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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83화 (383/432)

383화 - 제72장. 수미산 도리천(須彌山 忉利天) (3)

천서은은 내면에 나타난 뇌광구(雷光球)를 인지하고 있었다.

중단전에 머물고 있으나 거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파천신공의 벽력의 성질이 일종의 반응성이라면 그것은 스스로 발현된 힘의 원천(原泉)이었다. 뇌력에 의한 영향 아래 지속해서 노출된 결과로 발생한 정, 기, 신 세 개의 방향성을 가진 관성적 흐름이 교차결합한 결과로 만들어진 정수인 것이다.

이는 천무경이 의도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조차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였다.

파천신공 파천뇌력신(破天雷靂伸).

이전엔 기운에 뇌기가 실렸다면 이젠 오롯이 뇌기 자체로서 천서은의 신체를 타고 흘러 차가운 푸른 빛을 바깥으로 흘려보냈다.

손바닥을 펼치자 땅바닥의 검이 뇌기가 만들어낸 자기(紫氣)에 끌려가듯이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검을 쥐자마자 그녀의 신형이 구마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쿠르르…… 콰쾅, 쾅, 쾅!

움직임 하나하나에 대기가 부르르 떨면서 천둥이 울음을 터뜨렸다.

적과 가까이 마주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사방으로 뇌기가 뻗어나가며 불순한 마기를 태워버렸다. 공격의 극점에선 뇌정벽력(雷霆霹靂)이 터져 나가며 대기를 찢어발기니 막는 것도 엄청난 충격이요, 피하더라도 간격이 아슬아슬하다면 몸이 위축되고 심장을 놀라게 하며 영혼을 떨게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구마진을 완전히 압도하진 못했다.

이미 구마진의 영혼은 아수라에 의해 완전히 물들어있었기 때문에 공포와 같은 감정 자체를 깔끔하게 도려낸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천서은이 뿜어내는 뇌기가 분명히 구마진의 혈마강기를 터뜨리고 또 그렇게 몰아세우는 듯했지만, 그럴수록 구마진이 보여주는 힘도 무시무시한 기세를 보여주었다.

“인드라, 감히 장난을 치려 드느냐?”

“이 정도 장난으론 어림없다!”

“그래, 앙칼지게 굴수록 더 맛있는 법이지!”

세 개의 목소리가 겹치는 데다가 천둥소리에 묻히기도 해서 뭐라고 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다만 부정적인 의미로 떠든다는 건 확실했다.

“죽어 버려!”

격렬한 경합 사이의 틈을 천서은의 검이 파고들어 북문뢰정의 일초가 수직으로 내려꽂혔다.

꽈광!

강검세에 뇌정이 더하자 가뜩이나 무거운 검격에 막대한 위력이 담겼다. 수라의 팔들이 일제히 머리 위를 감싸면서 막았지만, 그 충격의 여파에 몸이 격하게 흔들리면서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하지만, 구마진대로 반격을 노리기 위해 두 팔을 떨치자 혈청옥이 그의 의지를 좇아 네 줄기의 혈마강기를 쏘아 보내어 천서은을 할퀴듯 휩쓸었다.

백귀혈마공 혈마류인의 공세였다.

콰콰콰콱!

사방에서 동시에 삼켜버릴 듯 덮쳤음에도 아슬아슬하게 뛰어올라 공격을 피한 천서은이 재차 반격을 하고 구마진은 이를 또 받아치며 다시 반격했다.

한편 당혁수는 천서은이 위기의 순간을 뚫고 완전히 달라진 기세로 구마진과 다투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기세가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이었다.

‘화경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가히 대등한……. 사파의 무공이 그들만의 길을 개척한 것인가? 대단한 재능이로다!’

구마진에게서 느껴지는 투기와 마기의 크기는 여전히 압도적이라 볼 수 있었지만, 천서은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거로 판단했던 그는 자신과 함께 싸우다 먼저 부상을 당해 쓰러진 두 사람을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은가?”

당혁수가 먼저 찾은 건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웠던 최현걸이었다.

“저흰 괜찮으니 누님을 도와주십시오!”

“자네들 상태가 가볍지 않네.”

“저 괴물을 쓰러뜨리는 게 먼저입니다.”

단호히 거절하는 최현걸의 모습에 당혁수는 고개를 돌려 영은성 쪽도 바라보았다.

최현걸이 단순히 내상이었다면 영은성은 왼팔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뼈가 부러진 것인지, 금이 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의원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임엔 틀림없었다.

하지만, 영은성도 최현걸과 같은 생각이었기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당혁수에게 보내는 신호로 충분했다.

“알겠네.”

당혁수가 최현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으로서 본성이 이곳으로 발길을 이끌었으나 이곳은 싸움이 끝나지 않은 전장.

두 사람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꽈르릉-!

벽력노성이 당혁수의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신형이 곧장 날아올라 구마진의 등 뒤를 덮쳤다.

“크하하하! 네놈이 오기를 기다렸느니라!”

천서은의 각성과 절대고수 당혁수의 이인합격이라는 재차 불리해진 구도 속에서도 구마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아수라임을 증명하려는 듯 투기와 마기를 더 크게 뿜어내며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 * * *

하늘에 빛의 원이 열리고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을 때, 진도건은 그 그림자로부터 마하발리와 대등한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마하발리의 입으로부터 ‘인드라’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존재인지도 깨달았다.

‘제석천…….’

진도건은 드디어 제석천 또는 인드라라 불리는 이 세상의 천신을 마주할 것이라, 곧 자신 앞에 강림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기대 반, 두려움 반 심정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완 달리 존재감으로 그쳤을 뿐 내려오지 않으면서 침묵과 기다림을 그에게 강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불쾌하게 여긴 마하발리가 입을 열면서 침묵을 먼저 깨뜨렸다.

“거만하기론 여전하군. 저 꼬라지를 볼 때면 풀로만의 마음이 절로 이해가 간다니까.”

마하발리는 말을 하면서 허리춤의 월도 자루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제석천의 존재를 마주한 이상, 그가 아무리 현명함으로 천계에 이름 높은 아수라왕이라 할 지라도 투쟁심이 끓어오르는 본성을 드러내려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하발리는 다시 월도에서 손을 내렸다.

육도를 비롯한 모든 천계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인간도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와 관련해서 주요 위치에 선 소수의 존재들은 자신들의 역할들을 각자가 이미 구분 지어 놓은 상태였다.

단지 상호 간에 완전히 합의된 상황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진도건 그리고 혈마여.”

진도건이 마하발리를 돌아보았다.

혈마도 같은 눈으로 마하발리를 보고 있었다.

“말씀하십시오.”

“알리 라 다바스의 혼돈을 이용해 아수라도의 관문을 연 것은 내가 아니라 방금 내 입으로 거명한 풀로만이란 아수라이니라.”

“당신의 명령 없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이란 말입니까?”

“육도란 본래 현세에 겹쳐 존재하는 법이기에 인간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육도의 어떤 존재든 간에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자기 세상에서의 위력에 비해 그 영향력이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나타날 뿐이지. 물론 이것도 상대적인 얘기이고. 게다가 알리 라 다바스는 자신의 혼돈을 이용하기 좋게 해놓은 면도 있어서 의도를 가진 존재들의 간섭을 유도한 측면도 있지.”

“그럼 저 아수라들은 어찌 된 일입니까?”

“싸울 길이 열렸으니 참전하려는 것은 본성에 따른 것. 너흰 모르겠지만, 이미 인간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수준이 이미 인간 한계를 초월한 수준이기에 꽤 달콤한 냄새로 아수라들을 유혹하는 중이니라.”

“군세를 물려주시겠습니까?”

“내가 강제로 돌릴 수는 있지만, 이 관문의 영역 자체를 완전히 닫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풀로만의 주술에 묶여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할 수는 있으시지요.”

“그렇게 된다면 나는 모든 아수라를 상대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내 권위로 어찌해 볼 수 있었겠지만, 풀로만은 주술로써 내가 건드릴 수 없는 규칙을 이 공간에 걸었다. 천무경과 천서은. 네가 더 잘 아는 그들 부녀를 풀로만은 제석천이 비호하는 인간들로 보고 있기에 그 둘을 파멸시키려고 하고 있지. 물론 직접 할 수는 없으니 자신의 힘을 내려보낸 인간을 이용해서 말이야.”

마하발리의 이야기에 진도건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설마 단지운이 풀로만의 대리자란 말입니까?”

진도건의 물음에 마하발리의 벽안에 예사롭지 않은 빛이 서렸다가 사라졌다.

“흐음……, 구마진이란 놈이로구나. 이미 화신의 수준에 이르러서 싸우고 있군. 복수심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어…….”

“아수라가 복수심이라니요?”

“그게 아니라 제석천을 향한 복수심이겠지.”

진도건이 당황하여 묻자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있던 혈마가 대신 대답했다.

“정확하다. 제석천의 부인 샤치는 풀로만의 딸, 아수라다. 천신이 아수라족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의미는 분명 상서로운 의미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나 제석천은 가족이 온전하게 이별과 예식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강제로 데려가 겁간해버렸다. 그것이 제석천을 비롯한 도리천 천인들과 우리 아수라들이 불구대천의 원수로까지 되어 버린 계기니라.”

진도건은 진심으로 놀라 낯빛이 굳어졌다.

그런 풀로만의 복수라면 단순히 상해를 가하는 데 그칠 리 없다는 생각이 앞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말까지 늘어놓는군, 발리.”

그때 하늘에서부터 웅대한 음성이 깊은 울림과 함께 들려왔다.

제석천의 목소리였다.

마하발리는 여유롭게 하늘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던졌다.

“불만이면 직접 내려오시던가. 평화를 지키고 싶은 나조차도 당신이 상대라면 진심으로 싸울 생각이거든. 육도의 경계가 산산조각이 나도 말이지.”

마하발리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두려운 사건을 암시하기에 진도건이 긴장한 눈빛으로 하늘의 원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그때 다른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아래로 불쑥 내려와 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위대한 발리여, 부디 수라의 투쟁심을 억누르고 자중해주시게나. 그대는 치린자비로서 우주의 섭리에 묶인 몸. 그 길이 곧 모두의 파멸로 이어질 것임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조금 구부정한 작은 키와 좁은 어깨에 푸른 천을 옷자락 끝단에 댄 백색 도포 자락을 몸에 둘렀고 가슴 옷섶 사이론 두루마리 족자의 끄트머리가 얼핏 드러나 있었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눈썹과 수염 그리고 정수리를 중심으로 넓게 매끈한 피부를 드러낸 민머리 아래로 귀 주변과 뒷덜미로 이어진 부위만 백발을 늘어뜨린 것으로 보면 나이가 매우 많은 것처럼 보였으나 앳된 얼굴이라 반로환동(反老還童)의 진정한 모습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여 어쩐지 친근한 느낌을 들게 했다.

마하발리는 노인을 바로 알아보았다.

“태청의 천존(天尊) 태상노군이여. 역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오셨는가?”

태상노군.

도교 삼청신 중 하나이며 모든 신선, 선인들 가운데서도 서열 첫 번째에 이름을 새긴 도가의 개척자 그리고 최고선인(最高仙人). 인간으로 태어나 선도를 열고 완전자가 되어 천신 이상의 존재가 된 그의 영향력은 육도 천상도에서도 두루 퍼져 천신들의 임금 제석천조차 예의를 갖춰 대한다는 우주의 중재자였다.

“풀로만이 끝내 금기를 깨었으니 일이 마무리되면 자네가 단단히 벌을 주게나. 아수라들의 자연적인 본성은 이해하네만, 그렇게 높아진 기준조차 무색할 만큼 그의 행태는 도를 많이 넘었네.”

“말씀을 따를 수는 있지만, 선행되어야 할 시험이 있지요. 또 비단 저희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하발리가 태상노군의 말에 대꾸하면서 제석천의 눈길이 느껴지는 하늘의 원을 힐끔 쏘아보았다.

“그렇지, 그렇지. 이 늙은이도 그래서 먼저 도리천으로 가 제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걸세. 다른 차원의 신이 넘어온 일 자체도 탐탁지 않은 일인데 거기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사고를 치는 천인들이란……. 쯧쯧!”

태상노군이 못마땅해하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돌리다가 마침내 눈길이 진도건에게 닿고는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짝 긴장해있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 보이는구나.”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을 보게 되었으니 당연히 긴장됩니다. 그래도 노군을 뵈니까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진도건이 진심으로 대답했다.

아수라왕 마하발리와 제석천 두 존재감 사이에서 진도건은 긴장감 때문에 정말로 바짝 얼어 있었다. 그것은 내면의 혈마도 마찬가지여서 쉽게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상노군이 등장하고서부터는 그의 존재감이 따스하고 포근하게 사위를 덮어서 마하발리와 제석천의 그것을 중화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리 그것 때문에 진도건이 편안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태상노군의 앳된 인상에서 주백자의 일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허허, 고 녀석…….’

진도건의 입가에 미소까지 어른거리자 태상노군은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곧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었다.

진도건이 마하발리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말씀하신 시험이 바로 풀로만이 빙의한 자를 처치하는 일입니까?”

“그건 이 늙은이가 알려주도록 하지. 나와 함께 도리천으로 올라가자꾸나.”

태상노군이 다가와 진도건의 손을 덥석 잡자 두 사람의 발아래로 태극이 떠올라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진도건이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는 가운데 마하발리가 씩 웃으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래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태상노군도 진도건의 급한 마음을 달래려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걱정말거라. 이곳에서의 시간은 더 길게 흐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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