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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94화 (394/432)

394화 - 제74장. 하늘 아래 두 혈마는 존재할 수 없지 (4)

귀문.

천상도 도리천으로부터 길이 열리며 진도건이 나타났던 방식이 천문(天門)이라면 수라도, 아귀도 등과 같은 하계에서부터 인간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어떠한 기준을 가리켜 귀문이라 부른다.

문의 형상을 띄지 않더라도 공간을 잇는 연결점, 매개체라는 의미로 보기에 귀문이라 칭하는 것이다.

음양을 상징하는 두 자루의 고검은 수라도의 물건.

시대에 걸맞은 금속의 옷을 그때그때 갈아입었을 뿐, 그 안은 수라도라는 세상을 구성하는 귀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장태환은 보통의 인간이었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오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인물이었다. 쌍고검에서 흐르는 귀기를 자신의 검기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에 성정이 조금 날카롭고 난폭해진 것에 그쳤던 것을 감안한다면 귀물의 훌륭한 수호자였던 셈이었다.

그랬던 음양쌍고검이 마침내 진도건의 손에 부러지면서 그 안에 담겼던 귀문이 혈마의 영혼에 종속되었다.

아수라의 투쟁심은 항상 혼돈과 맞닿아 있었으므로 혈마의 영혼과 매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무엇보다 마하발리의 아수라왕 그리고 치린자비로서 가진 자신의 신성을 나눔으로써 혈마는 진도건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현실에 그치지 않고 아직 닿지 않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선견(先見)의 통찰력이 스며들었다.

혈마가 달라진 기분에 놀라워하면서도 동시에 경계심을 품으며 아직 자신의 영혼 안에 흐르며 아직 뒤섞이지 않아 남아있는 귀문을 통해 물었다.

“……지금 이것은 너의 의지냐? 아니면 나시드나 알리 라 다바스의 계획된 짓거리냐?”

“후후후후!”

그 웃음소리는 마하발리가 남긴 마지막 그의 목소리였다.

“이 자식이 대답도 없이…….”

진도건은 혈마에게 변화가 있었음을 느꼈고 그것에 관해 마하발리에게 물은 것임을 인지했다. 그리고 혈마의 투덜거림으로 마하발리의 의도를 조금은 유추할 수 있었다.

“끝났나?”

“……그래, 일단 저놈부터 족치고 보자.”

투툭.

“좋아.”

스릉!

진도건은 부러진 쌍고검을 내려놓고 다시 군자검을 뽑았다.

묵빛 검신에 붉은 기운이 타고 흘렀다.

“뭘 구시렁대느냐?”

구마진이 소리치면서 그를 향해 짓쳐 들었다. 그리고 쌍수를 떨치며 일으킨 혈마강기가 진도건을 덮쳤다.

백귀혈마공 혈마류인.

십여 가닥의 붉은 칼날이 저마다 다른 궤적과 방향을 노리고 파고들 때, 진도건이 붉은 눈을 빛내며 그 종심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혈마강기가 그를 덮치려는 순간, 중심으로부터 뻗어나가는 붉은 섬광들이 그물처럼 펼쳐졌다.

퓨퓨퓻!

“읍!”

구마진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입을 꾹 다물었다.

혈마류인의 도강들이 진도건이 휘두른 붉은 검기에 찢기는 것이 눈에 비쳤기 때문이었다.

‘감각이 다르다……!’

한편 진도건은 검을 휘두르면서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의 안에 그가 쌓아 올린 하단전의 내공과 혈마의 마기를 응집시킨 중단전의 혈마단은 기실 그가 운용하는 것이긴 해도 특정 조건에선 혈마가 마기의 운기를 개입할 정도로 기단(氣團) 각각의 주체는 구별된 상태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혈마가 그의 생각과 의지에 동화되어 즉각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수라의 빙의와는 달리 영혼이 같은 지점을 향해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카카카칵!

재차 쇄도하는 혈마강기를 직시하면서 진도건이 유려한 검로를 그리자 마치 바람이 흘러가듯 그를 지나쳐 떠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진도건이 박차를 가하면서 검을 찔러 넣었다.

‘어딜!’

구마진이 손을 뻗어 검신을 쳐내려는 순간, 그의 눈에 검이 뱀처럼 휘어지는 듯하더니 오히려 팔과 옆구리를 연달아 노렸다.

피핏!

구마진이 반사적으로 반응했으나 검기가 호신강기를 가르고 살가죽을 베고 지나갔다.

‘빨라! 그리고 예리하다!’

강기를 손쉽게 가르는 검기라니.

직접 공방을 겨뤄보려 했던 구마진은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진도건의 검기는 마치 독사의 어금니처럼 위협적이고 맹렬하게 그를 향해 날아들었고 구마진은 번번이 수세에 몰리면서 거리를 두고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아수라가 떠난 것이 원인인가? ……아니, 그것은 이유의 절반에 불과해. 저놈이야. 저놈이 강해졌어. 어째서?’

진도건에게서 감지되었던 모종의 변화.

그 후로 그의 검기가 한 단계 상승했음이 틀림없었다.

자신처럼 마음껏 기운을 방출하지 않고 동작 하나하나에 검기를 집중해서 싣는 것인데 단순히 그런 방식만으로 이렇게 위협적으로 변모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쾌검의 속도 문제가 아니라 검기 자체의 날카로움에 주목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마치 진도건 스스로 붉은 혈광을 발하고 있는 듯한 모습.

지금 저 상태가 지금 그가 처한 위기를 유발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구마진은 정확하게 보았다.

진도건과 혈마.

두 영혼의 공명.

그것은 적을 향한 지적 판단과 아수라의 투쟁심을 공유하면서 혈마의 마기가 비물질적 이기(利器)로 동작하는 게 아닌 하단전의 내기와 더불어 온전하고 순수한 기력(氣力)으로 모든 행동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오히려 진도건이 힘을 조절하고 있다고 할 만큼 어디까지 검기가 뻗어나가고 날카로워질 수 있는지, 어떤 움직임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뒷받침되고 있는지 시험하는 중이었다.

원류검결과 파천혈마공.

진도건의 무공을 정의하는 이 두 개의 큰 줄기가 그동안 불가불(不可不)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두 길로 평행선을 달려왔다면 지금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로 같은 길,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셈이었다.

진도건의 적안이 빛나는 순간, 구마진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거대하고 두터운 붉은 마기의 소용돌이가 구마진의 전방으로 장벽처럼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진도건의 흑검이 반월의 궤적을 그리며 솟구치는 순간, 피의 검기가 하늘에 닿을 듯 솟구쳐 올랐다.

촤악!

‘막을 수 없어……!’

“커헉!”

구마진의 표정이 머릿속 복잡한 생각으로 당황한 감정에 물들고 자동으로 벌려진 입으로 각혈을 토해냈다.

일전에 베였던 같은 자리 그대로.

허벅지부터 어깨까지.

천서은의 격체전공 지원을 받았을 때보다 위력은 조금 떨어져 검상의 깊이가 얕아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그의 방어가 무색해질 상황은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씨팔, 이건 너무하잖아!’

“으아아아!”

구마진이 고함을 지르면서 마구잡이로 혈마기를 방출했다.

혈마류인과 팔귀문수라도 양 초식이 합쳐진 것처럼 무수히 많은 줄기의 혈마강기가 회오리치듯 사방을 휩쓸었다.

진도건이 그 공세 속에서 춤을 추듯 신형을 움직이고 휘돌며 피하는 사이, 천서은이 청명의 시신이 상할까 들고 피했고 다른 고수들도 막거나 회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의 참격을 인상 깊게 보았던 강정학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람은 곁에 있던 강도혁뿐이었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물과 물이 섞이듯 기운의 덩어리가 합쳐져 버렸어. 그리고선 참격의 파장만이 지나간 게야. 파동이, 요동이 강벽(罡壁)의 뒤편에 도달해서는 마치 저 녀석의 참격처럼 솟아나 놈에게 닿은 것이야.”

“피와 피가 섞였다고 해야 더 어울리겠습니다.”

“네 말이 맞구나.”

“마기라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글쎄. 그보단 마치 서로를 강렬히 원하는 듯하구나. 하늘 아래 두 혈마는 없다고 저것들이 말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강도혁은 어떤 지점에 생각이 닿고 있음을 깨닫고 말을 흐렸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쾅!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연쇄폭발의 굉음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아니, 이미 몇몇은 그쪽으로 몸을 돌린 채 지켜보고 있었다.

천무경과 단지운의 대결, 거기에 금태하가 난입하면서 전투가 더욱 빠르게 격정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선을 빼앗으려는 듯 진도건과 구마진 사이에서도 격렬한 금속성이 터져나왔다.

카카카캉-!

어느새 두 자루 도검을 주워 진도건의 검격을 상대하는 구마진이었다.

쌍검이라면 진도건의 쾌검을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손에 익숙지 않아 어색함을 느끼면서 금방 검초가 난잡하게 펼쳐졌다. 진도건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사정없이 검면을 연속해서 때리자 구마진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검을 놓치고 말았다.

푸풋!

하지만, 구마진도 그냥 바보는 아니었다.

검을 놓치는 자세 그대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두 팔로 핏빛 마기를 날개처럼 뿌리면서 진도건의 좌우를 덮치는 것이었다.

콰쾅!

진도건이 뒤로 신형을 빼면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때 구마진도 강정학과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기운이 막대해도 바깥에 방출한 것들을 놈의 검기는 계속해서 비집고 들어온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 안에 가둔 채로 밀어붙여서 강도를 올리는 게 더 나으리라.’

백귀혈마공 혈귀도천.

옅어졌던 그의 붉은 피부가 더 짙게 물들고 혈무가 피부를 타고 흐르면서 섬뜩한 기분을 자아냈다. 열 손가락에 피의 손톱이 입혀지자 혈귀라는 이름 그 자체가 된 듯하다.

투-, 캉!

진도건과 구마진의 신형이 다시 좁혀지며 검과 수강이 충돌했다.

최소한의 부피로 내밀하게 응축된 강기가 오히려 거창하게 키운 강기보다 진도건의 검기에 더 잘 견디는 듯한 느낌에 구마진의 표정도 조금 밝아진다.

카카카카칵!

순식간에 십여 합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시 구마진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진도건의 검은 너무 빨랐다.

두 손이 그 속도를 모두 따라갈 수 있었으면 수강에 최대한 기운을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해야 하는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강기를 아무리 응축시킨다 한들 진도건의 검기가 끝끝내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몸에 상처를 새기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면 패배가 자명하다!’

그런 불길한 생각이 구마진의 머릿속에 스치는 순간,

꽈르릉!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천지를 뒤흔들 굉음이 불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저편에서 울려 퍼졌다.

그 말도 안 되는 굉음이 심장을 놀라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진도건은 구마진의 빈틈을 포착하여 전속으로 검을 찔렀다.

콰콰콰콰콰-!

푸욱!

컥!”

갈빗대를 부수고 심장을 관통하는 그 소음.

영혼이 빠져나갈 듯한 단말마의 비명과 뒤섞인 그 소음은 저편의 굉음 속에서도 누군가의 귀엔 섬뜩하게 들려왔는지 천서은과 안효철, 영은성, 최현걸 그리고 강정학의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겼다!”

영은성이 반사적으로 기쁘게 외쳤다.

그 외침에 공감했는지 천서은과 최현걸의 얼굴에도 미소가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었다.

“……크크크크!”

하지만, 곧바로 들려온 소름이 끼치는 웃음소리가 구마진의 악 다문 이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음을 깨닫자 안색들이 굳어지며 설마 하는 생각이 눈빛에 드러났다.

그들보다 당황했던 것은 다름 아닌 진도건이었다.

분명 심장을 꿰뚫었으나 바로 뽑지 못할 정도로 그의 왼쪽 어깨와 검을 쥔 오른 손목을 각각 양손으로 붙잡는 구마진의 행동도 즉각적이었다. 그 웃음소리를 흘리는 하얀 이가 이미 자기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피로 시뻘게졌음에도 그의 적안은 여전히 흉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륵! ……하늘 아래 두 혈마는 존재할 수 없다!”

구마진이 핏물을 삼키며 했던 말을 또다시 토해냈다.

그 순간 진도건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붙잡힌 그의 팔과 어깨에서부터 힘줄과 핏발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투두둑!

“끄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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