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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70화 (370/432)

370화 - 제69장. 신마대전(神魔對戰) 상편(上篇) (5)

* * * *

팽팽한 전투였지만, 광혈신마 혁무술을 상대로 백두기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장 내를 관통하자 적멸당과 백무당은 사기가 크게 올랐다.

광혈마종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오규를 상대로 남궁평도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니 금방 승세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광혈마종은 저항이 생각보다 거셌다.

우두머리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기세가 꺾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흥분 상태에 이르러서 모두 두 눈동자에 붉은 흉광이 흐르는 것이다. 그것은 진도건이나 구마진의 그것과 달리 눈알 전체에 핏발이 가득 섰기 때문이었다.

그 흉성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건 남궁평도 마찬가지였다.

창궁무애검법 창응절위(蒼鷹切僞).

남궁평이 직전 검강을 활용한 일격으로 오규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노려 창궁무애검법의 절초를 펼쳤다.

직선의 찌르기와 곡선의 베기가 각각의 공격마다 변칙적으로 펼쳐져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초식으로 전장에서 중갑으로 무장한 적을 뚫기 위해 고안된 초식이었다.

카캉!

남궁평의 검이 빈틈을 제대로 파고들어 검 끝에 살갗이 갈라지는 느낌이 걸렸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뿐이지 이내 오규의 쌍부에 밀려 튕겨 나갔다.

타고난 근력, 광무혈폭마공으로 발달된 예민한 감각과 반응속도로 넓은 면적을 지닌 두 자루 도끼를 신체 가까이 타고 흐르듯이 휘두름으로써 효과적인 방어수법으로 발전했다.

천살광부라는 별호에 비추어 봤을 때, 공격일변도일 거로 생각했던 자가 훌륭한 방어초식을 가진 셈이었다.

하지만, 남궁평은 나름대로 오규에게 제대로 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오규는 비록 각각의 상처들이 얕더라도 온몸에 남궁평이 새긴 검상들로 인해 피투성이가 된 채 분노하고 있었다.

더불어 자신이 밀린다는 패배감이 뒤섞인 얼굴로 힘겨운 반격을 감행하는 오규의 모습은 전후사정을 모두 설명해주고 있었다.

“크하아악!”

비명과도 같은 기합을 뒤로하며 쌍부를 휘둘러온다.

부강이 광풍처럼 일어나서는 바위처럼 무겁게 덮쳐왔지만, 남궁평이 펼쳐내는 총체적인 공력의 무게는 오히려 오규보다 약간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타탕! 카앙!

반복되는 비슷한 공격 시도는 남궁평에게 전혀 위협이 아니듯 검강을 휘둘러 손쉽게 쳐내는 듯하지만, 남궁평도 나름대로 무리는 느끼고 있었다.

손아귀가 얼얼하고 다소간 축축하니 오규의 강맹한 공격 때문에 손바닥이 조금 터져나간 게 분명했다.

힘과 속도, 본능적인 움직임은 초식의 운용으로 얻을 수 있는 묘수는 적었으나 단순하니만큼 위력은 살인적이었다.

창궁무애검법 비파창가(琵琶蒼天).

통통 튀는 듯 경쾌하고, 빠른 비파의 선율처럼 빠르고 연속적인 검격으로 어둠을 걷어내 푸른 하늘을 열어낸다는 의미를 가진 절초로 반격한다.

따다다다당!

남궁평의 공세가 다시 펼쳐질 때면 오규는 다시 거리를 벌리면서 몸을 움츠리고 쌍부를 신체 가까이 휘둘러 두터운 칼날의 방벽을 세운다.

비파창가는 남궁평이 펼칠 수 있는 최속의 검초였으나 이번엔 빈틈을 파고들 예리함이 부족했다.

연속으로 가한 공격 횟수에 비해 취할 수 있었던 오규의 피는 적었던 것이다.

“츠아앗!”

연격의 빈틈을 노리고 오규가 다시 달려들면서 쌍부를 교차시켰다. 그러나 이미 남궁평이 움직임을 예측하고 뒤로 훌쩍 물러나 허공만을 갈랐다.

‘진도건이라면, 이혁성이라면 능히 저 틈을 파고들어 심장을 탈취했겠지…….’

남궁평은 진도건과 이혁성이라는 재능을 진심으로 좋아하면서 또 부러워하는 지점이 있었다.

엄밀히 얘기해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쾌검이라는 건 상대를 쓰러뜨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나 소모되는 체력과 기력, 정신적인 집중력 등에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처럼 명망 있는 상승검법은 강호무림에 여럿 있고 이것들을 일반론적으로 취급하는 건 부당한 일이겠지만, 여러 변초와 허초를 쓰면서 상대를 쓰러뜨리기까지 흐름을 완성해내야 하는 일반적인 검법은 초식 운용의 오묘함을 갖출지언정 목적에 맞는 효율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것은 상대적인 비교에 불과했다.

남궁평도 상대가 오규나 혁무술 같은 강자가 아닌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라면 능히 일검에 끝장낼 수 있는 쾌검을 구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달인을 가까이서 보았다면 그 누구라도 스스로 작아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잠깐이나마 상념에 젖어든 것을 오규가 파악하기라도 했는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몸을 활짝 열 정도로 쌍부를 뒤로 끝까지 당겨서는 동시에 교차 공격에 다시 연격으로 펼치는 공격이 이어졌다.

카앙! 카캉!

하지만, 그것은 남궁평이 일부러 열어둔 빈틈이었다.

초식의 속임수보다 심리적 부실함을 일부러 드러내어 상대의 큰 공격을 유도한다. 그리고 그때를 노려 남궁평도 숨겨놓은 한 수를 드러낸다.

‘아직 익숙지 않아 광혈신마에겐 무리수일 수 있어도 지금 시점에 이놈 정도라면 충분히 통할 것……!’

천무방의 지붕 아래서 남궁평은 천무경의 파천신공 벽력기공을 관찰, 연구하면서 남궁세가의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이 가진 내공의 광활한 포용력에 첨예하게 날을 세울 길을 연구하고자 했다.

그 길은 쉽지 않았으나 의외로 천무경이 남궁평의 시도를 눈치채고 조언을 남겼던 바, 끝내 단초를 마련해 완성해내고야 만다.

비록 파천신공처럼 광대한 외력으로 뿜어낼 수는 없었지만, 자신으로부터 최소 한 뼘 거리 안에서 스스로 뇌정과 같은 막대한 전격을 순간적으로 충진하여 떨쳐낼 수 있는 기공.

파천신공의 그것과 같이 푸르스름한 전격을 온몸에 두른 채 전신 돌격하여 단숨에 오규의 품으로 돌입한다.

천뢰무강기(天雷武剛氣).

쩌저정!

자연기 가운데 뇌기가 특별한 이유는 자체 위력이 폭발적인 면도 있지만, 여파 또한 즉각적인 최대 피해를 가하는 데 있었다.

막강한 공력의 폭발은 오규의 방어를 뚫어내어 중심에 빈틈을 만들어냈다.

남궁평이 소진한 공력도 그만큼 커서 뒤이어 똑같은 기운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한 정도로 회복에 약간의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규도 뇌력의 영향으로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 신경계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었다.

“타앗!”

그동안 내었던 기력의 절반 수준이라도 이번엔 변초나 허초의 운용 따위 없이 깔끔한 직선 찌르기의 쾌검식이면 치명상을 가하기에 충분하다.

푹!

“크악!”

이번엔 남궁평의 검이 오규의 두꺼운 근육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칫!’

남궁평이 내심 아쉬움을 삼켰다.

심장을 노리고 왼쪽 가슴을 찔렀는데 좀 더 외곽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대신 왼팔의 위팔뼈에 붙어있는 대흉근 조직이 칠할 가량 절단되는 바람에 오규가 왼팔에 일시 힘이 풀리며 도끼를 그만 놓쳐버렸다.

그때였다.

오규의 두 눈에 흐르던 붉은 흉성이 갑작스럽게 더 짙은 빛을 뿜어내었다. 붉은 흉성에 눈모양이 가려질 정도였다.

단순히 핏발 선 눈에 외광이 반사되어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요인으로 발광한 것이다.

‘위험……!’

왼손의 도끼는 떨어뜨렸지만, 오른손의 도끼가 남궁평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우수검인 남궁평으로서는 도끼날에 대해 등지고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할 수 없이 검을 놓고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궁평은 땅에 떨어진 다른 검이 눈에 들어오자 냉큼 주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오규을 노려보듯 찾는 시선에 작은 불안감이 스친다.

“뭐지?”

직전에 오규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흉광이 내심 불안감을 자극했던 것인데,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알아차리게 해준 것은 오규가 아닌 주변의 다른 전투들로부터였다.

“크악!”

“끄아악!”

전장에서 비명은 상시 존재하는 소음이었지만, 지금 들려오는 것들까지 일반적인 소음으로 취급할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남궁평의 시야에 한 싸움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검이 광혈종 마교도의 복부를 꿰뚫어 허리 뒤로 튀어나왔다. 딱 봐도 치명상이니 곧장 그 자리에서 무너져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검의 주인인 백무당원은 검을 손에서 놓쳤다. 마교도의 손아귀에 목을 붙잡힌 채로 들려서는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복부와 허리 근육의 손상이 심했을 터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그것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본능적으로 백무당원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는 마교도의 팔이 눈에 들어왔다.

옷깃이 다 찢어질 정도로 크고 두꺼운 기형적인 팔이 어찌 그것을 인체의 원형(原形)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목줄을 움켜쥔 손이 갑작스레 더 커지면서 머리를 통째로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우드득!

거리가 떨어져 있고 비명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도 한 사람의 두개골이 손아귀 속에서 손쉽게 으스러지는 소음은 어째선지 명징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단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광혈마종들 사이에서도 신체의 한 부분이 기형적이고 기괴하게 비대해지는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크아아아앙!

알 수 없는 괴성들이 동시에 광혈마종을 상대로 한 전장 전체를 휘감았다.

“이, 이게 대체……!”

남궁평은 크게 기겁했다.

광혈마종 마교도들이 일제히 그리고 제각각 다른 부위에 기형적인 신체 변형이 일어났다.

갑자기 변모해버리는 눈앞의 상대에 백무당원이나 적멸당원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끔찍한 몰골이 시선을 팔리는 순간 달라진 그것에 의한 공격이든, 혹은 멀쩡한 다른 부분에서의 공격이든 적들은 즉각적으로 덮쳐왔다. 급변한 사태에 당황하여 정신을 빼앗긴 자들은 반응조차 못 하고 목숨을 잃었으니 그 수가 전체 전력의 2할을 넘겼다.

그런 기괴한 형상의 생물체는 불교나 민간 설화를 따라 그린 벽화에서나 흥미롭게 보았을 일이고 그런 경험조차 없는 게 또 반수 이상일 것이다. 하물며 인간에게서 그런 몰골의 변화가 일어나는 걸 코앞에서 목격하는 충격은 단순히 그림만으로 익숙해져서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크와아앙!”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남궁평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쾅!

그 순간 엄청난 풍압이 내리꽂히는 느낌이 들더니 무시 못 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땅바닥을 굴러 자세를 잡는 남궁평의 동공에 끔찍한 몰골을 한 오규의 모습이 담겼다.

머리 세 개는 더 커진 키와 그것에 비례해 거대해진 육체.

흉근 손상으로 제대로 못 쓸 것 같던 왼손에 어느새 도끼가 다시 들려있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등의 날갯죽지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두꺼운 팔이 어깨 너머로 튀어나와 움직이는 데다가 특히 흉측하게 커진 머리통 안에서도 이마에 또 하나의 눈이 돋아나 있으니 눈앞에 모든 것들이 납득될 리 없었다.

“크와아앙!”

오규가 다시 한번 몸을 펄쩍 뛰면서 남궁평을 덮쳤다.

콰쾅!

그 기세가 어찌나 흉맹한지 남궁평도 검강으로 반격하려다가 다시 몸을 옆으로 날려서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남궁평은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아차!’

땅을 내리찍었을 때 오규의 붉은 흉성으로 가득 찬 눈이 찾은 것은 시야에서 놓친 남궁평이 아니라 시야에 들어온 전장의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남궁평을 덮쳤던 기세 그대로 즉시 몸을 펄쩍 뛰니 순식간에 전장 한가운데 떨어졌다.

“끄아아악!”

“살려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고통에 찬 비명이 아니라 공포에 질린 비명이었다.

남궁평은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두 다리, 두 팔이 덜덜 떨린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선 세상이 갑자기 지옥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나머지, 뇌가 생각과 판단을 멈춘 것이었다.

크와아아아앙!

그때였다.

오규가 포효하던 그 울음소리보다 더 거대한 울음소리가 전장의 다른 중심에서 터져 나왔다.

남궁평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시선 끝에 마괴(魔魁)가 하늘을 노려보며 격렬하게 포효하고 있었다.

그 마괴는 범과 소를 섞어놓은 듯한 얼굴을 가졌으며 붉은 가죽 위로 검은 줄무늬가 이마부터 몸 전체에 갈빗대처럼 뻗어있었다. 육체는 기형적으로 커진 오규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으니 이마 양쪽엔 산양의 뿔이 두껍고 묵직하게 달려있었다.

등엔 찢어져서 기능을 할 수 없을 듯한 박쥐의 날개가 달려있었으며 두 팔다리는 거대한 성성(猩猩)이과의 그것과 닮았는데 두껍고 뾰족한 검은 발톱이 섬뜩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 마괴가 날뛰기 시작하자 괴물로 변한 마교도도, 오히려 인간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백무당원, 적멸당원들도 제멋대로 날아오르는데 일격에 절명하였는지 사지가 제멋대로 돌아가고 꺾여있었다.

“후웁!”

급히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창궁대연신공을 운기한다.

굳어버린 몸이 풀려감을 느끼지만, 머릿속 혼란함은 사라지지 않고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요란하게 울려댔다.

지옥이 열렸다.

쾅!

그때 어디부터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 남궁평의 시야에 오규의 머리통에 권강을 때려 박는 백두기의 모습을 발견했다.

“저기부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남궁평이 두 다리는 천풍신법을 펼치며 날아오르고 장검엔 검강을 피워내며 전장의 하늘을 날랐다.

“흐아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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