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96화 (396/432)

396화 - 제75장. 개관사정(蓋棺事定) (1)

“크아아아아아……!”

혈마의 울부짖음이 이 땅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그 귀곡성을 똑똑히 들었다.

그것에 단지운이 일으킨 혼돈의 파장으로부터 막 도달해 간신히 버티던 천서은의 시선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고통에 일그러졌던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진도건의 몸이 공중에서 떠 있었고 그를 붙잡고 흡성대법을 시전했던 구마진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된 채 진도건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살았어……!’

천서은이 환희의 함성을 속으로 내지를 때, 진도건을 중심으로 일순간 피의 소용돌이가 펼쳐졌다.

그녀에겐 제법 익숙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느낌만은 섬뜩한 그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져갔다. 그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단지운이 일으킨 혼돈의 파장까지 끌어당겨 자기 흐름 안에 가두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절대고수들은 고통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했고 외곽에서 도망을 선택함으로써 몇 초의 시간을 벌었던 고수들의 목숨을 온전히 구해내기에 이르렀다.

거대한 흐름은 점차 진도건의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어느 순간 강하게 뭉쳐지듯 하더니 하늘을 향해 칠흑과 피처럼 붉은 두 갈래 파동의 기둥을 방출했다.

퍼엉!

하늘을 향해 솟구친 그 기둥은 이내 사라졌으나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대기가 크게 흔들렸다.

대혼란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절대고수들의 침묵 속에서 진도건과 단지운의 신형이 공중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뎠다.

어느샌가 둘 사이엔 길이라도 열린 듯 시야를 가로막는 사람 하나 없이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마주 보았다.

긴장감이 날카롭게 흘렀다.

파앙!

진도건과 단지운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경공을 펼쳤고 두 신형이 눈부신 속도로 좁혀졌다.

혈광참, 그 적혈의 검기가 진도건의 참격으로부터 방출되고 구마진이 튕겨낸 손가락 끝에서부터 칠흑의 여의주 같은 마안지가 쏘아졌다.

콰쾅!

두 색의 마기가 충돌해 폭발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끌어안듯 휘감아 하늘로 솟구쳤다. 그 아래로 진도건과 단지운이 어느새 지척으로 거리를 좁히면서 서로를 향해 검과 권장의 초식을 펼쳐냈다.

슈슈슛!

마안지가 참격을 뚫어내지 못한 걸 확인한 이상, 단지운도 함부로 진도건의 검격을 맨손으로 받으려 하지 않았다.

무림 최속의 검속을 두 눈으로 좇고 몸의 반응을 밀어붙이면서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피해낸다. 양손으로 일으키는 변화는 진도건의 공격 범위를 좁히며 뱀의 교활함을 드러내어 힘을 겨룰 수밖에 없도록 한다.

꽈릉!

마침내 좌장끼리 부딪쳤고 다시 동시에 둘의 신형이 충격파에 밀려 멀어졌다. 떨어지는 양측의 손바닥 사이로 칠흑의 마기가 소용돌이치면서 붉은 벼락을 사방으로 토해냈다.

단지운이 두 팔을 각각 위아래로 펼쳐선 각각의 반원을 재빠르게 그리며 반대편의 위치를 점하자마자 가슴 앞에 두 손을 교차시켰다. 그 순간 섬뜩한 마기의 파장이 대기 중에 순간적으로 요동쳤다.

천마신공 번극멸천(翻極滅天).

없었던 것이 나타난다.

어느새 있던 자리부터 단지운까지의 공간이 비틀리는 듯하더니 칠흑의 마기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 진도건을 덮쳤다.

콰콰콰콰콰!

안으로 좁혀져 폭발한 마기는 다시 바깥으로 소용돌이치며 비산했다.

내부 압력이 얼마나 높았었는지 그렇게 비산하는 기운들이 마치 소용돌이를 몸통 삼아 승천하는 흑룡처럼 꿈틀대며 솟아났다. 천무경과 금태하, 당혁수, 안효철 등 천하오절급 고수들이 먼저 기회를 노리고 단지운을 향해 쇄도하다가 흑룡에 위협을 느끼며 다시 거리를 벌리게 했다.

단지운은 이미 그들의 기척을 감각 안에 두고 있던 것이다.

퀴리리릭!

그 소용돌이치는 흑룡의 몸통 중심을 타고 단지운에게 쇄도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몸통 중앙을 붉은 검기로 가르면서 진도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엔 단지운도 어느새 근처의 검들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겨선 검들을 쪼개고 하나하나 검강을 입히니 순식간에 일만 군세를 등에 업은 형국을 만들었다.

천마신공 천마어검 일만세검(一萬細劍)

지면에 깔린 검은 구름에서부터 하늘을 향하여 검의 비가 솟아오르니 검 끝의 예리함과 검강의 빛무리가 모여 하늘에 떠오른 진도건에겐 밤의 은하수가 발아래 펼쳐진 것처럼 눈에 비쳤다.

진도건이 검을 끌어당겨 검집으로 회수하고 발검 자세를 잡았다.

일만여 개의 검우(劍雨)가 일점을 향해 쇄도하는 순간, 진도건도 허리에서부터 흑검의 검광을 발했다.

어떤 인간이 죽지 않고 수라도에 이를 수 있을까?

어떤 인간이 죽지 않고 도리천에 오를 수 있을까?

아수라왕 마하발리와 악의 화신 브리트라를 보았고 육도의 질서를 수호하는 제석천을 만났다.

그들이 발하는 신성과 영광(靈光)이 진도건에게도 지대한 영광을 끼쳤으니 그것은 고스란히 그의 무공으로 발현된다.

파천혈마공 제석진뢰격(帝釋震雷格).

일검 찌르기, 그 극점에 뇌정이 머물러 사방에 뇌격의 그물을 뻗친다.

쩌저저정!

가공할 위력이 세검의 경로를 비틀어버리고 그 중심을 향해 진도건이 쇄도하며 검로를 열었다.

파천혈마공 원류(原留) 아수라혈검무(阿修羅血劍舞).

원류검결로 펼쳐내는 검기가 공간을 채우며 동시에 혈마가 진도건에게 동화하여 붉은 귀기로 그를 좇으니 사방에 혈광이 뻗치며 난무했다.

카카카카칵……!

짧은 시간 연속된 신공으로 일만세검의 검진이 무너졌다.

두 사람은 공격의 성공과 실패에 감정을 담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향해 지체하지 않고 쇄도할 뿐이다. 공방을 주고받고 다시 큰 폭발과 함께 떨어지는 사이, 이번에야말로 다른 고수들까지 합세하여 단지운을 덮치기 시작한다.

천무경의 파천신공, 금태하의 흑암구백마공, 당혁수의 만천화우신공의 절초들이 연쇄적으로 쏟아졌다. 안효철도 무쌍류의 철권을 내지르며 사이사이 공방울 주고받으니 단지운이 처한 형세는 대단히 위태로워 보였다. 백두기도 적멸신공의 절초를 펼치고 남궁평도 제왕검형의 검강을 쏟아내니 그 공세 속에서 감히 누가 살아나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크큭!”

하지만, 단지운은 웃음을 흘렸다.

기뻤다.

살면서 이렇게 수세에 밀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천마신공으로 발현되는 그의 강력한 무위는 그동안 그 어떤 무공도 범접할 수 없을 듯 여겨졌으나 절대고수들이 차륜전을 펼치며 일방적 공세를 펼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으리라고 그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패하는 것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이내 투지의 불꽃을 가슴 속에 더욱 활활 피워내었다.

콰콰콰콰!

지축이 뒤집고 뽑아낼 정도로 거대한 마기의 폭풍이 단지운에게서 펼쳐졌다.

그를 향해 짓쳐 드는 모든 기운을 밀어내고 무너뜨리고 꺾어내고야 마니 이것이 진정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임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단지운이 기세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하늘에 커다란 광휘가 눈부시게 흘렀다.

그것은 진도건이 나타났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으니 광휘가 이내 걷히는 순간, 하늘에서부터 십여 명이 떨어져 내렸다.

그 상황이 일시 싸움을 멈추게 했다.

위협적인 마기를 뿜어내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로 일월신마와 삼대수라, 성혈신마들이었다.

구마진이 죽음으로써 풀로만은 브리트라에 의해 신병이 구속당했다. 영역의 관문에서 신선들과 다투던 아수라들이 마침내 싸움을 멈추고 수라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때 진도건을 돌려보냈던 태상노군이 나타나 다섯 명의 마교도들이 전장에 이를 수 있도록 도운 것이었다.

그들의 등장을 다른 고수들 모두 경계하였지만, 단지운도 잠깐 반기던 표정을 이내 얼굴에서 지워야 했다. 그들 역시 다른 무림의 절대고수들처럼 단지운과 거리를 둔 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냉소평이었다.

“단 교주,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혈혈단신으로 싸우는 꼴이라니? 아니, 그런데도 죽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해야 하나? 후후후후!”

“냉소평, 역시 배신인가?”

“역시라니? 배신은 맞지만, 본좌를 그런 인간으로만 보고 있었다면 대단히 섭섭하지. 빌게포첸, 안 그런가?”

“아미타불……!”

단지운의 시선이 빌게포첸에게도 이르렀다.

“성혈신마. 지금 네 처신이 아유타의 지시에 의한 것이더냐?

“아미타불. 빈승의 지금 처신은 빈승의 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헛소리.”

단지운이 빌게포첸의 말을 받아들이길 단호히 거부했다. 천마령에 의한 임무가 아닌 빌게포첸의 모든 행동은 아유타의 뜻과 철저히 맞물려서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빌게포첸의 그런 수동적인 행동양식을 생각한다면 역시 냉소평을 추궁하는 것이 맞았다.

“천마신교의 창교를 도운 두 개의 교단. 제이교단(第二敎團) 일월교와 제삼교단(第三敎團) 성혈교의 배신이라. 하하하! 냉소평, 대체 무슨 속셈이냐?”

“배신이라. 그래, 지금 단 교주 자네로선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신교의 원로나 다름없는 본좌가 보기에 천마신교는 처음의 기조와 비교하면 이미 변질되었어. 그건 자네도 잘 알 텐데?”

“그게 무슨……!”

반문하려던 단지운이 입을 다물었다. 좁혀진 미간으로 조준된 의심은 이미 냉소평과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말속에 답이 있었다.

냉소평도 눈치가 매우 빨라 단지운이 그의 말을 이해했단 걸 알았다.

“물론 자네는 무관할 수도 있겠지만……, 자네가 여기서 꺾이는 게 우리로선 나쁘지 않은 일이라서 말이야. 걱정하지 말게. 그래도 배신감 덜 느끼면서 죽을 수 있도록 이 전투에는 끼어들지 않을 테니. 혹여 도망가는 걸 붙잡지도 못할 정도로 여기 이 자들이 허술해 보이지도 않고 말이야. 어디 보자…….”

냉소평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느껴지는 기백이 만만치 않았다.

대단한 강적들이라는 걸 이미 면식이 있는 한 사람을 통해 확신하게 된다.

“오랜만이군, 천무방주 천무경.”

냉소평이 아는 체하자 천무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놈은 누군데?”

“천마신교의 일월신마 냉소평. 화산에서 손속을 겨룬 적이 있지.”

금태하가 옆에서 묻자 천무경이 순순히 대답했다.

화산에서의 악연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졌기에 금태하도 그 이름을 듣고 바로 이해했다.

“크하하하! 천마신교가 서로 반목하고 있었다니. 이런 놈들한테 무림은 그렇게나 많은 출혈을 감내해야 했단 말인가? 이거 심히 짜증이 치미는군.”

금태하의 얼굴에도 그 말처럼 짜증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백제성에서 패배하여 구룡문을 잃었고 지금 자신은 마도인과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되었다. 겪었던 고난을 떠올린다면 당장 눈앞의 단지운이 정말 강력한 적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볼품없는 최후를 앞두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냉소평은 금태하의 그 말이 듣기 불편했지만, 지금 상황에선 불필요한 대꾸라고 여기고 아예 몸을 돌렸다.

“빌게포첸, 우린 물러나 있자고.”

“아미타불.”

“어차피 똑같은 마교놈들. 한꺼번에 정리해야 수고가 적지.”

금태하의 비아냥에 냉소평의 발걸음이 멈추고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금태하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지 그대로 단지운을 중심에 두고 알아서 움직이며 포위하고 있었다.

“쳇.”

그러자 금태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후우…….”

단지운은 깊이 호흡을 내뱉으면서 앞에 보이는 자들을 차례로 보았다.

천무경과 금태하, 진도건이 가장 정면에 있었고 좌우로 안효철과 남궁평이 보였다. 뒤엔 당혁수와 백두기, 강도혁, 천서은 등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면초가, 진퇴양난.

하지만, 약체라 할 만한 자들이 있으니 퇴로로 삼으면 탈출할 수도 있으리라.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군. 크크크!’

단지운이 천마신공을 운기하며 칠흑의 마기를 바깥으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위압적인 패기 속에서 그를 둘러싼 다른 이들도 일제히 기백을 뿜어내고 기운을 흘려보내면서 단지운을 겨냥했다.

“좋다! 자, 최후의 싸움을 시작하지. 나,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 단지운이다. 덤벼보아라. 마천의 지옥이 어떤 곳인지 너희에게 알려줄 터이니!”

천마신공 마천경.

공간을 장악하는 마경이 다시 한번 단지운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금태하와 냉소평, 빌게포첸은 가진 기력의 상승을 느꼈다. 하지만, 그 향취의 달콤함에 취하기도 전에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지독하리만치 혼탁한 기운이 사방 천지간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천경으로 장악한 공간 전체를 두고 파황멸뢰옥을 펼침으로써 통째로 날릴 생각부터 한 것이었다.

“이, 이건……!”

모두의 눈빛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칠 때, 그 중심의 단지운만이 살의를 품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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