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97화 (397/432)

397화 - 제75장. 개관사정(蓋棺事定) (2)

“이 괴물 같은……!”

“위험해!”

단지운이 자기를 포위한 절대고수 모두를 한꺼번에 겨냥하는데 온 세상이 천마의 마기로 가득 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경각심을 느꼈다면 가만히 있어선 살아날 수 없고, 주저해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

당연히 어설퍼도 살아남을 수 없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가진 내공의 최대치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천마신교 교주가 가진 힘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누군가가 이를 보았다면, 그것이 설령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단지운이 신을 참칭하였을 때, 헛소리라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폭발(爆發), 폭풍(爆風), 폭렬(爆裂), 폭진(爆震)…….

그 파괴적인 힘의 충돌로 인해 순간적으로 나타난 죽음의 현상을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안의 모든 존재를 사멸시킬 위력의 여파.

그것은 외곽에서 은밀히 자신을 숨긴 채 때를 기다리던 비작이 노리던 순간이기도 했다.

“이 비작의 목숨을 불살라……, 천도환위의 술……!”

옥문관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비작을 포함한 환도마종의 환마인들은 천마신교와 창천맹 간 전쟁이 격해지는 시점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몸을 숨겼다. 그리고 비작의 정신에 자신들을 연결하면서 비작이 사용할 술법에 몸을 맡긴 채 숨죽여 기다려왔었다.

천도환위인동지술(天道換位引動之術).

천도환위계(天道換位系) 최상위 술법이다. 시전자 자신이나 대상을 초장거리를 이동시키기 위한 환도마종 미완의 술법인 만큼 막대한 기운의 소모가 요구되는데 비작은 그 필요한 기운을 지금 절대고수들이 일으킨 폭발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끄어어어……!”

비작의 고통에 찬 신음은 거대한 폭발을 자색 반구형의 환진이 나타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미라처럼 피골이 상접해지는데도 비작의 눈빛은 술법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지니, 혜성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빛줄기를 눈에 담고서야 비로소 생을 마감하였다. 다른 환마인들 모두 그 자리에서 모든 생명력이 술법에 빨려 들어가 즉사했음은 물론이었다.

휘이이잉……!

세찬 바람이 전장에 휘몰아치다 물러갔다.

사막을 휩쓰는 바람 소리는 귀곡성처럼 섬뜩했으나 누구도 그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하였다.

삐이이이…….

천지를 삼킬 듯한 폭발의 여파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귀를 이명과 함께 먹먹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크윽…….”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압력에 짓눌려 한쪽 무릎까지 꿇었던 천무경이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키기 위해 다른 쪽 무릎을 손으로 짚으며 장내를 살폈다.

“서은아!”

가장 먼저 딸의 안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저, 전 괜찮아요! 쿨럭쿨럭…….”

천서은이 손을 들며 자신의 위치를 밝혔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기침으로 피를 토하는 모습에서 내상이 있음을 인지했다.

천무경은 다른 쪽으로도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단지운과 대립각을 이루며 폭발 속에 있던 자들 모두 목숨은 부지한 듯 보였다. 하지만, 하나같이 큰 충격을 받았는지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고 천서은처럼 피를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내에서 벗어날 것처럼 굴었던 일월신마와 삼대수라들도 휘말린 듯 보였는데 특히 삼대수라들은 급히 가부좌를 틀고서 운기조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천무경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일어나선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그럴 것이 이 장내에는 딱 한 사람, 천마신교 교주 단지운의 모습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절대고수 십수 명을 압사시킬 수 있었던 폭발이었다.

잠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천무경조차 오싹함을 느끼게 하는 폭발이었지만, 그것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까지 불과 네다섯 셀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다. 그것도 단지운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천무경은 아직 긴장의 고삐를 완전히 늦추진 않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당연히 단지운의 기척을 찾기 위함인데 진도건과 눈이 마주쳤다.

“도건아.”

“방주님, 놈은 이제 이곳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환도마종 놈들이 근처에 있어서 마교주를 빼돌린 듯합니다.”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혈마가 그 순간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기에 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환도마종에겐 엄청난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술법이 있는데, 이번엔 폭발까지 한꺼번에 가져간 듯해 보입니다.”

“그럼 드디어 전투가 끝난 것인가?”

가까이 있던 안효철이 물었다.

진도건이 그를 흘끔 보고는 다시 천무경, 천서은과 차례로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쟁이 끝나진 않았지만, ……그렇습니다. 오늘 전투는 끝났습니다.”

진도건이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 몇몇이 엉덩이를 땅에 털썩 던져놓으며 앉는 기척들이 들렸고 안도의 한숨들도 곳곳에서 섞여 들려왔다.

단지운이 갑자기 사라졌음을, 이 전장에서 완전히 떠났음을 누가 확신할 수 있겠냐마는 어쩐지 진도건의 확신에 가까운 어투는 모두로 하여금 그 말을 믿게 했다.

“그럼 이제 마교 본진에 쳐들어가는 건가? 큭큭큭!”

천무경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금태하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그를 보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천무경은 그 말을 듣고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몸을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시선은 가까운 곳이 아닌 더 멀리까지 닿아있었는데 바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까 두려워 멀찍이 거리를 벌린 창천단과 천무방 생존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선이 이동하는 동안 전장에 지천으로 깔린 수많은 시신도 함께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급격히 무거워짐을 느꼈다.

“글쎄…….”

천무경도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에게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단 당장의 급선무는 전장에 남은 상황들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그는 천서은을 챙기는 진도건의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면서 백두기와 남궁평을 부르는 것으로 맹주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도를 인지한 다른 이들도 움직이기 시작하여 시체들의 땅을 건너 생존자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무경이 별다른 대답 없이 멀어지자 금태하도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쳇! 그래도 이긴 셈인데 심각한 얼굴이나 하고 말이야.”

“사패련을 내팽개친 자네로선 천가가 짊어진 책임을 이해하기 힘든 게 당연하지.”

“안 죽고 용케 버텼군, 영감.”

“죽을 것 같네.”

금태하가 실소를 머금으며 가까이 다가온 강정학을 보았다.

강정학의 안색은 금태하와 조우했을 당시만큼 안 좋았지만, 상황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이 걸을 수 있는 기력을 제공하는 듯했다.

“그래, 마교주를 상대한 소감이 어떤가? 마지막 공격은 정말 끔찍했는데…….”

“놈은 자신의 선천지기까지 쏟아부으며 우리 모두와 함께 동귀어진하려고 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진도건, 저놈의 말처럼 환도마종이 마교주를 살리려 빼돌렸다고 해도 아마 재기하긴 힘들 거야. 그러니 천무경도 곧장 전력을 추슬러서 마교 본산이 있는 천산으로 빠르게 진격시켜야 할 것이야. 그래야 마교의 싹을 잘라버리지.”

금태하가 자기 의견을 드러내며 한걸음 내딛었다. 그리고 뒷짐을 진 채 바람을 맞으면서 더 멀어진 천무경의 뒷모습을 냉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긴 하겠지…….”

강정학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그런 금태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엔 깊이 고심하는 빛이 어른거렸다.

‘천마신교를 끝내 무너뜨리더라도 아마 마도는 사라지지 않겠지……. 금가야, 자네의 속내가 이 강가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네.’

* * * *

콰콰콰쾅!

우르르……, 쿠쿠쿠쿵! 쿠쿵!

사전에 어떤 신호나 예고, 징조도 없이 갑작스레 일어난 폭발이 건물의 상단을 휩쓸어버리면서 사방에 그 파편들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욱이 피어난 먼지 속에서 단지운이 황망한 표정을 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쿠쿵! 쿵! 쿵!

무거운 잔해들이 굉음과 함께 떨어졌지만, 단지운은 당장 발을 떼기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운이 좋게도 그의 주변으로 몇 개가 더 떨어지고 나서야 먼지로 텁텁해진 정적이 맴돌 수 있었다.

단지운은 그 먼지구름이 만든 그늘 속에서 잠시 그렇게 숨을 헉헉대었다. 그러다가 머리 위 그늘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폭발로 천장이 날아가 그로 인해 안을 비추는 한낮의 푸른 하늘과 햇살에 의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면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는……!”

건물 상층을 포함한 천장이 날아갔지만, 일부 남아있는 천장에서 보이는 벽화는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들.

단지운은 자신이 천마신궁 흑궁의 천장을 뚫고 제육천마라대전의 중앙에 떨어졌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커다란 파순대좌가 가라앉는 먼지구름 사이로 햇살을 받으면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비작……!’

단지운은 자신이 어떤 경위로 이곳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천도환위인동지술.

흑궁의 상층을 날려버린 폭발조차도 그 술법에 기운이 흡수되면서 위력이 반감된 것이다.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단지운이 선천지기까지 끌어다 썼기 때문이었다. 동귀어진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 현장에 있던 모두를 죽이려면 그와 같은 시도가 반드시 요구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분명했고 그가 지금 대단히 지쳐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교주시여! 속하를 용서하소서. 그리고 부디 마지막 남은 힘을 취하시어 천마군림 광명대천을 이루소서!”

이곳으로 날아온 순간, 머릿속을 관통했던 그 목소리는 비작의 것이 분명했다.

아마 옥문관에 남겨진 채 무림인들에게 발각되어 척살 당하거나 술법에 생명력을 뺏겨서 죽었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이 예상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단지운이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날 여기에 돌려놓은 것은 분명 아버지의 지시 때문일 터. 그렇지 않더냐, 비작!”

단지운이 더는 이 세상에 머물지 않을 부하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비작의 술법전개로 인해 선천지기 탕진은 막았지만, 적들 목숨 하나 거두지도 못한 채 넘어와 버렸다. 이는 단지운으로선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뼈 아픈 실착이었으니 비작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노기가 역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당신은 나의 실패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크억! 쿨럭쿨럭!”

단지운이 벌떡 일어나 파순대좌를 바라보며 소리쳤다가 그만 허리를 굽히면서 피를 토해내었다. 선천지기까지 쓸 정도로 무리를 했으니 당연히 기진맥진 이상으로 만신창이인 상태인 것이다.

단지운은 털썩 무릎을 꿇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옷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았다. 그러나 다시 이내 두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일렁이면서 미간이 좁혀졌다.

쾅! 쾅! 쾅!

“빌어먹을!”

단지운이 이를 악문 채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두꺼운 대리석 바닥이 그의 주먹질에 거미줄 그물처럼 쪼개졌다.

그것으로도 분이 모두 풀리지 않았다.

한동안 씩씩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이 가득 찬 제육천마라대전 안을 울리고 있었다.

가쁜 호흡을 다스리며 단지운은 잠시 침묵 속에 정신을 내맡겼다.

어쨌든 타의로 인해 이곳에 돌아왔으니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선택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제육천마라대전의 입구.

본래라면 문을 지키고 있을 마군위들이 이 소란에 벌써 들어왔어야 함이 정상이었을 터였으나 어째선지 대전 안처럼 정적만이 입구에 감돌고 있었다.

“끄응……!”

단지운이 신음을 흘리면서 무릎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시 입구 쪽을 노려보다가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그긍!

미세하게 열려있던 거대한 문틈에 손을 넣고 힘을 주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몸을 밀어 넣어 바깥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단지운의 미간의 골이 다시금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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