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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1화 (371/432)

371화 - 제70장. 신마대전(神魔對戰) 중편(中篇)

그것은 더 이상 천살광부 오규라 할 수 없었다.

팔 네 개의 괴물은 그 크고 거대한 손들을 이용해 기존 양팔로는 도끼를 휘두르고 등에서 솟아난 팔들은 등 뒤를 노리는 무림인들을 날파리 때려잡듯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붉은 흉광으로 그득한 두 눈에서 이지란 찾을 수 없었으며 악취를 풍기는 입김과 흉측하게 돋아난 이빨 사이로 질질 흐르는 침은 살육의 본능에 완벽히 지배당한 상태임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물이 되어버린 오규가 순간적으로 전장을 덮친 그 순간에 하소정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싸우다가 갑자기 머리가 비대해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적의 목을 베어버린 바로 그때, 그녀는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그림자의 크기를 감안하여 정말 있는 힘껏 몸을 던진 것이다.

쿠쿵!

그렇게 땅을 구르면서 굉음이 들려오는 그녀가 싸우던 자리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괴물로 변한 오규를 발견했다.

“헉!”

하소정과 오규의 눈이 마주쳤다.

오규의 눈에 하소정은 무엇으로 보였을까?

찢어 죽여도 될 장난감?

아니, 이미 끔찍하게 변해버린 몰골을 보아하면 짐승과 다를 바도 없으니 먹잇감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쿠오오!”

오규가 네 팔을 높이 번쩍 들었다가 힘껏 내려찍는다. 하늘이 순간적으로 어둠에 가려지고 떨어지는 두 개의 도끼는 어둠 속에서 칼날의 서슬을 드러냈다.

‘젠장……!’

피할 수 없었다.

도끼 둘을 동시에 맞을 수 없기에 한쪽으로 조금 이동하면서 머리 위로 검을 들었다. 그녀의 검엔 아직 선명함과 예리함은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강도는 구성할 수 있는 검강이 빛나고 있었다.

카앙!

“윽!”

검강에 도끼가 빗맞으면서 하소정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충격도 그렇지만, 땅에 거칠게 처박히면서 허리가 급격하게 꺾여 신음을 흘렸다.

“크윽!”

하소정은 다시 발을 딛고 일어서려 했지만, 허리에 부담을 느끼면서 비틀거렸다.

그 순간 정면으로 엄청난 풍압과 함께 검고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오규의 거대한 발끝이 파고들었다.

이번엔 피할 수도, 방어할 준비도 되지 않았다.

부웅!

오규의 발끝이 허공을 걷어찼다.

하소정의 위기를 일찍이 눈치채고 달려온 장우태가 몸을 날려 그녀를 구해낸 것이다.

쿵!

두 사람이 뒤엉킨 채 땅을 거칠게 굴렀다.

하소영은 이번엔 제법 거리를 두고 나가떨어졌음을 인지했다. 장우태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정도의 잠깐의 틈이 생긴 것이다.

“우태 오라……!”

장우태를 반기려던 하소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쿨럭! 괜…… 끄흐으…….”

입으로 검은 피를 게워내는 장우태의 얼굴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어, 어째서……!”

하소정은 당황하여 장우태의 신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장우태의 하반신이 허리에서부터 완전히 반대로 돌아가 있었다.

그런 상태가 가능했던 건 옆구리가 척추가 드러날 정도로 깊이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제로 뜯어졌다시피 하여 살점들이 너덜거리고 내장이 그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장우태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할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아이……, 아…….”

참담한 모습에 하소정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러다 그녀의 떨리는 눈빛이 꺼져가는 장우태의 눈빛과 마주쳤다.

장우태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아주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마치 하소정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만족한다는 표정은 그녀로 하여금 더더욱 동료의 육신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어엉, 엉, 엉……!”

오규가 달려오며 발구름 소리가 땅을 울릴 정도로 크게 들리는 데도 하소정은 목놓아 우느라 귀가 먹먹해져 듣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그 상황에서 그녀는 지금 있는 자리가 전쟁터라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머리 위로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센 풍압에 머리카락이 펄럭이며 몽땅 뒤로 젖혀졌다.

하지만, 그녀는 장우태의 시신을 부둥켜안은 채 자리에서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규가 발로 짓밟으려 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살아날 수 있었다.

푹!

“크아아악!”

오규의 발이 하소정의 머리에 닿기 전에 경공을 펼치며 날아온 관무영이 무릎에 검을 박아넣으며 밀어붙였기 때문이었다.

“도망쳐!”

그의 외침이 닿았을까, 하소정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울음은 멈추지 않았고 관무영은 그만큼 더 다급해졌다.

오규가 휘청거리며 옆으로 반보 정도 밀리긴 했지만, 완전히 쓰러지지 않았다. 검이 박힌 무릎을 땅에 꽂으면서 한 손의 도끼를 놓고 관무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관무영은 즉시 검을 뽑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굽혀진 무릎관절에 검이 짓눌려 빠지질 않았다.

“칫!”

즉시 손에서 검을 놓고 몸을 날렸다.

공중제비를 돌며 손아귀와 도끼날을 연속으로 피했지만, 오규의 팔은 두 개나 더 돋아나 있었다.

관무영도 몇몇 신체 변형이 일어난 광혈마종 마교도들을 쓰러뜨리고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이런 식의 신체 변형이 일어난 괴물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이미 두 팔의 공격을 피해냈음에도 새로운 팔이 추가로 공격해오리란 인지 감각이 아직 충분히 차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젠장……!’

시야 전면을 채우는 거대한 주먹에 관무영은 할 말을 잊었다.

쾅!

그 순간 거대한 주먹이 어떤 인영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소정을 그가 구했듯이 이번엔 장학이 그를 구한 것이었다.

장학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주먹까지 칼로 쳐내면서 관무영이 안전하게 땅에 착지하도록 도왔다.

하소정과 관무영, 장우태 그리고 4년 전에 일월신마에게 죽은 나지룡까지 모두 장학에겐 가족만큼 가까운 천혼당 조원들이었다. 당연히 적멸당에 와서도 그들의 안위부터 챙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규의 위력은 장학과 관무영이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웠다.

“제길, 저 괴물 새끼를 끝내지 않으면……!”

땅에 착지한 관무영이 검강을 일으키면서 격한 어조로 말을 토해내다가 도중에 멈추었다.

푸푹!

“커헉!”

관무영은 자기 가슴을 뚫고 나와 피에 흠뻑 적셔진 검은 손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검은 손에서 생생하게 맥동하고 있는 심장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관무영 자신의 것이 틀림없었다.

“관무영!”

경악하는 장악의 외침이 더는 관무영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쓰러지는 그의 신형 뒤로 머리 하나는 작은 체형에 검게 변해버린 긴 두 팔을 가진 초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사천 전쟁에서 사수인 중에 두 명이 중천의 낭인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네 팔 달린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천살광부 오규 그리고 본래도 기형적이었던 두 팔이 더 길어지고 단단해지면서 동시에 체구는 쪼그라들어 움츠린 채로 틈을 파고들기 좋은 상태가 되어버린 기형귀수 채모조가 사수인 중 남은 두 사람이었다.

관무영을 죽인 자는 바로 채모조였다.

오규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으나 채모조는 오히려 약간의 이성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네놈들이 곱게 죽었으면 이 채모조가 이 꼴이 되어버리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하지만, 그조차 살육의 본능에 헐떡이는 것은 똑같았다.

오규가 장학을 덮치기도 전에 채모조가 먼저 그에게 쇄도한 것이다.

카카캉!

단단해진 채모조의 두 팔은 마치 강철의 창과도 같아 손끝이 스칠 때마다 옷깃이 잘리면서 피가 튀었다. 내력도 내부로 단단하게 받쳐주니 장학의 도기에도 상처하나 제대로 나지 않고 있었다.

격렬하게 붙었다 떨어지는 순간, 장학의 머리 위로 다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지를 상실하였을 터인데 노려지는 시점이 치명적이었다.

‘……빌어먹을.’

4년 전 나지룡부터 장우태, 관무영의 죽음과 마지막엔 여전히 장우태의 시신을 놓지 못하고 울고 있는 하소정의 모습까지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그 순간.

콰앙!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굉음이 하늘에서 터졌다. 동시에 오규의 거대한 신형이 휘청이면서 수 걸음이나 크게 물러났다.

콰쾅!

굉음이 연달아 또 터져나왔다.

그 소리를 쫓아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규를 두들겨 패는 백두기의 뒷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장로님!’

당주님보다 장로님 호칭이 여전히 더 편했던 장학이 내심 환호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방심을 불러왔다.

“어딜 보느냐?”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장학도 위협을 감지하고 급히 몸을 틀며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화끈한 통증이 팔꿈치 부근에서 느껴졌다. 시야엔 곁을 스치는 그림자와 더불어 칼을 쥔 그의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진 채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

“크윽!”

장학은 주저앉았고 그의 팔을 잘라낸 채모조는 떨어진 거리에서 지면에 손을 박아넣으며 다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였다.

고작 오른팔 하나로 살육을 향한 본능적 끌림이 해소될 리 없었다.

움직임이 마치 긴팔원숭이 같았다.

채모조는 바람처럼 날아서 장학의 뒷덜미를 노린 채 검은 손톱을 겨눴다. 그 순간 측면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나 그를 향해 쇄도했다.

파파팡-!

채모조가 두 팔을 휘둘러 검기를 막아냈지만, 충격 때문에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란 것은 고통 하나 없었던 두 팔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고수.

채모조는 자기에게 가까운 전장 안 적들 가운데 명백히 그보다 상위 경지에 이른 고수의 존재에 대해 두 사람을 인지하고 있었다.

오규를 합공하는 백두기와 남궁평이 바로 그들이었다.

새롭게 나타나 그를 튕겨 낸 사내는 확실히 그들보다 아래의 무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반면 자신은 광혈마종의 사수인 기형귀수 채모조, 간부급 인물이었다.

“건방지게 감히!”

채모조가 사내에게 쇄도하여 두 팔을 휘둘렀다.

채찍과 같이 변화무쌍한 굴곡 속에 양손의 길게 솟은 손톱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팔뚝은 바위처럼 단단했으니 그로 인한 돌풍 자체도 눈꺼풀을 강제로 닫게 할 만큼 거셌다.

누구인지조차 모를 무명의 젊은 고수 따위 찢어발기고 뭉개버리라는 확신에 찬 공세였다.

그 공세 속으로 사내는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짐승처럼 변한 채모조를 포함한 광혈마종의 그것과 같이 사내가 펼치는 권각의 투로도 본능을 따르는 그것과 같았다. 그리고 권각에 실린 진기의 흐름은 심오한 구조로 뒷받침하고 있음을 채모조는 알지 못했다.

타타타탕!

“컥!”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얻어맞으면서 채모조의 신형이 나가떨어져 땅을 굴렀다.

온몸에 타격을 받았다.

긴 팔이 가져올 사거리의 이점을 무너뜨리고 지척까지 접근해 공격에 노출되었다. 본래도 광무혈폭마공으로 강해진 신체가 더 단단해졌기에 견딜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이런 기민한 움직임은 과거 한 차례 본 적이 있었다.

“네놈, 안효철과 무슨 관계냐?”

광혈신마 혁무술과 싸우던 안효철의 움직임은 뇌리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장면으로 각인되어있었는데 지금 눈앞의 사내가 비슷한 느낌으로 그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터텅!

사내가 덤벼들면서 주먹을 휘두르자 조금 전엔 앞으로 돌진만 하던 채모조가 반대로 뒤로 몸을 날리면서 거리를 유지하며 두 팔을 휘둘렀다.

쉬식!

카칵!

채모조의 날카로운 손톱이 사내가 착용한 호완을 뚫지 못하고 겉가죽만 긁었다.

가죽 같은 건 쉽게 찢어발길 수 있는 예리함을 가진 손톱이었음에도 그것이 막힌 것은 사내의 두 팔에 흐르는 강기의 빛무리 때문이었다.

“저 백두기가 내 스승님이다.”

소적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앞발로 땅을 구르는 순간, 그의 신형이 훨씬 더 빨라진 속도로 채모조를 향해 쇄도했다.

콰앙!

그 순간, 하늘에서 백두기가 오규에게 터뜨린 일격에 의해 터진 굉음에 채모조가 움찔 놀랐다. 그러면서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이익!”

날아드는 손톱을 세운 오른손을 보며 소적문이 권강을 담은 주먹을 휘둘렀다.

우드득!

“크아악!”

오른손이 으스러지면서 상상도 못 할 고통이 팔을 타고 엄습해왔다.

비명에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 속 두 눈에 소적문이 스스로 백두기의 제자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탈혼갑을 전신에 두른 안효철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 순간 오랫동안 내재하였던 공포감이 떠오르면서 생존본능이 살육본능을 앞질렀다.

채모조는 왼팔로 소적문을 위협하면서 급히 뒷걸음질 치듯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즉각 전장에서 달아나기 위해 땅을 디딘 발을 축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돌아선 채모조의 두 눈에 하소정의 모습이 잡혔다.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으나 제빛을 찾은 동공 속엔 복수의 열의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으니 그것이 첫 번째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번쩍거리는 검광을 발견한 것은 그보다 한 박자가 늦어진 시점에서였다.

서걱!

하소정의 검광이 채모조의 목을 갈랐다. 여성의 머리보다 쪼그라든 채모조의 작은 머리가 하늘을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공처럼 땅에 떼구루루 굴렀다. 아직 생명력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모조의 눈빛이 담아낸 풍경은 거대한 그림자와 발바닥이었다.

쿵! 콰직!

충격을 받고 뒷걸음질 치는 오규의 발바닥이 지면을 딛는 순간,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떨어진 채모조의 머리통이 완전히 으깨져 버렸다.

지금으로선 그 끔찍한 소음이 눈물을 훔치면서 다급히 장학에게 달려가는 하소정에겐 아주 작은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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