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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8화 (378/432)

378화 - 제71장. 신마대전(神魔對戰) 하편(下篇) (3)

그것은 부양호에게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와 멍하니 서 있게 만들었다.

구마진이 쏘아 보낸 핏줄기가 눈앞의 혈점이 되어 쇄도하는 것조차 뒤늦게 깨달을 정도였다.

퍽!

“……윽!”

순간, 누군가가 그를 끌어안고 땅을 구르면서 돌부리에 몸이 부딪치는 충격으로 신음을 흘렸다. 고통에 정신이 깨어나는 사이로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고 몸을 날려 위험에서 구해준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너, 너는……?”

“현령 어르신!”

청년은 청해 대통현에서 출발하기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던 혁우였다. 다행히 그도 무사해보였다.

“대체 어디로 사라졌던 게야? 여긴 왜 나타났고?”

부양호가 혁우를 다그치듯 물었다.

“보고 왔습니다. 대마의께서 말씀하신 진짜 혈마 진도건을요!”

“뭐?”

혁우가 외치듯 대답하자 부양호도 유변이 남겼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저런 괴물이 어찌 우리가 숭상했던 혈마의 모습입니까? 진짜는 진도건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일단 여길 피해…….”

부양호가 다급히 일어나 혁우의 팔을 붙잡고 몸을 피하려는 그때, 구마진의 공격이 잠깐 멈췄음을 보았다.

하늘을 가르는 화살비가 구마진을 덮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건 대체?”

“진도건과 함께 했던 사막의 혈랑대입니다. 저를 위해 시간을 끌어주고 있어요. 가시죠!”

혁우와 혈랑대는 불타는 절벽에서 진도건과 갈라진 후에 남쪽으로 길을 잡았었다. 거기서부터 남쪽은 무위와 장액을 가리키는 방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단대협곡에 적룡단 병참이 있던 북정진에서 군을 해산하고 북상하던 서하인 몇몇을 만나면서 전선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방향을 틀어서 남서쪽으로 이동하던 중엔 옥문관과 돈황 주변으로 천마신교의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정보를 상인들로부터 입수하면서 마침내 천마신교와 창천맹, 천무방 간의 전쟁터에 도달한 것이었다.

전장 외곽에서 혈랑대가 쏘는 화살이 구마진의 몸에 닿을 리는 없었지만, 그 존재감이 모기 정도의 귀찮음은 있었다. 무시하기엔 간지럽고 거슬리는 그런 느낌도 물론이었다.

구마진은 혈청옥에 손을 집어넣어 핏물을 한 움큼 쥐어서는 그대로 혈랑대를 향해 던졌다.

“흩어져!”

류단아가 다급히 소리치면서 말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핏물 다발의 속도는 그들이 쏜 각궁 화살보다 빨라서 떨어지는 중심지에 있는 혈랑대원들 대부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퍼퍼퍼퍼퍽!

“으아아악!”

“끄아아……!”

여기저기서 끔찍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구마진이 던진 핏물이 몸을 관통하고서도 모자라 그렇게 생긴 구멍에서 정기가 빠져나가며 극심한 통증을 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고 말이고 가리지 않고 덮쳐졌으니 사망자도 생길 정도였다.

말들이 놀라 혈랑대 대형까지 어그러지자 류단아는 심히 당황했다.

전장 외곽에 있는 자신들을 직접 노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구마진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공격할 태세를 보이자 마음이 더욱 다급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무사히 빠져나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구마진은 땅바닥에 떨어진 무기들을 대거 허공섭물로 떠올려서는 거기에 모두 혈마강기를 입혔다.

거리가 지나치게 멀면 강기는 흩어져 제 위력조차 못 내기 마련이지만, 매개물이 있다면 얘기는 달랐기에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 바깥으로 신경들을 돌렸던 탓에 그가 제대로 상대해줘야 할 두 명의 적이 있다는 걸 무기에 혈마강기를 입히면서 깨달았다.

‘천가년과 화산파 애송이……!’

무기들을 쏘아보내려는 찰나에 구마진이 공중에서 몸을 휙 돌렸다. 그리고 고개가 돌아가는 그 순간 코끝을 자극하는 짙은 검향을 느꼈다. 또 곧바로 그를 노려보면서 함께 선 천서은과 영언승 그리고 최현걸까지 세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쉬익!

그들 사이에서 뭔가가 구마진을 향해 날아들면서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타구봉법 견두투격(犬頭投格).

개 머리 또는 들개들 우두머리를 봉을 던져 일격에 쓰러뜨려서 전체를 제압하는 단순한 의미의 초식이었지만 최현걸의 손에서 던져진 한 자루 봉은 마치 투창처럼 구마진을 노리고 날아갔다.

이십사수매화검법 매화만리향.

그 던져진 투로(投路)를 따라 이미 매화향의 길이 펼쳐져 있었으니 영은성이 그 길을 따라 검을 내지르는 순간, 수백만 개의 매화 꽃잎이 거대한 검강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최현걸이 던진 봉에게만 중앙의 길을 내어주며 검강의 첨단과 함께 구마진의 가슴에 도달했다.

두 사람의 초수 모두 구마진이 돌아본 찰나에 벌어진 것이었으니 앞서서 대응할 틈 따윈 없었다.

콰르르륵-!

순간적으로 구마진에게서부터 새로운 피의 기류가 몸을 타고 소용돌이치며 타고 올랐고 동시에 혈청옥에서부터도 핏물이 회오리치며 구마진을 덮어갔다.

물론 그것으로 완전히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구마진은 반사적으로 왼손을 뻗어서 과감히 검강의 첨단을 부수고 최현걸의 봉을 낚아채려 했다. 그러나 워낙 불리한 찰나에 벌어진 것이어서 모든 게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검강은 꽃잎으로 부서지며 가슴을 꿰뚫기엔 무뎌졌지만, 그의 왼팔과 상체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최현걸은 거의 모든 공력을 쏟아부어 던졌기 때문에 봉대를 붙잡은 순간, 힘에 밀리면서 붙잡은 그대로 봉끝이 목을 스치면서 하늘을 향하다 멈추었다. 졸지에 최현걸이 던진 봉을 쥐고 팔을 높이 든 꼴이 된 것이다.

바로 그때에 천서은이 영은성과 최현걸 사이에서 전력을 다해 공력을 방출했다.

파천신공 파천진뢰운.

“흐아아아압-!”

천서은이 펼쳐낸 거대한 푸른 번개의 파도가 검향과 매화의 검기를 타고 흘러가 구마진의 앞에서 그 광휘를 뿜어낸다.

번쩍!

쿠르르릉……!

뻗어나가는 번개는 그 무엇보다 빠르게 목표 대상에 도달할지니 순식간에 구마진의 전신을 관통했다.

“커헉……!”

그가 일으킨 기운과 더불어 혈청옥이 내린 피의 소용돌이는 파천진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일부 상쇄되긴 했으나 애초에 빈틈이 많은 방벽이었으니 그대로 신체 전체를 관통해버린 셈이었다.

천서은 등 세 사람도 위험에 빠졌다.

그들로서는 정말 전력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사실상 단전의 일시적 공백 상태가 되어서 무방비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구마진이 공격받는 순간, 오른손을 흔들어 혈마강기를 입혀놓은 모든 공중의 무기들을 세 사람에게 쏘아 보낸 것이었다.

천서은은 파천진뢰운을 방출하면서 구마진의 목숨이 끊어지고 무기들이 힘을 잃어 땅에 떨어지길 기대했었지만,

‘틀렸어……!’

공중에서 몸이 뒤로 젖혀진 채 맥없이 늘어지는 구마진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수십 자루의 도검들이 시뻘건 강기를 머금은 채 이미 가까이에 도달하고 있으니 목숨을 거두는 건 실패했다는 걸 직감했다.

‘도건……!’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점이었다.

파앙!

바로 그때 갑작스레 면전에서 돌풍이 불자 천서은을 비롯해 다른 두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들에게 쇄도했던 무기들이 제각기 엉뚱한 곳의 지면에 꽂히거나 하늘을 향해 목표를 잃고 날아가 버리는 걸 보았다.

영은성과 최현걸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했다. 그러나 천서은은 지금의 순간에 뭔가 기시감이 들자 구마진이 전방에 있음에도 뒤를 향해 고개를 훽 돌렸다.

천서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 가주님!”

전장의 무인들 머리 위로 훌쩍 날아올라 흰 머리카락과 흰 수염을 휘날리며 날아오는 노인은 그녀가 진정으로 반가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니 바로 당문의 가주, 천수기륭 당혁수였다.

그는 바람처럼 날아와서는 세 사람 곁에 서면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구마진을 잠깐 쏘아보았다. 즉각 공격을 감행할까도 생각했지만, 혈청옥으로부터 떨어진 피의 장막이 구마진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서 심상치 않아 보였다.

당혁수는 잠깐 천서은을 보면서 표정을 조금 풀고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졸지에 너희 연인을 모두 구한 셈이구나.”

그 말에 천서은도 미소를 지었다.

기시감이 들었던 것.

그것은 청성산에서 당혁수가 나타나 단지운으로부터 진도건을 구했던 장면이 자신에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혁수는 무거운 눈빛으로 전장을 돌아보았다.

이미 오면서 전장의 전체적인 구도를 한눈에 담은 상태였다. 그래도 북쪽은 절대고수라 할 만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반면에 이곳에선 구마진이란 강적을 상대로 천서은 등이 고군분투하는 모양새라 먼저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히 중앙에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는 천무경과 단지운의 대결이었다.

이미 청성산에서 잠깐 마주한 경험이 있던 탓에 단지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 그를 상대로 신위를 보여주는 존재가 명성으로만 듣던 파천무봉 천무경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천무경이 이룬 무공의 경지는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저 전투에 뛰어들 수도 있었지만, 당혁수조차도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만 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공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영은성과 최현걸도 당혁수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어찌 자네들만 싸우는가?”

“큭, 창천단주이신 구치상 선배께서 싸우다가 저자에게 단전을 파괴당했습니다.”

최현걸이 침음성을 삼키면서 대답하자 당혁수가 얼굴을 굳혔다.

그도 천하오절 칠성도존 구치상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하오절 가운데 한 사람이 꺾였을 정도로 강한 상대라는 사실이 절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당혁수는 세 사람의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진기가 많이 쇠해졌군. 일단 회복에 집중들 하게나. 내가 어떻게든 해보지.”

영은성과 최현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의 말대로 잠깐이라도 운기조식을 하는 게 구마진이란 강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기회를 기다리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쉽게 물러나기엔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구치상도 홀로 싸우다가 한 차례 꺾였고, 다음엔 천서은과 함께 싸우다가 그렇게 당한 것이기 때문에 당혁수의 안위도 걱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천서은은 이 기회를 이용해 기력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저는 잠깐이면 팔할 공력은 회복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버텨주세요.”

“허허, 저것이 그 정도인가?”

“흡성대법으로 내공을 쌓아서 지치지 않는 자예요. 아마 가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기준보다 내공이 더 깊을 거예요. 구 단주께서도 홀로 또 저와 함께 싸우다가 그리되셨으니 반드시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네. 흐음, 저건…… 이젠 사람이라 할 수 없군!”

당혁수는 천서은의 주의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피의 장막이 걷히면서 드러난 구마진의 모습 그리고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존재감은 이미 당혁수조차도 세 살배기 어릴 적 이후 처음으로 공포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크흐흐흐…….”

구마진은 의식하지 않았으나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절로 실소가 흘러나오는 걸 귀로 듣고 있었다.

묘한 울림을 동반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마치 또 다른 영격이 그의 몸에 스며들어 빙의된 기분.

혈마성과는 다른 강력한 무언가가 그의 영혼에 결합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희열과 투쟁심으로 온몸을 충만케 하고 있었다.

셀 수없이 많은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져 완전히 회복된 것은 오히려 신체의 작은 변화에 불과했다. 피부가 핏물에 흠뻑 적셔져 물들여진 것처럼 붉어져 있었고 곳곳엔 알 수 없는 형상의 각인이 가슴과 팔, 복부 등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머리 위 혈청옥은 용솟음치듯 핏물이 꿈틀거리면서 섬뜩한 혈광을 뿜어내는데 마치 그를 향해 속삭이는 듯했다.

‘몸을 풀어라. 저정도면 나에게 적당한 상대이니…….’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그 목소리가 의식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동화되었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머릿속에 분명히 되새긴 듯한 느낌이다.

구마진이 혈안(血眼)을 드러내며 새로이 나타난 강적 당혁수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섬찟한 목소리가 전장 전체로 울려 퍼지면서 당혁수의 귀에도 들어갔다.

“천수기륭 당혁수. 사천당문의 가주다. 그런 네놈은 누구냐? 사람이 맞느냐?”

당혁수는 진심으로 물은 것이었다.

사람이 맞느냐는 질문은 천서은 등도 공유하는 생각이었다.

당혁수의 물음에 구마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나는… 구마진……. 아수라혈마(阿修羅血魔) 구마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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