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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7화 (377/432)

377화 - 제71장. 신마대전(神魔對戰) 하편(下篇) (2)

“죽어!”

천서은이 전력을 담은 벽뢰장으로 구마진의 등을 때렸다.

쩌저정!

벽력성이 터지며 구마진의 신형이 영은성을 지나쳐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그를 곧장 쫓을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도망칠 거란 생각은 안했기에 그녀는 영은성과 최현걸 그리고 구치상의 상태부터 먼저 살폈다.

“단주님……!”

천서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구치상이 내공을 거의 잃어버린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놈을 막는 데 집중해라.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

전쟁에 돌입하기 이전의 구치상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 그녀의 앞에서 최현걸의 품에 안긴 채 기력이 쇠한 노인의 얼굴은 십 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찾아온 듯했다.

“제가 돕겠습니다.”

영은성이 각오를 다진 듯 말했다.

하지만, 천서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창천단을 이끌고 지휘할 단주 대리가 필요해. 영은성, 네가 그 자리를 지켜야 해.”

“저놈은 혼자서 무리예요.”

영은성은 천서은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도 천서은이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잠깐 공방을 나눴던 경험과 바깥에서 지켜봐 왔던 구마진의 마공은 그녀 홀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타탁!

그때 한 사내가 곁으로 날아왔다.

“도 부단주님, 무사하셨군요.”

창천단의 부단주이자 북두칠걸 중 한 사람인 도인범이었다. 그는 기력을 잃은 구치상과 눈이 마주치자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사부님…….”

입조차 열기 힘들어하는 구치상을 잠깐 바라본 도인범이 영은성과 천서은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은 내가 모실 테니. 천 낭자 혼자 싸우지 마시게. 그렇다 해도 저 괴물을 막을 수 있을까?”

구마진이 혈마강기를 뿌려 사방을 휩쓰는 동안 그것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도인범이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천서은의 어깨 너머 멀리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서 구마진이 비틀거리면서 서는데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구 단주께 치명상을 입었으니……. 헉……!”

최현걸은 구치상이 구마진의 어깨를 베었던 걸 떠올리면서 말하다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쇄골을 넘어 깊이 파여 갈라버린 구마진의 어깨는 상처가 너무 커서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였다. 그리고 그 정도 식별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곧이어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도 두 눈에 담겼다.

주변에 넘실대던 핏빛 기류가 구마진의 머리 위에서 강하게 뭉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기류들이 점점 작은 구의 형태로 바뀌어 간다는 생각이 들 때쯤.

후두두둑……!

그것으로부터 피가 떨어져 어깨에 닿았다.

떨어진 피는 어깨를 흠뻑 적시더니 강하게 엉겨 붙기 시작했고 점점 어깨의 벌린 입을 닫아가는 형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그 풍경이 그것을 지켜보는 다섯 사람과 사방이 또 다른 사람들의 말문을 막고 몸도 꽁꽁 얼어붙게 했다.

“도건에게도 저런 건 없었는데……!”

같은 혈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이질적인 능력과 존재감을 보여주는 구마진을 보면서 천서은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 저 강력한 마교도에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도 않거니와 진정으로 ‘마’에 절여져 형식적인 부름으로써가 아니라 완전한 ‘마인’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이 드는 것이다.

‘두고 보기만 할 수 없어!’

멍하니 굳어져 버린 천서은이었지만, 영은성은 더 일찍 정신을 차렸다.

검기를 흩고 또 흩어놓는다.

전장에 자욱하게 깔린 모래 냄새와 피 냄새, 땀 냄새와 같은 악취들 사이로 검향이 퍼져나가서는 그 향취를 맡을 때쯤엔 이미 영은성과 구마진 사이로 향로(香路)가 충분히 이어진 뒤였다.

구마진이 어깨를 치유하던 와중에 검향을 느꼈는지 움찔거렸다.

그 순간, 영은성도 초식을 전개했다.

이전에는 직접적으로 피워내며 들이쳤던 매화검기를 이제는 칼끝에 목에 겨눈 채 피워내는 암수(暗數)로써 작동하는,

이십사수매화검법 매화만리향.

구마진은 분명히 엄습해오는 보이지 않는 위협을 느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그와 그들의 적 사이로 거대한 피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 무엇이 날아오든 쳐내고 분쇄하여 무용한 공격에 그칠 수 있도록.

하지만, 검향은 이미 지나는 길에 모두 머물러 있고 그 자리에서 곧장 피어나는 매화의 꽃잎을 모두 막아낼 순 없었다. 하물며 그 방어의 방향이 전방에 향해있었으니 그에게서 바로 핀 꽃잎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피피핏-!

수백 개의 매화 꽃잎이 구마진을 덮쳐 거칠게 휩쓸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혈무가 함께 휘감을 정도로 그의 전신을 베고 또 꿰뚫으며 지나갔다.

“타아!”

초식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던 영은성은 그 기합 소리를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

시도는 효과적이었으나 그 위력이 목숨까지 탈취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보복은 즉각적이었다.

온몸을 휘감은 매화 꽃잎들 사이로 구마진의 팔이 불쑥 튀어나와 허공을 휘저었다. 그러자 동시에 핏빛 경력의 발톱이 거대하게 늘어져 천서은 등이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피해!”

카카카……, 콰쾅!

천서은이 벽력기를 분출했지만,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자리를 피할 일말의 틈을 벌기엔 충분했다.

도인범이 구치상을 업고 뒤로 몸을 날렸으며 최현걸이 곁에서 보위하여 날아오는 경력의 여파를 차단했다.

천서은과 영은성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몸을 날리면서 자리를 회피했다.

구마진은 어느새 영은성의 매화검기를 모두 떨쳐낸 상태였다.

온몸이 피로 물들었지만, 그것보다 그 속에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음 짓는 그 얼굴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다.

촤아아악!

여전히 구마진의 머리 위에 떠 있던 핏빛 구에서 핏물이 한 바가지 떨어지며 가뜩이나 피투성이였던 구마진의 전신을 뒤덮었다.

“크하하하하하!”

그의 앙천대소가 전장 전체를 관통하며 울려 퍼졌다.

“……내가 혈마 구마진이다!”

구마진이 강렬히 포효하면서 공중으로 도약했다. 핏빛 구가 여전히 그의 머리 위에 뜬 채로 따라 올라왔는데 공중에서 두 손을 휘두르는 순간, 핏빛 구로부터 천서은과 영은성을 노리고 수십 가닥의 피의 창이 쏟아져 내렸다.

백귀혈마공 나찰혈우창(羅刹血雨槍).

카카카카캉!

천서은과 영은성은 날아오는 공격들을 검으로 쳐내면서도 연신 물러났다. 완전히 막기엔 힘에 부쳤기에 간신히 빗겨 쳐내는 수준이었고 그나마 두 사람의 검술 능력 자체가 뛰어나고 내공도 탄탄했기에 가능한 점이었다.

‘진기가 소진되는 걸 기다릴 순 없어……!’

하지만, 역시나 힘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었다.

검을 쥔 두 사람의 손바닥은 벌써 피투성이일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있었고 몸에도 상처가 늘어나는 데 가진 내공의 한계는 구마진과는 달리 분명한 지점이 있었다.

반면 구마진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 듯하니 이 암담한 전세를 역전시킬 만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응?’

바로 그때였다.

천서은의 시야는 구마진의 공세로 인해 난장판이나 다를 바 없었으나 지나가는 장면들 사이로 특이한 지점을 감지했다.

구마진이 쏟아냈던 피의 창들은 땅에 꽂혀 그 자리에 남았을 정도로 실체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놀라웠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하나둘씩 핏물로 녹아내리더니 지면을 따라 날아가서는 다시 구마진의 머리 위 핏빛 구로 모이고 있었다.

‘기운을 회수하고 있어?’

그것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구마진은 흡성대법을 익힌 자였다.

대체 무공을 어느 단계까지 발전시켰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난폭한 공세가 뿌려놓았던 진기를 회수하여야만 유지할 수 있는 단계라면 구마진에게도 분명 내공의 한계가 존재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의 짐작대로 그 핏빛 구는 구마진이 공수로 쓰이는 기운의 분출과 회수를 동시에 이루기 위해 생성한 혈청옥(血淸玉)이었다.

콰콰콰쾅!

구마진의 의지에 따라 혈청옥에서부터 끝없이 쏟아지는 나찰혈우창의 공세.

천서은은 그것들을 막아내면서도 잠깐 영은성의 상태를 살폈다. 용케 버텨내고 있는 형국이었지만, 다른 수를 낼 여유는 없어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천서은은 나름의 생각이 떠올랐지만, 여유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

하지만, 의외로 빈틈은 다른 곳에서 열렸다.

콰쾅……, 콰쾅!

일순간 나찰혈우창의 공세가 끊기듯 들어오더니 완전히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마저 찾을 수 있었다.

천서은과 영은성은 혼미해질 정도로 밀어붙여졌기에 잠깐 정신을 차리는 데 집중해야만 했으나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놈을 노려라! 집중해서 노려!”

부양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사방곳곳에서 구마진을 노리고 검기검강 등이 쏟아져 날아가고 있었다. 또 개중에 무공에 자신이 있던 자들은 꽤 가까이 몸을 던지며 더 직접적인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구마진에게 근접할 수 있는 자는 없었지만, 신경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크크크……, 버러지 같은 새끼들!”

파앙!

구마진이 공중을 박차면서 접근한 자들에게 쇄도했다.

“오, 온다!”

창천단원도, 혈마종 무인도 있었지만, 구마진에겐 이미 모두 같은 적들에 불과했다.

파팟! 카카캉!

구마진이 일으키는 피의 소용돌이 앞에선 어떤 공격도 무력했다. 그들로선 미처 반응할 수도 없는 속도로 모든 공격을 물리치더니 어느새 양손에 두 사람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대로 목을 꺾어 죽여버릴 수도 있었지만, 구마진은 그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기로 했다.

흡성대법.

“끄아아아……! ……커헉, 컥, 컥……!”

“으그그그그……! 크흐흡!”

그 순간에는 공격이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오직 점점 죽어가는 비명만이 남았을 뿐이다.

불과 수초에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가진 정기가 모두 구마진에게 흡수당해 버렸고 몸속의 피는 몸에 난 상처들로 빠져나가 구마진의 머리 위 혈청옥로 빨려 들어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눈동자마자 녹아내리더니 안와(眼窩)를 통해서 허연 물 같은 것이 함께 흘러나와 혈청옥에 합쳐지는데 그것이 녹아내린 뇌수와 골수라는 것을 인지한 자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네놈들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구마진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섬뜩하게 사람들의 귀에 꽂혔다.

촤아아아아!

그가 손을 휘두르자 혈청옥에서부터 수십 가닥, 백여 가닥에 가까운 핏줄기가 사방으로 폭사 되어 뻗어나갔다.

무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은 제대로 반응해 피하지 못하고 머리, 가슴, 복부, 다리 등 신체 어느 한 곳을 관통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핏줄기는 관통당한 자리에 엉겨 붙어서는 그대로 흡성대법의 흡결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

사방이 비명으로 가득 찼다.

생명이 불꽃들이 한꺼번에 꺼져가고 정기의 파도가 구마진의 혈청옥으로 모여들었다.

“크하하하!”

비명들 사이로 광소를 터뜨리는 구마진을 바라보면서 부양호가 두려움에 떨며 중얼거린다.

“저건…… 혈마가 아니야. 그분의 모습이 아니야…….”

혈마종의 무인들 모두 부양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혈마 원건의 이야기는 결코 저런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기억하고 숭상했던 원건이란 무인.

주화입마에 빠졌던 그가 택했던 건 내면의 마성에 저항하는 길이었던 것을.

반면 구마진은 거리낌 없이 내면의 마성과 하나가 되고자 했으니 그야말로 천마신교가 구주의 마도를 설계하면서 수좌의 가능성을 점쳤던 최초의 혈마도(血魔道)의 시조(始祖)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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