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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67화 (367/432)

367화 - 제69장. 신마대전(神魔對戰) 상편(上篇) (2)

혈마의 등장에 주백자와 조강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특히 빌게포첸은 아뢰야식의 바다에서 마주했던 존재가 바로 이 혈마임을 깨닫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냉소평은 직접 발단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혈마가 저렇게 한 사람의 몸 안에서 영혼으로 실재하고 있다는 걸 그들 뒤에서 두 눈으로 보게 되어 몹시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최초 마성을 마주하여 수용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와 비슷한 기분과 감각이 다시 느껴지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미치겠군. 본좌의 피를 끓게 만들어. 저 존재와 제대로 싸우고 싶은데 그럴 상황은 아니니 옆에서라도 싸우며 보는 것도 좋겠고. 이상하게 지금 기운이 넘쳐흐르는 기분인데, 진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이거?’

정작 혈마는 그런 빌게포첸이나 내적갈등에 휩싸인 냉소평에게는 하등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나시드와 알리 라 다바스.

두 존재가 이야기하는 것들로부터 오는 혼동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진도건도 알고 있었다.

조강선을 따라서는 ‘이름없는 진리’의 대리자 나시드를 만나 그가 하는 말이 곧 올바른 길이라는 것처럼 인지하게 되었는데 불과 몇 시간 뒤에 주백자를 만나서는 나시드가 악신처럼 묘사한 알리 라 다바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듣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주백자와 조강선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으나 그럴 틈을 찾지 못하고 지금 이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진도건과 혈마는 심중에서 교감하며 한 가지 합의점에 이르렀다.

두 신이 각자가 묘사하는 길의 형상은 사뭇 달라서 무엇이 맞는지는 모호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적어도 진도건과 혈마에게 같은 길로 인지되고 있다면 일단 전진해서 맞닥뜨리는 것들을 직접 보고 생각하고 결단하여 자기들에게 다가올 운명의 결과를 맞이하겠노라고.

혈마의 투덜거림을 들은 주백자는 그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배꼽을 붙잡고 호탕하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맞다 맞아. 영감쟁이들이 말이 참 길었어.”

그러면서 주백자가 양옆을 보면서 두 손을 흔들어 보이며 멀리 떨어지라는 시늉을 했다.

“각자 가까이 있으면 방해나 될 테니까 알아서 좀 떨어져서 움직이자고. 그래도 저놈들 몸이 꽤 튼튼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것이야. 힘들면 소리치고. 노부가 외면하지 않을 테니까.”

주백자가 너스레를 떨면서 얘기하자 혈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가자.”

“그러지.”

진도건도 피식 웃으면서 가장 먼저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허, 저 녀석이?”

“껄껄껄!”

“허허허!”

주백자가 어처구니없어함에 조강선과 유변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냉소평과 일월교 수라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가 진도건의 뒤를 따라 각기 다른 쪽으로 산개하면서 달려오는 괴물들을 맞이하러 날아갔다.

콰콰콰콰!

이내 기의 폭풍과 검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진도건이 조강선이 안내한 균열에서 쓰러뜨린 마물들보다 훨씬 강력한 놈들인지 괴물들의 피륙이 두껍고 질겨서 쉽게 잘려 나가는 법이 없었다. 기공에 대한 저항력도 갖출 정도인지 검기만으로 관통시킬 수 없음을 모두 금방 알게 되었다.

이내 강기의 빛무리가 사방에서 번쩍거리자 또 한 번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월수라 주율이 입을 열었다.

“생긴 게 흉측하고 움직이는 것만 꽤 빠르다뿐이지 짐승이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그냥 지켜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저희도 가시죠. 후딱 끝내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너희도 힘이 끓어오르느냐?”

냉소평이 대답에 뜸을 들이다가 되물어보았다.

“우리만 쏙 빼놓고 지들끼리 싸우고 있는데 이거 뭐 천마신교 출신은 따돌리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싸우고 싶어서 힘을 주체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요.”

“빌게포첸은 싸우고 있잖나?”

“아, 그런가? ……성혈신마는 반쪽짜리니까 그런 거 아닐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주율이 진중한 목소리로 하후무에게 충고를 던졌다.

“그래도 성혈신마다. 자중하도록.”

빌게포첸의 특기인 마라대수인은 삼대수라 중 누구도 정면으로 맞붙어서 멀쩡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일월염황성혈을 구주삼강이라 구분 짓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콰콰콰앙!

마치 그들의 대화를 듣기라도 했는지 거대하고 탁한 손바닥이 괴물들 사이로 번쩍번쩍거리면서 굉음을 요란하게 떨쳤다.

하후무도 그걸 보자마자 어깨를 움찔 떨었음은 물론이었다.

반면 주율은 냉소평의 방금 전 질문의 요지가 곽비와 하후무가 이해한 방향과 달랐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냉소평의 뒷모습으로부터 뭔가 어렴풋이 느끼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선 힘이 끓어오르십니까?”

냉소평이 주율을 흘끔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힘이 폭주하는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어쩐지 몸 상태가 몹시도 가볍고 활력이 넘치는구나.”

“다녀오십시오. 저희는 정리가 되길 기다리겠습니다.”

“어? 저도…….”

“넌 가만히 있어.”

냉소평은 하후무를 질책하는 곽비를 슬쩍 보고 다시 주율에게도 눈길을 준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며 입을 열었다.

“그래, 몸 좀 풀어야겠다. 하지만, 졸개들은 재미없으니 저쪽 대장을 노려볼까? 지옥의 상장의 무력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야.”

슈웅!

냉소평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괴물들과 주백자, 진도건 등이 난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을 코앞에 두게 된 순간, 있는 힘껏 두 발로 지면을 굴렀다.

퉁!

진각음과 함께 냉소평의 신형이 전장의 하늘을 갈랐다.

베르트랑 백작은 전장이 예상과 다른 흐름으로 전개되자 적잖이 당황해하고 있었다.

알리 라 다바스가 선택한 인간들이니 분명 범상치 않으리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싸우는 전체적인 태세들은 마치 하위 신들이 지옥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듯한 인상이었다.

“인간들 주제에 어찌 저만한 힘을……. 응? 하! 이 건방진!”

그렇게 전장을 바라보던 베르트랑 백작의 시야에도 그를 향해 날아오는 냉소평을 발견했다.

어떤 마법도 없이 하늘을 날아오는 인간이 더는 놀랍지 않았다.

베르트랑 백작이 기다란 송곳 같은 검을 뽑아 휘두르자 검고 뾰족한 기동들 수십 가닥이 냉소평을 노리고 솟구쳤다.

타타탕!

베르트랑 백작은 여지없이 꿰뚫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소환한 가시들이 한점을 중심으로 비틀리고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광경에 베르트랑 백작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카드드득!

비틀리고 일그러졌던 가시들이 일순간 산산이 부서지면서 소용돌이치듯 한 점에 모였다. 그리고 그 모든 기운의 합을 두 손안에 모은 냉소평이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월혼극마공 음양반합혼천격(陰陽反合混遷激).

“죽어 그냥.”

냉소평이 두 손을 뻗자 베르트랑 백작을 향해 음양기의 소용돌이가 쏟아졌다.

시야 속 하늘을 가득 채운 폭풍을 바라보면서 베르트랑 백작이 분노에 휩싸인 채 이를 빠득 갈았다.

“다바스……!”

콰콰콰콰쾅!

* * * *

광혈마종 사수인의 수좌인 천살광부 오규의 쌍부가 광풍을 일으키면서 사위를 휩쓸었다.

수적열세인 상황에서 주변이 아군보다 적들이 많은 상황이라서 전투를 어지럽히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남궁평의 제왕검형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카카카칵-!

남궁평의 동작 하나하나에 노도와 같이 일어나는 실재적 검영들이 쏟아지면서 바람결 사이를 어지럽혀 미풍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동시에 남궁평의 신형이 약화된 광풍을 뚫고 들어가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의 강맹한 검기(劍技)를 떨쳐냈다.

카캉-!

“크윽!”

정말 날카롭고 빠르게 들어오는 바람에 쌍도끼를 당겨 간신히 막아냈지만, 전해오는 충격은 오규를 당황하게 하고 있었다.

오규는 마천경의 권능 아래 공력의 상승을 맛보면서 일반 백무당원들을 상대로 신나게 난장을 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아 갑자기 상대가 바뀌면서 완전히 발이 꽁꽁 묶였으니 그 상대가 바로 남궁평이었다.

남궁평은 원래 백무당 선봉에서 광혈신마 혁무술과 충돌했었다. 그러나 그 대결구도는 상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원래도 혁무술의 무공 수준은 남궁평에 근소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마천경으로 공력이 폭주하자 작게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그나마 남궁평의 무공이 기초부터 탄탄하게 쌓아 올려 경지를 이루었기에 망정이었지 내공이나 무공에 대한 이해, 경험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좀 부족했다면 백두기가 일찍 당도했음에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여기저기 옷가지가 터져나가 피멍이 그득한 신체가 드러나고 내상을 입은 듯 입가로 혈흔이 남은 남궁평의 행색이 바로 그러한 고초가 사실이었음을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궁평은 오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것이 천무방의 한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남궁평의 실력이었으며 멸문한 남궁세가의 진전을 그의 몸에 부활시킨 자의 격이었다.

중요한 것은 백두기와 혁무술의 대결이었다.

중앙의 말도 안 되는 폭풍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반대쪽의 충돌을 능가할 정도로 두 절대고수의 강대강 대결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쾅! 쾅! 쾅! 쾅! ……꽈앙!

백두기 대 혁무술.

적멸신공 대 광무혈폭마공.

주먹 대 주먹.

말 그대로 순수한 힘의 대결.

“크아아아!”

“하아압!”

콰앙!

그 거체들에 막대한 공력이 실린 그만한 크기의 주먹들이 서로의 좌측 대흉근을 때렸다.

그 무게는 울려 퍼지는 굉음으로 여실히 느껴졌다.

가까이서 누군가 그 충돌을 보았다면 분명 자기 가슴이 매몰되어 심장이 터져나가거나 구멍이 뚫려버리는 상상을 했을 게 분명하다.

그만한 충격에도 터져나가 소실되어버린 옷가지들과 그렇게 드러난 단단한 흉근은 그저 떨림만 보일 뿐 주인의 심장을 지켜내는 듯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입가에 신음을 흘리고 있었으니 분명 가벼운 충격이라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주춤하는 것도 잠깐 떨어졌던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순식간에 좁혀졌다.

적수공권으로 오고 가는 힘의 공방 속에서 먼저 변화를 가져간 것은 백두기였다.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려는 순간, 백두기의 주먹이 활짝 펼쳐지더니 뱀이 미끄러지듯이 혁무술의 주먹을 흘리면서 팔을 휘감았다.

뿌득!

혁무술의 두꺼운 팔이 누구에게 붙잡히기 쉬울 정도가 결코 아님에도 비견될 정도로 거대한 신체를 자랑하는 백두기의 옆구리에 꽉 붙들려 꼼짝도 하지 않는다.

혁무술이 주춤하는 순간 백두기는 어느새 손가락 끝만 오므린 채 손바닥을 펼친 우장을 내지르고 있었다.

적멸신공 파천황(破天荒).

그것은 하나의 장법으로 설명되는 이름이 아니다.

천혜의 단단함을 자랑하는 금강석의 방벽도, 얽히고설켜 질기디질긴 조직도 능히 뚫어낼 수 있는 적멸신공 고유의 기류 형태를 설명하는 이름이다.

주혈을 따라 흐르는 기운이 세맥을 통해 수백 가닥으로 갈라졌다가 종심을 향해 회전시켜 모은다. 송곳처럼 모이는 그 기류에 날카로운 진동을 더하니 송곳의 배면으로 날카로운 갈고리가 만들어지는 형국, 이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백두기의 거대한 공력에 힘을 받아 파멸의 기류를 형성한다.

섬뜩!

광무혈폭마공으로 예민해진 신경이 혁무술의 뇌로 빠르게 경종을 울렸다.

날카로운 반응속도에 힘입어 왼팔을 단단하게 접은 채 백두기의 장력이 다다르기 직전에 몸통을 가로막았다.

쾅!

외부로 울려 퍼지는 굉음은 단발성이었지만,

콰드득!

몸 안에 울려 퍼지는 섬뜩한 소음과 불안한 충격을 혁무술은 숨길 수 없었다.

“크윽!”

혁무술이 급히 뒤로 뛰어 물러나면서 왼팔을 움직여 살폈다. 다행히 무리 없이 뜻대로 움직이는 듯하여 조금 안심했지만, 마음에 불안함을 더하는 기분 나쁜 느낌이 절로 화를 돋우었다.

“그딴 개수작질이 이 혁무술에게 통할 것 같으냐!”

혁무술이 두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바로 튕겨 나가듯 뛰어오르더니 백두기를 향해 두 주먹의 연격을 쏟아냈다.

주먹만 한 우박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듯이 떨어지자 백두기도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콰쾅-, 콰콰쾅!

보법을 활용해 피해낼 건 피해내면서도 덩치가 큰 만큼 광범위한 공격에 피할 수 없는 것들을 막아내면서 충격파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그러다 다시 혁무술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을 노려 낮게 파고들면서 그도 주먹을 연속으로 내질렀다.

혁무술도 백두기가 그러한 접근을 해올 거라는 걸 예측하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반응하였다. 반 보가량 몸을 뒤로 빼면서 백두기의 우권을 어깨로 흘림과 동시에 주먹을 내질러 맞부딪친 것이다.

쩌엉!

공간이 찢기는 듯한 굉음과 그것을 뛰어넘는 충격이 온몸에 전해지며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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