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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4화 (374/432)

374화 - 제70장. 신마대전(神魔對戰) 중편(中篇) (4)

천무경과 파천신공.

그가 이룬 무학의 깊이와 거기서 따라오는 자연적 기운의 반응으로 구현된 푸른 벽력이 남채화의 말에 따르면 제석천의 가호로 이뤄졌다는 뜻이 된다.

그런 진도건의 생각을 읽었는지 남채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 천가 아이의 재능과 노력은 진짜네. 단지 그 공(功)이 운명적으로 제석천과 이어진 것뿐이야. 절대로 폄하할 필요는 없지. 이를테면 저 녀석도 노군과 운명적으로 이어져 있으니 몰락한 정파의 유망한 아이들을 끌어올려 주고 마를 물리치기 위해 천하를 누비고 다닌 것이지만, 그렇다고 너희들 의지에 우리 신인(神人)들이 개입한 건 아니라는 소리야.”

남채화가 이번에 가리킨 사람은 다름 아닌 주백자였으니 그 당사자도, 다른 사람들도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놀라움에 대한 감정적 근원은 달랐다.

“이 주백자가 어찌 감사를 표하리까? 일생의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주백자가 눈물까지 머금으며 깊이 읍소하듯 말하는데 그 모습을 본 남채화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강선이를 포함해 너희 세 형제에겐 따로 일러줄 말이 있지만, 그건 여기 상황이 마무리되면 알려주마.”

남채화가 말한 세 형제란 주백자와 조강선, 유변을 말함이었다.

남채화는 다시 진도건을 보았다.

“자, 너도 내 말뜻을 대충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수라는 저를 제석천처럼 받아들일 거라는 뜻인지요?”

“그래. 네가 천가의 무공을 이어 그 같은 기운을 단전에 담아냈으니 비록 중단전에 마가 끼었다곤 해도 너를 분명히 인지할 것이야.”

조강선은 아수라를 진도건이 독대해야 하는 상황이 걱정되었다.

아수라와 제석천의 대립은 불가분의 관계라 만약 진도건을 제석천과 같이 인식하게 된다면 아수라가 충분히 공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수라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거야. 사실 수라도를 인간계에 여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깝거든. 육도의 한 축이 무너지면…… 공멸이야. 우리 선계에도, 다른 신계에도 무너지게 되어버려. 수라도는 투쟁을 원하는 것이지 종말을 바라진 않네. 아수라왕 정도라면 이 아이가 지금 벌어지는 모든 사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는 걸 모를 리 없네. 걱정하지 말게.”

“만나보면 어떻게든 되겠지요.”

진도건은 두려운 거 없다는 듯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가볼까?”

“예선께서는 안 싸우십니까?”

“난 싸움을 싫어한다네. 덕분에 종 사부께서 타박을 놓으시긴 하지만, 뭐 어쩌겠나? 예인(藝人)이란 본래 다툼을 멀리하고 극(劇)으로 갈등을 치유하는 사람들이니.”

남채화가 속세의 인간이었던 시절은 당나라 때로, 변장한 채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예인이었다. 팔선 중 한 사람인 종리권(鍾離權)이 남채화에게 신선이 될 수 있는 자질을 발견하곤 꾀를 내어서 그를 속여 선도(仙道)를 걷게 하였으므로 속세인일 때의 자신에 대한 미련이 항상 있었다.

그가 전장엔 함께 왔으면서도 수라들과 싸우지 않는 건 일종의 반항심인 셈이었다.

“이번엔 제대로 싸울 수 있겠군!”

하후무가 흡족한 표정을 한 채 손가락 관절을 풀어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난 저 수라들이 어떤지가 더 궁금하네.”

‘진짜’ 수라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곽비에겐 더 자극이 되는 요소인 모양이었다.

“후후후! 그럼 가볼까?”

냉소평이 웃음을 흘리면서 먼저 앞으로 튀어 나가자 주율, 곽비, 하후무도 곧장 뒤를 바짝 따라서 몸을 날렸다.

주백자와 조강선, 유변, 빌게포첸도 연달아 경공을 펼치면서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들이 떠나가자 남채화가 진도건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이야.”

“예.”

“혈마야.”

“난 왜 불러?”

혈마가 자신의 영체를 출현시켜서 머리만 위로 내민 채 진도건의 정수리에 팔을 기대고 턱을 괴니 똑같은 얼굴로 남채화를 내려다보는 기이한 모습이 되었다. 그저 혈마의 모습이 붉은 기류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니 그 얼굴색과 바라보는 눈빛만 다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채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둘 다 마음의 준비들은 되었느냐?”

“두려움은 없습니다만. 물으시는 건 이건 아닌 것 같군요.”

“너희가 이런 구름 위에서 싸우는 동안, 아래에선 지금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단다. 으음, 벌써 많은 사람이 생을 마감한 듯하구나.”

진도건은 남채화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쓸쓸함이 스쳐 지나간 남채화의 눈에 영롱한 빛이 잠시 돌았다가 사라지는데 그가 신선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치 현세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반추해보면 정말 알 수 없는 영역을 넘나들면서 모든 사태의 전말을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그가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잠깐 관심이 꺼졌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창천맹을 비롯한 무림 세력과 천마신교가 여전히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남채화의 말은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웠다.

“승리란 것은 언제나 달콤한 법이지. 하지만, 그것에 필요한 희생이 크면 클수록 승리의 가치는 무의미해지고 고통에 찬 여생만이 후유증으로 남기도 해.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을 위해 싸워왔냐는 것이다. 네겐 그런 것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진도건은 웃으며 끄덕였다.

남채화는 진도건의 마음을 모두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소중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정도는 느껴졌다.

‘사별한 아내가 떠오르는군.’

남채화의 아내는 그와 같은 예인이자 연극 동료이기도 했다.

종리권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후로 완전히 속세를 떠났다면 모를까, 간혹 가족들 주위를 맴돌며 얼굴을 비추다 보니 아내도 환속하여 같이 무대에 서자는 청을 하게 됐었다. 그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내가 아주 늙은 모습이 되어 생을 마감하기 직전이 돼서야 찾아온 남편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며 떠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 뇌리에 각인된 눈물을 지은 채 생을 마감한 아내의 얼굴은 4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으니 진도건의 대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혈마는 여전히 진도건의 머리 위에 기댄 채 턱을 괴던 자세 그대로 심드렁하게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혈마여.”

“내게 그런 건 없어.”

같은 질문을 할 줄 알았는지 혈마가 먼저 대답을 내뱉었다.

“알리 라 다바스가 그리고 나시드가 이 세상으로 넘어온 지 200여 년. 다른 세상에서 온 신이라. 하하하!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지만, 200여 년이나 흐른 지금에선 믿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고……. 서로는 마주치지 않는 그 두 존재를 각각 접촉해보면서 우리 신선들이나 저쪽 천인보살들이나 공통의 목표가 생겼다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의 어지럽혀진 섭리를 본래의 길로 되돌리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걸 말이야.”

“내가 이 세상을 떠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데, 굳이 되새겨줄 필요는 없어.”

“사람이 태어나면 말이야.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운명이지만,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네. 자네를 유도한 저 냉소평이란 아이도, 자네와 함께 공존하는 이 아이도 부모라 하기엔 모호하지만, 어디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질문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겠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걸?”

“수백만, 수천만의 사념이 고운 모래처럼 분해되었다가 하나로 뭉친 자네는 자체로 혼돈이요, 또 우주이기도 하네. 그 종류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운명의 부산물이 자네 안에 녹아있는 것이야. 물론 인간이라는 한 생명체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런 사태에 휘말려 태어난 자네는 좀 특별하지.”

“흐음, 그래서?”

“나시드는 이곳 천체를 모든 영역이 자유롭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곳이라면서 불온한 터럭을 거둬가겠다고 했지. 뭐 자연스러운 건 좋으니까 우리도 환영할 만한 일이야. 아, 자네에게 신의 자리를 제안했다지?”

“그래. 자기들의 집행자가 되어달라더군.”

“혼돈에서 태어나 영혼을 이루고 신이 된다라. 좋군!”

“말에 진심이 안 느껴지는데? ……둘과 각각 접촉했다며? 다바스가 했던 얘기 중에 들려줄 만한 건 뭐 없나?”

“아! 있네. 알리 라 다바스는 자기들 식으로 이렇게 얘기하더군. ‘나비효과’. 여기서 일어나는 사태가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라면 이곳의 반대편에선 태풍이 될 수 있다고 말이야. 이 말을 어찌 생각하나? 그가 말한 반대편은 어디를 얘기하는 것일까? 같은 세상에 미지의 나라가 있는 다른 지역일까?”

“……자기들 세상을 말하는 것이로군.”

“후후후! 그들이 이 세상에 넘어오면서 각자 존재하던 것들 사이에 바늘구멍 같아서 보이지도 않을 작은 길이 열렸네. 나비의 날갯짓이 인과율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태풍으로 연결될 경우의 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무한의 가능성. 그것이 이 세상 반대편이 아닌 그들 세상으로 이어진다면?”

가만히 듣던 진도건이 입을 열었다.

“고작 태풍에 불과하진 않을 거라는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에 반응을 내비친 진도건의 마음은 혈마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신들의 농간에 놀아난다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는데, 진도건이 품은 묘한 떨림이 그에게도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럼 내가 나비라는 것이냐?”

“아니지. ‘나비’는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 혈마 자네는 핵심을 관통할 수 있는 결정적 ‘날갯짓’이네. 그게 알리 라 다바스가 자네를 가리켜 한 말이야.”

“큭큭큭! 이놈이나 저놈이나 제멋대로 지껄여대기는…….”

“하하하하!”

혈마의 중얼거림에 남채화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도건도 웃음을 지었는데 혈마에게서 달라진 감정적 동요가 꽤 긍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시드도, 다바스라는 그놈도 그렇지만, 당신도 내 앞길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자네가 떠나면 더는 자네 소식을 알 길이 없게 되겠지. 하지만,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자네는 이 땅에서 태어난 존재 그리고 나는 어찌 보면 이 땅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와 같은 신세. 자식 같은 존재의 앞길 정도는 걱정해도 되지 않겠는가?”

“소년의 얼굴로 그렇게 얘기하니까 남사스럽군.”

“속은 벌써 오백 년 가까이 산 늙은이니까. 후후후!”

“네놈도 비슷한 생각이냐?”

질문의 화살이 진도건에게 돌아갔다.

그 질문을 듣고 진도건은 잠시 생각했다가 대답했다.

“……흐음, 너와 나의 시작은 악연이었지만. ……남선(南仙)께서 하신 말을 듣고 나니까 내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는 말도 어쩌면 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

“우웩! 너 시발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그렇지만 하나 보고 싶긴 해. 네가…….”

진도건은 혈마의 물음에 대답하다가 남채화가 손을 들자 말을 멈추었다.

남채화가 들어올린 손을 그대로 전방 전장의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봐라. 드디어 나타났군.”

전장 좌측 수라진영의 끝자락에서 새빨간 불길이 연꽃의 봉우리처럼 솟아올랐다. 그리고 닫힌 봉우리가 흘러내리듯 개화하면서 불꽃의 환희를 떨굴 때, 한 인물의 모습이 그 사이로 드러났다.

남채화가 그 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리듯 차분한 목소리로 소개한다.

“저자가 모든 아수라족들의 왕이자 왕 중의 왕, 마하발리다.”

진도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남채화를 흘끔 보았다.

“가겠습니다.”

“그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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