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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87화 (387/432)

387화 - 제73장. 파천무봉(破天武奉) (2)

단지운은 천무경과 싸움이 시작된 이후로 줄곧 여유가 있었다.

천하오절 가운데서도 천하제일로 손꼽히는 무인답게 천무경의 무력은 그가 생각했을 때도 구주신마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확실한 우위라고 여길 만큼 독보적인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단지운은 혈마종과 광마종으로 펼쳐진 두 전장의 움직임마저 감지하는 걸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즉 천무경이 가하는 위협이 단지운에겐 치명적인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싸움을 일찍 종결짓고 전쟁을 끝내려고 했었다.

천마신공 파황멸뢰옥.

마천경 안에서 펼쳐지는 강기 폭풍의 지옥은 산 하나 정도는 거뜬히 무너뜨리고 그 안의 생명체라곤 한 톨도 남기지 않을 만한 위력이었다. 절대고수라 자칭하는 자들도 깊은 내외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수준이 어설프다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 지독한 암흑 속에서 천무경은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천무경이 내뿜던 파천진기가 파황멸뢰옥의 압력에 짓눌려 그를 중심으로 불과 한 뼘 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수준으로 기세가 줄었다. 그렇지만 파황멸뢰옥이 가하는 충격은 그 한 뼘의 장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운이 자신의 시야 속 손바닥을 펼쳐 천무경의 신형을 그 안에 담았다.

펼쳐진 손은 지금의 파황멸뢰옥.

손안에 검은 안개가 나타나 둥그렇게 뭉쳐지자 강기의 폭풍도 천무경의 신형을 휘감듯 휘몰아쳤다.

천마신공 붕옥(崩獄).

단지운이 손안의 구슬을 터뜨릴 듯 꽉 움켜쥐었다.

콰드드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붕옥은 방출한 모든 강기공을 상단전으로 지배하여 압력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적의 존재 자체를 말살하는 수법이었다.

마천경 없이 천지멸뢰옥의 연결 초식으로만 사용해보았을 때도 그 위력이 배가되는 걸 보았는데 하물며 마천경 안에서 펼쳐진 파황멸뢰옥이라면 그 위력이 어떨지는 당해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일 텐데.

‘……그런가? 네게도 천마성과 같이 근본을 이뤄주는 무언가가 널 지켜주고 있는 것인가!’

터뜨릴 듯 움켜쥐려 하였으나 그의 손은 고작 손가락만 조금 오므릴 정도에서 멈춘 채 저항을 느끼며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항을 증명하듯 천무경은 그 칠흑의 암흑폭풍 속에서도 자신의 뇌광을 꺼뜨리지 않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단지운의 머릿속에 지난 기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단지운은 천마신궁으로 돌아가 여러 사안을 정리한 이후로 어느 정도 심적 안정을 찾고 시간적 여유도 있을 때 청성산 전투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불쾌하고 또 자존심 상하게도 자신에게 패배의 위기, 죽음의 위기가 도래한 순간들이 존재했음을 깨달았다.

찰나 의식이 끊어졌던 게 분명한 지점들.

그때의 기억을 파고들면 분명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위기였던 장면이 의식이 끊어졌다 돌아온 이후에선 상황이 반전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거기서 단지운은 직감했다.

천마조사 단용후로부터 시작된 천마성이 그를 지켜주고 있음을.

‘당신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는 거겠지!’

단지운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일으킨 암흑 속에서 뇌광이 번쩍이며 거대한 사람과 같은 형상이 눈앞의 착각처럼 망막에 새기고 사라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같았다. 그리고 그 착각의 눈부심의 사라지고 난 그 자리엔 뇌전을 폭발시키는 천무경만이 남아있었다.

콰르르르릉-!

손아귀 안 안개의 구가 폭발하면서 단지운의 손바닥도 터져 나가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고통에 신음할 새도 없이 쇄도하는 천무경을 향하여 두 주먹을 뿌렸다.

콰콰콰쾅!

인지의 그물 속에 담겼던 혈마종과 광혈마종, 구마진과 혁무술, 적들의 움직임 등을 모두 지웠다.

팔방에 휘몰아치는 폭풍의 요란 속에서 단 한 명에게만 집중했다.

마치 뇌신처럼 벽력을 마구 뿌려대는 천무경이 비로소 진정한 위협이 되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능히 외기를 부딪치며 동시에 두 주먹을 겨뤘다.

일격에 집채만 한 바위를 가루로 만들어버릴 위력이었으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듯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초식의 오묘함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누르고 버티길 멈추고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합 속에서 두 사람은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감지했다.

천무경의 묵직한 주먹이 단지운의 왼쪽 가슴, 어깨를 노리고 쇄도했고 단지운은 본능적으로 왼팔을 굽힌 채 끌어올려 막는다. 동시에 단지운이 오른쪽 다리를 던져 그의 정강이가 천무경의 허리로 파고드는데 천무경도 주먹을 던짐과 동시에 왼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인 채 힘을 집중하였다.

꽈광!

“윽!”

공방의 충격이 교차하면서 바짝 붙어있었던 두 사람의 신형이 좌우로 밀려나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허공을 박차며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천마신공 마왕격.

파천신공 벽뢰장.

두 사람이 각자 내뻗은 권장이 주먹 하나의 간격을 두고 허공에서 충돌했다.

그 간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 칠흑의 마기와 푸른 벽력이 응축된 공력의 진원(震源).

파치치칙……!

꽈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후폭풍이 두 사람을 거세게 할퀴어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방은 멈추지 않았다.

대기가 들끓었다.

바람이 무질서하게 불었다.

뇌기에 증발하는 마기는 검은 구름이 되어 소용돌이쳤고, 마기에 퉁겨나간 뇌기는 그 소용돌이치는 흑운을 타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천마의 마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우다 못해 날뛰는 게 느껴졌다.

폭력의 흥분감이 이토록 온몸의 신경을 지배한 적이 있었던가?

가진 모든 걸 열어젖히고 쏟아내 본 적이 있었던가?

고통스러우나 기쁘다.

숨이 막힐 것 같으나 마른침이 달콤하다.

이런 순간에서 승리가 가져다줄 고양감은 또 얼마나 더 달콤할지 기대된다.

바쳐라, 승리를, ……이 나에게!

천무경이 두 눈을 부릅떴다.

공방을 반복해서 주고받던 중 갑자기 눈앞에서 단지운의 모습이 사라졌는데, 일순간 사위가 어둠에 잠겨버린 것이다.

쩌저저정!

바로 그때 뇌신의 보호막이 찢겼다.

그 사이로 엄습해온 어둠이 뇌광을 걷어내며 천무경의 전신을 감싸 안는 그 순간, 천무경이 엄습해오는 위협을 감지하고 반사적으로 파천진기를 집중한 두 손을 명치 앞에 합장하듯 모았다.

하지만, 손바닥은 마주치지 못했고 그 대신 그 사이로 단지운의 일장이 밀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콰콰콰콱-!

‘밀린다……!’

양손으로 공력을 집중하고 있음에도 단지운의 손바닥이 밀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단지운에겐 또 하나의 손이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천무경은 자신이 착각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 단지운의 희번덕거리는 눈빛을 마주 본 순간, 이미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어둠이 바로 패배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콰앙!

단지운의 오른손이 천무경이 양손으로 만든 파천진기의 압력을 뚫고 가슴 중앙을 눌렀다. 그것은 곧 세 손바닥 사이에 흐르던 모든 공력의 혼돈을 천무경이 가슴으로 받아내야 하는 걸 의미했다.

“푸웁!”

천무경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크게 날아갔다.

마침내 균형을 잃어버린 번개폭풍이 더 요란을 떨며 그의 신체를 할퀴어대다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리기 싫었던 단지운이 공력을 끌어모았다.

쿠구구구궁……!

“흐아아-!”

파아아……!

둘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던 번개 폭풍이 단지운이 공력을 방출하자 일거에 걷혀버렸다. 그 행위는 단숨에 전장의 이목을 모두 끌었고 그렇게 드러난 두 사람의 모습은 쌍방 모두에게 크고 작은 충격을 안겼다.

물론 작은 충격은 잠시 전장의 흐름을 놓쳤던 단지운의 몫이었고, 큰 충격은 창천맹과 천무방 고수들의 몫이었다.

그 순간 전장의 상황은 단지운과 천무경이 격돌을 시작했던 때와는 다른 매우 급변된 결과가 펼쳐져 있었다.

광혈마종 대 천무방의 대결은 천무방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단순히 승패의 결과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기형적 신체 변형을 가진 자들의 모습이었다. 심심치 않게 보는 그 모습들과 전장에 남겨진 기운의 상흔으로부터 단지운은 심상치 않은 파장이 그들 가운데 일어났었음을 감지하게 했다.

혈마종 쪽 상황도 그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깨달았다.

대통현의 혈마종 무인들이 배반했음을 말해주듯 창천단과 함께 전장에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에 붉은 머리카락이 아니었다면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을 기괴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는 구마진의 모습도 보통 심상치 않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기의 크기도 여태껏 다른 구주신마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수준이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변화는 구마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크아아아!”

자기들끼리 뭉쳐있었던 흑각수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와 잠깐 시선을 끌었다.

곧 그들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피부에 이상한 각인이 더해지며 구마진과 비슷한 꼴을 하기 시작했다. 추가적인 팔이나 귀면들이 그들 몸에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들이 내뿜는 투기나 마기의 수준이 절정고수 이상의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단지운의 상황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던 구마진도 부하들에게 나타난 갑작스러운 변화에 눈길을 주었다가 그들의 변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자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서렸다.

“나의 아수라들!”

“나, 풀로만의 추종자들!”

“그래, 알아들었어. 큭!”

두 귀면이 소리치자 구마진이 웃음을 쪼갰다.

구마진이 힐끔 앞에 선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았다.

당혁수와 천서은도 단지운의 등장을 멍하니 쳐다보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는데 구마진과 사투를 벌였던 흔적과 상처들을 이미 한가득 끌어안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중 천서은은 온몸이 아리는 고통조차 잊을 만큼 놀라움에 멍하니 지면에 누워있는 천무경의 모습을 떨리는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아버지……!”

천무경의 패배를 믿지 못하는 것은 천서은 뿐만이 아니었다.

일말의 불안감을 내비쳤던 백두기도 그렇고 남궁평과 당혁수도 불행한 현실을 인지하면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개입할 새도 없이……!’

백두기의 표정이 가득 일그러져 있었다.

반대쪽 전장까지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났다.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천하오절에 버금가는 정파의 고수가 천서은과 협력하여 혁무술과 다른 방향의 괴물로 변해버린 구마진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단지운을 상대할 사람이 그와 남궁평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단지운도 지친 기색이 조금 엿보였으나 그것은 백두기나 남궁평도 마찬가지였으니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다 완전히 열세에 접어들었음이 분명하다.

백두기의 미간이 고민에 좁혀지는 그때.

“단지운-!”

천서은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번쩍 깨웠고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단지운에게 쇄도하는 천서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단지운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두 장심에 천마신공을 운기하여 공력을 모았다. 하지만, 그것을 방출하기도 전에 피처럼 붉은 마기가 그의 시야에 나타나며 천서은을 덮쳤다.

콰콰쾅……!

“크윽……!”

천서은이 깊은 신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가까스로 호흡을 돌리는 사이, 구마진은 어느새 자신을 쫓아온 당혁수와 자신에게 방향을 튼 백두기, 남궁평을 연달아 상대하고 있었다.

삼두육비.

흡성대법으로 만든 심연과 같은 내공의 깊이와 혈청옥의 마기 회수 능력이 더해진 아수라의 면모는 세 사람을 사각지대도 없이 동시에 상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콰콰쾅!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세 사람의 신형이 구마진에게서부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모두 낭패스러운 기색을 드러냈고 구마진은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린다.

“크하하하하!”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단지운이 입을 열었다.

“지금 네 모습은 마치 아수라와 같구나.”

그런 단지운을 향해 구마진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세 쌍의 눈이 그를 똑바로 쏘아보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 개의 입이 연달아 열렸다.

“같은 게 아니라.”

“아수라 맞아.”

“천마시여, 이런 절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크크크!”

구마진이 흘리는 기분 나쁜 웃음에 단지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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