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 제65장. 스스로 마도를 연 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 (2)
“후퇴해라, 양자성!”
선우도가 소리치면서 동시에 환술을 펼쳤다.
천수난화(千獸亂化)의 술.
선우도의 문신 가득한 손이 지면을 때리자 지면을 타고 기묘한 술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짐승들이 나타나 안효철과 청명, 검림 검객들을 모두 덮쳤다.
스칸다와 후대선 그리고 염황마종과 마니사 부하들 측엔 미리 전음을 보내서 환술의 영향권에서 피신하도록 조치한 뒤였다.
환영으로 만들어진 짐승 하나하나는 심각한 위협은 아니었지만, 중구난방으로 난립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성은 떨쳐내기 어려운 환술이라는 특성과 겹쳐서 움직임을 제한하는데 무척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광범위한 기공이 장기인 자가 그들 가운데 없었으니 아주 적절한 선택일 터였다.
“이, 이런……!”
선우도의 얼굴이 금방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미 금태하를 막기 위한 적절한 환술도 준비하고 있었지만, 양자성이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더 기세를 올려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노(姜老)야, 어찌하랴?]
[……내 제자다.]
[……수습할 수 있게는 해주마.]
금태하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살짝 떨어뜨리는 강정학의 모습이 스쳤다.
천지간에 모두 위험하기 그지없는 기운들의 폭발들 속에서 양자성이 마치 주변으로 다가오는 기운들을 사멸시키던 것을 떠올리면서 금태하도 양자성에게 힘을 집중하기 위해 자신이 깨달은 마공을 펼쳤다.
흑암구백마공(黑暗救魄魔功) 암전계(暗轉界).
광의를 품은 양자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기세가 무너진 건 아니었지만, 당혹감이 분명하게 감지된다.
그럴 것이다.
다른 자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양자성만큼은 그 눈에 비친 온 세상이 깊은 어둠에 휩싸인 채 오직 눈앞의 적인 금태하만을 보게 될 것이니,
‘역시 더 즉각적으로 작용한다.’
주화입마 끝에 암마의 각성과 수용단계를 지난 금태하는 청명과 함께 한 그간의 여정 속에서 암마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탐구하며 끝내 깨달음을 얻었다.
내공의 형질 변화는 물론 손에 잡힐 것처럼 그가 여태 알고 있던 걸 모두 뒤엎을 정도의 새로운 무리(武理)가 머릿속에 펼쳐지면서 암연소혼신공을 한 단계 발전시켰으니 그것이 바로 흑암구백마공이었다.
그러한 깨달음의 끝에서 금태하는 마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마도(魔道)란 사람과 자연과 세상이 가진 본성과 본질, 섭리를 흔들어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
그것은 흔히 사파보다 좀 더 인간 본성에 따른 힘의 논리 따위로 대변되던 그런 설명이 아니라 지금 이 강호무림에 마도가 세상에 끼치고 있는 실질적인 영향력에 관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그 가공할 만한 속도감은 자연의 법칙조차 반하는 초현실적인 느낌이었으니 천마신교로 대두되는 지금의 마도 안에서는 강함이란 것도 이런 테두리 안에서 구분될 것이 틀림없었다.
슈슈슈슉!
양자성이 검을 연속으로 휘둘러 검기를 발산했다.
스치기만 해도 닿은 부위의 생명력이 고갈되어 자연적인 회복을 기대할 수 없게 하는 사멸적인 위력이 거기에 실렸다.
“어둠에 잠겨라.”
양자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검기가 금태하에게 이르지 못하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금태하의 신형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그 순간 양자성도 깨달았다. 그동안 금태하가 거리를 두며 기공 위주로 싸웠던 건 그가 뿜어내던 사령역장(死靈力場)의 피해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상태를 다시 살피니 사령역장의 범위가 반경 석 장 정도에서 한 장 정도로 크게 줄어든 것이었다.
‘이 어둠이 내 힘을 억누르는구나! 과연 내 사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양자성은 자신에게 닥친 이 현상을 깨달을 새도, 강정학을 사부라고 떠올렸음을 깨달을 새도 없었다.
사위를 감싼 어둠은 그에겐 이미 즉각적인 위협.
어렴풋이 느껴지는 힘의 흐름은 금태하가 거리를 좁힘으로써 찰나의 시간마저 쪼개어 앞당겨서 닥쳐왔다.
콰드드득!
순식간에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 속에서 또 다른 위협이 어둠을 타고 온다.
콰콰콰콰콰!
“크하악!”
비명을 토했다. 탈혼갑을 뚫고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충격에 양자성의 동공이 가늘게 떨렸다.
여전히 시야에 가득 찬 어둠.
양자성을 감싼 사령의 기운이 좀 더 신체 가까이 줄어들면서 금태하도 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공격들이 양자성을 향해 퍼부어졌다.
꽈꽈꽈꽝-!
“……끄어어!”
선우도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장내에서 싸우는 일곱 명 가운데 가장 존재감이 높은 자는 물론 금태하였지만, 양자성이 사령역장을 펼쳐 막대한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싸우자 기세를 단번에 자신의 것으로 끌어모았다.
거기에 금태하조차 강한 위협을 느끼면서 거리를 두고 접근을 막으려 했었으니 그 치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세가 뒤집혀 버린 것이었다. 특히 선우도의 눈이나 감각에 좀처럼 명확하게 감지되지 않는 무형의 기공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이대론 안 된다. 칠흑마장을 확보하는 게 내 임무거늘!’
선우도는 즉시 환도역장을 펼쳤다. 양자성과 금태하 사이 공간을 왜곡하여 위협을 일시 차단하고 금태하의 영향권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환도가 닿지 않아?’
환도(幻道)는 단순히는 마도의 명칭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환도마종의 마교도들에게는 일명 ‘심안에 비치는 진리의 길’이라고 불렀다.
환도술은 펼칠 때마다 시야에 비친 전경 위로 술식의 잔상이 덮이고 새겨지는데 이것은 남들이 보지 못한다는 쾌감과 시각적 자극을 주었다.
이는 강한 중독성으로 되돌아와 환도마종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부차적인 작용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환도술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므로 자신의 역량에 대한 가시적인 지표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그런 눈에 비친 환도역장의 환도가 양자성에게 닿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사라지듯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었다.
선우도의 깊은 경험 속에서 이런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같은 경험을 오직 단지운에게서만 겪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콰쾅! 콰드득!
“끄아아악!”
다시 들려오는 섬뜩한 소음과 양자성의 비명에 선우도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
더 섬뜩한 건 이어지는 금태하의 목소리였다.
“얌전히 있어. 사지를 다 찢어버리기 전에.”
“놈을 막아!”
금태하도 자신의 뒤에 나타나 안효철과 청명을 떨어뜨려 놓은 가시덤불의 환영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도망칠 듯 멀어졌다가 여의찮아 다시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세 명의 마교 고수들을 보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크크크……! 버러지 같은 놈들!”
금태하가 양자성의 검을 든 손목을 붙잡았던 손을 놓고 두 팔을 활짝 펼치자 그 순간 어둠의 파장이 전역에 퍼졌다.
흑암구백마공 암천대계(暗天大界) 파황경(破荒勁).
양자성이 겪었던 사위가 어둠에 잠기는 경험을 다른 마교의 세 고수들도 공유한다. 대신 힘이 분산되었기에 완전한 암흑보단 깊은 밤에 이른 듯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둠을 타고 무형의 경력이 네 적 모두에게 쏟아졌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어둠의 파도 앞에서 거대한 화염이 부서지고 뇌전의 광휘는 산산이 흩어진다. 환영의 빛도 그 아래 짓뭉개질 뿐이었다.
‘염황과 광혈에게 꺾였던 자가 대체 어떻게 이런 힘을……!’
차원이 다른 내공의 깊이와 한계를 모르는 기공의 범위 그리고 압도적인 위력.
이 순간 선우도를 포함한 다른 두 고수들 모두 금태하에게서 천마 단지운과 비슷한 그늘을 느끼고 있었다.
슈악!
그때, 마령검이 허공을 갈랐다.
다른 이들에게로 어둠이 분산되자 양자성이 자신을 짓누르던 어둠의 억압을 마침내 떨쳐냈다.
“허억!”
하지만, 양자성의 몸은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뼈마디가 여기저기 부러졌을 정도로 내상이 깊은 상황인데 탈혼갑이 억지로 그의 육체를 붙들고서 움직이게 하는 지경이었다.
“죽엇!”
양자성이 사령의 기운을 마령검에 한데 모아 연속으로 휘둘렀다.
위기의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펼쳐진 것은 백령검법 백소칠잠(白溯七潛)의 검로였다.
하지만, 양자성이 선택해야 할 것은 사령의 기운을 폭발시키면서 도망칠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 강정학과 대결한 경험으로 백소칠잠의 검로를 경험한 바 있었던 금태하가 초식의 깊이가 얕은 양자성의 검격을 받지 못할 리가 없었다. 쌍수가 과감하게 검의 궤적 속을 휘저으며 손목을 밀어내니 순식간에 가슴이 열리면서 그 중심에 금태하의 좌장이 꽂힌다.
꽈앙!
“커헉!”
양자성의 입이 벌어지며 죽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쌓여갔던 충격의 피로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었다.
눈의 초점마저 흐려지며 일시 몸이 늘어지니 금태하가 그 빈틈을 놓칠 리 없었다.
파파팡! 콰직!
“……끄아아악!”
삼연격이 연속으로 몸통에 적중하면서 방어가 완전히 열리고 애매하게 흔들리는 왼팔을 붙잡아 꺾어 부러뜨렸다.
고통에 절로 몸을 웅크리니 양자성의 머리가 무방비하게 앞으로 나왔다.
“잘 가라.”
면전으로 날아드는 주먹이 양자성의 눈을 가득 채운 순간,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훅!
적중할 줄 알았던 주먹을 양자성이 고개를 틀어 피하는 순간, 금태하는 냉정하게 위협을 인지했다. 하지만, 이미 몸에 닿고 있는 위협을 미리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푸푸푸푹!
탈혼갑의 변형.
솟아오른 수많은 가시들이 금태하의 몸을 꿰뚫었다. 사령의 기운은 호신강기마저 사멸시켜 무력화한다. 금태하도 위험을 감수하여 접근한 것이지만, 결국 모두 피할 수 없었으니 패배감만 가득했던 양자성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서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양자성의 표정이 다시 굳어진 건 금태하가 어둠에 물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큭……!”
어둠에 물든 금태하의 바로 뒤에서 그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온 순간,
퍼엉!
‘……어?’
소용돌이치는 어둠의 기운이 기둥처럼 뻗어 양자성의 어깨를 꿰뚫었다.
왼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공격에 왼쪽 어깨가 완전히 소멸한 것이었다.
그런 피해에도 양자성은 엄습해오는 고통을 바로 느끼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하여 부릅뜬 눈으로 온 신경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보고 깨달게 된 사실은 탈혼갑 변형으로 꿰뚫은 건 금태하의 그림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태하는 그 그림자 뒤로 숨어선 자신의 그림자를 가림막 삼아 장력을 퍼부은 것이었다.
뒤이어 몰려오는 고통에 양자성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죽을 수 없다. 도망쳐라. 데스나이트(Death Knight)…….’
금태하는 순간적으로 양자성으로부터 수상한 기질의 변화를 감지했다. 그러나 그도 이미 다음 일격을 준비한 상황이었다.
콰콰쾅!
어둠에 숨은 강기공이 연달아 쏟아졌으나 곧 그 충격 위로 알 수 없는 형체가 불쑥 솟아올랐다.
위협을 느낀 금태하가 다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올려다보자 그 형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불꽃에 휩싸인 해골 그리고 탈혼갑과 닮은 육신으로 마령검을 높이 치켜든 모습.
그것이 기운으로 일궈낸 형상임을 인지한 순간, 거대한 마령검이 금태하를 노리고 떨어졌다.
콰앙! 콰콰콰콰!
무겁고 폭발을 동반한 일격 그리고 거기에 동반하여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멸적 기운의 충격파.
위력적이었지만, 위협적이진 않았다.
떨어지는 일격을 물러서서 피하면서 다가오는 충격파를 그도 흑암의 기운을 일으켜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모조리 터뜨려버렸다.
하지만, 양자성으로선 도주할 틈을 번 셈이었다.
부리나케 도망치는 양자성과 선우도 등 신마급 고수들 그리고 마교 잔당들까지.
금태하는 어느새 멀리 떨어져 버린 그들의 뒤꽁무니를 굳이 쫓지 않았다.
“뒤쫓지 않는 거요?”
“난 구룡문을 버렸지만, 강노인은 그렇지 않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지.”
금태하가 심드렁한 어투로 대답하자 안효철도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검림의 생존자들을 돌아보았다. 패색이 짙던 전투가 역전되고 그도 탈혼갑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에 취한 나머지 생존자들을 잊고 있었다.
“멀쩡한 옷가지가 있나 시체들부터 뒤져봐라. 더 싸웠으면 고추도 내놓았겠구나. 천하오절이라는 무림의 대선배가 덜렁거리고 다니면 쓰나.”
안효철이 고개를 숙여 거의 헐벗다시피 한 자기 모습을 살폈다. 고개를 옆으로 숙여서 바람이 조금 불길 기다리면 정말 보일 것도 같았다.
“봤소?”
“물어볼 걸 물어보거라.”
“하하하하! 그러지 말고 금 선배 장포나 주시오. 내 온몸이 잡아 뜯긴 바람에 더러운 걸 입을 수가 없소이다.”
“쯧!”
안효철이 말 돌리는 것도 없이 직접 요구하자 금태하가 혀를 찼다. 그러나 손은 이미 장포를 벗어서 안효철에게 넘기고 있었다. 헐벗은 꼬락서니를 더 보기 힘들었던 마음이 컸다.
안효철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장포를 몸에 걸쳐보는 사이, 금태하는 청명을 돌아보고는 검림 쪽에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영감의 몸 상태는 어떻더냐?”
“급한 불은 껐지만,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다만 높은 경지를 이루신 분이니 어찌 될지는 모르겠으나 제 식견으론 무공을 모두 회복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살 만큼 살았으니 그 정도면 됐다.”
금태하가 무심한 얼굴로 말하면서 강정학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명이 그런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나직이 도호를 외운다.
“원시천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