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 제66장. 신격(神格) (5)
이미 일격을 부딪치고 온몸이 저릿저릿하던 테시가 죽음을 입에 담는 천서은을 보면서 치를 떨었다.
“악마 같은 년!”
콰르르릉!
그 순간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에 테시를 비롯한 적룡단 전체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 울림이 평소 하늘을 달릴 땐 아무렇지 않았던 사람들이 전장을 달려 관통하자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특히 테시나 주변 적룡단 경우 반사적으로 고개까지 돌렸는데 그 진원지가 그들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천무경과 적룡신마 마웅패가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적룡과 뇌신이 하늘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듯한 위압감.
테시의 고개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서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뇌신이 둘…….’
공력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천서은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마주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천무경과 마치 동일시할 만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멍때리지 마. 한 방에 죽으면 재미없으니까.”
잠깐 눈앞이 아찔해지는 사이,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날아온 천서은의 중얼거림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개같은 년이 우릴 우습게…….”
테시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천서은이 전신으로 파천신공의 공력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콰!
천서은이 날뛰면서 사방이 천둥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요란한 굉음 속에서 영은성의 검기가 연신 날카롭게 휘몰아쳤고 최현걸도 다소 체력이 부치는 형편에도 친구의 등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적룡단은 전부 소마혈을 삼켜서 두 개의 목숨을 가진 셈이 되었지만, 그 위력은 오초령 때보단 반감된 상황이었다.
그들은 오초령난주 사이 전장을 오가면서 경험도 있었고 그만큼 경계도 하고 있었다. 또 기왕 적을 죽일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철저하게 목을 완전히 잘라버리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서 실제로 창천단과 백무당의 사선대형 선봉이 끊어놓은 적룡단 허리 부근 단원들은 죽어서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적룡단이 소마혈을 복용하고 자신을 죽음에 기꺼이 내던지는 건 단순히 전장에서 전력을 유지한다는 목적만 노린 것이 아니었다.
캉!
콰콰쾅!
장검과 월극이 부딪치는 순간, 두 사람이 자기 주위로 뿜어낸 경력까지 충돌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힘에서 다소 밀렸는지 마웅패가 아주 잠깐 주춤거렸다.
‘부하들의 죽음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하단전으로 적룡의 마기가 한층 더 증가하는 게 느껴졌다.
“얕보지 마라!”
쿠쿠쿠쿠……!
적룡의 환영이 더욱 붉고 선명하게 일어나며 마웅패의 전신을 감쌌다.
순간적으로 천무경을 향해 쇄도하면서 월극을 휘두르자 끔찍한 돌풍이 일어났다. 자연의 기운을 삼켜 소멸시키는 적룡의 환영은 왜인지 한층 더 강해져서 천무경의 공력을 흐트러뜨렸다.
적룡단의 죽음은 곧 마웅패가 가진 적룡 권능의 증대.
염황마종이 그들 사이에 주술적 연결고리가 있어서 서로의 존재를 느껴 화염이 피아를 가리고 불길에 불길을 더해 더 크게 기승을 부리게 하는 등의 능력이 있다면 적룡마종은 단원의 죽음이 곧 마웅패의 힘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이는 내공의 증진보다 마웅패가 마공을 펼칠 때 드러나는 적룡의 환영이 가진 공능의 효력이 상승한다는 점인데 정제된 자연기를 해체하고 소멸시키는 그 위력이 상대 수준의 높음을 가리지 않기에 가히 모든 무공의 상극이라고도 할 만했다. 그리고 이런 죽음이 쌓여가는 전장에서 마웅패가 자신했던 이유도 바로 이와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위력이 있었기에 마웅패는 특정한 마공을 수련하거나 연성 또는 정립하지 않더라도 구주신마의 지위를 만족스럽게 누릴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자는……!’
부하들의 죽음으로 힘을 얻어서는 적룡을 잔뜩 일으켜서 천무경을 휩싸이게 만들어도 그의 벼락은 잠깐 주춤할 뿐 여지없이 그 위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강해지는군!”
천무경이 진심으로 감탄하여 외쳤지만, 마웅패는 기쁠 수가 없었다.
단지 천무경이 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안이함의 극을 달렸던 자신의 과거가 후회되었기 때문이었다.
적룡단을 부귀영화를 위한 훌륭한 도구이자 소모품으로서 여겼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온 마성이 이것이지 않을까, 라고 아주 가끔 생각하곤 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마성이 내려와 속삭이면서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그의 욕망과 그리 쏙 빼닮을 수가 있었겠는가?
만약 적룡단을 동지처럼 여겼거나 장군과 병사와 같은 일종의 군신관계처럼 여겼다면 초원과 사막의 살아있는 전설 흑풍대를 이끄는 야율가문과 같이 독자적인 힘의 마공을 손에 넣지 않았을까?
부하들에게 힘을 나눠주는 것으로 그들을 강해지게 만들어주는 힘.
동시에 반사적인 작용으로 삶을 종속과 복종을 야기하는 힘.
죽음으로 다시 돌려받아 더 강해질 수 있는 힘.
더 강한 힘을 위해 부하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은 것이라면 나의 목숨은 안전한 것일까,
……그런 한 가지 의문이 남았던 힘.
반대로 담보로 잡은 힘 때문에 마공으로써 정립하고 연성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스스로 천마신교 안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자부하면서 사정을 모르는 신마에겐 두려움과 경계심을, 그를 잘 아는 자에겐 한심한 눈빛을 동시에 받았던 처지.
왜 처음 힘을 얻었을 때부터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았던 걸까, 라며 후회하곤 하지만, 다른 이들도 마성의 인도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영감이 떠올랐다는 얘길 들어보면 애초에 이 적룡이란 마성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쩜 이리 탐욕스러우면서도 나태하고 안이함을 갖추었는지,
어쩜 이리 닮을 수가 있는지,
어쩜 이리 후회조차 사치로 여겨지는지…….
“……네놈은 대체 뭐냐? 어디까지 강해지는 것이냐? 감히 나를 상대로 여유를 부렸다니!?”
마웅패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우위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천무경의 얼굴에서 어떤 조급함이나 고난함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천무경이 흰 수염 사이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이미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력이라고?”
마웅패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하들의 죽음으로 하단전에 똬리를 튼 적룡의 마정이 폭발적으로 마력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천무경이 발산하는 기력도 덩달아 커지고 있었다.
이것이 여유가 아닐 수가 있는가?
“단지 한계를 정해놓지도, 부딪친 적도 없었을 뿐이다.”
“뭣이?”
놀라는 마웅패를 보면서 천무경도 나름 결심한 듯 조금 진지한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다.
“부하들의 죽음이 기력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그 기괴함에 놀람을 금치 못하겠다만, 네가 더 강해지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네 부하들보다 먼저 죽어줘야겠다.”
마웅패는 천무경이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한계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내 ‘마력’이 올라가야 따라잡는 주제에 뭘 하겠다고……!”
“그래, 네 힘은 마력(魔力)이다. 어떤 노력도, 고민도, 깊은 공부도 더해지지 않았으니 마공(魔功)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랬다면 나로서도 곤혹스러웠을 힘이겠다만, 그저 단순한 힘에 그치고 말았으니 처음에 말했듯이 네가 품은 모든 기대는 헛될 뿐이다.”
마웅패는 머리를 한 대 세 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끝없이 증가하는 그의 힘 앞에서 천무경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그를 향해 쇄도했다.
뿌리치듯 휘두르는 천무경의 좌수를 기점으로 진공연파(眞空延波)가 발생하자 마웅패가 발산하던 적룡환영의 움직임이 일시 멈추었다.
상대하는 모든 기의 흐름을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일시 정적에 이르게 만들고 그 찰나의 간극을 노려 벽력을 실은 주먹을 때린다.
적을 경험하는 것은 적의 무공이나 힘이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는 것.
그것을 파훼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순간순간 머릿속에 재정립하면서 그렇게 새로운 초식을 창안하여 발휘한다.
파천신공 진뢰상파격(震雷像派格).
파앙!
쩌쩌쩌쩌쩡……!
백방(百方)으로 뻗어나가는 뇌전의 가지로 적룡의 환영이 산산조각 흩어졌다.
그 순간, 엄청난 비명이 마웅패의 뇌를 때리며 머릿속을 갈가리 찢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오자 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것은 마성 적린고룡(赤鱗古龍)의 비명이었다.
“큭! 끄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함성을 지르면서 마웅패가 월극을 번쩍 들어 천무경을 노리고 내려쳤다.
그래도 중병기를 온전히 다루고 적들을 죽이면서 수백 수천 번 몸에 밴 동작에 가능한 최대의 공력을 월극에 실었으니 그 일격은 분명 날카롭고 빨랐다.
그때 천무경의 내지른 주먹엔 여전히 장검이 들려있었다.
천뢰삼검식 뇌광추.
퍽!
미처 월극을 내리치기도 전에 푸른 검강이 뇌전처럼 쏘아져 나가 마웅패의 머리를 관통했다.
미간을 노렸던 것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던 것인지 왼쪽 눈부터 이마까지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면서 피가 철철 흐른다. 적룡단을 이끌고 싸움터를 전전하며 기반을 다졌던 반사신경도 파천무봉이라는 별호와 같은 천혜의 능력 앞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천무경은 기괴했던 강적의 육신이 무너지듯 쓰러지는 걸 보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눈에 바로 보이는 변고에 조금 긴장한 채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목을 노려라! 완전히 끊어라!”
마웅패가 부하들의 죽음을 담보로 힘을 얻었으나 자기가 먼저 죽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 알았을지 의문.
적룡단 전체가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고 빠르게 제자리에서 무너지듯 연쇄적인 사망의 흐름에 휩싸이는 순간, 다시금 죽음에서 일어나 사체의 몸으로 무식하게 돌진해왔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투의 양상이 뒤바뀌면서 이젠 모두에게 생존의 싸움이 되어 번져나갔다.
오직 강적의 시체 위에서 천무경만이 종산 기슭의 새로운 적들과 광혈마종 등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후퇴하는가?’
후퇴하기 시작한 적들은 대략 적룡신마 마웅패가 사망한 순간부터 주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뒤를 쫓고 싶었지만, 이 움직이는 사체들을 완전히 처치 및 처리하지 않고 떠난다면 훗날 큰 재앙으로 남을 수 있었기에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어쩌면 이런 상황도 적들은 예견했을 수 있었다.
종산에 나타난 자들은 대통현에서 기련산맥을 넘어온 혈마종과 새로운 혈마가 되어 그들을 이끌게 된 구마진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부하들이었다.
구마진은 적룡신마와 천무경의 대결을 멀찌감치나마 전부 지켜봤었기에 천무경의 무위가 머릿속에 상당히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
“뇌공(雷公), 뇌신(雷神)이 따로 없구만……”
적룡신마 마웅패가 구주신마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진 못했으나 엄연히 중위에 해당할 정도로 가진 힘을 평가받았음에도 중원무림의 최강자라는 천무경의 손에서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끝까지 싸우라고 명령하셨다면 교주님을 원망할 뻔했겠어. 큭큭!”
구마진이 실소를 흘리자 듣고 있던 흑각수들이 입을 열었다.
“중원에 저런 자가 있다니 놀랍습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천둥소리에 대기가 떠는 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교주님이 이기시겠지요. 교주님의 경지는 태상교주님마저 뛰어넘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집결지가 옥문관일까요? 저희를 이렇게 전방까지 보내놓고서. 혈마종도 싸움 없이 이동만 해서 그런지 어째 사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마지막 물음이 구마진의 심리를 자극했다.
“청해 쪽에서 합류할 전력이 있다. 염황종과 스칸다의 마구니들. 검마도 있군.”
“스칸다……! 과연 그들까지…….”
흑각수는 마니사 출신이었기에 스칸다란 이름에 곧장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구마진은 흑각수들에게 설명해주면서도 천무경의 초월적인 신위에 감탄한 나머지 더 큰 힘에 대한 열망을 자극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혈마로서의 힘을 상승시켜줄 수 있는 한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혈마종을 길들이려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 그보다도 혈마종은 내 힘에 대해 다소간 의구심이 남아있겠지. 그래서 그놈을 잡아야 하는데…… 어서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군. 아니면 저들 사이에 끼어서 나타나던가. 하늘 아래 혈마가 둘이어서야……. 큭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