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60화 (360/432)

360화 - 제67장. 예속된 운명과 제안 (5)

진도 무영각이 교주의 눈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깊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복면 속 입술을 떼었다.

“해당 방면에 배치된 무영들이 현재 모두 신변 미상(未詳) 상태로 판단되어 사태 파악을 위해 움직이는 중입니다.”

단지운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다.

“신변이 미상이다? 염황신마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배치된 숫자가 열이 넘어갈 텐데. 하나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이냐?”

“무영각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사냥당하고 있는 듯합니다.”

“신마들도 일정 거리 안까지 접근하기 전까진 기척조차 감지하기 어려운 것이 무영각의 환상무형술인데. 자세히 말해보라.”

“인근에서 활동 중인 무영들 가운데 소통 단절에 낌새가 이상함을 느끼고 후퇴한 무영 부(芙)가 다시 후방의 무영들을 데리고 파악하던 중 함께 움직이던 몇 명의 시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추가 피해가 있었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되어 현재는 불상(不詳)의 적에게 추적당하지 않을 거리를 두고 매복 중입니다.”

“바로 파악이 어렵다?”

“그렇습니다. 또 하나 혼란스러운 지점은 시체들 사인(死因)에서부터 마공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단지운의 얼굴에 노기가 더욱 짙어졌다.

“양자성이 배신했단 말이냐?”

“검상이 아니라서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단지운의 표정이 다시 누그러졌다.

무영 진의 말을 듣고 난 단지운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다.”

무영 진이 곧 환상무형술로 모습을 감추자 단지운은 고개를 돌려 비작을 바라보았다.

“비작. 검림 잔당과의 거리는 얼마나 되느냐?”

“산맥을 넘고 있는 듯한데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가려고 하십니까?”

“아니. 궁금하긴 하지만, 이곳의 싸움이 임박해있으니 당장 자리를 비울 수는 없지. 하지만, 올라오는 건 검림이라면서 사인이 마공이라는 건 이해할 수가 없군. 양자성의 배신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을 텐데. 혹시 놈들을 세세하게 볼 수 있느냐?”

단지운의 물음에 비작의 눈 주변 문신을 타고 흐르는 빛무리가 더 강하게 타올랐다. 그러나 비작의 고개는 이내 좌우로 젓고 있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산림 속에 있어서 장애가 많습니다. 산을 빠져나와야 면면을 살필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알았다. 창천맹이 도착하기 전까지 수시로 살펴서 혹여 특이점을 찾거든 다시 날 찾아라. 그리고 양자성이나 스칸다, 혁련제 그 누구라도 행적이 네 작안술에 잡힌다면 즉시 내게 오도록 인도하여라.”

“존명.”

“옥문관으로 가자.”

단지운이 움직이자 비작이 바로 뒤를 쫓았다.

두 사람의 신형이 지면을 타고 흐르듯 나아가서는 순간 도약하여 하늘을 날아오르니 순식간에 막고굴 7층 누각 지붕을 뛰어넘어 절벽에 올랐다. 그리고 신사산 능선을 타고 옥문관을 향해 나아가는 단지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비작의 눈에 회한의 빛이 스쳤다.

‘교주님, 상황이 꼬였습니다. 환도신마께서 절명하셨음을 이 비작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교주님의 계획 하나가 어그러졌음을 어찌 추측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물며 환도신마와 태상교주께선 제게 이미 다른 지시를 내리셨으니 제왕몽(帝王夢)을 도울 수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그동안 가장 은밀한 지점들에서 암약하며 움직였던 환도종의 마인들.

사천 청성산에서 큰 피해를 입어 그 수가 크게 준 상태에서 남아있는 잔당들이 옥문관을 바라보는 다른 지점에 도달해 모종의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비작은 단지운에게 밝히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비작은 전쟁의 승패는 딱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도 예상할 수 없는 종류의 미래가 불안한 감정으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 * * *

며칠 전.

후아앙!

천마신궁의 모처에 순간 돌풍과 함께 새하얀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백광의 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양자성과 스칸다 그리고 두 팔이 잘린 채 피투성이가 된 후대선과 상당한 양의 시체들이었다.

“크륵. 주, 죽여라…….”

후대선이 양자성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핏물을 삼키면서 말하는데 그 목소리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양자성은 비릿한 조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후대선을 힐끔 보았다.

그 옆에서 스칸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시달목분지 천도환위진에서 벌어진 학살극.

후대선은 지금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 천마신궁으로 날아온 이 시체들.

마치 영혼이 통째로 빨려 나간 듯 피골이 상접한 채 허무한 표정으로 죽어있는 염황마종의 부하들을 생각만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그러나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마니사도 모두 죽어 나갔는데 그곳과 관련이 있다는 스칸다는 양자성과 알 수 없는 대화 몇 마디만 나누고 가만히 그를 따르는 게 아닌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배신감을 양자성 한 사람만이 아니라 스칸다한테도 느껴야 한다는 그 사실이 후대선을 한 번 더 분노케 했다.

화르륵!

그의 주변으로 거센 불길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내 양자성이 후대선을 노려보며 손을 뻗자,

“끄어어억……!”

불길이 다시 사그러들면서 후대선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의 몸에 심어둔 양자성의 마기를 이용해 극심한 고통을 유발한 것이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양자성이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옮기자 스칸다가 입을 열었다.

“어딜 가느냐? 그곳은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다.”

“알아. 기다리면서 쓸데없는 소란이나 잠재우고 있어.”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스칸다의 고개가 좌로 살짝 기울어진 채 천마신궁 입구 방향이 아닌 성혈궁 방향으로 향하는 양자성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돌려야만 했으니 천마신궁 내 남아있는 일부 마구니들이 천도환위진의 빛과 후대선이 일으킨 불길을 보고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스칸다?”

“신경 쓸 것들 없다.”

“하, 하지만, 여기 이 시체들은 대체……. 모두 우리 교도들이 아닙니까?”

“신경 쓸 것들 없다 했다. 제자리로 돌아들 가라.”

냉정하게 자르는 스칸다를 보면서 마구니들은 심한 혼란에 빠진 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수백, 수천 리를 이동시켜주는 천도환위진의 신묘함은 이미 몇 차례 보면서 적응이 된 상태였지만, 시체들과 함께 떨어지는 광경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이 다름 아닌 천마신교의 교도들, 그것도 마니사 마구니들과 염황종 마교도들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으니 그리 가볍게 넘길 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스칸다의 수상한 대꾸들은 더더욱 발길을 떼기 어렵게 만들었고 탈혼갑을 취해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행색으로 나타난 양자성이 대뜸 성혈교 쪽으로 향한 것도 의심스럽기만 했다.

스르릉!

그 수상함을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검을 뽑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도검을 칼집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지가 여럿이 모이게 되니 자연스럽게 스칸다를 향해 겨눌 수 있는 용기도 생겨났다.

“마구니들이 위타천의 명령을 거부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을 주신다면 기꺼이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 용서를 구하겠나이다.”

“잡것들은 감히 알 필요가 없느니……!”

스칸다가 으르렁거리면서 그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피어올라 사방 마구니들을 압박했다.

“이 늙은 것은 해명을 들을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금방이라도 시위가 당겨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한 노승이 컬컬한 목소리를 내며 마구니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야마.”

“스칸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야마와 스칸다의 눈빛이 허공에 얽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오히려 대답을 기다리던 야마였다.

“……그렇군. 이제 떠올랐어. 마니사에만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일을 완전히 모르고 있었군. 곧 마라의 품으로 돌아갈 만큼 천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내 생애 벌어질 일이라곤 생각지 않았던 게야.”

“그렇다.”

스칸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야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구니들을 돌아보았다.

“시체들을 치우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야마의 명령에 마구니들이 칼을 거두고 시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스칸다의 위타천이란 지위는 분명 천마신궁 내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할당된 부대의 지휘권을 쥔 장수 역할, 그리고 마니사의 시험자로서 역할에 국한되어 있었다. 천마신교 내 말단 지위에 있는 마교도, 마구니들이라도 자의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이다.

만약 위타천이 누군가를 처분, 처벌한다면 그건 오직 교주령에 의한 것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반면 야마는 마니사의 주지이면서 동시에 모든 마구니들의 호법이었다.

그의 명령은 마구니들에게 지엄했고 그의 지위 아래 천마신교 내 기강이 구축될 수 있는 것이었다.

스칸다와 야마가 기다리는 동안 마구니들에 의해 시체들이 모두 치워지고 마구니들도 자리로 돌아갔다.

장내에 둘만 남게 되자 야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얘기를 해줘야겠지. 이 기다림은 어디까지나 광의(廣義)의 이해에 불과하니 말이야. 내 아이들이 죽었는데 그 연유를 이 늙은이가 몰라서야 하겠는가?”

“양자성이 탈혼갑을 취하여 칠흑마장이 부활하였소. 그가 모두를 죽였지. 이 자만 빼고.”

야마가 후대선을 흘끔 내려다보았다.

두 팔이 팔꿈치 부근부터 잘린 채 피투성이 몰골로 신음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후대선은 마니사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야마도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이놈은 누군가?”

“후대선. 염황신마 혁련제의 힘을 이은 자요.”

“염황신마의 힘을 이은 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꼬락서니로군.”

“아직 힘이 완전하진 않으니까.”

“이놈도 양자성이 이래 만든 겐가?”

“싸움에서 살아남은 염황마종 부하들도 양자성의 손에 같이 죽었으니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꽤 격전이 벌어졌지만, 결국 패해 이리된 것이오.”

야마가 스칸다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꽤 격전을 치른 듯 행색이 망가져 있긴 했으나 후대선의 몰골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었다.

“자넨 방관하고 있었군. 왜지? 아니, 대답하지 말게. 이 늙은 것이 한 번 맞춰보겠네. 흐음, 칠흑마장이 부활했다라. 그래, 거기에 의미가 있군. 양자성이 힘을 취한 것에 그치지 않고 칠흑마장의 의식과 접촉하여 뭔가 받아들인 게로군.”

야마와 위타천인 스칸다는 다른 구주의 신마들이나 일반 마교도, 마구니들과 다르게 한 가지 감춰진 사실을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천마조사 단용후가 아들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죽기 직전에 남겼던 유지(遺志)와 관련 있는 것이었다.

“양자성이 내게 말했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칠흑마장의 목소리로.”

“뭐라던가?”

“‘날 봉인한 자에게 안내해라.’ ……라고.”

“클클클!”

스칸다의 대답에 야마가 웃음을 흘렸다.

칠흑마장을 둘로 나누어 봉인한 것은 다름 아닌 천마조사 단용후였으나 그는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없었다. 그러나 그 아들인 단원진은 단용후의 모든 걸 이어받아 지금 살아있었고 그가 환도신마 선우도를 시켜 칠흑마장의 부활을 유도하였으니 이 길의 방향은 명백했다.

“그래, 마침내 칠흑마장이 되신 검마께선 어째서 성혈궁으로 가셨을꼬?”

야마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성혈궁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스칸다도 의문스럽긴 매한가지.

“글쎄.”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길 잠시, 성혈궁 방면에서 양자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야마가 양자성과 눈을 맞추면서 미소를 짓고 합장했다.

“마니사의 주지 야마라고 하네. 내 아이들을 친히 저승으로 보냈다고 하더군.”

야마의 말에 양자성이 스칸다를 힐끗 보았다. 다시 야마에게 눈길을 돌리는 양자성의 태도엔 흔들림이 없었다.

“왜, 복수라도 할 텐가? 사과라도 하길 바라나?

“사과라도 해주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그건 이 노승의 관심사가 아니고. 그래, 아유타와 무슨 얘길 나누었는가?”

“알 거 없다.”

“아니, 알았으면 좋겠네. 자네도 아는지는 모르겠는데 성혈교는 이 천마신궁 안에 자기들만의 궁전까지 지을 정도로 많은 걸 보장받았지. 하지만, 본교의 뜻대로 움직이는 건 고작 성혈신마의 이름을 받은 빌게포첸 정도 하나뿐이야. 그래서 이 늙은이는 그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데 자네가 잠깐 이곳에 머물 때, 아유타와 두어 번 직접 찾아갔다고 들었어. 이게 가볍게 넘길 만한 일처럼 여겨지진 않거든.”

“개인적인 일일 뿐, 네가 관심을 둘 사안이 아니다.”

“오호…….”

야마가 양자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는 양자성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은 야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클클클! 그렇군. 알았네.”

“……뭘 알았다는 거지?”

야마의 기분 나쁜 웃음에 양자성이 그 웃음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물음을 후회했다.

“참 흥미롭지 않은가? 백 세가 되어서도 얼굴은 어찌 그리 아름다우며 또 육감적일 수가 있는지 말이야. 이 늙은이가 그녀를 궁금해하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건 다름이 아니지. 쳐다보기만 해도 고간이 제멋대로 불끈거리기 때문이라네. 이 늙은이도 그럴 진데, 한창 젊은 나이인 자네는 분명 더 할 게야. 그래, 신성불가침의 그곳을 자네는 정복하였는가?”

“감히……!”

양자성의 얼굴은 어느새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고 손은 마령검을 쥐고 있었다. 스칸다가 둘 사이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금방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었다.

“클클클! 그건 아닌가 보군. 다행이네. 만약 그랬다면 태상교주께서 가만두지 않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단원진을 거론하자 양자성이 움찔거렸다.

그 반응을 본 야마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불경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이 늙은이도 함부로 입을 놀릴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양자성은 야마와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기 싫어 몸을 휙 돌렸다.

“스칸다, 안내해라.”

스칸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니 두 사람은 천마신궁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야마가 미소를 머금은 채 뒤따라가면서 함께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양자성으로선 그의 말이 심히 거슬렸다.

“이 늙은이도 함께 가지. 마침 태상교주님의 의중을 헤아릴 필요가 있는 처지라서 말이네. 아아,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태상교주님을 뵈러 가기 전에 어째서 굳이 아유타에게 먼저 들렀는지 얘기하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야. 클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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