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화 - 제68장. 옥문관 개전(開戰) (3)
콰쾅! 콰콰콰쾅!
천무경과 단지운의 격돌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제어되지 않는 광풍이 연달아 휘몰아쳤고 자칫 목숨마저 위협할 수 있을 기운의 파편이 제멋대로 비산하였다.
당연히 창천단과 백무당 가까운 쪽의 대오는 금방 무너져 혼비백산했다. 자칫 저 끔찍한 폭풍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갈가리 찢길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구치상과 남궁평도 급히 부하들을 지휘하여 거리를 벌리도록 하려는데 쉽지 않았다.
“아버지……!”
천서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단지운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에서조차 단지운의 전력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그의 무력이 얼마나 거스를 수 없는 수준의 것으로 인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단지운과 천무경의 격돌은 그녀의 눈에 처음부터 전심전력에 가까운 수준으로 보여졌기에 더욱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저 어린 게 천마신교 교주란 말인가? 정말 가공할 힘이로구나!”
곁에 있던 백두기도 단지운이 보여주고 있는 마공의 위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심정은 백두기보다 더했다.
이곳에 있는 무림인들은 저마다 재능과 노력으로 쌓은 실력을 인정받아 천무방이라는 사파 최대 문파에서, 그리고 각자의 문파의 실력자로 낙점받아 창천단이라는 정사연맹의 유일무이한 무력단체에 소속된 자들이었다.
그런 가운데 또 운이 좋게도 그들은 아주 가끔이나마 천무경이나 구치상 같은 절대고수들의 신위가 어떤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화경의 고수들이 보여줄 수 있는 무공의 위력이란 어느 정도인지 인지의 한계점이 설정되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모두는 완전히 착각에 빠진 채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훗날에 이때의 전쟁과 오늘의 대결을 기억하는 한 생존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언제부턴가 화경란 경지가 생겨나며 이를 입신의 경지라고 하기 시작하였지. 아니, 그것은 입신을 빙자한 수준에 불과했어. 오직 파천무봉 천무경, 강호무림의 역사에서 오직 그자만이 입신의 경지에 들었던 게야. 아니지. 아니야. 그는 틀림없이 완전자(完全者)였어.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어쩌면 부처가 된 석가모니처럼 또는 태상노군이 된 노자(老子)처럼 인간의 자리에서 신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틀림없어! 그때 보았던 그의 신위는 분명 그런 수준이었어. 그리고 천마신교 교주 천마 단지운은 말 그대로의 이 땅에 강림한 천마이자 마신(魔神)이었지!”
세상에 신이 강림하여 중생들에게 자신의 후광만 비춘다면 그 존재는 그저 성스럽고 신비로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어떤 기적적인 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켜 체감케 한다면 중생들은 신을 두려운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공포(恐怖).
상식이 정해놓은 ‘절대’적 기준마저 뛰어넘은 두 절대고수의 충돌을 바라보는 이들을 반강제적으로 공포의 지배 아래 둔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들의 싸움과 같기에.
눈에 초점이 풀리고 몸은 굳는다.
공포에 지배당한 이성이 진원이 되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한다.
마비된 사고는 눈앞에 위험이 닥쳐도 땅에 발을 붙이게 한다.
천무경이 어떤 수준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래서 그와 비슷한 수준의 적과 상대한다면 어떤 여파가 생길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백두기가 아니었다면 창천단과 백무당의 일부들은 크게 휘말려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정신차려!”
백두기의 일갈이 두 신의 싸움이 일으키는 굉음을 뚫고 일대를 관통했다.
그의 적멸신공(敵滅神功)으로 발휘하는 공력은 모든 부분에서 어떤 저항이든 뚫어낼 수 있는 밀집된 기력과 관통력을 자랑한다.
공력을 실은 호통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천무경과 단지운이 일으키는 굉음을 뚫고 모든 이의 머릿속에 백두기의 외침이 닿으니 일시 정신을 차리면서 근접한 위험들을 늦지 않은 시점에 비로소 피하기 시작했다.
구치상도 백두기의 음공 수준의 호통에 깜짝 놀랐다.
‘호사가들이 천하오절 다음은 언제나 천무방의 대호거궐 백두기만을 거론한 이유를 알겠구나. 분명 천 맹주의 그늘이 아니었다면 그가 오절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야.’
그도 몸이 굳어버린 창천단원들을 깨우기 위해 공력을 실어 몇 번을 소리치곤 했지만, 직접 몸을 붙잡고 흔들어 깨우는 경우를 빼면 계속해서 굉음에 목소리가 묻혀버리곤 했었다. 그런 그조차 못한 일을 해낸 것에 대하여 순수하게 탄복한 것이다.
공포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되자 무림인들은 안전거리를 확보하면서 두 절대자의 대결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눈으로 쉬이 쫓아갈 수 없는 팽팽한 경합이었다.
그래도 평생에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대결을 관전할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모두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럴 만한 대결이었기에 그들도 싸워야 할 적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천무경과 단지운, 두 사람의 대결이 이뤄지는 광대한 현장에서 창천단, 백무당, 적멸당은 원의 한쪽 면을 둥그렇게 감싸듯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래도 양익을 담당한 창천단, 백무당이 전장에서 선봉, 일진(一陣)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두 집단의 수장들을 포함한 누구보다 먼저 이상을 느낀 것도 역시 백두기였다.
“적들이 몰려온다! 모두 전투 태세!”
백두기의 외침이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면서 자기 적들이 아닌 엉뚱한 곳을 향해 한 눈 팔고 있던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장내의 모두는 옥문관에서 주둔하던 적들이 어느새 상당한 거리까지 접근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저기까지……!”
“칫, 우리한테도 올 게 오는군!”
양익을 이룬 창천단과 백무당의 무림인들이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어떤 적들이 자신들 쪽으로 오는지 집중하면서 멀리서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적들의 규모가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집단.
백무당이 마주할 듯한 적들의 좌익은 그 수가 일천이 채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반면 창천단과 마주할 듯한 적들의 우익은 그 수가 두 배는 넘어 보였다.
적들의 좌익은 뭔가 시끌벅적하여 미쳐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기분 나쁜 마기와 광기가 동시에 선명히 느껴지고 있으니 필경 광혈마종이 틀림없었다.
특히 선두에서 광혈신마 혁무술과 천살광부 오규의 거대한 덩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반면 우익에선 그런 특징적인 기세가 거의 없이 오롯이 전쟁을 마주한 자들의 투기만이 가득했다.
창천단원들에겐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저 적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단주로부터 공유받을 틈이 없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의외로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느낌만 받을 뿐, 어찌 됐든 천마신교의 마교도라는 인식 자체는 공유하면서 싸울 태세를 갖출 뿐이었다.
오히려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된 백무당과는 다르게 적룡단과의 싸움에서 큰 피해를 입은 창천단은 약간의 열세를 맞이하게 되자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그런 창천단 안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만이 남다른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최현걸은 적들의 규모나 특징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 위로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 걸 보게 되면서 구치상을 제외하면 창천단에서 가장 먼저 적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야, 영 도사야. 저거 틀림없이 혈마종이다. 저놈들 후열에 시뻘건 머리카락 휘날리는 놈이 바로 마교에서 내세웠다던 혈마모조품이 틀림없어.”
“선두엔 보이지 않는데?”
“꽁무니에 숨어있더라. 큭큭큭! 그게 혈마 모조품 수준이 뭐 그렇지. 잘 됐어. 저놈 우리가 맡자.”
“무리야. 그래도 정말 혈마로서 다른 여덟 명의 신마들과 동급으로 인정받고 있다면 일신의 마공도 틀림없이 강하겠지. 게다가 그런 자라면 구 단주께서 바로 알아보시고 직접 상대하실 테니 우리한테 기회는 없을 것이다.”
“칫, 그런가? 놈, 운이 좋았네.”
“후후!”
최현걸의 투덜거림에 영은성이 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도 최현걸과 마음은 비슷했다.
그동안 두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비록 그 상대가 혈마라는 이름을 칭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구주신마의 말석 신참이라면 적어도 둘이 힘을 합쳐서 꺾을 수 있는 상대 정도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모두 준비! 놈들이 오면 힘으로 찍어눌러 저 죽음의 공간 속으로 밀어버려라!”
“우오오오!”
구치상이 칠성도를 뽑으며 소리치자 영은성과 최현걸은 물론 창천단 전원의 호기로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칠성도존 구치상은 언제나 창천단의 선봉이자 동시에 방패였으니 그의 외침에 반응하는 단원들의 함성엔 그 출신이 정파도, 사파도 무관하게 신뢰가 가득하다.
끓어오르는 집단의 투기와 함께 분출되는 공력의 열기.
콰콰콰콰콰……!
창천단과 백무당, 혈마종과 광혈마종이 끔찍한 폭발이 쉴 새 없이 터져나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중앙의 전역(戰域)을 사이에 두고 양측으로 갈라져 각자의 적들을 향하여 내달린다.
어쩌면 오늘 이 싸움을 위해 달려왔을지 모른다.
죽음은 이미 각오한 것.
강호무림을 이루는 광의의 중원은 이들의 중요한 터전.
그곳을 침탈하려는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 이 자리까지 온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
전쟁이다!
싸워라!
공통의 적을 물리쳐라!
두두두두!
경공을 펼쳐도 숨길 수 없는 집단의 발 구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선봉에 선 구치상과 남궁평이 각각 도강과 검강을 일으키는 순간,
후웅……!
거의 동시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모두를 관통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모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쩐지 세상이 어두워졌다는 것.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본 자들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야 만다.
일식이라도 일어난 듯 어둠에 휩싸인 하늘을.
굳이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모두는 깨닫는다.
어느샌가 온몸을 휘감고 있는 마기의 끈적함을, 그리고 동시에 다가오는 마교도들의 기세가 폭주하고 있음을.
오감을 사로잡은 어떤 영향을 인지하는 그 잠깐 사이에 마침내 서로는 얼굴을 알아볼 만큼 가까워졌다. 그리고 각각의 선봉에서 거대한 공력의 예기가 서로를 향해 휘몰아쳤다.
콰콰콰쾅!
경력의 폭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마침내 서로의 병기들이 격렬하게 얽혔다.
그 첫 충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백무당이었다.
“끄아아악!”
여러 비명이 겹쳐서 마치 한 사람이 내지르는 듯한 끔찍한 비명이 백두기와 천서은의 귀에 들어왔다. 절대자들이 뿜어내는 굉음을 뚫고 들려올 정도였으니 적멸당원들도 깜짝 놀라 우측으로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기세가 꺾였다. 적들의 기세가 상승했어.”
백두기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중얼거리자 천서은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어둠! 이 느낌! 단지운이 벌인 짓이에요! 자기를 중심으로 마교도들을 영향력 아래 두어 마기를 폭주시킨 거예요!”
백두기는 천서은의 설명을 곧바로 이해했다.
두 사람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백두기는 과거 홍천환 사건에서 남태환과 휘하 천혼, 지혼당을 끌고 천무방에서 화산을 향해 남하하던 중에 환도신마와 환도마종을 맞닥뜨리면서 그들의 환마강진을 경험했었고, 천서은은 청성산에서 단지운이 싸움 막바지에 알 수 없는 능력으로 지금과 같은 환경을 만들었었다.
그때 진도건의 혈마기도 함께 폭주하면서 당시 단지운은 의도했던 바가 틀어져 버린 셈이었으나 혈마가 밖으로 체현될 정도로 마기가 폭주하여 두 사람이 격렬하게 맞붙었던 걸 모두 지켜봤던 천서은이 그때의 기억을 잊을 리 없었다.
한순간 어찌 된 상황인지 깨닫게 된 순간, 백두기가 좌우익 상황을 번갈아 살피면서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좌익에 창천단이 맞닥뜨린 적들에게선 그런 기운의 폭주가 덜 느껴지고 있었으니 당장 지원이 급한 건 남궁평의 백무당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적멸당은 백무당을 우선 지원한다!”
“우오!”
백두기의 외침에 적멸당원들이 반응하며 모두 우측으로 몸을 돌린다. 그리고 천서은도 그들을 따라가려고 하는 바로 그때였다.
콰아앙-!
일순간 온 신경을 자극할 정도로 알 수 없는 섬뜩한, 또한 익숙한 느낌이 좌익 창천단 쪽에서 느껴지며 동시에 폭발과 굉음이 터져 나왔다.
백두기와 천서은을 비롯한 적멸당 모두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피처럼 붉은 마기가 강기의 저항에 부딪혀 하늘에 닿을 듯 치솟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기에 백두기 등 수장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천마신교 측 새로운 집단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혈마종 그리고 저 피처럼 붉은 마기의 주인일 혈마 구마진이란 남자의 존재.
진도건이 겹쳐 떠오르게 할 정도로 폭주하는 붉은 혈마기는 다른 적멸당원들도 방향을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칠 정도였으니, 진도건과 연인 사이인 천서은의 입장에선 감정이 얼마나 격해질 수 있는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