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76화 (376/432)

376화 - 제71장. 신마대전(神魔對戰) 하편(下篇) (1)

“자네에겐 면목이 없군. 선배가 되어서 앞에서 이끌어줘야 하는데 말이야.”

“구 단주님……!”

천서은의 부름을 들으며 구치상의 얼굴엔 침통한 빛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창천단 단원이면서 동시에 칠성파 문도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운기조식을 하는 그 시간이 그에겐 스스로 되돌아보았다.

천하오절.

칠성파의 도존.

이것들로 상징되는 한 사람이 지닌 무학의 깊이란 실로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마진이란 남자가 가진 마공의 사특함과 화수분처럼 쏟아내는 공력의 파도 앞에서 그가 쌓아 올린 무학의 깊이라는 것이 무력해진다는 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이었다.

그 치욕을 어찌 극복해야 하는가?

“패배자들이 둘로 늘어나 봐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구마진이 조소를 흘리면서 혈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구치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전쟁의 참화 아래 깔린 죽음들만 이미 수백.

저 구마진이 전쟁을 승리로 매듭짓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면, 여생을 이 자리에서 불태우는 게 아깝다면 먼저 떠나간 단원들, 후배들 볼 면목이 없으리라.

구마진의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더니 핏빛 기운들이 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면서 일어났다. 분출하는 혈마기의 양이 정말 엄청났음에도 전혀 문제없어 보인다는 건 소름 돋는 일이었다.

백귀혈마공 혈마류인(血魔流刃).

수십 갈래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혈마기가 칼날과 같은 예리함을 품으며 구치상과 천서은을 노리고 휘몰아쳤다.

구치상과 천서은의 움직임이 묶였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제한할 정도의 공격 범위와 그 위력은 쉽게 떨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공격들의 굴곡은 채찍의 궤적처럼 뻗어나가면서도 각 갈래 갈래가 엉킴이 없으니, 마치 겹겹이 쳐진 거미줄 한 가운데에 엉켜버린 날벌레가 된 형국이었다.

카카카칵!

도신일체가 되어 직선의 주로를 파고드는 구치상.

콰지직-! 콰콰쾅!

벽력기를 뿜어내면서 돌파하려는 천서은.

그들을 압박하는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마진의 기척이 사라졌다가 구치상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촤촤촤!

넓은 권역을 휩쓰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구치상 가까이의 흐름이 구마진이 손발을 휘두를 때마다 급변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각도를 노리고 짓쳐든다.

칠성도법 옥형염정(玉衡廉貞).

북두칠성의 다섯째이자 중심을 지키는 가장 밝은 별.

끔찍한 핏빛 칼바람 사이에서 칠성도를 든 구치상의 전신이 도신일체로써 극강의 도강을 이루니 이것은 적이 접근해오길 기다린 만전의 태세.

스캉!

땅에서부터 하늘을 꿰뚫을 듯 한줄기 섬광이 치솟았다.

동쪽 하늘에 해가 쨍쨍하게 걸려있었음에도 그 섬광은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첨예하게 빛났다.

“크하하하하!”

구마진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 섬광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으로서 그 의미는 분명하다.

상처를 베고 얼굴까지 스치는 상처 그러나 충분히 깊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혈마기의 흐름 사이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것은 본인의 피가 분명했지만, 웃음은 더욱 광기에 물들었다.

두 손에 길게 타오르는 혈마강기를 쥔 채 구치상을 덮쳤다.

카카카캉!

구치상이 휘두르는 칠성도의 궤적을 따라 빛무리가 폭발했다.

바깥으로 분출된 기운이 강하게 응집하여 유형화하면 수행한 내공심법에 따라 기색을 띠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응집력만큼 내부적으로 끓어오르는 반발력 때문에 일정 수준의 빛을 뿜어낸다.

어두운 밤에 강기를 펼쳐 하늘에 뿌리면 마치 별빛 같다고 하여 강(罡)이란 글자를 쓴다.

칠성도법의 진정한 위력은 강기공의 극치를 달리는 데 있었으니 거기에 선천진기까지 불태울 때 발현되는 예기는 기준을 초월한다.

핏빛 소용돌이를 뚫고 섬광이 난무했다.

도강이 끝끝내 구마진의 몸에 닿으며 연신 피가 튀었지만, 구마진은 거침없이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 구치상은 구마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온몸이 할퀴어져 피투성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통이 상처를 타고, 등골을 타고 뇌를 강하게 자극하며 정신을 흔들었다.

연신 일그러지는 구치상의 표정이 그것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악다문 이빨조차 피로 붉게 물들고 두 눈도 충혈되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천서은도 마침내 구마진의 등을 노리고 가담했다.

콰콰콰콰콱-!

세 개의 각기 다른 경력이 만들어내는 폭풍 속에서 검이, 칼이, 손이 찰나의 치명적 위험을 품은 채로 매우 정교하고 빠르게 휘몰아쳤다.

둘이 하나를 상대하는 불리한 구도 속에서 구마진의 마공은 너무나 광포하여 다른 두 사람의 영향력을 억누를 정도였다.

마천경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힘까지 발휘할 수 있었을까?

분결이 일대를 휩쓸 정도로 강력하다면 흡결로도 반대급부의 영향력을 줄 수 있다.

“흐압!”

흡성대법 흡결을 운용하면서 한순간 사위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휘몰아치던 핏빛 소용돌이가 그로 인해 기류가 뒤틀리면서 일부가 구마진의 두 손을 통해 빨려 들어갔으나 그 외엔 오히려 제어가 풀렸다.

파아아앙!

“큭!”

“꺅!”

광견을 붙잡고 있던 고삐가 풀린다는 건 제멋대로 폭주하여 날뛴다는 의미이니 구마진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던 혈마류인의 강기가 딱 그 꼴로 폭사했다.

구치상의 신형이 크게 뒤로 밀려날 때, 구마진이 천서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손을 뻗음과 동시에 흡결로 돌린 기운을 다시 분결로 방출하자 혈마기가 손가락처럼 다섯 갈래로 뻗어나가 그녀를 덮쳤다.

백귀혈마공 야차탐혈수(夜叉貪血髓).

혈마기가 순식간에 천서은의 전신을 휘감았다.

호신강기의 방벽에 막혀 피부까지 닿도록 더 파고들진 못했지만, 움직임을 옥죌 정도로 찰싹 달라붙었다. 위험천만한 순간에 달려들어 다음 수를 펼치려는 구마진을 보며 천서은도 공력을 대거 방출했다.

파천신공 개벽.

파치치치칙……!

구마진이 탐욕스러운 눈빛을 하며 다음 수를 연속으로 펼쳤다.

야차탐혈수의 중첩으로 인해 부분적으로 신체가 보일 정도였던 천서은의 전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휘감겼다.

백귀혈마공이 운용되기 위한 두 축은 혈마성과 흡성대법이었다.

특히 구마진의 혈마성은 흡성대법을 익힌 당사자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정혈(精血)을 탐하는 본성을 갖추고 있었다. 거기에 흡성대법이 더해지면서 운기법과 기운 자체가 갖는 탐욕성이 극대화되었다.

야차탐혈수.

흡성대법에 기반한 이 초식은 한 번 휘감긴 적은 순식간에 기혈이 빨려서 기운은 구마진에게 흡수되고 피는 바깥에 분사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참혹한 마공이었다.

물론 천서은과 같은 무인의 기혈을 그렇게 쉽게 흡수할 리는 없었다.

벽력을 구현하는 기운 자체의 성질도 매우 사나운데다가 그녀가 가진 내공의 깊이 또한 아직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잠깐뿐일지라도 완전히 붙잡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크하하하!”

구마진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다시 오른손을 들었다.

갈퀴처럼 움츠린 손아귀 안에 금방이라도 가시처럼 폭사될 것 같은 마기가 응축된 채 붉은 광망을 뿌려대고 있었다.

천서은이 버티지 못하도록 일격을 가하려던 것이었다.

“흐아앗!”

그 순간 뒤에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그 기척이 세 갈래로 날아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구마진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려는 구치상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날아드는 기척도 그의 것이 가장 강하고 선명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캬라라락!

몸을 돌리면서 손에 쥐었던 기운을 던지자 붉은 마기가 채찍처럼 공간을 찢어발기면서 구치상을 덮쳐갔다.

그때 그의 우측으로부터 거대한 경력의 바람이 그를 덮쳤다.

‘뭣?’

구마진은 그 바람이 공격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경력의 바람은 강한 인력으로 작용하여 그의 신체 균형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비틀거리는 구마진의 눈앞에 한순간, 용두(龍頭)의 그림자가 비치는 착각이 일었다.

항룡십팔장 용전어야(龍戰於野)와 항룡유회의 연환식.

꽈앙!

최현걸의 일장이 묵직한 장강(掌罡)처럼 뻗어나가 구마진이 내민 손과 부딪치며 굉음을 토해냈다.

최현걸의 일장은 강력했지만, 그것만으로 구마진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개방의 소개가 움직였다는 것은 화산파의 도사가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자하신공.

이십사수매화검법 매유청죽(梅遊靑竹).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자색 매화검기가 구마진의 발밑을 파고들었다. 검기가 소용돌이치면서 구마진을 난도질하여 피가 튀었고 그 순간 뒤따르는 매화의 검향이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환계가 찰나간 구치상이 노릴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다.

칠성도법 요광탐랑섬(搖光貪狼閃).

북두칠성의 머릿별이 흔들리는 꼬릿별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것이 섬광과도 같다는 쾌속의 일도가 도강을 품고 구마진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타앙!

경력의 탄성이 고막을 찢을 듯 파고들었다.

구치상에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격을 먹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칼날로부터 피골을 가르는 감각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떨어지는 그의 오른팔을 막아내는 경력의 방벽도 느꼈다.

그 느낌이 드는 순간, 구치상은 즉시 구마진에게서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퍼엉!

무한한 것만 같은 내공과 제어가 무의미할 정도로 분출되는 마기는 모든 행동 사이사이로 발생할 수 있는 공방의 틈을 지우고 시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반격한다.

백귀혈마공 야차수의(夜叉守衣).

반사적으로 폭사되는 마기의 흐름 한 가닥이 구치상의 하단전을 꿰뚫었다.

이미 왼손으로 구치상의 떨어진 오른팔을 붙잡고 있었기에 이런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어도 완전히 회피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아랫배에 구멍이 뚫린 순간, 순식간에 내공이 흩어지면서 구치상의 낯빛이 사색이 된다. 그리고 구마진이 손을 놓는 순간, 맥없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흐려지는 그의 시야로 구마진이 자기 쇄골을 뚫고 가슴 부근까지 박힌 칠성도를 들어내는 모습이 비쳤다.

“단주님!”

최현걸이 크게 놀라 떨어지는 구치상을 받아내기 위해 몸을 날린다.

영은성은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하던 얼굴에 노기를 역력히 드러내며 구마진을 향해 검초를 펼쳐낸다.

이십사수매화검법 매화만개, 매화취접(梅花醉蝶).

시야 전체를 가릴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의 검기들, 그 사이로 향기에 취한 나비가 화원을 가르고 지나가 구마진의 심장을 노린다.

순간, 구마진의 전신에서 다시 혈풍이 불어닥치면서 영은성의 검세를 물리친다.

탕!

구마진이 파고드는 검광을 손등으로 쳐내면서 공중에서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동시에검광을 쳐냈던 손으로 손톱을 세워 영은성의 가슴을 할퀴었다.

쫘악!

앞섬이 쉽사리 찢어졌다.

몸을 선회하면서 흘려보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깊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가 핏방울이 튀었다. 그러나 영은성이 당황하지 않고 다음 검초를 펼치며 반격한다.

“건방지게!”

직선으로 찔러 들어가는 검 끝에 구마진이 조소를 흘리며 손을 뻗었다.

영은성의 무공이 자기보다 낮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던진 일수였다.

검 끝이 손바닥 장심에 닿는 순간, 구마진은 주먹을 꽉 쥐려 했다. 수강으로 위력을 압도하여 검 끝을 부러뜨리려 한 것이었다. 충격만 제대로 전해지면 검신 전체가 깨져버릴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영은성이 이루어낸 검의 경지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매화침골(梅花浸骨).

검기를 발현하고 검강으로 유형화하는 것이 내가기공과 함께 검을 수련하는 자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극강의 경지라면, 화산파는 역으로 검기를 흩트려 놓으면서 예리함과 강도를 유지할 방도를 모색했다.

그것이 검향이라는 일종의 징조로 발현됨과 동시에 검기 자체에 세밀함을 더한 이기(利氣)를 부여하여 화산파만의 경지로 나아가게 만든다.

여기에 자하신공이 더해지면 또 다른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검 끝이 구마진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의 그 이전에 이미 검향은 구마진의 손바닥에 스며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관통하여 그의 어깻죽지까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검 끝이 마침내 손바닥에 닿는 순간, 관통한 검향은 선명한 강기화를 이뤄내면서 자색 섬광을 터뜨렸다.

핑!

움찔!

손바닥과 동시에 어깨를 관통하는 극심한 통증에 구마진은 찰나 간 모든 행동과 운기가 멈칫했고 그 틈을 영은성의 검이 파고들었다.

푸푹!

손바닥과 어깨를 동시에 꿰뚫어버리는 일격!

구마진의 흔들리는 눈빛이 영은성의 분노한 눈빛과 마주쳤다. 그리고 영은성의 망막에 비친 그의 모습과 함께 등 뒤로 피의 고치와 같은 감옥을 푸른 번개로 터뜨리는 여인의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