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 제65장. 스스로 마도를 연 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 (3)
검림의 분위기는 조금 어수선하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비교적 몸 상태가 괜찮은 자들이 부상자들을 살피는 한편, 사망자가 너무 많았기에 슬픔에 훌쩍거리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강정학은 낮은 돌덩이에 걸터앉은 채 눈을 감고 있다가 금태하가 다가오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을 떴다.
“클클클! 천하제일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로군.”
“여긴 어찌 알고 왔는가?”
“마성을 각성하고 보니 본능적으로 가야 할 곳이 느껴지더군. 여긴 단지 그 길목에 있었을 뿐이야.”
“……껍데긴 똑같은데 속은 완전히 달라졌군.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가?”
강정학은 금태하의 몸 상태를 한눈에 꿰뚫어 보고 있었다.
천무경과 강정학 그리고 금태하 세 사람 중에서도 금태하의 무공이 가장 사특한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런 특성은 진정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는 걸 막곤 하지만, 천무경과 강정학이라는 경쟁 상대의 존재는 금태하의 재능과 맞물려 그들에 버금가는 경지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금태하의 안에 담긴 기운은 진정 신마들과 가까운 마기를 품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순수한 형태의 마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영감도 주화입마에 걸려봐. 솔깃한 속삭임이 찾아올지도 몰라. 큭큭큭큭!”
금태하가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표정 변화 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정학의 시선에 다시 헛기침하며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그냥 내가 연 길이 마도로 가는 길이었던 게야. 암연기혼공에 부족함을 느끼고 그 무리의 확장을 시도했을 때부터,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겠지.”
“흐음, 언젠가 제대로 얘기를 듣고 싶군.”
“뭐 그러자고. 나도 이젠 적을 둘 데가 사라졌으니. 뭣하면 팔공산에 눌러앉을 수도 있겠지.”
“구룡문은?”
그 물음에 금태하는 잠시 백제성에서 제자 황사열에게 전음을 보냈던 순간을 떠올렸다. 구룡문의 전권을 위임하고 흑사전 용상에 남긴 그의 비전을 취하라고 했었지만, 사실 그것은 비전이 아니었다.
“……나도 궁금하군. 녀석이 어찌했을지. ……이대로 돌아갈 건가?”
금태하의 물음에 강정학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그를 따라온 검객들이었다. 백 명의 검수가 이젠 그를 포함해 스무 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죽음을 야기한 전투였다. 전의를 상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금태하의 질문을 그들도 들었는지 이미 검객들은 강정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결의에 찬 눈빛으로.
“총수님. 저희가 어디 잡졸입니까? 이미 각오한 일입니다.”
“단 하나라도 살아서 염황종과 마교의 멸망을 볼 수 있기 전까진 멈추지 않습니다.”
“떠나기 전까지만 울겠습니다. 그 후에 슬픔은 여기에 묻어야지요.”
“총수님을 따르겠습니다.”
검객들의 외침을 묵묵히 듣고 있던 강정학이 쓴웃음을 지은 채 화답한다.
“이젠 몇 명 남지도 않아서 표정들이 다 보이는구나. 울상에 죽상인 녀석 하나라도 있었으면 돌아가려 했건만.”
“총수께서 사기가 꺾이신 건 아니겠지요?”
“카하하하하!”
맹주태의 당돌한 물음에 강정학도 오랜만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큰 방향은 그렇게 다시 정립되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금태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집 나간 제자 놈도 계속 찾고?”
그 물음에 다시 모두의 이목이 강정학의 입에 집중되었다.
염황종에게 복수하는 것도 검림이 움직이는 중요한 이유였지만, 양자성의 배반도 거기에 불을 지피는 강력한 동기이기에 그의 처분이 비단 강정학만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검림의 모든 검객은 강정학의 제자나 다름없었으니 당연히 양자성도 그들에게 사형제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왜 살려 보냈나?”
“내심 그래 주길 바랐으면서 그걸 묻는 겐가?”
“흐음.”
“글쎄다. 내 손으로 끝내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아마 가다 죽을지도 몰라. 내가 느끼기엔 온몸의 뼈가 다 부서졌을 거거든. 장기도 성한 데 없을 거고. 그런데도 잘도 움직이는 걸 보면 들고 있던 검이나 갑주나 확실히 예사 물건이 아니야.”
“……진심은 후자였군.”
“클클클! 그 갑주의 전 주인으로서 네 생각은 어떠냐?”
금태하가 웃어넘기고는 시선을 돌려 안효철을 바라보았다.
“탈혼갑이라는 이름의 귀물이오. 그리고 내가 알 리가 있겠소? 어디 부러질 일이 있어야지.”
안효철의 대답에 모두가 내심으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늘 아래 그의 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강한 자를 몇이나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보다 의아한 건 탈혼갑은 거의 모든 충격을 튕겨내고 흡수할 수 있는데 금 선배가 어떻게 녀석을 박살낼 수 있었는지는…….”
안효철은 말하면서 곧 말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탈혼갑을 뚫고 충격을 전했던 자가 천하에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천무경과 단지운.
단 두 명뿐이었기에 바로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을 정정하기도 전에 금태하가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속에는 으스대는 내용도 있었지만, 중요한 부분을 짚기도 했다.
“이 몸의 무공이 전보다 더 강해졌는데 그깟 귀물의 방어력 따위 힘을 발휘할 수 없지. 그보단 내가 보기에 그 귀물은 네놈과 달리 영감의 제자와는 완전히 한 몸처럼 되어버렸다. 그럼 그것은 갑주라고 봐야 하느냐, 아니면 고깃덩이로 봐야 하느냐?”
“흐음…….”
안효철이 고심의 신음을 흘리는 사이,
휘익, 탁!
뭔가가 날아와 금태하의 손아귀에 잡혔다. 그리고 강정학과 강도혁, 안효철은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금태하가 공력으로 어깻죽지를 완전히 망실시키면서 떨어져 나간 양자성의 왼팔이었다.
당연히 탈혼갑도 그대로 팔에 달라붙은 채로 남아있었는데 금태하가 양자성의 왼팔을 훑어보고는 기공에 잘린 단면을 세 사람 모두 볼 수 있도록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해가 되느냐?”
그 단면을 본 세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특히 탈혼갑의 전 주인이었던 안효철은 거의 치를 떨듯이 떨었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으로부터 떼어낼 때도 탈혼갑의 조직은 피부와 근육 바깥 부분까지 파고들어서 그를 고통스럽게 했었다. 하지만, 양자성의 왼팔은 단면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탈혼갑의 조직이 팔뼈까지 파고들다 못해 주변부 근육조직까지 모두 스며들 듯 녹아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탈출구가 없어져 버린 탈혼갑의 저주.
충격마저 온몸에 받아낼 수밖에 없게 된 저주.
“이젠 죽어서도 벗지 못하겠군.”
안효철이 참담한 마음으로 중얼거리자 강정학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는 하늘을 바라보듯 고개를 들었다.
따뜻한 자비심 하나 느껴지지 않은 설산의 찬 바람이 상심한 노인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 * * *
전투에서 후퇴한 날 새벽녘.
정신을 잃었으나 몸은 칠흑마장에게 맡겼는지 양자성이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로 선우도 등의 뒤를 쫓아서 설원을 달리고 있었다.
왼쪽 어깨는 왼쪽 가슴 중앙까지 둥그렇게 소멸한 상태여서 폐까지 잘려 나갔을 텐데도 기식(氣息)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지만, 출혈 없이 내부 조직까지 동화되어 출혈 등의 체액이 상실되는 걸 차단한 탈혼갑의 능력도 놀라웠다.
그런 모습을 흘겨보듯 살피곤 다시 전방을 바라보는 선우도의 표정엔 낭패스러운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태상교주님의 다음 지시는 무엇이오?”
스칸다의 물음이었다.
“……교주님의 명령을 받고 온 게 아니었나?”
“혁련제는 죽었지만, 후대선 공이 염황의 힘을 받았으니 어찌 임무는 수행할 수 있었지만, 따라야 할 다음 지시사항은 특별히 없었소.”
선우도의 생각에 스칸다의 처신은 약간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위타천은 마니사를 관리함과 동시에 교주 직속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실용성보다는 상징적 가치가 더 컸는데 그 이유엔 전대 위타천인 루드라가 천마조사 단용후의 깊은 추종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칸다는 그런 루드라의 사상과 그가 생각하는 방식을 철저하게 배우며 성장한 인물이었다.
즉, 이는 다시 말하면 스칸다 개인의 사고 중심은 어쩌면 단지운보다 단원진에게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얘기였다.
“태상교주께선 칠흑마장을 다시 보고 싶어 하시오. 칠흑마장은 천마조사 생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존재. 순순히 따라올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뭐 다행스럽게도 문제는 없어 보이고…….”
스칸다도 칠흑마장에게 몸을 맡긴 양자성을 흘끔 보았다.
스칸다는 침착하고 과묵한 편이었다. 할 말은 하는 편이었지만, 그 범주는 공적인 범위 내로 무척 제한적이었다. 그만큼 바깥으로 자신을 드러낸 정보량이 많지 않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루드라의 진전을 모두 이은 만큼 천마신교 내의 여러 인물 가운데 단원진을 제외하면 천마조사에 관련된 역사를 그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었다.
‘칠흑마장……, 저런 꼴을 하고 있어도 건질 게 있단 말인가?’
스칸다도 양자성의 상태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절대적 경지에 오른 고수라면 탈혼갑을 뚫고 내부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단용후가 칠흑마장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으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탈혼갑을 온전히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본래 가진 무공도 상당해야 했기에 그 방호력은 분명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금태하의 공격에 완전히 찢겨버린 데다가 신체 내부까지 망가져 있는 모습이 바깥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그가 알고 있는 정보에 오류가 있다는 것 정도는 바로 판단할 수 있었다.
‘마령검과 탈혼갑을 요구한 게 아니라 칠흑마장을 보길 원한 거라면…… 애당초 이런 결과물을 예상했거나, ……아니면 탈혼갑이 가진 개별적 가치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 인가?’
선우도와 스칸다가 나름대로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후대선도 인상을 찌푸린 채로 복잡한 생각에 시름하고 있었다.
‘혁련제가 준 보주로 내 염룡마공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혁련제의 큰불엔 미치지 못하는구나. 아니, 오히려 너무 뜨거워 다루기 어려운 느낌이다. 수련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내 장작으론 부족한 것인가?’
후대선은 혁련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어느 수준인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작금의 자기 능력에 아쉬움이 컸다.
백제성에서 금태하를 꺾는데 혁무술보다 혁련제의 공이 더 컸다는 보고는 자부심을 느낄 만한 소식이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설산 분지에서 마주친 금태하를 상대로 자신으로선 충분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후대선이 양자성을 흘끔 보았다.
그에 대해선 화염산까지의 여정을 함께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계속 두고 있었다. 태상교주의 제자가 되고 검마라는 힘과 지위를 얻었다는 건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구전으로만 얄팍하게 전해져왔던 칠흑마장과 하나가 되었다는 건 여러모로 놀라운 점이 많았다.
‘염황마종의 화염은 같은 마교도라면 피아를 가릴 수도 있는데 대체 저 존재가 뿜어내던 기운은 뭐란 말인가? 내 화염이나 스칸다의 주술적 공력, 환도신마의 환상까지 사멸시키다니. 마도의 물건은 맞긴 한 것인가? ……자네는 양자성인가? 아니면 칠흑마장인가?’
양자성에 대한 의문점이 떠오르자 곧 금태하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환도신마님, 금태하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가 다루는 기운과 무공은 분명 우리와 같은 마공이었습니다.”
“구주나 다른 마도 중엔 천마조사나 단 태상으로부터 마정을 받아 힘을 깨우친 자들도 있지만, 스스로 마도의 길에 들어섰기에 영입된 예도 있지 않으냐? 금태하도 아마 비슷한 경우겠지만, 아무리 본래 화경에 이른 고수였다고 할지라도 신마들과 버금갈 정도로 완벽한 마인의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는 게 나도 무척 놀랍구나. 스칸다, 네가 보기엔 어떤가?”
“……공감하오. 그 정도의 강함은 일월신마 혹은 그 이상……. 마의 순수성이라면 천마성에 비견될…….”
“그 정도까지?”
스칸다의 의견에 선우도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의 순수성.
역대 두 위타천은 모두 그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이 마니사의 관문이 된 것도 단순히 무공의 강함만을 보려는 게 아니었다. 정말 가치를 인정할 만한 마도를 열었느냐도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판단기준이었다. 그래서 천마신교가 세를 불리는데 열중한 초창기 루드라 대(代)와는 달리 스칸다 대에 이르러선 굳이 구주의 기준을 중구난방 늘릴 필요가 없었기에 시험을 통과한 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구마진은 혈마라는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진행된 계획에 따른 예외 사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