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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46화 (346/432)

346화 – 제65장. 스스로 마도를 연 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 (1)

누군가 그곳을 보았다면 지옥에 떨어졌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 그곳을 보았다면 이건 천상지하 어디에도 없는 지옥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갖고 있던 지식, 관념 그리고 인식 등으로 헤아리고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현상들과 마물들의 기괴함은 순식간에 모래사막을 덮은 죽음보다 더 큰 의문과 호기심을 자아낼 정도였다.

호기롭게 마물들을 베기 위해 뛰어들었던 진도건이었지만,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시간에 끝이 보이면서 여유를 갖게 되자 고민도 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연 이 마물들은 무엇인가?

팔대지옥의 문을 열고 아귀도나 수라도의 문을 열어 그것들을 이 세상에 불러와도 과연 이 마물과 같은 존재들이 있을까?

무엇보다 이 마물들을 베어 죽이면서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그저 환각처럼 끝나버릴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눈과 지식으로부터 감춰진 다른 세상을 엿본 듯한 느낌이란 것이다.

쿠와아아앙!

마물들의 파도가 끝이 보일 때쯤, 갑자기 듣기 끔찍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본래 아직 남아있었던 균열의 틈에서 흉측한 발톱과 기괴한 피부를 가진 거대한 손들이 나타나더니 균열을 강제로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괴수가 거체를 드러내며 요란하게 떨어졌다.

쿵!

모래언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짓눌러 굉음을 일으킬 정도의 육중함이다.

소의 뿔과 머리 그러나 흡사 사자를 닮은 듯한 아가리와 생물을 알 수 없는 비늘과 털을 동시에 가진 검붉은 몸통, 그 거체를 두 발로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두꺼운 다리와 모래언덕의 절반을 움켜쥘 듯한 큰 손발.

외형에서 느껴지는 흉포함은 인지 한계의 추월을 강제한다.

“쿠와아! 콰아아아! 크앙!”

분노로 가득 찬 괴수가 발을 구르면서 울부짖었다.

“귀따갑게 자꾸 짖어싸…….”

“풋!”

압도적인 크기와 성량에 잠깐 멍하니 쳐다봤던 진도건이 혈마의 말을 듣고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괴수와 머리 위의 균열을 바라보았다.

“저 괴물만 처치하면 끝날 거 같아. 저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오롯이 저 괴수로 집중되기 시작했어.”

“아아, 점점 기운이 세지는 게 느껴져. 그렇다면 미리 막아야겠지.”

“어떻게?”

“이렇게!”

혈마의 신형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형체가 무너지고 대신 거대한 혈기의 파도가 되어 순식간에 괴수의 머리 위를 덮었다.

“쿠와왁!”

괴수도 어느새 머리 위를 덮어 하늘이 붉게 보이자 괴성을 내지르면서 뛰어올라 큰 발톱으로 할퀴었다. 그러나 마치 강물을 손으로 할퀴듯 출렁이는 느낌만 들고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화륵!

“크르릉!”

괴수의 흉측하게 뾰족한 이빨들 사이로 불길이 일렁거리더니 화염의 숨결을 하늘로 토해내었다. 혈마가 펼쳐낸 혈기의 장막에 막혀 잠깐 동안은 하늘이 불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뜨겁다, 이 괴물 새끼야! 니가 날 쳐다볼 여유가 있느냐?”

혈마가 낸 귀곡성이 일대를 웅웅 울렸다.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괴수가 불을 토해내길 멈추고 머리를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진도건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음을 보았다.

후아아악!

열 사람은 능히 움켜쥘 손아귀가 파공성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혔다.

큰 손톱들이 모래를 한가득 움켜쥐면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폭포처럼 흘러나오는데 이미 진도건의 신형은 그보다 먼저 빠져나와 괴수의 팔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카카칵!

단단한 가죽과 두꺼운 육질은 검이 깊이 들어오는 걸 저항하며 얕은 생채기에 그친다. 그러나 세 번째 검격에 이르렀을 때, 진도건은 새로운 감촉에 적응하면서 다음 검격에 파천신공의 기운을 마음껏 싣는다.

콰드드득-!

“쿠와아아악-!”

진도건의 신형이 괴수의 손목에서 어깨 부근에 이르는 순간, 뇌전을 실은 검기가 사방으로 폭사되듯 뻗어나가면서 괴수의 두꺼운 팔이 십여 조각으로 완전히 잘려버렸다.

괴수의 어깨 아래로 검은 피가 매캐한 연기와 함께 흩뿌려질 때, 진도건은 어느새 괴수 머리 위까지 날아올라 검을 쳐들었다.

화르륵!

괴수가 입으로 다시 한번 불길을 머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불길을 일으키며 더 강력한 화공을 예고했다.

그 순간 혈마도 호응하려는지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내려와 진도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다시 조화를 이루는 파천혈마공.

하늘을 집어삼킬 듯 뿜어져 올라오는 화염과 열기 속에서 진도건이 뇌전을 품은 혈마기를 검격에 실었다.

콰아아아-!

슈캉!

거대한 화염이 갈라지면서 붉은 검광이 지면에까지 내리꽂혔다. 그저 검기만 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돌입하여 검력을 온전히 실은 결과가 세로로 일도양단되어 좌우로 각각 쓰러지고 있는 괴수의 몸체였다.

쿠궁!

괴수의 사체가 무너지고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속에서 진도건이 바람을 일으켜 모래들을 떨어뜨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붉은 장막이 걷히면서 혈마도 제 모습으로 돌아와 떨어지고 있었다.

괴수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크게 벌어졌던 틈이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진도건이 그 사이로 보이는 어둠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때, 알 수 없는 섬뜩함이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저 어둠에 숨어 여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빨려들어 갈 것처럼 보게 되었지만, 균열은 금방 닫혔고 진도건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느꼈느냐?”

진도건이 혈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느낌밖에…….”

혈마의 물음에 답하던 진도건의 머릿속에 조금 전 싸움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런가?’

혈마는 마기를 탐식하는 습성이 있어서 괴수로 쏟아지던 힘의 파장를 차단하는 순간,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혈마를 통해서 진도건의 몸에도 그 경험이 전해지고 있으니 꽤 격렬한 싸움에서도 오히려 기가 살아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진도건이 뭔가 알 거 같다는 표정이 되었으나 그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느꼈던 혈마는 실소를 픽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군.”

“응?”

진도건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혈마는 진도건에게 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뭔가를 느꼈다는 말 정도는 혈마가 기대한 대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느꼈냐고 물었지만, 그가 원했던 대답은 ‘보았다’였다.

고개 돌린 혈마의 시선이 좀 떨어진 모래언덕 위의 조강선과 언제부터였는지 그 옆에 서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여인에게 닿았다.

혈마의 시선을 인지한 진도건도 조강선 옆 여인에게 시선이 닿았다.

이미 마물들과 싸우는 와중 속에서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나타난 새로운 존재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진도건도 자연히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가 뿜어내는 존재감이란, 사람인 진도건과도 달랐고, 귀령(鬼嶺)이라 할 수 있는 혈마와도 달랐으며, 신선(神仙)이 된 조강선과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혈마가 앞서서, 그리고 진도건이 뒤따라 몸을 날려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 뒤 마물들의 시체 더미는 자연발화처럼 불타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했다.

“뭐 하는 년이냐? 아니, 조강선이 말했던 그년이겠지.”

두 사람 앞에 서자마자 혈마가 여인을 직시하며 물었다.

하지만, 여인은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 대답도, 인사도 없이 혈마를 지그시 내려보았다.

“뭐 하는 년이길래 건방지게 감히 나를 시험한다 만다 하느냐?”

“당신은 아직 격을 갖추지 못했어요.”

“뭐?”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낮춰보는 그 태도는 당신이 가진 혼돈의 기질과 같으니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조금은 진정할 필요도 있어 보이는군요. 선을 넘기 딱 좋은 위치에 있어서 말이죠.”

여인의 말에 담긴 여유와 더불어 은근히 그를 낮춰보는 말투가 심기를 자극한다.

혈마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다라……. 그 말이 참 건방지네. 그 선, 어디 한 번 넘어봐?”

혈마의 두 발이 성큼성큼 모래를 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붉은 검이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으나 여인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혈마의 심기를 더 건드렸다.

“이 건방진 년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막 검으로 내려치려는 찰나, 여인이 어느새 한 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 혈마의 눈에 들어왔다.

딱!

“헉!”

진도건도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바깥으로 드러났던 혈마의 영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의 안에 그 존재감이 다시 들어섰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야! 이 개 같은 년아, 다시 안 돌려놔?”

귀로 들려오던 혈마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을 웅웅거린 건 물론이었다.

“알겠어요. 다시 돌려놓죠.”

여인이 다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혈마의 영체가 다시 드러났다.

“야이……!”

딱!

혈마가 다시 그녀를 덮치려고 하자 여인이 손가락을 튕겼고, 그 뒤로도 세 번이나 더 반복되었다.

“이 싯팔…….”

진도건은 그 무의미한 다툼 과정에서 계속해서 머릿속을 웅웅거리는 혈마의 목소리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혈마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수준이 되자 좁아졌던 미간이 서서히 펴졌다.

“흥미롭군요. 짐작했던 것보다 빨리 진정할 수 있는 건 진도건 당신의 영향 때문이겠죠?”

혈마는 침묵했다.

하지만, 그의 감정이 진도건에게도 곧장 전이되었다.

진도건은 차분한 표정의 조강선을 한 번 보았다가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누군지,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또 알려주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여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실로 아름다운 웃음이지만, 그 미소 속에는 숨겨진 섬뜩한 무언가도 느껴졌다.

“진도건, 당신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군요. 하지만, 당신 안의 혈마도 그럴 준비가 되었는지는 의문이군요. 제가 이 차원을 찾은 진정한 이유는 오직 당신 안의 혈마이니 들을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면 곤란해서 말이죠.”

“……떠들어 보라 그래.”

“그렇다는데요?”

“후후, 그렇군요. 그럼 잠시 당신의 의식 속을 빌리겠습니다.”

“예?”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 진도건이 반응하듯 되물었다. 그러나 여인은 대답 대신 마치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면서 서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진도건을 꼭 안았다.

그때까지도 진도건은 꼼짝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안자마자 두 눈으로 빛이 눈부시도록 쏟아져 들어왔다.

아니, 온몸이 빛에 휩싸여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이름은 나시드. 창조와 운명을 관장하는 모든 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이름 없는 진리’의 대리자입니다.”

* * * *

‘이런 싸움은 평생에 두 번은 없을 것이다.’

강호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강도혁조차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싸움이었다.

한 장소에서 일곱 명의 절대고수가 충돌하는 광경은 마치 신들의 전쟁을 떠올리게 했다. 그 여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검림과 마교도들이 각기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떨어져 있을 정도였다.

더는 상대를 포위하고, 저항하고 하는 식의 생각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온 신경을 사로잡는 격전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들이 싸우는 공간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위험천만한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소용돌이치는 불길, 공기를 찢는 벽력성, 수많은 환영의 공격만 해도 그 안은 죽음 외엔 허락하지 않을 듯했지만, 그 속을 피투성이 육신으로 휘젓고 다닐 정도로 광기에 찬 노구와 투명한 광휘에 둘러싸인 채로 유영하는 젊은 도사의 모습은 인지 간에 부조화를 일으킨다.

하지만, 이만한 것들도 두 존재가 뿜어내는 존재감 앞에선 그저 장식과도 같았다.

모든 기운이 양자성의 몸을 타고 흐르는 잿빛 기운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마치 산(酸)에 녹아내리듯 그 어떤 구조나 성질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멸해갔다.

생명의 죽음이 아니라 기세, 기운의 죽음이었다. 그런 기운이 양자성의 온몸을 두르다 못해 자기가 선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석 장 거리 내에 모든 것들이 영향을 받아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싸움 중에 양자성이 머물 자리가 시시각각 변할 때마다 그 거리 그대로 영향을 끼쳤다.

모든 것의 사멸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만 않았다.

그렇게 위협적으로 변모한 양자성이었음에도 금태하의 무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패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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