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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9화 (379/432)

379화 - 제71장. 신마대전(神魔對戰) 하편(下篇) (4)

* * * *

육도윤회(六道輪廻).

선악도(善惡道) 가운데 선도에 해당하는 천상도(天上道), 인간도(人間道) 그리고 수라도.

분노와 다툼, 작은 분쟁부터 전쟁까지.

그것들이 업보로써 강력하게 작용한 자들이 사후 윤회의 섭리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는 곳이 바로 수라도다.

인간 생애에 호전적이거나 분쟁의 한가운데에 상시 살았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수라족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전쟁영웅이 죽어 수라도에서 환생하면 강력한 아수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그들은 대개 무척 잘생기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교만하고 시기심이 많고 다툼을 즐기는 생전의 습성이 그대로 이어받아 모든 행동양식에 녹아 들어있었다. 때때로 그런 것들이 부정적인 면으로 극대화되면 분노가 얼굴에서 부풀어 오른 것처럼 우락부락, 붉으락푸르락한 생김새를 가진 자도 있었다. 또 더 나은 전투를 위해 팔이 네 개, 많게는 여섯 개까지 붙어있는 자가 있었고 더욱 강한 분노와 투쟁심에 휩싸인 아수라일수록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자도 있었다.

아수라족은 신체적으로도 강인했지만, 일부 강력한 존재들이 있어 그들은 불과 번개를 다루는 법술을 부렸다.

신선들의 도력이 그들이 가진 법력, 전투력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분명 다바스의 관문 안에 흐르는 혼돈을 이용해 인간도로 가는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도 간 경계가 무너져 아수라도와 현세의 인간도가 겹친다면 정말로 재앙이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반면 본래 수라도를 막아야 하는 건 천상도의 천인들 몫이었다.

그들이 아닌 도교 선인들이 막고 있다는 건 분명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분명했다.

다바스라는 이 세상의 법칙과 무관한 존재, 그것도 신적인 존재가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전설로만 존재할 줄 알았던 신선, 선인, 선녀들과 함께 아수라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주백자처럼 도가일맥(道家一脈)을 지켜온 도사에겐 자긍심이 차오르는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현세에 유망한 아이가 고생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자네로군.”

“소도 주백자라고 합니다.”

주백자의 나이가 170여 세가 넘어 스스로도 연령을 잊어버릴 만큼 산 노노인(老老人)이었지만, 검선 여동빈이 알아봐주는 시선 앞에선 아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보검을 보패(法貝)로 다루는 여동빈뿐만 아니라 파초선으로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종리권, 쇠막대로 아수라들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절름발이 신선 이철괴(李鐵拐), 묘한 피리 소리로 사기를 중흥시키는 하선고(何仙姑)의 모습 정도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수라들만큼이나 붉은 피부, 긴 미염(美髥)을 휘날리면서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를 휘두르는 무장은 관성제군이요.

기다란 꽁지깃 두 가닥이 달린 금관을 머리에 쓴, 팔 네 개 달린 아수라족 무장이 그를 상대하고 있는데 방천화극(方天畫戟)로 맞서는 기세가 용맹하기 그지없으니 여포(呂布) 봉선(奉先)이 환생한 아수라일 것이다.

모두를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알아보는 자들은 전설로 전해지던 도사와 선인들, 무장들이었으니 그들 곁에서 싸우는 주백자 일행의 기세가 등등할 수밖에 없었다.

신선, 선인들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미 일신의 무공만으로도 조금 후하게 평가하자면 보패를 다루는 신선들만큼의 전투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율과 곽비, 하후무 세 사람이 꽤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백자, 조강선, 냉소평, 빌게포첸 네 사람의 무공은 아수라들을 밀어붙일 만큼 충분히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백자와 조강선이 다른 신선들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달리 냉소평과 빌게포첸은 엄연한 인간이었다.

인간이 죽어 아수라로 태어난다면 그 자체로 투쟁의 화신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전투능력에 법력까지 생겨 인간이 감히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오히려 압도당하는 것은 아수라족들의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이었다.

“인간들이 제법이다만, 건방짐이 도가 지나치구나!”

갑자기 전장 전체에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소름이 돋았다.

목소리만으로 마치 공포의 근원이 담겨있는 듯하니 신선들조차 움찔 떨 정도였다.

그 불온함의 징조가 마침내 현실로 나타났다.

아수라 군세 안에서 거대한 화염이 일어나더니 그 안에서 보통의 아수라, 인간들보다 머리 서넛은 더 큰 존재가 튀어나왔다.

피부는 흑옥과 같이 검었으면서 한낮에도 빛나는 금빛 눈을 가졌고 새하얗고 뾰족한 이빨들이 섬뜩하게 웃음 짓는 입술 사이로 드러났다. 산양 가죽으로 만든 전투복과 커다란 칼을 한 손에 들었는데 다른 팔엔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 듯 감겨서는 존재의 머리보다 높이 세모꼴의 큰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면서 쉭쉭거렸다.

신선들 사이에서 꽤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룡(魔龍) 브리트라까지 넘어왔는가!”

통탄에 찬 목소리의 주인은 종리권이었다.

육도의 종족들 가운데서도 아수라는 그래도 인간과 가까운 편이었다. 본성이 투쟁심에 가까이 머물 뿐인데, 투쟁이라는 것의 본질 자체도 선악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면에서 인간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환생이 아닌 최초의 생을 아수라로 시작한 브리트라는 태생이 악(惡) 그 자체였다. 게다가 전투력도 아수라왕 마하발리에 비견된다는 소문이 천계를 넘어 도가신선들의 귀에 들어갈 정도였다.

팔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선 존재.

육도에선 제석천이나 그 휘하 사천왕(四天王) 수준의 천신급은 되어야 물리칠 수 있었다.

케에에에!

브리트라가 손을 뻗자 왼팔에 휘감겨있던 흑사(黑蛇)가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동시에 브리트라 본인도 신선들과 인간들이 뭉친 전장으로 몸을 던지면서 칼을 휘두르자 말도 못 할 정도의 거센 풍압에 전열 전체가 흐트러졌다.

냉소평은 때마침 근처에 떨어진 브리트라의 흑사의 거대한 몸체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일월혼극마공 역반공멸뢰.

양손의 음양기가 합쳐지면서 거대한 혼돈의 기력을 일어나 흑사의 몸체를 때렸다.

콰앙!

전장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꼽힐만한 위력과 충격이라 할 수 있었다.

키아아아아-!

흑사도 고통스러웠는지 몸을 크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금빛 뱀눈과 눈이 마주치자 냉소평이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카아아……, 콰쾅!

흑사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면서 냉소평을 덮치려는 순간, 흑사의 머리 부근에서 뭔가가 폭발하면서 몸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폭발로 인해 생긴 뭉게구름 사이로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불꽃 세 줄기가 기다란 직선 꼬리를 물고 흑사의 머리통에 연속으로 꽂혔다.

퍼퍼펑!

회오리치는 화염 속에서 냉소평은 새로이 나타난 존재로부터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감을 느꼈다.

한편, 다른 곳에선 주백자와 조강선이 여동빈과 함께 브리트라를 붙들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육체로 인해 둔할 거라는 헛된 믿음 따위는 가볍게 부숴버리며 무섭게 들이쳐오는 브리트라의 칼 앞에서 주백자는 난생처음으로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히 막을 엄두를 못 내어 피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칼날 같은 풍압은 그의 육체를 충분히 반으로 갈라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주백자라는 반선지경의 고수가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다.

종리권이 파초선으로 주백자의 몸을 바람으로 두르고 하선고가 그 바깥을 다시 연꽃으로 신속하게 덮지 않았다면 단칼에 잘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한 막막함이 눈을 가린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거리더니 커다란 개를 타고 몸엔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장수가 나타나더니 창을 휘둘러 브리트라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나타났을 때는 평범한 인간 정도의 신체 크기를 가졌는데 브리트라의 앞에 섰을 때는 그보다 커진 모습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무위도 대단하였으니 주백자조차 단칼에 썰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칼날을 같은 기세로 막아내면서 공방을 팽팽하게 주고받으니 분명 범상치 않은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거대한 흑사가 덮친 전장에서도 어디서 나타났는지 바람과 불을 일으키는 한 쌍의 바퀴를 두 발에 각각 둔 채 함께 날아올라서는 불길을 품은 창과 고리 모양의 무기를 던지는 자가 드러내는 존재감도 그에 버금갔다.

여동빈의 신형이 브리트라의 전투 여파를 벗어나기 위해 미끄러지듯 이동하다가 주백자 근처에서 멈췄다.

“제때 나타나셔서 다행이군.”

“저 둘은 어떤 분들입니까?”

전투 중임에도 주백자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룡 브리트라는 최강의 아수라로 손꼽히는데 놈을 막으려면 선계에서도 최강의 장수를 내려보낼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 저 천구(天狗) 효천을 타고 삼첨도를 휘두르는 분이 이랑진군(二郞眞君)이시네. 육도의 천상도와 선계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자격을 가진 분이기도 하시니 이 전장에 적절한 분이야.”

이랑진군 양전.

서천행 이후로 마침내 성불하였으나 그보다 더 오래전 천계를 날뛰면서 최강자의 위용을 과시하던 제천대성(齊天大聖) 손오공(孫悟空)과 가장 대등하게 싸웠던 천계의 장수다. 그때의 과업과 인연으로 제석천, 석가여래 등과도 연이 닿으면서 양쪽의 영계를 드나들 수 있는 공식적인 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브리트라의 흑사를 공격하고 있는 건 신장(神將) 나타(哪吒)일세. 역시 무력으로는 천계에서 손꼽히는데 인연이 깊은 이랑진군의 요청으로 함께 온 것일 텐데…….”

신장 나타.

사천왕 비사문천(毘沙門天) 셋째 아들이나 태을진인(太乙眞人)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영주(靈珠)로 점지받아 태어난 아들로 보통의 영혼이 없는 존재였다. 제천대성과 싸울 때는 삼두육비가 되었는데 아수라들 일부가 그런 모습을 갖게 된 건 어찌 보면 전투의 화신과도 같은 나타의 모습을 따르고자 하다 보니 생겨난 변종이 아닐까 하는 천계의 속설이 있었다.

그런 존재가 브리트라의 영수라 할 수 있는 흑사를 다루지 못할 리 만무했으니 이 아수라장에서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호기라 할 수 있었다.

여동빈이 생각이 정리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사왕천에서 나타를 보냈다면 이곳 상황을 아주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로군. 엉덩이가 무거운 게 천인들인데……, 다행히 노군께서 헛걸음은 하지 않으시겠어.”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는 말투였다.

사왕천의 사천왕든 휘하의 보살, 장군들이든 본래 쉽게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건 선계의 삼청과 대제, 대선(大仙)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랑진군이나 나타는 그러한 권속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이곳에 이른 것이겠지만, 그들 역시 명령 없이는 함부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비록 선계 신선, 선인들이 선제적으로 넘어와서 아수라들을 막고 있긴 하지만, 육도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천상도. 즉, 천계에서도 그들과 같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라 할 수 있으니 분명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백자는 여동빈의 말끝에 약간의 긴장감이 남아있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여동빈의 말에서 그리고 아수라 군세 너머에서부터 느껴지는 브리트라 이상의 강력한 존재감에서 긴장감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수라왕 마하발리. 결국 저자를 돌려세우지 않으면 안 돼.”

불길의 연꽃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아수라왕 마하발리.

멀리서 바라본 그의 생김새는 삼두육비의 흉악함보단 인간과 닮아있었는데 브리트라처럼 큰 체격을 자랑하는 게 아닌 평범한 크기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느껴져 오는 존재감이라는 것은 브리트라 이상으로 이 영역의 관문 전체를 마치 손바닥 아래 두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을 강제하고 있었다.

“브리트라의 전투력은 마하발리와 비교해서 뒤떨어짐이 없지만, 마하발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네. 아수라도의 ‘치린자비’. 즉, 그들의 불멸자(不滅者)이기에 그를 그저 발리라는 이름만으로 부르지 않고 위대함이란 뜻을 담아 마하발리라 부르는 것이야.”

그것이 바로 주백자가 지금 느끼고 있는 마하발리가 가진 존재감, 그 근원인 것이다.

주백자는 아수라왕이라는 말을 듣자 남채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쳐 전장 외곽을 돌아 복숭아나무들 사이를 나가는 진도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백자의 걱정하는 마음을 읽은 듯 여동빈이 그를 달랬다.

“노군께서 도리천으로 향하면서 말씀하셨네. 인간들의 일은 인간들이, 신들의 일은 신들이 해결하는 옳다는 인식은 육도와 선계 모두가 인지하는 지점이라고. 아수라왕 마하발리는 천신과 동격. 그가 자네들의 제자를 어찌할 리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주백자와 여동빈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

자네들의 제자.

그들은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고, 헤아리고 있었으며, 자연적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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