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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5화 (375/432)

375화 - 제70장. 신마대전(神魔對戰) 중편(中篇) (5)

* * * *

분명히 달랐다.

이목구비의 생김새도 그렇고 느껴지는 분위기와 몸에 밴 태도도 그렇다. 진도건이 언제나 진중한 면모를 보이는 편이었다면 이 자는 경망스러우면서도 거만하다.

그렇게 확연히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체형과 체격 그리고 붉은 머리카락으로 인해 가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면 진도건이라 착각할 만했다.

그게 그렇게 열받는 것이었다.

콰르릉!

“하하하하! 이런 앙칼진 년이 있나?”

혈마강기가 천서은이 내뿜은 벼락에 터져나가자 구마진이 마음에 드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날아왔을 때 한 차례 직접 부딪친 이후로는 철저히 거리를 벌리면서 외기를 분출하여 견제하던 그였다.

본래 적이었던 창천단에 더해 혈마종까지 등을 돌렸으므로 사실상 구마진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흑각수들이 있었으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졸지에 포위된 형국이 되어버린 탓에 자기들끼리 뭉쳐서 방어하기 급급했다. 그리고 구마진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게 구마진에게 도움이 되었다.

흡성대법으로 축척한 내공이란 구주의 신마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하단전이 마치 오물에 더럽혀지는 느낌이 들었다.

종종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하단전엔 오물만이 남았다.

온몸이 끈적한 기분에 휩싸이고 정신은 온갖 비틀린 생각만이 가득 찼다.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 정도의 시련이었으나 그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흘간의 고통스러운 시간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나긴 밤이 지났을 때, 그는 너무나 상쾌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 후로는 일말의 두려움마저 사라져 마음 놓고 흡성대법을 사용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눈앞에 강적이 있고 사방을 적들이 포위했으니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으나 오히려 좋다.

흡성대법에는 세 가지 결식(結式)이 있다.

상대의 정기를 흡수하는 흡결(吸結).

하단전에 가두고 반발하는 기운을 제어하는 방결(防結).

기운을 방출하는 분결(噴結).

문을 열어 통하도록 한다는 의미의 개(開)도, 내보낸다는 의미의 출(出)도 아닌 분(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서로 다른 수많은 기운을 억눌러왔던 것을 속 시원히 뿜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흡성대법 분결.

백귀혈마공 백귀문수라도(百鬼門修羅道).

“크크크! 지옥을 맛보여주마!”

대지가 꿈틀거린다.

아니, 정말로 지각이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대지로 스며든 구마진의 혈마기가 지면을 들락날락하면서 퍼져나가니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퍼져나가 완성한 마의 영역의 크기는 마천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창천단과 다투는 전장의 대부분을 잠식할 정도였다.

진기를 다루는 무림인이라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운의 물결이 발바닥을 스치는 순간, 불온한 정서와 감정적 불쾌감이 온몸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그들이 대비하는 건 바닥을 지나는 기운의 폭사 정도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대비하는 방법이란 호신강기를 두르거나 호체진기를 굳건히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단지운이 여유가 있어서 이 광경을 보았다면 무척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큰 방어 효과가 없었다.

기운의 침습은 곧 사념의 침습으로 이어져 사람이 환각을 보게 하거나 미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자기가 들던 칼을 배에 꼽기도 하고 또 옆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거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도 있었다. 견뎌내는 자들은 느닷없이 눈앞에 귀신의 형상들이 나타나 공격해오니 사방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졌다.

죽음을 격려하고 싸움을 재촉하는 수라도가 그렇게 펼쳐진 것이었다.

천서은도 위협을 받는 건 매한가지였다.

파지지직!

그녀의 주변으로 푸른 번갯불이 격렬하게 튀었다.

그래도 파사의 공능이 있는 파천신공이었기 때문에 호신강기를 두르는 것만으로 침습을 막을 수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반발력이 그녀를 계속 짓누르고 있었다.

퉁!

그때 구마진이 그녀를 향해 쇄도하면서 오른손을 수직으로 내려쳤다.

여전히 거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붉은 손이 순간 거대하게 나타나 그녀의 머리 위를 덮쳤다.

혈마강기로 만든 조강(爪罡)인 것이다.

콰드득!

지면이 연속으로 할퀴어지면서 돌부리들이 비산했다.

천서은은 이미 측면으로 돌아서서 구마진을 향해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파천신공 벽뢰장.

푸른 벽력을 품은 장력을 펼쳐내는 그녀를 바라보며 구마진도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붉은 손을 내밀었다.

백귀혈마공 혈마악령장.

쩌엉!

번갯불이 튀고 혈무가 번졌다.

경력의 충돌과 그 충격파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신형이 반대 방향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큿!”

침음성을 삼킨 쪽은 천서은이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공력을 분출시켜야 했을 때, 백귀문수라도에 의해 공력의 유실이 발생했다. 그것은 일종의 기와 기의 충돌 때문이기도 했지만, 흡성대법의 특성 때문인지 마치 기운에 흡수당하듯 사멸되기도 하였다.

그 양이 무리를 일으킬 수준이거나 위협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강적을 앞에 두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선 작은 차이들이 누적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천서은이 장력 대결에서 밀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지운을 때렸을 때에 느꼈던 벽과 같은 느낌은 아니다.’

집중만 한다면 충분히 경합할 수 있다는 확신.

“네년은 특별대우를 해줘야지.”

구마진의 양손에서 악령장이 연거푸 펼쳐지며 천서은을 덮쳤다.

천서은도 벽뢰장을 펼치면서 맞대응했다. 초식의 허실을 전개해 다른 방식으로 싸울 수도 있었지만, 일단 힘을 제대로 겨뤄보고 싶었다.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두 절대고수들이 정면으로 부딪치자 대기가 요동을 치면서 비명을 질러대는 듯하다.

구마진도 종전에 일장을 겨루며 우위를 점했다는 걸 느꼈었는데 이번엔 팽팽한 느낌이 들자 내심 적잖이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호오, 그새 적응했나 보군? 그럼 좀 더 끌어올려 볼까?”

구마진의 얼굴에 기분 나쁜 웃음이 떠오른 것도 잠시, 그가 퍼붓는 경력의 세기가 더욱 강해지고 거칠어졌다. 동시에 백귀문수라도도 그와 가까이 있어서인지 압력이 더 거세게 그녀를 짓눌러왔다.

파지지직……!

천서은도 파천신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백귀문수라도를 향한 저항으로 온몸으로부터 번갯불이 튀어 나가는 가운데, 그녀의 권장을 이용한 공격에도 벽력기가 더욱 격렬하게 분출했다.

파천신공 창천벽뢰.

벽뢰장이 집중된 공력에 의한 충격을 유도한다면 창천벽뢰는 뇌기 방출로 인한 분쇄를 이끌어낸다. 백귀문수라도에 의해 공력이 유실되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걸 견딜 바에 아예 싸잡아 태워버리겠다는 의도였다.

콰르르… 꽈과과…콰쾅!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우레 소리보다 먼저 두 사람 사이로 공수가 격렬하게 오갔다.

구마진은 그가 내뿜는 힘의 수준으로 천서은이 기어코 따라붙는 것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크카카! 이 빌어먹을 년! 날 번개통구이로 만들 기세로구나!”

“그걸론 모자라지!”

파츠츠……!

한층 더 출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구마진의 감각에도 잡히는 순간, 그가 먼저 즉각적으로 공력을 방출했다.

백귀혈마공 혈폭토귀(血爆吐鬼).

혈마기에 폭발력을 담아 두 손을 휩쓸 듯이 번갈아 휘두르자 일순간 강기의 물결이 천서은의 전면을 가렸다.

콰콰콰콰쾅-!

그 순간 창천벽뢰의 비산하는 번갯불이 붉은 강기에 앞서 닿으며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다. 그로 인한 엄청난 충격과 압력의 파도가 그녀를 덮치면서 뒤로 크게 밀려났다.

“설매화가 죽은 뒤로 참 쓸쓸했는데 말이야. 네년 정도라면 내 밤시중 들기에 부족함은 없어 보이는구나.”

구마진이 말을 마치면서 혓바닥을 내밀어 아랫입술을 쓸었다.

“닥쳐!”

파천신공 개천, 교룡파연.

파천진기가 폭발적으로 치솟으며 뿜어져 나온 벽력의 기운이 사방에 존재하는 마기를 불태운다. 동시에 뻗은 그녀의 손아귀가 구마진이 재차 일으킨 혈마강기들을 찢어발기면서 구마진까지 통하는 길을 열었다.

슈악!

그 길로 몸을 던지면서 주먹을 내지르니 파사벽력의 칼끝이 주먹에 실린다. 그리고 그것을 내지르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구마진의 황당해하는 표정과 두 팔을 교차하여 방어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맺혔다.

파천신공 구룡포화.

쩌정!

내지른 붕권의 끝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리고 구마진의 신형이 뒤로 크게 밀려 날아갔다.

“큭큭! 어마무시한 썅년이로군!”

구마진이 실소를 흘리면서 두 팔을 털어 새까맣게 타 재가 되어가는 옷소매를 떨어뜨렸다. 동시에 여전히 무한한 듯한 단전의 공력을 더욱 끌어올려 온몸에 담고는 맨살을 드러낸 두 팔을 들어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원을 그리듯 옆구리까지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에게서도 피처럼 붉은 혈마강기가 사방으로 요동치듯 뿜어져 나가면서 기세를 더했다.

백귀혈마공 극혈수라무(劇血修羅舞).

구마진에게서 분출되는 혈마기가 수십 가닥으로 분출되는 물결처럼 되어 사방에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쳤다.

콰라라라라-!

마치 난사하듯 분출하는 혈마기의 위력은 어쭙잖은 호신강기는 박살 낼 정도로 강력했는데 그 범위가 백귀문수라도 범위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불러왔다.

천서은도 극혈수라무로 펼쳐진 혈마강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호신강기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창천벽뢰의 수법으로 적극적으로 공력을 방출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동원되지 않으면 그녀마저도 위험할 만한 공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사방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보지 못한 게 아니었다.

저항도 못 하고 끔찍한 죽음과 부상의 절망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아도 그녀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전장에서 구마진을 막아야 할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그런데 아무런 힘도 못 쓰고 있다면 혈마종의 노고수와 했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요, 다시 볼 면목이 없어지는 것이다.

“흐아아아!”

천서은이 파천진기를 극한으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파천신공 개벽.

종전엔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그것을 그녀가 마침내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벼락폭풍과 함께 감히 자신을 놔두고 다른 곳까지 공격하는 구마진을 향하여 쇄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구마진도 극혈수라무의 모든 공세를 천서은에게 집중했다.

파천신공 청룡뢰후(靑龍雷吼).

쿠르르… 콰콰콰쾅!

파괴적인 기운들의 충돌과 그 폭발 속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각자에게서 분출된 공력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기존의 특성이 그들 사이로 집중되면서 말도 못 할 거대한 압력을 응집시켰다. 그것을 사이에 두고 누구 하나 힘을 풀어버리면 순식간에 온몸이 찢어발겨질 것만 같은 그런 압력 앞에 구마진이 희번덕거리는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싸울 참이냐?”

천서은이 분노하여 소리쳐 물었다.

그녀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공력을 낭비한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정도로 퍼부어대는 구마진의 전투 방식을 꾸짖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그녀의 도발에 기분이 상할만 한데도 구마진은 오히려 천서은이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고 여겼다.

“나의 내공은 무한한데, 네년은 언제까지 징징거리면서 앙탈을 부릴 참이냐? 아앙? 진도건의 여자!”

구마진의 그 말에 천서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순간, 둘 사이에 응축되어있던 압력이 마침내 균열이 일어나며 폭발했다.

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그 속에서 천서은은 자기 몸조차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휩쓸리며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거기서 폭풍을 뚫고서 어느새 그녀의 위에 나타난 구마진이 회심의 눈빛을 던지면서 두 손을 휘둘렀다.

꽈광!

굉음이 터져 나가며 천서은이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 너덧 바퀴를 굴러서야 간신히 멈췄다.

“……크윽…….”

곧 움찔 떨더니 신음과 함께 힘겹게 일어났다.

다행히 직전의 굉음은 구마진의 공격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중간에 날아온 번뜩이는 도강이 구마진을 밀어내면서 천서은을 치명적인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었다.

사방에 먼지가 가득했는데 그 사이로 그녀의 시야 양쪽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은 공중에서 그녀를 공격하려다가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던 구마진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은 기력을 회복해서 돌아온 칠성도존 구치상이었다.

구마진에게 패배하다시피 밀렸다가 천서은이 대신 상대하는 사이에 일정수준 기력을 회복하여 때를 맞춰 돌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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