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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91화 (391/432)

391화 - 제74장. 하늘 아래 두 혈마는 존재할 수 없지 (1)

진도건이 하늘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은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지만, 그 상황에 오래 빠져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전장 위 어떤 사람도 그것을 오래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세 명의 절대고수들이 합류하면서 아수라에 빙의되어 위협적으로 변모한 흑각수들을 상대로 수세적인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단초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흑각수를 상대로 전투는 원래 두 개 조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백두기와 남궁평이 분투하고 있는 우측 전장.

당혁수와 영은성, 최현걸이 함께 싸우는 좌측 전장.

그리고 전투의 흐름은 아수라에게 빙의하여 전투력과 신체 내구성이 상승한 흑각수들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합류한 세 명의 절대고수들로 인하여 전장은 다시 삼분할 되었다.

강정학, 강도혁 부자가 전장의 좌측면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역시 초식을 정교하게 펼치기가 어려워…….’

강정학은 좌수검의 어색함으로 인해 꽤 고전하고 있었다.

이성적 판단은 여전히 날카롭고 내상을 입고 있음에도 신체 반응은 아직 죽지 않았으나 왼손에선 익지 않은 검으로는 의지만큼 날카로워지기엔 미숙한 느낌이 있었다.

슈슈슉!

원하는 지점을 찌르고자 했지만, 미세하게 어긋나는 검로가 무척 빠른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흑각수들이 피할 수 있는 간극을 제공했다.

‘쯧!’

강정학은 공격 수법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검기를 다루어 정교한 초식 위에 배합하는 것은 적절한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고도의 수법. 그러나 그 검로에 날카로움이 사라졌다면 조금은 단순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었다.

강정학의 좌수검에서 눈부신 빛무리가 일어나며 흑각수들을 휩쓸었다.

츄악!

왼손에 묵직한 감각이 전해짐과 동시에 피를 뿌리며 비틀거리는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크흠!”

강정학이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검기와 검강을 다룰 때 각각 운기하는 진기의 양과 기혈에 미치는 압력은 천양지차다. 내상이 완치되지 않은 마당이라 몸에 부담이 오는 걸 느낀 것이다.

“아버님, 무리하지 마십시오.”

강도혁이 강정학을 걱정하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부친의 주변을 맴돌며 검기를 흩뿌렸다. 그의 경우엔 내상보다 진기의 소진이 더 컸었기에 현시점에선 평상시 기준 대비 팔 할 정도는 회복된 상황이었다.

‘내가 더 힘을 내야……!’

백양소혼신공 이극의 백염극원.

새하얀 기색이 불꽃처럼 일렁이니 잔혹한 열기가 강도혁의 몸을 타고 흘렀다. 강기조차 태울 수 있는 압도적인 열기의 검기 앞에 아수라의 귀기마저 불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정학은 내심 안도했다.

‘다행히 무리하는 수준은 아닌가 보군.’

백염극원은 백양소혼신공으로 구현할 수 있는 초절정의 검기술.

강정학이 직접 완성하여 강도혁에게 전해준 만큼 발현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와 기혈에 얼마나 큰 압박을 가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 양자성이 떠올랐다.

다만 그것은 양자성에게 바랐던 그리움이나 안타까움보다 삼제자의 재능을 칭찬하는 아버지의 뒤를 묵묵히 따라오면서 자신의 경지를 쌓아 올린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내 아들이라 자만할까 봐 칭찬 한마디도, 곁을 가까이 내어준 적도 없었는데도 착실하게 성장해왔구나. 정말 훌륭한 검기다.’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균형을 갖춘 실력은 흡사 젊었을 적 자기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저 성취가 조금 늦었을 뿐, 백령검왕이라는 별호가 결코 허명일 수 없는 위엄이 거기에 있었다.

한편 당혁수와 영은성, 최현걸은 상황은 간신히 한숨 돌리고 있었다.

영은성과 최현걸은 뛰어난 고수들이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약체임엔 분명했다. 게다가 구마진과 싸우면서 적잖은 내외상을 입었으니 아수라에 빙의된 흑각수들을 상대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혁수는 그런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정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평범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 흑각수들을 상대로 자신을 지키고 두 사람의 안위까지 보좌하는 것은 그가 당혁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위태로운 상황이 강정학 부자가 흑각수 무리 좌편을 맡게 되고 안효철이 당혁수 등 세 사람을 돕기 위해 합류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돕겠소이다!”

안효철의 기세는 가히 황소와 같았다.

그는 영은성과 최현걸을 압박하던 흑각수들 사이로 뛰어들더니 두 손, 두 발을 맹렬히 휘둘렀다. 느닷없는 난입이 적들을 당황케 하면서 모든 공격이 각각의 급소들에 적중한 것이다.

콰콰콰쾅!

영은성과 최현걸은 처음엔 안효철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 전엔 탈혼갑으로 인해 뒷모습을 볼 때면 인체의 굴곡이 아닌 각진 구석들이 도드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과 웃음 띤 옆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등장을 반겼다.

“안 대협!”

안효철은 묵직하고 맹렬했으며 몸짓 하나하나에 폭발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전신을 두르고 있던 검은 갑주의 족쇄가 사라지고 너덜너덜하나 평범한 무복을 걸치고 있는 그에게서 전에 없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드디어 탈혼갑을 벗으셨군요!”

“아아, 그래! 아주 몸이 가볍구나!”

“감축드립니다!”

너덜너덜한 무복 사이로 흉측한 피부의 형태가 드러났지만, 두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흉측함이 가져오는 불편함보다 탈혼갑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된 안효철의 기쁨에 더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슈슉!

그때 흑각수 둘이 안효철을 덮치며 칼을 휘둘렀다. 서슬 퍼런 도기에 아수라의 귀기가 겹쳐 절대고수들도 위협을 느끼며 경계하던 공격들이었다.

따당!

영은성과 최현걸 그리고 당혁수도 깜짝 놀랐다.

안효철이 팔을 들어서 막은 순간, 적들의 기운이 부서지고 그들의 칼날도 두 동강 나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환도신마 선우도나 광혈신마 혁무술 그리고 단지운까지 그를 상대했던 적들 대부분은 그의 명성이 탈혼갑의 절대적 방호력에 기대어 얻어진 것으로 여기며 가볍게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알 리 없었다.

오히려 탈혼갑 때문에 안효철 스스로 자신의 무공을 일부 봉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무쌍류 철형불괴(鐵刑不壞).

세맥으로 가득 밀어붙이는 기운의 충진은 단련된 육체와 합쳐져 극한의 방호력을 구현한다. 기운의 침습을 사전 차단하는 호신강기의 효과를 버리는 대신 피부에 근접해서 단련된 육체로 충격을 흡수함과 동시에 집중된 강막(罡膜)으로 피해를 차단하고 퉁겨내는 무공이다.

더 강한 상대의 공격이라면 당연히 무너질 여지는 있으나 이론적으론 금강불괴(金剛不壞)의 구현이 가능한 무쌍류의 호체신공이었다.

안효철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품으로 파고들어 오른쪽 흑각수의 오른팔을 붙잡고 비틀었다.

우드득!

“크악!”

안효철은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비틀린 팔을 그대로 잡아당겨 왼쪽 흑각수에게 던졌다. 그리고 둘의 몸이 부딪치는 순간을 노려 그대로 밀어붙이면서 중심을 뒤로 무너뜨렸다.

그의 눈이 흑각수의 몸 아래로 뒤에서 쓰러지는 자의 다리가 드러나는 것을 포착하는 순간 그대로 정강이를 한 손으로 붙잡고는 몸을 던지면서 팔꿈치로 무릎을 내려찍었다.

콰득!

“으아아악-!”

아수라에 빙의된 흑각수들이 좀처럼 비명을 내지르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당혁수 등도 그 비명에 움찔거렸고 다른 흑각수들은 공격을 잠깐 멈출 정도로 멈칫하게 했다.

안효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흡을 가다듬으며 흑각수들을 노려보았다.

“후우……!”

단숨에 전장을 휘어잡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그의 존재에 당혁수는 부담이 확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탈혼갑을 벗음으로써 더 단단해졌어. ……대단하군!”

당혁수의 감탄을 들은 것일까?

안효철이 그를 향해 흘끔 시선을 던졌다.

“둘은 제가 도울 테니 당가주께서도 보여주십시오. 더 큰 역할을 맡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형(老兄)에게 힘 좀 쓰라고 재촉하는 꼴이로군!”

“하하하하!”

안효철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여유가 생긴 당혁수도 자신의 무공을 펼치면서 흑각수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오롯이 적들을 향한 공세로써 쓰이는 만천화우 위락경의 위력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파파파파팍!

하늘과 땅에서 솟아나는 침강의 물결은 육신 전체를 꿰뚫을 듯 흑각수들을 덮쳤다. 그리고 적들이 주춤거릴 때, 당혁수도 적들 한가운데를 파고들면서 신공을 전개했다.

삼양귀원신공 구중양환경.

콰콰콰콰!

흑각수들은 구마진이 아니었다. 거대한 열기가 태양처럼 부풀어 올라 적들을 집어삼키니 붉은 피부엔 각인들이 무너질 정도로 물집이 부풀어 올랐고 눈과 혀는 녹아내리니 고통에 몸부림쳐도 비명은 몸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다.

두 고수의 활약에 영은성과 최현걸도 기운을 차리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펼치기 시작하니 안효철과 함께 적들을 하나둘 제거해나갔다.

한편 백두기와 남궁평은 수세에 몰리길 거부하면서 꾸준히 적들을 하나둘씩 차곡차곡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중 백두기는 두 사람에게 차례로 관심이 쏠렸으니 바로 안효철과 진도건이었다.

적수공권으로 싸우는 공통점 때문도 그렇지만, 만약 천무방과 천무경의 그늘에 살지 않고 낭인이 되어 강호를 떠돌았다면 천하오절의 마지막 자리가 어쩌면 자신의 것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훨씬 뛰어난 무인이로군.’

그런 관점에서 안효철이 보여주는 무공의 수준은 백두기의 감탄을 충분히 자아내게 했다.

그보다 7년이나 젊은 안효철이 응당 그 지위를 누리는 게 여러모로 다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관심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진도건의 등장이었다.

하늘에서 눈부신 광채가 쏟아지는 순간 그가 모습을 드러낸 장면은 압권이었으나 그 장면에 도취되기도 전에 그의 머릿속엔 죽은 장태환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 쌍검을…… 진도건, 그 녀석에게 주게. 지금의 녀석이라면…… 아수라의 힘을 취할 수 있겠지…….”

“좋은 스승도 없이 그게 되겠소?”

“클……. 법식(法式)보다 중요한 건 본질(本質)이니……, 고검법 따위 의미 없는 것일세…….”

그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

그 내용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할 수 없었으나 몇몇 부분은 작금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건 분명 우연이라고 하기엔 심상치 않은 부분이다.

드드드드…….

‘응?’

그 순간 백두기는 등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등에 바짝 동여매 두었던 장태환의 일월 쌍 고검이 무언가와 공명하듯 검집 안에서 검신을 떨고 있던 것이다.

“진도건에게 가셔야 합니까?”

남궁평도 그 심상치 않은 떨림을 감지하고서 물었다.

백두기는 파고드는 공격을 쳐내고 일퇴로 반격까지 한 후, 진도건 쪽을 힐끔 보곤 입을 열었다.

“……이놈들을 확실하게 꺾어놓은 뒤에. 나도 혼자였으면 위험했을 텐데 자네를 혼자 남겨둘 수 있겠는가?”

“후후! 그럼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차앗!”

남궁평이 기합을 지르면서 제왕검형을 재차 펼쳤다.

콰콰콰콱!

남궁가의 검강은 그 위용이 남달랐으니 검강들의 낙하 속에서 끝내 흑각수 둘을 쓰러뜨렸다.

백두기도 신속히 운신하면서 주먹을 연속해서 휘두르니 묵직한 압력의 파고가 휘몰아쳤다.

꽈광!

그렇게 흑각수들을 상대로 한 전장이 마침내 역전의 구도가 짜이는 이때.

천무경과 단지운의 재대결에도 변수가 발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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