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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49화 (349/432)

349화 – 제65장. 스스로 마도를 연 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 (4)

휘이이잉……!

얼마나 달렸을까?

설원은 이미 지나고 낮은 언덕 위 숲속을 지나고 있었다. 숲을 이룬 나무들의 마른 가지들 사이로 산자락이 가까운 곳에 펼쳐져 있는 게 보였지만, 이곳으로 이끈 스칸다나 후대선은 그 산자락까지 넘을 생각은 없었다.

곧 달리던 속도를 줄였고 그런 그들 앞쪽으로 숲속에 숨은 작은 공터가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돌무더기들이 공터 내 원을 그리며 규칙을 가지고 세워져 있었는데 그것은 기운의 흐름을 꺾는 역할이 있었다.

“도착했군.”

발목 높이까지 쌓인 눈과 그 아래 흙에 덮여 가려져 있었지만, 이 자리는 천도환위진 술식이 새겨져 있었다.

스칸다, 양자성 등이 후대선을 포함한 마니사 마구니들과 함께 청해에 떨어진 지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선우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새벽의 어둠은 가시지 않았지만, 주변 풍경에 눈에 쉽게 들어올 정도로 잿빛에 가깝게 꽤 밝아져 있었다.

‘반 시진 정도면 동이 트겠군. 모두 이동시키려면 내공을 조금은 더 보충할 필요가 있겠어. 마구니 숫자가 줄어든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문득 금태하가 일으키던 어둠의 마기가 떠올라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두 시진 뒤에 이동할 테니 모두 운기조식을 하면서 쉬도록 해라.”

선우도의 말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나와 신임 염황신마는 상태가 괜찮으니 주변을 살피고 있겠소.”

“흐음, 놈들이 쫓아올 것 같진 않지만……. 그렇게 하게.”

선우도가 허락하자 스칸다와 후대선은 다시 숲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기척도 멀어지면서 주변에 고요함이 머물기 시작했다. 선우도도 운기조식을 취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으려던 중에 문득 시선이 양자성에게 닿았다.

그는 등을 보인 채 여전히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몸은 그저 뻣뻣하게 선 채로 천도환위진 중심을 향하여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달려온 진로 그대로 바라보며 멈춰 선 것이었다.

‘뭐 여기까지 잘 따라왔으니 괜찮겠지…….’

선우도는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가 깨어난 것은 한 시진 뒤였다.

두 시진을 딱 맞춰 지킬 정도로 자신을 제어할 역량은 충분했지만, 왜인지 집중력이 흐려지면서 운기조식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었다.

“후우……!”

선우도가 깊은숨을 뱉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가까이 있던 그루터기로 가서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잠시 숲속에 부는 바람을 느꼈다.

‘내공은 충분히 회복했다. ……집중…, 집중…….’

선우도는 집중을 몇 번이나 되뇌면서 머릿속을 비우려고 애를 썼다.

그러길 잠시.

“흐음…….”

선우도는 나지막한 신음이 들려오자 눈을 떴다. 그리고 곧 그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양자성이 고개를 천천히 들면서 눈을 뜨고 있었는데 통증 때문인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움츠리는 모습이 아무래도 칠흑마장 상태가 아닌 양자성 본인의 제정신을 찾은 듯해 보였다.

“여기는……?”

“천도환위진. 이곳을 통해 왔을 테니 기억할 수 있겠지.”

양자성이 선우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를 흘끔 보았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끄덕거렸다.

“그렇군. ……큭!”

양자성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온몸을 칼로 갈가리 찢어놓고 있는 것 같은 고통이다……. 왼쪽 어깨는 조금만 더 깊었으면 심장도…… 아니, 이미 이것으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이것이 아유타가 얘기한 영생인가? 큭큭! 빌어먹을…… 후회스럽군.’

양자성은 마령검을 땅에 꽂고는 드러난 오른손으로 자기 허리를 감싸고 웅크린 채 계속해서 떨었다. 그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선우도가 꽤 걱정한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출발까지는 반 시진 정도 남았으니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든 눈을 붙이든 하거라. 서서 덜덜 떨고 있으니 눈에 거슬리는구나.”

양자성이 다시 선우도를 흘끔 쳐다보고선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마령검은 바로 앞 땅에 눕힌 채 무릎에 닿도록 가까이 당겨놓았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느냐?”

선우도가 그렇게 물은 것은 양자성이 그를 보며 앉고는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고통을 잠재울 수 있는 술법도 있소?”

“착각에 들게 하여 일시적으로 잊게 할 순 있지만, 그게 너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구나. 탈혼갑이 작은 구멍 정도는 금방 아물게 한 것 같던데, 회복의 기능은 없더냐?”

“글쎄, 뭔가…… 하는 것 같긴 한데 그래서 더 아픈 건가? 크윽……!”

“흐음.”

선우도가 겉으로 보기에도 양자성이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이따금 움찔거리면서도 떨림은 떨림대로 멈추지 않는 것 같았고 이마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통증을 참느라 좁혀진 미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경지술(痲經之術)을 쓰면 고통을 덜 수 있었다.

하지만, 탈혼갑은 선우도의 지식 외 물건이라 뭔가 내부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중이라면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함부로 환도술을 걸 수 없었다.

“입 다물고 있으면 더 고통스럽기만 하고…… 말이라도 하고 있으면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테니 말벗이나 되어주시오.”

“뭐, 그렇게 하지.”

“당신은 내 안위와는 상관없이 칠흑마장만 필요했던 것이오?”

선우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흘흘……, 무슨 얘길 할까 궁금했는데. 꽤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군.”

“이 정도는 돼야 나도 고통을 잊지 않겠소? 뭐 대답하기 불편하다면 주제를 바꾸리다.”

“네 녀석에게 내가 불편할 게 뭐가 있겠느냐? 맞다. 칠흑마장으로 데려오란 태상교주님의 명령이 있으셨다.”

“그럼 당신은 마령검과 탈혼갑이 내게 왔을 때, 칠흑마장이 날 삼키려 들 걸 알고 있었겠군. 강정학을 제압하곤 나보고 죽이라고 했을 때, 내가 망설이는 걸 보고 바로 이상한 환도술을 사용했으니까 말이오.”

“……큭큭! 왜, 내게 원망이라도 남았느냐?”

“후후! 뭐, 딱히 그런 건 없소. 의심의 눈초리야 익숙하니까.”

“허?”

“여기로 출발하기 전에 성혈교의 아유타 대라마를 만났소. 그녀가 말하더군. 마령검과 탈혼갑이 하나로 모일 운명이고 그것이 내가 될 수 있다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정확하게 알 순 없었어도 각오는 충분히 하고 있었단 소리요. 어쩌면 기대감까지도, 후후후!”

“허허허…….”

선우도는 당돌한 말에 적잖이 놀라며 실소를 흘렸다.

양자성이란 젊은 사내의 야심이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변화를 모두 알고 있었소? 아니면 태상교주께서 알려줬던가.”

“아니다. 내가 칠흑마장에 대해 아는 건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두 귀물의 연결성을 봉인한 술진을 죽은 내 사부로부터 이어받았기에 내가 해금의 열쇠라는 것 이상의 정보는 알지도, 전해 들은 것도 없다. 그러나 천마조사께서 칠흑마장과 싸워 이기고 그것을 봉인하는 등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의 마성과 같은 강력한 영성을 지니고 있으리란 건 그리 어려운 추측이 아니야.”

“똑똑하시군.”

“탁월한 지적 능력은 환도마종이 가장 중요시하는 재능이다.”

“후후후! 쿨럭! ……크흠!”

선우도의 말을 듣고 양자성이 웃다가 극심한 통증에 다시 신음을 흘렸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선우도는 때마침 그도 생각난 궁금증이 있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하나 물어보지. 칠흑마장이 널 삼키려 들 거란 건 나도 예측했던 바지만, 자넨 어떻게…… 분명 처음엔 칠흑마장의 영성으로 보였는데 말이야. 네 마성이 천마성으로 남아있었다면 모를까, 자넨 검마로 명확하게 마도와 마성을 구축하지 않았나?”

선우도의 질문은 양자성으로서도 깊은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양자성은 한 가지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검마로서 마성은 마령검의 인도로 구축되었다는 것.

“……확실히 난 잠깐 정신을 잃었소. 그러나 곧 의식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는데, 그땐 칠흑마장의 상태로 안효철과 싸우고 있었을 때였소. 안효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지. 아무래도 탈혼갑의 전 주인이었던 탓에 그의 목소리가 내게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오.”

“그가 널 깨웠다고?”

“일부만. 내 이름은 어렴풋이 들렸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상은 뭐라고 하는 지는 제대로 안 들렸소. 대신 칠흑마장과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었소. 그것으로 난 칠흑마장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내 권리도 돌려받을 수 있었소. 그때 마침 당신이 날 찾아서 그 괴물 같은 금태하와 싸우게 된 것이고.”

양자성의 설명에 선우도는 진심으로 흥미로워했다.

경지를 이루고 자신이 걷는 마도의 마성을 마주하는 순간은 마교도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 경험이었다. 선우도는 그때의 경험이 너무나 황홀경과 같았는데 마치 세상의 신비를 엿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궁금하군. 무슨 대화를 나누고 무엇을 이해했는지 말이야. 알려줄 수 있는가?”

“쿨럭! 크흠, ……안 될 건 없소. 난 칠흑마장의 영성과 마주 보고 대화했소. 그는 내 의식이 깨어난 걸 놀라워하더군. 자기 안에서 서서히 소멸했어야 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날 적대하진 않았소. 그리고 설명하기를 자기는 이 땅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했소.”

“이 땅이 아니라면 다른 세상……. 다른 세상이 있다고?”

“나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하더이다. 거기도 인간이 있고, 또 인간과 비슷한 다른 종족도 있고……. 하지만, 자기는 그런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고 했소. 신의 대리자이자 집행자, 데스 나이트. 우리의 말로는 ‘죽음의 기사’라고…….”

“데쓰 나이트……. 발음은 어렵진 않은데, 아무튼 정말 놀랍군. 신의 집행자라니……!”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 때때로 인간 세상에 강림하기도 하고 또는 다른 신의 집행자들과 싸우기도 한다고 하더이다.”

“들을수록 놀랍구나.”

선우도는 정말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마치 환마와 마주하여 엿보았던 그 세상의 진리 어느 부분을 양자성의 입으로부터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신이 여럿이란 말인가?”

“그런 것 같소. 그리고 했던 말이 자신은 신의 차원에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어떤 신의 권능에 휘말려 입구도 출구도 없는 어두운 공동 속에 떨어졌다고 하는데 아마 그곳이 천산의 용암비동인 것 같소. 또 거기에 떨어진 건 어림잡아도 수백 년 전 일이었던 것 같았소.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이 바로…….”

“천마조사 단용후!”

“그렇소.”

“허허허……. 재밌군, 대단히 흥미로워…….”

양자성의 이야기는 선우도의 지적 욕망을 충실히 채워줄 수 있었다. 그래서 양자성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기존엔 탐탁지 않거나 약간의 경멸이 섞여 있었다면 지금은 재밌는 이야기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바뀌어서 그 또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아이 같은 눈빛으로 양자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윽……. 쿨럭, 쿨럭! 으으…….”

그때 양자성이 기침과 신음을 함께 토해냈다.

다른 때보다 인상을 더 심하게 찡그리면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니 통증이 극심한 게 틀림없었다.

문득 시선이 위로 향했다.

하늘이 꽤 밝아져 잿빛 어둠이 물러가고 제 색을 되찾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다면 곧 출발할 때가 되면서 마니사 마구니들도 하나둘씩 운기조식에서 깨어날 듯했다. 그렇게 소란스러워진다면 이 귀중한 이야기를 더 들을 만한 환경은 사라질 것 같았다.

“괜찮은가?”

선우도가 지적 욕망과 호기심이 앞세운 걱정을 담아서 물어보았다.

“끄응……. 지금이라도 그 통증을 가라앉히는 환도술을 써주겠습니까? 칠흑마장은 괜찮다고 하는 듯한데…….”

“음? ……그런가?”

선우도는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양자성이 칠흑마장에게 몸을 맡긴 채 여기까지 달려왔던 게 이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또 어째선지 갑자기 떠오른 진도건이 혈마와 공존한다는 사실은 그런 영성과 속으로 대화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연속으로 떠오르게 했다.

“알겠네. 내 그렇게 하지.”

선우도는 그루터기에서 몸을 일으켜 양자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채 한 손은 양자성의 오른쪽 어깨를, 다른 한 손은 양자성의 정수리를 집고 가만히 정신을 집중했다.

선우도의 팔을 따라 새겨진 술식들이 빛을 내면서 환마대능력에 의한 마경지술이 환도술의 구름이 오른손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구름은 양자성의 겉을 타고 내려가면서 그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후우, 훨씬 낫군요.”

양자성이 고개를 들어 선우도를 쳐다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선우도는 답하면서 두 손을 양자성의 몸에서 때며 아래로 내렸다.

“그럼 얘기나 마저…….”

선우도의 말이 중간에서 멈추고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왼손을 내리다가 몸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데 어째선지 양자성의 오른팔이 앞으로 들려있었다. 무릎을 세워 거기에 기댄 것도 아닌데 또 손끝은 왜인지 그의 가슴을 향해 있었다. 거기서 두 눈의 초점이 그 팔보다 더 아래 지면에 맺혀졌다.

‘……없어?’

분명 가부좌를 튼 양자성의 무릎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그의 앞에 있어야 할 땅에 누인 마령검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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