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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82화 (382/432)

382화 - 제72장. 수미산 도리천(須彌山 忉利天) (2)

슈캉!

영은성은 사선으로 뻗어나간 검광에 선혈이 튀는 걸 보았지만, 원하는 만큼 깊이 들어가진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단전에 잠재된 방대한 양의 진기는 직전에 막대한 진기를 분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호체진기는 굳건하여 검을 밀어낸 것이다.

하지만, 구마진으로서는 그 깊지 않은 검상에 적잖은 압박감을 느꼈다.

괴물 같은 치유력은 어깨가 갈라지는 상처도 즉각 회복시킬 정도였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방을 옥죄어 오는 당혁수, 천서은, 영은성, 최현걸의 사인합격을 위협적이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수라가 투쟁을 두려워해서 되느냐? 나약한 놈이로군. 크크크……!”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구마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닥쳐어-!”

카카카칵……!

구마진이 노성을 지르는 순간, 그를 중심으로 혈마기가 수십 가닥의 칼날을 이루며 폭사했다. 접근해있던 영은성도 즉각 받아치며 다급히 물러났고 접근하려던 세 사람도 멈칫할 정도의 기세였다.

“대체……!”

천서은이 조금 놀라 중얼거렸다.

지금도 이미 구마진의 모습은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선혈의 붉은 빛을 닮아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피의 장막 속의 보호에서 나온 직후엔 불그죽죽하게 변한 피부와 이상한 각인들은 이미 충분할 만큼 이상했다. 그러나 노성을 지른 직후에 나타나는 저 모습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구마진의 주변엔 알 수 없는 네 개의 팔이 허공 중에 나타나 마치 구마진의 어깨, 등에서 돋아난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고 얼굴의 양면에 흉악한 얼굴이 실제와 같은 환상처럼 나타나 왼쪽 얼굴은 연신 광소(狂笑)를 흘리고 오른쪽 얼굴은 분노로 그르르거리고 있었다.

마치 불교 벽화나 탱화, 조각상 등으로만 보았던 삼두육비의 아수라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아수라혈마라 지칭했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단 말이야?’

마치 아수라의 화신(化身)처럼 선 구마진의 모습을 보고서 속으로 그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서은은 그것이 분명히 현실에 드러난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구마진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투기와 더불어 그녀를 노려보며 직접 덮쳐오는 기세와 마공의 위력도 종전과는 다른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파파팟……!

카카캉……!

공격을 회피하며 옷깃이 펄럭이고 스치는 소음 사이로 천서은의 검강이 구마진이 두 손에 쥔 혈마강기와 더불어 위협해오는 네 개의 수라의 팔과도 경합했다. 하지만, 두 팔을 가진 상대만 경험해본 인간이 여섯 개의 팔을 가진 상대로 온전히 실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

꽈앙-!

“꺄악!”

혈마강기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천서은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여섯 개의 팔을 상대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혈청옥으로부터 분출되는 혈마강기 또한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각지대를 노리고 파고든 것이다.

“이놈!”

당혁수가 쇄도하여 공격하고 영은성과 최현걸이 합류하여 맞서 싸웠다.

구마진이 천서은을 덮쳤을 때, 세 사람이 즉각적으로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가떨어진 뒤에야 도달했을 만큼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

한 사람을 상대로 한 삼인합격은 불공평한 지점이 있겠으나 삼두육비의 아수라가 되어버린 남자에겐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몸이었던 것처럼 너무나 능숙한 움직임으로 세 사람의 공세를 막아내며 오히려 더 무섭게 반격하고 있었다.

“네놈들도, 저 도망친 쓰레기들도 모두 죽여주마! 크하하하!”

구마진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의 목소리 사이로 혼탁한 귀곡성이 섞여 나왔다.

“아니, 잔챙이들은 다 필요 없다. 저년부터 잡아.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 패버려.”

“아니,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지. 저년을 끌고 가 겁간해라. 지워지지 않을 치욕의 상처를 저년 아랫도리에 새겨주는 것이야.”

좌면(左面)과 우면(右面)이 번갈아 이야기하는데 구마진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가 탐욕스러운 낯빛으로 바뀌기도 했다.

구마진의 고개가 돌아가 천서은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붉은 눈동자와 천서은의 떨리는 눈빛이 마주쳤다.

천서은은 고통에 신음하면서 아직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들려온 귀기 어린 두 목소리는 그녀도, 함께 싸우는 다른 세 사람도 당황하게 했다.

좌면과 우면이 비슷한 말들을 반복해서 쏟아내는데 구마진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그 말들 속에 품은 감정을 모두 수용하듯 끔찍하게 변해가는 것이었다.

있어서는 안 될 참사를 예고하는 듯한 얼굴에 당혁수와 영은성, 최현걸이 연달아 구마진을 덮쳤다.

세 사람의 공세는 매우 직접적이고 필사적이었다.

거리를 두고 강기를 쏘아 보내는 견제성 공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다양한 초식들을 쏟아내면서 거기에 검강 등의 강기공을 더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삼두육비에 자유롭게 흐르는 혈마강기 앞에서는 여전히 소용없는 짓처럼 보였다.

다만 한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그렇게 직접 부딪침으로 인해서 구마진이 천서은에게 접근하려는 걸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 천서은도 구마진이 내뱉는 섬뜩한 목소리를 들었기에 서둘러 일어나려 하고 있었으나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뼈가 부러진 것 같진 않은데…… 힘이 들어가지 않아…….’

나가떨어진 뒤 대자로 누운 몸을 억지로 절반쯤 일으키긴 했지만, 두 다리로 지탱해 서기는커녕 두 손으로 가까이 떨어진 검을 들 힘도, 주먹을 쥘 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호흡마저 아직 턱턱 막히고 기혈도 뒤틀린 느낌이라 내공 운기조차 원활하지 않았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가 있어? 이건 청성산에서 단지운을 상대했을 때와 같은 압박감이잖아……. 아니, 마치 악신이 저자를 비호하는 것처럼, 정말 아수라의 화신이 된 것처럼…… 저 늘어난 팔들과 소름이 끼치는 얼굴들은 대체 뭐란 말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당혹게 한 것은 조금 전 마주친 구마진의 그 음욕(淫慾)에 물든 눈빛과 표정이었다.

적안을 볼 때마다 진도건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 속에서 이미 첫 대면에 희롱을 당했지만, 사실상 도발에 가까웠기에 기분만 조금 더러울 뿐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진심으로 행동에 옮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더욱 두려운 것이었다.

이런 전쟁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에 이미 기분이 더러웠으나 그것을 좌우에 떠오른 귀면들이 재촉하는 광경은 당황스러움 이상으로 끔찍한 기분을 야기하고 있었다.

콰쾅!

“커억!”

굉음과 동시에 들려오는 비명에 천서은이 어깨를 움찔 떨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기시감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고 피를 토하면서 나가떨어지는 최현걸의 모습이 그녀의 동공에 맺혔다.

‘움직여! 내공을 운기해!’

천서은이 입술조차 쉽게 떨어지지 않아 속으로 소리쳤다.

붕 떠버린 감각 속에서 하단전에 고인 진기는 그녀의 외침에 작게 출렁거리기만 할 뿐 쉬이 뻗어나가지 못했다.

퍼퍼퍽!

“풉!”

천서은이 불안감에 다시 싸우고 있는 쪽을 흘끔 돌아본 순간, 영은성도 피를 뿜으며 떨어져 나갔다.

오직 당혁수만이 천수기륭이라는 별호에 맞게 수많은 수영(手影)을 허공에 수놓으면서 구마진의 육비공세(六臂攻勢)에 맞서고 있었으나 금방 위태로운 형세에 이르고 있었다.

‘움직여!’

천서은이 내면을 향하여 다시 한번 소리쳤으나 하단전의 진기가 오히려 더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크윽……!”

“크윽……!”

침음성을 삼키는 그녀의 목소리로 거리를 두고 들려오는 당혁수의 신음이 겹치며 고막을 울렸다.

천서은은 점점 다급해지는 마음 때문인지 오히려 진기가 동하지 않자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으면 끔찍한 일을 피할 수도, 대신 싸워주고 있는 붕우(朋友)들의 희생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안 움직이는 거야, 왜!’

“으으으……!”

목구멍으론 신음과 각혈만을 흘려 내보낼 뿐, 움직이지 않는 진기는 그녀의 감정을 답답함이라는 벽으로 계속해서 몰아세웠다.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어떤 결과를 예고하듯이 들려오는 파열음은 그녀의 벌거벗은 영혼까지 몰아세워 가시덤불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천무경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불과 며칠 전 개인 수련을 끝마치던 날, 천무경이 들려주었던 말에 관한 기억이었다.

“끝내 뚫어내진 못했구나. 이젠 전쟁이 시시각각으로 치러질 테니 더 이어갈 의미는 없다. 그래도 아예 성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진기를 잘 다스려두거라.”

“죄송해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아니다.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지 네 안에 길이 새겨지지 않은 건 아니야.”

“네? 그게 무슨…….”

“결국 파천의 극의에 이르기 위해선 자신을 옥죄는 모든 제한을 부수고 폭발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육신을 매개 삼아 흐르는 진기의 특성상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한계부터 시작해서 의지와 의식의 한계, 그 모든 것을 일거에 뚫어낼 수 있어야 한다. 오직 그 길만이 네가 이 아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제 진기를 억눌러놓고 그걸 뚫어내라고 하신 거군요? 그 감각을 따라가라고…….”

“인지하고 있다고 한들 아비가 말한 것들이 쉽게 행해질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도 쉽지 않지. 하지만, 언젠가 그런 뚫어낼 수 없는 벽 같은 한계에 부딪히거든…… 주저하지 말고 터뜨려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폭발시켜. 의지, 생각, 단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영혼 자체를 저 하늘의 뇌광처럼 일거에 터뜨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네 안에……”

혈마강기의 파도에 끝내 충격을 받아 입가에 피를 머금은 채로 크게 밀려나는 당혁수의 모습 그리고 마침내 구마진이 돌아서서 음욕에 가득 찬 적안과 탐욕을 좇는 몸짓으로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모습이 천서은의 망막에 맺혔다.

바로 그 순간에 천서은은 눈앞이 까마득한 어둠으로, 온몸의 쭈뼛 선 감각은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으로, 가녀린 그녀의 영혼은 음욕과 탐욕이 가득 찬 손길에 붙잡힌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그녀의 피부 경계를 타고 천무경이 새겨놓았던 통제력이 다시금 서슬 퍼렇게 떠오르며 푸른 뇌전으로 현현되었다.

파직!

모든 건 찰나 간에 벌어진 일.

구마진이 꼼짝 못 하던 천서은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막 덮치려던 순간, 그녀의 피부를 타고 흐르는 푸른 전류를 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싶은 다음 순간에 이르렀을 때.

꽈르르릉-!

하늘에서부터 한 줄기 낙뢰가 내려와 천서은에게 내려꽂혔다.

쩌정!

“크윽!”

그녀와 지근거리에 있던 구마진은 그 순간 발생한 충격파로 인해 공중에 몸이 뜰 정도로 크게 밀려났다. 그리고 엉덩방아까지 찧어 벌러덩 넘어가려는 몸을 다시 제어하면서 다급히 일어나는 순간, 저릿한 감각 때문에 움직이는 중간중간 멈칫거려댔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 그의 시선이 막 천서은을 향해 낙뢰를 떨어뜨리고 흩어져가는 빛나는 구름 무리를 발견했다.

“인드라!”

“저 개새끼가 날 끝내 엿 먹는구나!”

구마진은 두 귀면이 내뱉은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수라의 화신이 되었기에 어떤 감정으로 토로한 말인지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감정은 분명 그에게 눈앞의 저 여자를 겁간하라고 외쳤는지 그리고 공감할 수밖에 없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파지직……, 파지지직……!

낙뢰를 맞아 살아남은 사람이 있던가?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백분지 일, 천분지 일의 가능성에 불과한 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천서은은 두 다리 똑바로, 허리까지 꼿꼿이 세운 채 하늘의 흩어지는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고개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끝내 시선이 구마진의 적안에 닿았다.

그 눈 마주침에 구마진이 실소를 흘렸다.

“크크큭! 그런가……. 네년이나 네 아비의 그 힘도 결국 마성에 기인한 것인가 보군. 그래, 네년 안에 깃든 것은 무엇이냐? 나와 같이 아수라의 신이 깃들었느냐? 그런데 네년은 뭐 달라진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구나.”

천서은은 왼손을 얼굴에 가져가면서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을 쓸어 뒤로 넘겼다. 그리고 오른손을 살짝 들고는 주먹을 꽉 쥐면서 비로소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을 먼저 자각했다.

천서은은 다시 구마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뭐 깃들고 자시고…… 네놈 같은 괴물이 되는 건 사양하겠어. 난 인간다운 내 모습이 좋거든.”

구마진의 표정이 다시 음욕으로 뒤틀렸다.

“나도 좋아. 괴물처럼 변해버린 년 아래를 내 양물로 뚫는 건 이 시각적인 재미가 너무 반감되잖아. 흐흐흐, 네년 정도의 반반함이 딱 좋으니까 나처럼 삼두육비 같은 건 되지 말라고. 크크크……!”

으득!

구마진의 말을 들은 천서은이 이를 갈았다. 그리고 파천신공을 운기했다.

쿠쿠쿠쿠……!

그녀를 중심으로 사위에 흐르는 전류의 파편들.

심상치 않은 기세에 구마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흐를 때, 천서은이 고운 얼굴에 노기를 역력히 드러내면서 소리쳤다.

“이 개자식아! 네 그 쓰레기 같은 면상과 더러운 물건을 직접 지져줄 테니까, 각오해!”

서슬 퍼런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는 천서은의 머릿속엔 기억의 되새김으로 떠올려진 천무경의 마지막 목소리가 흐르듯 지나갔다.

“그때 비로소 네 안에 ……뇌신(雷神)이 머물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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