……당신이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그것도 늦었어요.”

“이건 아니야. 옥문관에서 이미 얘기했었다고.”

“그랬어요? 내심 조금 섭섭해하고 있어서 얘기했던 걸 잊어버렸나 봐요.”

“흐음…….”

진도건이 무겁게 신음을 흘리자 천서은이 흘깃 눈치를 살피다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꺄하하! 지금 볏짚 방석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지는 얼굴인데요?”

진도건도 픽 웃었다.

“그보단 얼음 바닥에 앉은 느낌이야. 엉덩이가 배겨. 서은이도 그럴 거 같은데.”

천서은이 조금 심통난 표정이 되었다.

“또. 난 기분을 물어본 건데, 진짜 내 엉덩이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요. 엉덩이 차가워요. 그래도 문제는 안 되죠. 내공으로 막…….”

천서은이 따박따박 말을 이어가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그대로 비스듬히 돌면서 움직여서는 진도건의 허벅지 위에 떨어졌다.

엉덩이에 푹신함이 느껴지고 맞닿은 한쪽 팔엔 금방 체온이 느껴졌다.

진도건의 차분한 호흡소리가 귓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이젠 좀 괜찮지?”

진도건이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물었다.

천서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녀가 손을 들어 진도건의 가슴팍을 한번 꼬집었다.

“이런 식이면 제 마음이 풀릴 거로 생각한 거예요?”

“무조건?”

“……하아, 차마 부정할 수 없네요.”

천서은이 진도건에게 깊이 기대며 몸을 맡겼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져 서로의 호흡이 바람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기분 좋은 자극에 서로가 가진 향취가 더해지니 둘의 입가에 미소가 떠날 길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정말 무조건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난 도건이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고요.”

“하하, 설마 정말 그럴까 봐? 여기까지 오는 동안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겨울이라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고민해보니까 말이야. 이런 추운 날엔 이렇게 안아주는 게 최고가 아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거기에 다정한 말 더하기.”

“그건…… 좀 더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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