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62화 (362/432)

362화 - 제68장. 옥문관 개전(開戰) (2)

“새로운 적들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까?”

남궁평이 나서서 물었다.

광혈마종은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적들이었으나 종산을 넘어왔던 적들은 행색에 통일성이 부족하여 알아보기 어려웠기에 아직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하오문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알려주겠네. 과거 혈마 원건을 추종했던 세력이 청해 대통현이란 곳에서 마을을 이뤘다고 하더군. 그게 혈마종인데 구마진이란 자가 혈마가 되어 그 세력을 이어받았다고 하네. 전쟁에 중립적인 집단이었던 것 같은데 드디어 수장이 생겼으니 전쟁에 합류하는 모양이다”

“그래봐야 진도건 따라쟁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남궁평의 말을 듣고 천무경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혈마라는 이름이 끄는 주목도가 있었지만, 천무경은 일부러 더 거론하지 않았다. 아무리 마공이 속성으로 성취를 이룰 수가 있다고 해도 급조된 고수라면 한계가 분명하리라 여긴 것이다.

대신 그는 전쟁의 흐름 자체에 주목했다.

“마교도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니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전력이 노출된 채로 계속해서 달려왔소. 적들이 저 두 집단만으로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소. 환도마종은 환술로 모습을 쉽게 감출 수 있으니 아무리 탁 트인 평원이라고 해도 기습엔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오.”

“혈마나 광혈신마 상대는 어찌하면 되겠소?”

“마교도 양익으로 마주할 거로 생각한다면 마찬가지로 구 단주님과 남궁 당주가 한 사람씩 맡으면 될 것이오.”

“흐음, 나도 적룡신마에게 그리 애를 먹을 줄은 몰랐소. 남궁 당주를 얕볼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만히 얘길 듣고 있던 백두기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이 당주가 합류해있으면 좋았을 텐데. 평 자네와 호흡도 잘 맞을 테고.”

“그들이 옥문관까지 닿았다고는 들었는데 이후로는 소식이 끊어졌군요. 마교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의 상황이었으니 잘못되었을 리는 없겠지만…….”

“유군처럼 움직이기로 했으니 어쩌면 벌써 마교 본산까지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백두기가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농담처럼 던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천무방 삼당의 한 축을 맡은 사내로서 잘못되었다는 소식이라도 들었다면 천무방 사기가 크게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평원 위 전투를 앞두고 어차피 큰 계획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수장급들이 모여 이런저런 농담도 곁들여 얘기를 나누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긴장감을 적당히 덜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또 수장들 눈치 보지 않고 단원, 당원들이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한 배려이기도 했다.

중앙에서 창천맹주를 비롯한 창천단주와 두 당주, 부당주들이 이따금 웃음을 흘리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일말의 불안을 날려 보내는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평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음?”

수장들이 거의 일제히 반응하면서 고개를 들어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바로 옥문관 방향의 제법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강렬한 기백과 강대한 마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감이 뛰어난 몇 사람은 그것이 앞서 거론되었던 환도마종의 기습 같은 것 따위가 아닌 오직 한 사람에 의해 발현된 것임을 즉각 깨달을 수 있었다.

“신마인가?”

“신마?”

구치상과 백두기가 거의 동시에 의문을 표하면서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더 움직이지 못했는데 어느새 천무경의 거대한 등이 그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니.”

천무경은 구치상과 백두기의 의견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전방에 칠흑의 마기가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폭출했다. 그리고 천무경도 즉시 앞으로 튀어나갔다.

텅!

땅울림을 뒤로 하며 천무경의 신형이 무림인들의 머리 위로 날았다.

발아래에서 감지되는 무림인들의 혼란을 신속하게 지나쳤다. 어느새 머기의 폭풍이 머리 위를 덮치게 되는 순간, 천무경도 두 손을 앞으로 펼치며 파천신공의 공력을 뿜어냈다.

콰콰콰콰!

사천여 명에 이르는 무림인들 대부분 아침이 순간 밤으로 뒤집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마공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그러나 푸른 번개가 그 어둠을 타고 하늘 전체로 뻗어나가는 순간 천둥의 굉음과 함께 흩어지면서 다시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보통의 무림인들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공력의 충돌이었다.

한순간에 낮과 밤이 반복해서 뒤바뀌고 느닷없이 천둥번개를 떨치며 후폭풍의 여파가 일대를 휘몰아치니 평안했던 잠깐의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긴장을 한가득 끌어올려 버렸다.

그건 천무경도 마찬가지였다.

옥문관에 주둔한 마교도 무리에게서 완전히 떨어져나와 무림 전력의 앞에 여유롭게 홀로 나선 저 남자가 누군지는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천마신교 교주 천마 단지운.’

틀림없었다.

천무경도 다른 어떤 무림인들보다 앞으로 나와 두 발을 땅에 딛자 단지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짝짝짝!

“과연 대단하군. 파천무봉이라는 별호조차 무색할 정도 더 대단해.”

“마교주가 여기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창천맹주가 무림 군대를 이끌고 친정을 나선 마당에 천마신교의 교주가 직접 나와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소?”

“맞는 말이지.”

천무경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정사연합인 창천맹의 맹주가 직접 무림의 전력을 규합하고 자신의 문파까지 이끌어 전장에 나선다는 것.

그 행위에 천무경이 실은 의미는 명확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천마신교의 교주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하는 문제였고 천무경은 오직 자신만이 가능성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 빨랐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좀 더 나중의 일이 될 거란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마주치게 될 줄 알았네. 서른 줄의 젊은 나이임에도 마도 정점에 이른 남자로서 어떤 모습에 어떤 힘을 가졌을지 참 궁금했는데. 과연! 이란 감탄이 절로 나오는군.”

“천하오절 가운데서도 항상 첫손에 꼽는 자. 모든 무학에 있어서 완전에 가까운 경지를 추앙하여 붙은 파천무봉이라는 별호. 그것이 허명에 불과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내 기대가 헛되지 않은 듯하오.”

“나 정도면 충분하다 이건가? 자네의 그 대단한 자신감이 더 마음에 드는군. 하하하하!”

천무경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단지운은 천무경으로부터 강력한 힘의 파동을 느꼈다. 그의 거대한 그릇과 걸맞은 힘의 크기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지점까지 단지운도 처음 보는 강대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단지운이 바라왔던 일생의 대적으로서 적합한 수준과 자격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

단지운 자신의 인지를 충분히 충족하면서 끝내 그 안을 벗어나지 못하여 결국 승리의 영광을 놓칠 수가 없는 일생 최고의 흥미로운 유희!

“천 맹주, 당신은 내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적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날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가늠키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고 그런 수준의 상대도 처음이지만, 그것이 나의 승리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오.”

“자신감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라네.”

“후후후! 지금까지 여러 적을 상대해왔지만, 모두 시시하기 짝이 없었소. 특별함을 갖춘 상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내 한계를 건드리기엔 다들 역부족이었소.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면 바로 당신의 딸과 제자 두 사람을 상대했을 때였지.”

천무경의 눈빛이 반짝였다.

천서은과 진도건.

청성산에서 단지운이 차례로 상대했던 두 사람.

천무경이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깜짝 놀라고 그만큼 또 주목하여 분석했던 싸움이었다.

“물론 정확히는 진도건 그자로 한정하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지만, 둘은 이미 깊은 사이라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서로 상승작용을 잘 보여주더이다. 어쨌든 그땐 나도 뜻하지 않은 위험에도 처했고 어쩌면 그때가 살면서 유일하게 죽을 뻔했던 위기였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예외성이란 진도건이 가진 혈마라는 이질적인 존재 때문이었지 그것이 없었다면 당신이 그 두 사람을 다시 볼 일은 없었을 것이오.”

“아쉽군. 내 아이들에게 운이 조금만 따랐다면 이만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후후후! 그게 바로 잘못된 것이오. 예외적 사항에 따른 요행을 바라는 것. 나는 이미 경험을 치렀고 두 번 다시 그런 요행을 헌납해줄 의향이 없소. 그리고 당신에게 그만한 요행을 기대할 예외적인 요소가 없는 이상 정해진 결과를 피할 방법은 없소이다.”

“하하! 자네는 내가 이길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 얘기하는군. 자네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말이야.”

“물론이오. 기대는 기대일 뿐이니까. 그리고 오해하지도 마시오. 나는 지금 대단히 흥분한 상태에 있으니까 말이오.”

천무경과 단지운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창천단과 천무방 무림인들은 조금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양 진영의 최고 수장 간의 대화와 이따금 들려오는 웃음소리로 인한 화기애애함은 직전 서로의 무공을 한 차례 부딪치면서 일어난 천재지변 수준의 순간적인 환경변화마저 머릿속에서 조금씩 지워질 정도로 이상한 그림이었다.

한편으론 싸움에 지친 소수에겐 일말의 평화 가능성을 꿈꾸게 하면서도 대화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쯤엔 모두 하나같이 강호무림 역사상 가장 치열하면서도 파괴적인 대결이 될 것이라는 공통된 생각에 매몰되어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내 자네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겠군. 그리고 무림의 선배로서 또한 가르쳐줘야겠어.”

“하핫! 무엇을 가르친단 말이오?”

“세상엔 양질(良質)로 가늠할 수도, 성정(性情)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경지의 것이 존재한다네. 내 자네에게 그것을 보여주겠네.”

“진정으로 기대하겠소이다. 부디 내 기대에 힘껏 부응해주시오.”

그 순간 천무경으로부터 겉으로 드러나는 기의 파장도 없이 무형의 투기, 기백이 끝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삼천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모두 피부가 저릿해짐을 느꼈고 숨이 막힐 정도로 공기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두 발로는 땅의 울림을 들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 땅거죽이 뒤집히는 걸 보았다.

파츠츠츠!

천무경의 피부를 타고 푸른 빛이 맴도는가 싶더니 사방 하늘을 향해 번개가 튀기 시작했다.

전신 충만하게 차오르는 푸르디푸른 뇌정(雷霆).

촛불이 일순간 바람에 꺼지듯 천무경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것을 머릿속 뇌가 인지하는 찰나 어느새 그 거구의 신형이 단지운 지척에 솟아나 주먹을 내지르니 그것은 천무경이 지금까지 살면서 내지른 주먹 중에서도 최강의 일격이나 다를 바 없다.

파천신공 뢰신타(雷神打).

그 순간 천무경의 오감, 육감을 포함한 모든 감각이 인지하고 있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착각이 들었다.

예민하게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신경망이 찰나의 순간들을 쪼개고 또 쪼개어 포착하면서 단지운의 반응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무경의 신형이 도달하자마자 자세를 즉각 전환한 단지운도 어느새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으니 칠흑에 휩싸인 천마의 마기가 극점에 응집되어 있었다.

천마신공 마왕격(魔王擊).

단지운의 미소가 천무경의 동공에 맺히는 순간,

두 주먹이 충돌했다.

쩌엉-!

쿠쿠쿠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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