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50화 (350/432)

350화 – 제65장. 스스로 마도를 연 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 (5)

섬뜩한 소리가 명치 부근의 뜨거운 통증과 동시에 들려왔다.

선우도의 눈이 떨리면서 더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양자성의 오른손에 결속되어 그의 가슴을 꿰뚫은 마령검의 호수와 검신 일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선우도가 다시 고개를 들어서 양자성의 얼굴을 찾았다.

입가에 걸린 비릿한 조소.

“너 이……, 으그극!”

목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 양자성이 마령검을 쥔 손목을 비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에 꿰뚫린 선우도도 덩달아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몸통에 구멍이 뚫리더라도 일단 몸을 빼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트드득, 퓨퓨퓻!

그건 선우도의 몸속에서부터 나는 소음.

마령검이 안효철의 심장을 노리고 가시를 돋웠던 것처럼 선우도의 몸을 관통한 부분에서 변형이 일어나며 심장을 비롯한 내장 기관을 모두 꿰뚫은 것이다.

마령검에 완전히 꿰여버려 꼼짝없이 죽을 순간을 내맡겨버리게 된 선우도가 참담한 얼굴로 양자성을 노려보았다.

“크윽! 어, 어째서……!”

“먼저 첫 번째, 널 죽이면 네가 가진 환마대능력과 그에 연결된 술식을 흡수할 수 있다더군. 두 번째, 난 뒤끝이 아주 심한 남자야. 날 고통에 빠뜨린 널 죽여서 얻을 게 더 많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

“배신……. 끄윽!”

“아니지. 배신은 감히 단 태상의 제자인 날 노렸던 네가 한 짓이지. 크크크!”

그 순간 선우도의 온몸에 새겨진 술식들이 일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선우도가 환도술을 사용해서 발생한 현상이 아니었다.

선우도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몸에 새겨졌던 술식들이 그의 눈에 보일 정도로 공중에 떠오르더니 양자성에게 날아가면서 탈혼갑과 마령검 위로 입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얼굴에서 나온 것도 양자성의 얼굴을 탈혼갑의 조직이 감싸며 그 위로 모두 입혀졌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버린 순간, 선우도는 자신 안에 있던 환마의 마성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죽이려면 목을 쳐도 됐을 것을 명치를 꿰뚫은 건 모두 이것 때문이었어……!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빼앗기 위해! 아아, 이놈의 본색을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거늘……. 아아, 이 멍청한 노인네야!’

선우도의 얼굴에서 활기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절망이 가득 채워가는 걸 지켜보던 양자성이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면서 마령검에 힘을 집중했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 정도면 저승 가는 길 노잣돈으로 충분할 것이다.”

푸푹!

검신의 변형에 의한 가시가 선우도의 두 눈과 입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여기저기 가시의 끝부분이 튀어나왔다가 동시에 검신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마령검이 모두 뽑히자 절명한 선우도는 온몸을 피칠갑을 하며 무너지듯 쓰러졌다.

“이, 이럴 수가……! 화, 환도신마님이……!”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양자성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한 사내가 쓰러진 선우도를 본 상태 그대로 몸이 굳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머리까지 장포를 뒤집어써서 그림자 때문에 일부 가려졌지만, 그의 얼굴은 선우도처럼 기묘한 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바로 서방환마 맹호였다.

사천에서 임무 수행 중에 당혁수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그는 언제나 자기 안위를 지키는 데만 집중했다. 그는 청성산에서 단지운과 선우도가 청성파로 향할 수 있도록 도운 뒤로는 천마신교 본산으로 돌아가 줄곧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완전히 숨는 건 불가능했었으니 결국 양자성과 스칸다, 마니사 마구니들을 천도환위진을 사용하여 청해로 이동시키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의 혈전이 벌어지면서 그는 더더욱 무리의 그림자 뒤로 숨어들게 되었다.

그런 보잘것없은 수준의 겁쟁이가 되어버린 맹호도 환도신마 선우도에 대한 존경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오방환마 모두 선우도의 직전제자들이었으니 최소한 자기 안위만큼이나 선우도의 안위를 중요시하는 마음 자체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선우도가 같은 편의 칼에 찔려 죽은 것이다.

바들바들 떨던 맹호의 눈동자가 움직이다가 양자성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맹호는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도 도망치지 못했다.

팟!

양자성이 마령검을 휘두르면서 날아간 검기가 순식간에 목을 가르고 지나간 것이었다.

머리가 땅에 떨어져 데구르르 구르고 또 하나의 육신이 힘없이 무너지는 소란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맹호를 죽이면서 드러난 검기의 기척은 마구니들이나 염황마종 마인들 몇몇을 운기조식에서 깨우기엔 충분했다.

“엇? 뭐, 뭐야 방금?”

비록 강도혁을 상대로 싸우다가 심한 내상을 입었던 탓에 회복을 위해 운기조식에 집중하던 염파였지만, 마니사에서 가장 뛰어난 승도로서 예민한 기감을 갖고 있었기에 급히 멈추고 벌떡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천도환위진 안쪽으로 걸어들어오는 양자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양자성이 멈춘 위치는 천도환위진의 중심은 아니었으나 근처로 모인 무리의 중심에 해당할 만한 위치였다.

그때 염파와 양자성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염파는 전에 없던 섬뜩함을 느꼈다.

스칸다와 후대선은 처음엔 서로 떨어져서 왔던 숲길로 나아가 탐색을 했었다. 그러나 곧 후대선이 스칸다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면서 꽤 긴 대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후대선은 마니사 출신은 아니었지만, 위타천의 위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금태하를 상대로 치른 격전 속에서 그의 특이한 무공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스칸다의 무공은 일반적인 다른 마공과는 다소 궤가 달랐다.

위타여천공(韋陀如天功).

그의 공력은 항상 주술적인 효과를 내포하고 있어서 식견이 짧은 사람들은 환도신마의 환마대능력과 비교하곤 했지만, 후대선은 오히려 화염과 관련하여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들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혁련제의 보주로부터 얻은 큰불을 완전히 다루고 싶어 했던 후대선은 배움의 열망이 있었다. 그리고 스승의 역할을 했던 혁련제가 사망한 이상 그의 시선에 스칸다는 그 빈자리를 충분히 대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정확했다.

스칸다의 주술적 힘과 관련한 식견은 꽤 깊어서 후대선이 큰불을 이해하는데 깊은 영감을 주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내면을 관조하면서 큰불이 그의 의지를 따를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른 채 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방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것은 떠나온 천도환위진 쪽에서 찰나 간 느껴진 날카로운 기척 때문이었다.

“……으음.”

그 기척이 사라지고 바로 이어져서 느껴지는 것은 없자 두 사람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검기 같은 걸 시험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여기면서 몸을 다시 돌리려던 바로 그때였다.

섬뜩!

두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찰나 서로 눈빛을 교환하자마자 두 사람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날아갔다.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수십 그루의 나무들을 뒤로 지나가면서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때쯤에 이르자 두 사람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멈춘 자리에서 대략 다섯 걸음 정도 앞을 시작으로 그들 앞에 펼쳐진 숲과 너머로 열린 공터가 죽음의 대지로 변모해있었다.

나무들은 칼바람이 힘없이 툭툭 부러지며 무너지고 있었고 발목 높이까지 소복이 쌓여있던 눈들은 누리끼리하게 색이 변한 채로 녹아내리면서 악취를 담은 아지랑이를 피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방엔 함께 혈전을 치르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달려왔던 마니사 마구니들과 염황종 마인들이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체 같은 모습처럼 변해 있었다.

콰드드드……!

스칸다가 가볍게 손짓하자 기풍이 일어났다. 바람의 세기가 그리 세지 않았음에도 생명력이 모두 빨려 나간 전방의 나무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가려졌던 공터가 중앙에 선 양자성과 함께 그 풍경을 드러냈다.

스칸다와 후대선은 눈앞의 광경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일대를 잠식하고 남은 기운은 분명히 금태하와의 혈투에서 양자성이 썼던 사멸적인 사령의 기운이었다.

“양자성,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아니, 대체 무슨 짓이냐?”

후대선의 말하는 마지막엔 목소리가 좀 더 커졌다.

그만큼 그는 극도의 흥분을 간신히 억누르던 상태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양자성이 비웃음을 흘렸다.

“부족한 생명력을 보충하고 싶어서 말이야. 아, 그렇군. 이것들은 거기 두 사람의 부하들이었지? 미안하게 됐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떠드는 양자성을 보면서 후대선이 그야말로 뚜껑이 열렸다.

“이 개새끼가……!”

후대선이 그 자리에서 바로 도약하여 순식간에 양자성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화염이 날개처럼 펼쳐져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염이 내려치는 화룡도와 용문도의 궤적을 좇아 양자성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화르르, 콰아아아-!

* * * *

영천성 서문 앞에는 일단의 무리가 모여있었다.

숫자는 대략 천오백 명.

부맹주 범굉대사와 홍두형이 재차 보낸 소환장에 응하여 창천맹으로 모여든 정파 무림인들이었다.

그들 앞에서 간소하게 세운 단상 위에 오른 범굉대사가 바람에 긴 수염과 법의를 펄럭이며 연설하고 있었다.

“……(중략)…… 마침내 여러분들이 이곳 창천맹이 있는 영천성 서문 앞에 모여주셨으니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소. 빈승의 역량이 부족하여 아직 강호에 정파의 위상을 온전히 회복시키지 못했으니 말이오. 하지만, 그런 만큼 마도절멸의 역사에 정파의 활약은 반드시 일부라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오. 그리하여 전 무림의 공적이 하늘 아래 사라졌을 때, 여러분들에게 약속한 대로 빈승은 반드시 창천맹의 맹주위를 정파가 이을 수 있도록 천 맹주를 설득해 보이겠소. 만약 빈승이 여러분께 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원문선사의 결기를 이어받아 정파무림 앞에 소승의 목숨을 바치리다.”

환호나 그 어떤 성원도 없었다.

범굉대사의 연설은 그만큼 그들에게 무겁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상 옆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 연설을 모두 들은 홍두형은 참담한 표정을 한 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일전에 소요자가 소림사에 나타나 원문선사의 자결 사건을 꺼낸 건 소림사 승려들 대부분의 분노를 끌어냈다. 그러나 소요자가 떠난 후에 범굉대사는 깊이 고민한 끝에 그 소림사 치욕의 역사를 정파무림 앞에 설파하여 지원을 끌어모으겠다고 결심했다.

정파무림이 움직이지 않는 건 소요자가 떠들고 다녔던 ‘정파의 이익’이라는 명목 때문이었다. 만약 강호무림의 여러 이익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창천맹주 직을 넘겨받을 수 있다면 ‘정파의 이익’ 가운데 물질적인 부분을 크게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보이지 않는 가치보다 눈에 보이는 실익은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모아서는 전의가 살아나지 않았다.

작금의 정파무림은 이제 봉문을 부수고 세를 키우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큰 전쟁을 온전히 치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들이 충분한 전력으로서 활약하기 위해선 아직 남아있는 실질적인 경험을 지닌 소수의 노고수들과 부각되기 시작한 절정고수, 절대고수들의 참여 그리고 모두의 전의를 끌어올리기 위한 확실한 각오, 결기가 절실했다.

그 마지막 각오와 결기를 끌어내기 위해 범굉대사가 원문대사의 결기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었다.

고작 정파무림의 물질적 실익을 위해.

이렇게 되자 이젠 참여를 피하고 싸움을 피하는 건 다른 문파들에게 치욕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젊은 후기지수들의 전력은 적정 순으로 추려 미래를 도모하되 나이가 가득 찬 거의 모든 노고수들이 자기 문파의 정문을 넘어 영천성으로 향했다.

이 천오백여 명은 그렇게 수일 동안 모여든 정파 무림인들이었다.

홍두형이 단상 위에 올라 범굉대사 옆에 섰다. 그리고 특유의 괄괄한 목소리로 공력을 실어 소리쳤다.

“모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이오! 여기까지 모여서 출발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마교 놈들 모가지 하나씩은 따야 할 것 아니오! 우리 사파 녀석들에게 쪽팔리진 맙시다! 그놈들이 했던 짓을 똑같이 돌려주면 우리가 과거 그 사파놈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오? 안 그렇소?”

범굉대사의 연설을 무거운 분위기로 들어왔다면 범굉대사의 외침은 적절한 선동처럼 들리면서 꽤 격렬한 호응을 끌어냈다.

홍두형이 긍정적인 표정이 되면서 단상에서 내려와 무리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범굉대사는 단상 뒤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젊은 사내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 함께 가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대사님.”

“구룡문은 어찌된 것인가? 소문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살아남은 계수들과 함께 논의하여 결정했습니다. 위임받은 구룡문주직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이상, 각 계파는 각자의 길을 찾아 찢어지기로요.”

젊은 사내는 바로 금태하의 제자 황사열이었다. 그의 얼굴엔 백제성 패전 이후부터 지속된 침울한 감정의 그늘이 구룡문의 연합체 해산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내린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었으니 더 큰 고민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미타불, 말 못 할 고민이 있으시군. 그럼 백호계파는?”

“아버님께 맡겼습니다. 제 문제는 아버님이 아닌 스승님께 있으니까요.”

“가세. 함께 가세.”

“감사합니다.”

범굉대사가 황사열의 어깨를 쓰다듬어주니 그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생전에 어디 정파의 승려 앞에 허리를 숙이며 예의를 차릴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그러나 그런 의식은 이제 황사열에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저 모든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그의 손안에 주어진 문제, 그 물음을 금태하에게 던지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만을 어깨에 짊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짐의 무게는 백제성에서 구룡문도들을 무사히 퇴각시키기 위해 짊어졌던 짐보다 더 무거웠다.

‘사부님! 살아계십니까? 정녕 암연소혼신공이 마공이라면……, 이 제자는 무공을 포기해야 하는 겁니까? 어찌 제자에게 가르침도 없이 사라지셨단 말입니까? 당신은 분명 죽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이 제자 앞에 다시 나타나서 답을 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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