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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407화 (407/432)

407화 - 제77장. 백련교(白蓮敎) (2)

“……그렇군요. 그럼 입궁할 것이라고 전해두겠습니다.”

아스마 쿠마루가 두 손으로 겹겹이 입은 화려한 승포를 안에서부터 여미면서 고개는 끄덕이며 위소규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렇게 해주시오. 내가 곧 알현하러 가겠다고 말이오.”

위소규가 합장과 함께 허리를 숙이면서 아스마 쿠마루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허리를 숙여 얼굴이 드러나지 않을 그 잠깐 사이에 위소규의 눈이 여인들을 훑었다.

색욕에 찬 시선이 아니라 연민에 찬 시선으로.

그리고 돌아서서 다섯 번째 문을 열고 나가선 다시 문을 닫고 난 그의 얼굴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이 위소규의 신세가 어쩌다 이리 전락했는지……. 언제쯤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서역 백련사에서 공부를 시작했던 초기의 생활은 괜찮았다. 그러나 불과 3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아스마 쿠마루가 주지가 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순수한 마음으로 왔던 그의 행보는 더럽혀졌다.

백련교라는 하나의 종교 사찰로서 서역에 교리를 전파하기 위한 자연적 방향성은 금방 무너져버렸고 무림문파로서 야심만 가득 찬 집단으로 변모했다.

백련교의 무공들은 중독성이 있었다.

속성으로 성취를 거둘 수 있었기에 제자들도 거기에 쉽게 중독될 수 있었다. 몸을 쓰는 것 자체가 힘들긴 했으나 그 결과로 쿠초 왕국이 가진 권력과 가까워짐으로써 누리는 혜택이 많아지다 보니 종교적 지향점이 갖는 순수성이 타락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백련사 승려들이 모두 아스마 쿠마루와 같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무력과 그것으로 얻은 과잉된 권위는 적어도 백련교 안에선 절대적이었고 그 권위는 먹구름이 되어 쿠초 왕국까지 서서히 덮어가고 있었다.

방장실을 나선 위소규는 왕궁에 직접 가지 않고 승려 하나를 보내 아스마의 의지를 전하도록 조치했다.

직접 나서서 전하기엔 너무 낯부끄러운 일을 참아내기가 감정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위소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백련사 사찰을 아예 빠져나왔다.

‘언제나 청정한 기분이 느껴져야 할 사찰 내 공기이거늘…….’

위소규는 한동안 고창성의 거리를 걸어 다녔다.

회골족 백성들은 때때로 그를 마주칠 때마다 합장하면서 인사했고 위소규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빠지지 않고 화답 인사를 주고 덕담도 건넸다. 하지만, 일부는 인사를 하면서도 그리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백련교는 쿠초 왕국의 국교가 되었지만, 최근의 민심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교리에 따른 ‘진공가향 무생노모’ 팔자진언은 백성들에게 언젠가 미륵의 정토로 향하게 될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백련사의 젊은 주지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돌고 있었다.

힘없는 어린 소녀나 처녀, 미망인들을 데려다가 난교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

백련교는 그 소문을 퍼뜨리는 자를 왕법을 이용하여 처벌하고 있었기에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위소규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이니 백련교에 대한 불신의 벽이 깊어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의 종교가 백성들의 믿음을 잃어버리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그것은 분명 고통이었다.

‘한땐 저잣거리의 공기가 사찰 공기보다 좋게 느껴진 적도 있었는데……. 이젠 고창성 어느 곳도 숨 막히는 기분이 들어가는 것 같구나. 무생노모시여, 이 고창성은 영영 당신의 진공가향이 될 수 없는 것입니까? ……음?’

위소규의 발걸음이 잠깐 멈추었다.

저잣거리의 길목을 따라 노상(路商)들이 물건이나 음식을 팔고 있었고 그 사이로 허름한 음식점과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서도 그의 시선을 유독 끄는 것은 한 탁자를 두고 앉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외부인들.

정확히는 그와 같은 한족의 인상을 가진 그들 중에서도 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유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이방인을 제법 봤었지만, 저 정도로 새빨간 머리카락은 또 처음 보는군. 그것도 한족이 말이야. ……흐음!’

한족이라고 생각이 들자 중원인이란 생각에까지 미쳤지만, 위소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음식점을 지나쳐 걸었다.

‘에이, 설마……. 둔황 쪽에서 온 사람은 아니겠지. 상인 행색은 아니니까……. 하지만, 무림인 같기도 하고……. 허허! 그렇다고 옥문관을 거쳐 왔을 가능성을 묻기엔 너무 성급하지. 무리야, 무리.’

* * * *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눈에 확 띄는군요.”

“흐음, 가리는 게 좋겠소?”

“일전에 제 머리카락을 붙여 만든 망건을 써서 상투를 틀어 가렸던 게 떠오르네요. 후후! 이참에 다시 해볼까요?”

천서은이 한 손으로 자기 머리카락 끝부분을 들고는 다른 손으로 검지와 중지만 펼쳐서 가위로 자르는 시늉을 했다.

진도건이 천서은의 손을 잡고 탁자 아래로 내려주면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런 식으로 자르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왜요? 난 가볍고 좋았는데.”

“머리카락 길이가 어떻든 이쁘지. 그래도 그렇게 자르는 건 내 마음이 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방달(龐達)이 웃음을 흘렸다.

“후후!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여긴 강호무림의 소식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색목색발(色目色髮)을 종종 보기도 하고요. 눈에 띄지만, 한 번쯤 신기하게 보고 그냥 지나치겠지요.”

“하지만, 우리 조합이 그리 평범하진 않아서 다들 기억에는 분명히 남겠네. 한 명은 시뻘건 머리카락, 한 명은 서역 승려, 한 명은 절세가인. ……흐음, 내가 제일 평범하군.”

“안 대협의 덩치가 어디 평범한가요?”

“그런가? 허허.”

천서은의 지적에 안효철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천서은이 두 손을 꼭 모은 채 배시시 웃어 보였다.

“하지만, 방금 그 말은 좋았어요. 절세가인.”

“아, 진 공에겐 과분할 정도로.”

“씁.”

“뭐에요, 그 반응은? 설마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니, 맞지. 무조건 맞아.”

진도건이 고개를 조금 더 힘주어 끄덕거리자 천서은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흘겨보고는 고개를 다시 방달에게 돌렸다.

“아무튼 오늘 식사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건량만 먹은 시간이 너무 길어서 지겨웠거든요.”

“천무방 공녀라면 저희 하오문에겐 귀인이니 당연히 대접해드려야지요. 그래도 먼 길 오셨으니 하룻밤 쉬고 가십시오. 안가에 빈방이 많습니다.”

“그래야죠. 저희가 듣고 싶은 정보들도 있고요.”

방달이 일행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빌게포첸을 마지막을 볼 때의 시선은 보통 때보다 좀 더 무겁고 진지한 느낌이었다.

“황검당과 ……성혈교… 지요?”

네 사람이 고창성에 도착했을 때, 먼저 가까이 접근해온 건 하오문도 방달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 정착해 지내는 한족으로서 빌게포첸의 얼굴도 잘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어떤 역할 없이 형식적인 자리로서 방문했던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빌게포첸이 천마신교 교주와 함께 백련교를 방문하던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빌게포첸이 근심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을 외는 건 정말 오랜만에 듣는군요. 여기선 무생노모만 찾아서…….”

진도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음식점 바깥을 잠깐 내다보았다. 잠깐 바라보는데 창가로 지나치는 승려 하나, 그리고 막 입구 쪽으로 드러난 시야에서 또 다른 승려 한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희고 붉은 조합의 승포를 걸친 승려는 고창성에 들어오면서 이미 잦은 빈도로 지나쳐온 경험이 네 사람 모두에게 있었다.

“다 백련교 승려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전엔 포달랍궁 분파의 승려나 회회교 교도들도 돌아다녔지만, 왕실에서 백련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부터는 대부분 백련교에게 쫓겨났지요. 물론 조용히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백련교의 교리가 그리 나쁘지 않아 많이 통일된 상황이긴 합니다. 최근 민심이 썩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긴 하지만요.”

“천마신교의 지배력이 강한 땅이고 백련교가 국교이기도 한데 민심이 안 좋아질 거리가 있던가?”

안효철의 물음에 방달이 민망한 표정으로 천서은의 눈치를 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백련교주가 힘없는 아낙네들을 납치해가서는 자신의 색욕을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천서은이 인상을 한가득 일그러뜨렸다.

안효철이나 진도건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음은 물론이었다.

“하오문이 말할 정도면 뜬소문만은 아닌가 보오.”

빌게포첸의 말에 방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자세히 설명하려는데 진도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가로 가서 들으시죠. 막 떠들기엔 적절한 자리는 아니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방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도건에게 동의했다.

고창성의 하오문 안가는 그들이 식사를 한 음식점에서 좀 떨어진 구석진 곳이었다.

평범한 골동품점이었는데 내부 풍경을 보던 진도건은 서하 흥경의 고서점을 잠시 떠올리기도 했다.

네 사람은 방달로부터 황검당과 성혈교의 행적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황검당과 이 당주님은 고창성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하서주랑을 따라서 천마신교와 내통했던 군관들 여럿을 암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도 그런 식의 일을 벌일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탐문하는 걸 보았으니까요.”

“하오문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

진도건이 묻자 방달이 쓴웃음과 함께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아쉬웠다는 내색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곳에 저희 하오문이라고 해봐야 네 명이 고작입니다. 게다가 초기 황색 무복을 입었다는 정보와는 달리 다들 차림새가 달라서 처음엔 파악하지 못했었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이 당주님이었구나, 황검당이었구나 알게 된 것이지요.”

“흐음, 계속해보게.”

“단기간이어서 그런지 천마신교와 깊이 관련이 있다는 점 사실에 도달하지 못해 그냥 떠나간 모양입니다. 백련교 무공이 일정 경지에 도달해야 마공의 색이 나타나는데 그 정도의 고수는 모두 사찰 내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으니 아마 마주치지 못했겠지요.”

“그 정도로 백련교와 천마신교의 관계가 깊지 않았는가?”

“아닙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쿠초 왕국의 국력 자체는 보잘것없지만, 중원이 신강으로 부르기도 하는 여기 서역에서는 회족, 회골족이 주류이다 보니까 쿠초 왕국의 행정력이나 군권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 가능합니다. 백련교는 쿠초 왕국의 국교이고 천마신교는 쿠초 왕국의 영향력을 원했기 때문에 백련교를 구주마종으로 포섭하려고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구주마종엔 포함되지 않았지.”

“지금 교주이자 주지인 아스마 쿠마루가 백련교를 독립된 교단으로 남기고 싶어 했습니다. 대신 천마신교가 요구하는 걸 대신 전향적으로 중재하겠다고 역제안했지요. 백련교주가 그 대가로 뭔가 받은 모양인데 그때부터 무공이 크게 는 것 같습니다.”

“마정이겠군.”

빌게포첸이 중얼거렸다.

“백련교주의 무공 수준은 어떻습니까?”

“제법 강하지만, 당연히 구주신마에 비할 바는 아니오. 마정에 의한 각성도 결국 수용자의 그릇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법. 살문주를 기억해보시오.”

빌게포첸의 대답에 진도건이 월하사신 사금령과의 일전을 떠올렸다. 그 음한의 마공과 기괴한 모습들이 금방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매우 강하고 또 기괴하여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지금보다 약한 당시 그의 능력으로 충분히 꺾을 수 있었다.

“사금령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사금령?”

“살문주 월하사신의 본명입니다.”

“그건 몰랐소. 빈승의 기억 속에 백련교주의 무공이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지금 어떤 수준인지는 모르겠소이다. 하지만, 단 교주나 단 태상 모두 그 정도의 기대감을 없었던 걸로 기억하오.”

“흐음.”

“……그럼 계속 말씀드릴까요?”

“그래 주십시오.”

방달이 대화가 끊기길 기다렸다가 묻자 진도건이 미안해하면서 부탁했다.

“아무튼 백련교는 천마신교의 교세가 신강 전역으로 퍼지는 데 일조했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서장과 청해 그리고 북방초원까지 확대해 갈 수 있었지요. 하지만, 깊이 파고들 시간적인 여건이 없었던 황검당은 여기 고창성을 그냥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로목제에 이르렀는데 거기선 저희 하오문과 개방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마침 요마산 천마신궁 내에 있던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대거 떠난 걸 파악한 것입니다. 기습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선에까지 닿으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으로 모이면서 이 당주께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 다음은 역시…….”

진도건이 말꼬리를 흐리자 방달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빌게포첸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네. 이혁성과 황검당은 대부분 무사한 상태로 나왔습니다. 거기에 성혈교의 대라마 아유타와 성혈교 승려들까지 대동한 상태로 말이죠. 그리고 개방이나 저희 하오문과 추가적인 접촉없이 곧장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은 바로 태상교주 단원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진도건의 말에 빌게포첸도 천서은도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실종 판단은 성혈교와 황검당에게 동시에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도건의 표정도 천서은의 표정에 그대로 물들 수밖에 없었고 안효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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