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화 – 제66장. 신격(神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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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주성을 떠난 천무경의 천무방과 창천단은 조직별로 군집을 이루고는 있어도 이전의 군 운용처럼 좌우익으로 나누지 않고 서로 가까이 모여 하나의 집단처럼 전진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움직임은 멀리서도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었으니 천무경의 의도 또는 의지가 적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천무경은 군과 함께 움직였을 때보다 두세 배는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조태상군과 거리를 벌리기 위함과 동시에 천마신교의 전력을 당겨오기 위함이었다.
다행인지 오초령까진 어떤 싸움도 발발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개방도와 하오문, 비혈단의 일반 지형을 기준으로 한 첩보를 받으면서 적룡단과 잔여군이 후방으로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유는 후방 보급 단절인데 비혈단이 먼저 분석하기로 황검당이 장액 근처에 숨겨져 있던 적룡단의 병참기지를 찾아내 와해시켰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적룡단이 동원하고 있던 서하의 잔여군도 크게 동요하면서 탈영하는 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바람에 무위성 수성도 어려워진 것이다.
그 보고가 전해지면서 부시증으로 인해 장태환과 남월당이 전멸하면서 한풀 꺾였던 사기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양측이 끼고 있던 군사 조직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이상 당장 적룡단과 정면으로 맞붙어도 절대 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천무경도 기세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에 무위성을 빠르게 지나치면서 하서주랑을 따라 장액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장액과 무위 사이 하서주랑의 삼분지 일 지점을 지나는 지점의 진출로에서 마침내 적룡단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몇백씩 분할 편성하여 움직이던 소대가 아닌 적룡신마 마웅패가 직접 이끄는 부대였다.
도드라지는 적룡신마의 존재감과 상반되게 다소 힘 빠진 모습으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 적룡단의 뒷모습은 보기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다.
“놈들을 쫓아라!”
“후퇴하라!”
마웅패의 외침도 연달아 들려왔으니 그 말이 오히려 창천단과 천무방 무림인들의 사기를 더 키웠다.
두두두두!
말 탄 기병대의 집단적 돌격 진법은 무림인들에게도 두려운 것이었으나 꼬랑지를 내린 채 후퇴하는 뒷모습은 오히려 좋은 먹잇감처럼 보였다. 특히 절정고수들의 경공술은 잦은 전투와 이동으로 지친 말을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확실히 적룡단이 탄 말들은 하나같이 사막을 뚫고 나아갈 수 있을 정도의 준마여서 단숨에 따라잡히진 않았다. 천무경은 먼저 나아가 한 번 휘저을까도 생각했으나 집단 전체의 전투와 승리로 열기를 피울 필요가 없으므로 급히 움직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추격하는 방향의 좌측으로 기련산맥엔 연결되지 않은 채 따로 둥근 잔처럼 솟아오른 종산(鍾山)을 지날 때쯤에 이르러선 거리감과 속도 면에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보였다.
“다 따라잡았다!”
백무당 중 누군가가 공력을 높여 시력을 상승시킨 눈으로 말 꼬랑지의 털자락이 보일 정도가 되자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땐 어느새 양측이 종산 자락의 길이 안에 들어온 채로 거리가 더욱 좁아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외침을 듣던 천무경의 고개가 어째선지 옆으로 돌아가 종산에 수 초간 머물렀다.
“잘도 기다리고 있었군.”
제법 큰 산인데도 적은 산림으로 인해 여기저기 헐벗은 데가 많았는데 그곳으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 무서운 속도로 산에서 내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방향은 적룡단이 아닌 그들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습이라고 손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무경의 생각을 흐리게 만든 요소도 있었다.
‘……마교도 같지 않은 기척이…….’
천마신교의 교도들만이 풍기는 마기의 기척이 산기슭까지 내려온 새로운 적들에게선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판단을 잠깐 흐리게 하는 사이, 이번엔 가까운 곳에서 또 다른 반응이 튀어나와 그의 신경을 끌어당겼다.
“전방에 새로운 적들이 출현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천무경도 앞을 보았으니,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곧바로 인지하게 되었다.
적룡단이 우측으로 방향을 비스듬히 틀면서 그들 무리에 가려졌던 새로운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크하하하하핫! 이 몸이 바로 천마신교의 광혈신마니라!”
우오오오!
혁무술의 포효와 함께 광혈마종 마교도들의 광기 어린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적룡단이 말머리를 점차 돌리며 선회하더니 다시 천무경 측을 바라보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멈춰라!”
전장의 급격한 변화에 천무경이 전진을 멈춰 세웠다.
그 순간 또다시 이상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종산을 내려온 정체불명의 무리나 광혈마종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적룡단만 돌격해오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도주하던 무리가 아군의 등장에 합세하여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만 다시 돌격해오는 꼴이라니.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
다른 두 무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적룡단의 돌격을 가만히 받아내는 것도 위험하기에 천무경은 서둘러 결단해야만 했다.
“구 단주! 남궁평!”
천무경이 두 사람을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일찍이 두 사람이 이끄는 창천단과 백무당은 각각 한 차례씩 적룡단과 충돌한 경험이 있었기에 사선대형을 양익(兩翼)으로 하여 돌격을 받아내려는 것이었다. 또한 천하오절 중 한 사람인 구치상의 무력이라면 적룡신마 마웅패의 무력을 충분히 멈출 수 있다고 여겼다.
그것은 아주 상식적인 판단이었고, 구치상과 남궁평 모두 그 판단에 공감하면서 빠르게 두 조직을 지휘했다.
난주오초령 전선에서 여러 조우전으로 부대를 분할하는 바람에 이젠 불과 2천여 기만 남은 적룡단이었기에 설령 마웅패가 직접 이끈다고 하더라도 창천단과 백무당의 합세라면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였다. 그래서 적룡단 방면을 두 사람에 맡겨 놓고 천무경은 적멸당과 함께 다른 두 집단의 대응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판이었다.
콰드드득!
섬뜩한 소리에 천무경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는 인체 파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창천단과 백무당 사이를 가르는 적룡의 환영을 보았다.
콰콰쾅!
모두 능숙하게 돌격 속도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판단을 내리기 조금 더 앞선 시점에 선봉의 마웅패와 예하 부장들이 필두로 하여 타는 말들이 힘껏 지면을 박차자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또 뒤따라오는 부대들도 따라 말들이 뛰어오르니 흡사 붉게 물든 파도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미처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순간적인 돌입.
게다가 돌입 직전 마웅패가 일으킨 적룡의 환영은 부대 전체의 기세를 순간적으로 크게 상승시켰으니 사선대형이고 뭐고 진형의 도움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것이었다.
콰드득! 콰쾅!
돌격을 방어하지 못하고 박살이 난 후미와 달리 힘이 실린 구치상과 남궁평의 양익 끝단은 가차 없이 적룡단의 허리를 부숴버렸다.
사선대형이 적군의 허리를 끊는 건 돌격해오는 적 부대가 접전지를 빠져나가 다시 재돌격의 기회를 만드는 걸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중위와 후위의 부대가 발이 묶이게 되니 선봉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힘을 크게 상실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식적인 지점조차 지금 이 전장에선 들어맞지 않았다.
맹렬히 무공을 펼치던 구치상과 남궁평은 동시에 같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난전을 피하려 들지 않는다. 당황한 기색 없이 싸움에 더 적극적이다. 이건……!’
불길한 느낌은 결코 알아서 피해 가지 않는 법이다.
“이것들아! 여기가 우리 무덤으로 알고 싸우거라! 네놈들의 복수는 이 마웅패가 해주고 같이 떠날 테니 말이다!”
마웅패의 외침에 적룡단이 사기를 얻는 모양새도 심상치 않았지만, 그가 월극을 휘두를 때마다 적룡의 환영이 춤을 추는데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피떡이 되어 날아가기 일쑤였다.
그 기세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가까이 다가가길 꺼려하면서 진형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에 구치상과 남궁평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네 이놈!”
천하오절의 일익이라는 자신감과 동시에 창천단주라는 책임감을 짊어진 구치상은 전장의 휘젓는 적장의 목을 자신이 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들었다. 그리고 그의 칠성도법과 맹렬히 퍼부어지는 도강은 적룡신마 마웅패의 기세를 잠시 주춤하게 만들었다.
“서너 사람씩 뭉쳐서 서로의 등을 지켜라! 이놈들 모두 중독자들이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생존과 실익에 더 초점을 맞췄던 남궁평의 시선은 적들에게서 느껴진 수상한 낌새를 바로 간파했다.
안 그래도 되살아나는 시체들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있었던 탓에 백무당이 먼저 삼삼오오 모여서 삼재진부터 오행진까지 구축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창천단도 뒤이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피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크악!”
“끄아아……!”
전에 없던 끔찍한 비명이 전장 곳곳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전장 한복판에 출현한 사체들의 공격, 급기야 무공까지 펼치는 그들로 인해 전세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백두기와 적멸당도 전장에 뛰어들고 있었다. 사체들의 공격을 받아 생긴 상처를 통해 감염까지 된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에 조기에 막아야만 했다.
다만 문제는 창천단에 있었다.
창천단이 우익을 맡아 가장 바깥에서 적룡단을 공격했으므로 지금 시점에선 적룡단에 오히려 둘러싸인 채로 고립된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구치상이 마웅패의 무위에 밀리고 있었으니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칠성도존이란 별호는 그저 허명에 불과했구나!”
카앙!
“크윽!”
전력을 다한 도강이 월극을 둘러싼 환영에 짓눌려 부서지면서 구치상이 큰 충격을 입고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지금 마웅패의 무력은 구치상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웅패는 특별한 강기 등을 일으키거나 하지 않았다. 거대한 월극을 다루는 솜씨는 분명 뛰어났지만, 체계적이기보단 좀 더 본능에 길들어진 움직임인데 구치상이 반응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웅패의 전신과 월극 전체를 휘감은 적룡의 환영들은 이상할 정도로 구치상이 일으킨 기운들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정도로 부숴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
마웅패도 적 하나라도 더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지금 기세를 몰아서 구치상을 죽일 작정으로 덤벼들었다.
후우욱!
쩌엉!
“윽!”
월극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내려쳐지는 순간, 푸른 섬전이 날아와 월극의 칼날을 때리며 튕겨냈다.
장검 한 자루가 월극가 부딪친 후, 공중에서 팽그르르 맴돌았는데 일순간 천무경이 그 위로 나타나 장검을 낚아챘다.
“구 단주, 이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창천단을 구원하시오. 사태가 시급합니다.”
구치상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웅패를 상대로 한 싸움을 염려했다.
“놈의 마공이 몹시 괴이하여 내 무공이 통하지 않았소. 천 맹주도 부디 조심하시오!”
구치상이 서둘러 자리를 뜨며 창천단원을 찾는 사이, 천무경과 마웅패가 반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전장의 공터 안에서 마주 보고 섰다.
“크크큭! 그래, 창천맹주를 내 손으로 잡는다면 나머지 모두를 내 월극으로 쳐 죽이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지.”
“헛된 기대를 품고 있구나.”
파지직!
천무경의 전신을 타고 푸른 뇌전이 번쩍였다.
하지만, 마웅패의 얼굴엔 두려움이라곤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아, 느껴진다! 네놈의 강함, 아주 원초적이야! 하지만, 장소를 잘못 골랐어. 단둘이 싸우는 자리였다면 네놈뿐만 아니라 도망친 저놈도 어쩌면 날 꺾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여긴 전장이다. 이미 많은 적룡단원이 죽었고 더 죽을 예정이지. 내 새끼들 죽음 위에서 싸우는 난 무적이다. 내 마공을 깰 수 있는 건 오직 나보다 더 강한 마공뿐이야.”
“유언은 다 떠들었느냐?”
“네놈 유언을 들어줄 생각은 없으니 섭섭해하지 마라!”
마웅패가 월극을 크게 한 번 휘두르자 수십 마리의 적룡환영이 그의 주위를 휘감았다. 그리곤 내려치는 기세를 좇아 일제히 천무경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