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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45화 (345/432)

345화 – 제64장. 해제(解除), 해방(解放) (5)

슈악!

양자성의 신형이 앞으로 쭈욱 늘어지듯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안효철도 양자성을 향해 몸을 던졌다.

앙자성의 머리 위로 잿빛 마기가 하늘을 뚫을 듯 솟아나더니 그대로 안효철에게 떨어졌다. 하지만, 안효철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여 양자성의 측면을 지척에 두었다.

무쌍류 붕산격(崩山擊).

쩌엉!

절대적 반탄력을 자랑하는 탈혼갑일진데 안효철의 맨주먹에 실린 경력에 밀려 굉음과 함께 공격방향 반대편으로 눈 깜짝할 새 날아가 버렸다.

꽈앙!

양자성의 신형이 가늠하기 힘든 거리를 날아가 바위마저 뚫고 나서야 지면을 대굴대굴 굴러 널브러진 채로 멈췄다. 그리고 그가 떠나감으로써 자리에 홀로 남은 안효철이 충격에 의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피투성이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까득거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과연 철갑권왕. 맨주먹만으로 저런 일격이라니……!”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선우도를 바라본 안효철이 마침내 얻은 자유로 해방감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저따위 갑주 없이도 내 주먹은 강하다. 그러니 앞으론 나를 철권왕(鐵拳王)이라 불러라. 그리고 모두 죽을 준비들 해. 너희들한테 베풀 자비 따윈 없으니까.”

안효철이 도발하자 선우도가 웃음을 흘린다.

“훗훗훗!”

“왜 웃지?”

“탈혼갑의 방호력은 네가 더 잘 알면서 벌써부터 기세등등하다니,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선우도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얘기하는 그때, 안효철의 감각에 섬뜩하리만치 강력한 마기가 감지되었다.

그의 일격을 맞고 양자성이 나가떨어진 바로 그 방향에서 그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정도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안효철의 고개가 그곳으로 향하자 선우도가 만면에 더 큰 웃음을 품은 채 입을 열었다.

“칠흑마장이 마침내 부활했다. 네 힘을 흡수했더라면 더 강력했겠지만, 괜찮은 육신과 자신의 기질을 빼다 박은 내공을 갖게 되었으니 그 힘은 천마조사와 싸울 때보다 더 커졌을 터. 이 싸움의 결말은 달라질 것 없다.”

“……가졌다니? 저 귀물들이 자성의 몸을 차지했단 말이냐?”

선우도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화상에 신음하던 강정학이 정신을 차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어서 흠칫 놀랐으나 여전히 무릎을 꿇은 모습 그대로 더 이상 위협적인 기력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우도는 비록 적이지만, 강정학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당신에겐 한심하게 느껴지는 일이겠지. 제자라는 자가 사제의 연을 끊겠다고 하며 얻은 힘에 되레 잡아먹힌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야.”

“크…….”

강정학이 참담함에 침음성을 삼켰다.

꽈앙!

어느새 칠흑마장이 된 양자성이 날아와 안효철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선우도는 그 싸움을 힐끗 돌아보고는 스칸다와 후대선을 차례로 보며 입을 열었다.

“전장을 정리한다. 스칸다는 안효철을 제거할 수 있도록 보조하도록. 후대선 자네는 강정학의 목을 베도록 해라.”

“양자성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요?”

“칠흑마장이 되었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선우도가 가볍게 대답하고는 마구니들과 염황종 마인들을 바라보면서 소리친다.

“모두 정리해라!”

와아아아아!

마교도들 사이로 승리를 예감한 함성이, 검림의 검객들에겐 절망감이 맴돌았다.

몸을 추슬러 일어난 강도혁도 부친의 죽음을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검림의 절멸을 우려하며 이 악물고 임전 태세를 갖추었다. 잠깐 기대를 걸었던 안효철이 칠흑마장에 묶여있는 상황에서는 더는 희망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후대선은 혁련제의 화룡도를 들어 강정학의 목을 겨누었다. 그리고 허무로 가득 찬 노검객의 눈빛을 잠시 감상하고는 목을 치기 위해 화룡도를 높이 들었다.

잠시 속으로 혁련제의 명복을 빌면서 막 내려치려는 찰나였다.

“다 죽어라.”

생소한 음성이 막 학살극이 펼쳐지려는 전장 전체에 관통했다. 그리고 갑자기 전장의 하늘로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콰콰콰콰콰콰쾅-!

그늘은 하늘을 뒤덮은 일백 이상 가는 개수의 흑색 강기들에 의한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공중폭격이 퍼부어졌다.

그 모든 강기가 오직 마교도들 머리 위로 떨어진 것에 안효철과 칠흑마장의 싸움을 멈추게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교든 검림이든 너나 할 것 없이 폭격을 피한 인물들은 모두 넋 나간 표정으로 먼지구름 속에 드러난 참상을 바라봐야만 했다.

‘대체 누가……!’

후대선은 화룡도를 들고선 강정학의 목을 쳐야 한다는 의무도 잊은 채 죽음과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기의 폭격이 오직 마교도들만 휩쓸어 거의 삼분지 이가 죽음과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었는데 대체 강기의 발원이 누구에게서 기인한 것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했던 지점은 방금 폭격에서 느꼈던 기색이 오히려 마기에 가까운 바람에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위험한 칼을 들고 계시는군요. 물러서 주시겠습니까?”

후대선은 문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다급히 몸을 돌리자 웬 젊은 도사 하나가 그와 강정학 사이에 선 채 손을 뻗어오는 게 아닌가?

화르륵!

후대선은 바로 적이라는 걸 느끼고 상대를 삼킬 듯이 불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기류에 의해 그의 불길이 가슴 앞에 모였다가 다시 원형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흩어지는 불길의 원심 사이로 손바닥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니 급히 용문도를 가슴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화룡도로 내려치려 했다.

쩡!

화룡도를 미처 휘두르기도 전에 손바닥이 용문도의 도신에 닿자 큰 충격과 함께 후대선의 신형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고수……!’

장력의 위력만으로도 엄청난 고수란 걸 깨닫고 재차 이어질 공격에 바짝 긴장하면서 준비하던 후대선이 조금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젊은 도사는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강정학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를 비롯해 다른 적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한 행동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다시 고개를 들어 후대선과 선우도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황당한 말을 꺼냈다.

“제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화가 크게 나셔서 말이죠.”

그리 말하고는 하늘을 바라보자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던 선우도와 후대선도 따라 같은 방향의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올려다본 시야 속의 겨울 하늘 한가운데에 웬 사람 한 명이 공중에 날고 있는 것을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워낙 높이 떠 있어서 황망한 기분으로는 쉬이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그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강정학이 젊은 도사를 보며 물었다.

“자넨 누군가?”

젊은 도사가 미소 지으며 그를 보았다.

“노선배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빈도 무당파의 청명이라고 합니다.”

젊은 도사가 스스로 청명이라 이름을 밝혔으니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흑사왕 금태하였다.

강정학은 청명에겐 별 감흥이 없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감각은 하늘 위 떠 있던 금태하를 알아챈 상황이었다.

“저놈은 또 왜 여기에…….”

“저도 놀랐습니다. 그저 의식이 끌리는 방향으로 간다는 걸 쫓아 왔는데 이곳에 이를 줄은 몰랐습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청명이 설명하고 나서는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강정학의 등에 손바닥을 대며 다시 물었다.

강정학은 청명이 뭘 하려는지 금방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 청명이 손바닥을 댄 등에서부터 온화한 기운이 체내로 퍼지기 시작했다.

‘경지가 상당하군. 아무리 조화로운 도문정종(道門正宗)의 내공심법을 익혔다고 해도 사파의 내공까지 다스리긴 어려운 일인데…….’

강정학은 청명이 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방식이 조금 놀랐는데, 한 번 호흡할 시간이 지나서는 그 깊이가 예상외의 수준이자 놀라움이 더 선명해졌다.

강정학이 기력을 다한 것처럼 보이며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는 건, 진원진기까지 손상될 정도로 진력(盡力)마저 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명이 기를 다스리기 시작하자 손실된 기운을 다시 채우진 못해도 진원진기와 내공 간의 깨진 균형을 맞추고 진력을 돋워주었기 때문이었다.

“화경에 이른 도사였군.”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금태하는 어째서 마교도처럼 변한 것인가?”

“마교도는 아니지만, 진실로 마인이 되셨습니다.”

“……그런 마인과 무당파 도사의 동행이라……”

강정학의 중얼거림을 들은 청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금태하! 흑사왕 금태하!”

염황마종 마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은 장포의 노인을 알아보고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흑사왕 금태하는 하늘에서 예의 그 오만한 표정으로 마교도 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본 자가 있는 지점을 향하여 손바닥을 펼쳤다.

콰앙!

흑색 강기가 날아가 폭발하면서 세 사람이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그로 인해 발생한 여풍이 가라앉을 때쯤엔 금태하도 어느새 지면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살아남은 마교도들은 두려움에 거리를 더 벌리고 있었다. 동료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부상을 슬퍼하거나 신경 쓸 겨를 따위 없는 것이다.

안효철이 나타났을 때도 꿈쩍 않던 포위망은 금태하의 등장과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게 된 강도혁이나 사위검총 등 생존한 검객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금태하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금태하는 그런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안효철과 칠흑마장, 스칸다에게 시선이 닿았다.

“재밌는 놈들이 있군.”

그리고 선우도와 후대선을 노려보면서,

“쳐 죽여야 할 놈들도.”

금태하의 시선을 받은 자들은 모두 어깨를 움찔 떨었으니 안효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금태하가 귀찮다는 듯한 어투로 소리쳤다.

“나 흑사왕 금태하다. 따로 놀면 반드시 뒤질 거야. 그러니 한꺼번에 덤벼라. 노인네 귀찮게 하지 말고.”

선우도는 금태하가 보여준 광대한 권역의 강기 폭격에 놀라긴 했지만, 이토록 오만하게 구는 모습은 어처구니없어했다.

사실 금태하가 부하들을 처리한 방법이나 그 정도의 위력은 선우도나 스칸다, 심지어 이제 막 염황신마의 염주를 이은 후대선도 가능한 것이었다. 그 정도로 으스댈만한 것이 아닌 데다가 이미 광혈신마와 염황신마의 합공에 패퇴해 죽은 줄 알았던 자가 이리 돌아와서는 세 명의 신마, 아니 어쩌면 칠흑마장까지 모두 상대하겠다고 떠드는 것이었다.

물론 선우도의 눈에 청명의 무공이나 경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 넘겨버리는 우를 범하긴 했으나 그건 그만큼 금태하의 존재감이 큰 탓도 있었다.

금태하의 말을 듣고 선우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흑사왕의 위상이니 두 번 죽을 영광 정도는 기꺼이 누리게 해주마.”

“크크크크!”

금태하의 웃음소리에 반응하여 선우도와 후대선 그리고 스칸다까지 날아와 그를 포위하여 섰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여유롭게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금태하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의지였는지 선우도의 전신 문신이 빛을 내며 환마강진을 펼쳤다.

후대선과 스칸다의 힘을 더욱 키움으로써 싸움을 오래 끌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선우도로부터 발현된 자색 빛깔의 기류가 반구 형상으로 퍼져나가면서 금태하를 포함한 네 사람을 뒤덮었다.

후대선과 스칸다가 환도술에 의한 상승작용을 느끼면서 후대선은 혁련제에 버금가는 잔화참백도를, 스칸다도 전신에 뇌전을 두른 채 금강저로는 검강을 일으켰다. 선우도도 환술을 개방하여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마물의 흉측한 머리와 큰 발톱이 달린 발을 꺼내서 삼인합격으로 금태하를 향해 패기롭게 공격을 퍼부으려고 했다.

“오호라! 갑자기 힘이 넘쳐흐르는군.”

금태하의 그 말이 선우도의 귀에는 그들 세 사람을 가리켜 한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금태하가 자신의 공력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순간, 반대로 이해했음을 깨달았다.

“어째서……!”

선우도가 당황하여 중얼거리는 순간엔 스칸다와 후대선은 이미 금태하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태하도 그들을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콰콰콰콰콰-!

검은 기류의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금태하를 덮치던 큰불이 꺼지고 뇌전도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환술로 만들어진 마물마저도 일거에 휩쓸어버렸다.

“크윽!”

선우도는 다급히 호신강기와 더불어 환마대능력 위상역전술까지 펼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는 와중에서도 명백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도 내 환마강진 안에서 더 강해지는 것이야……!’

금태하는 그의 환마강진에 의해 다른 자들보다 배는 더 증폭된 힘을 얻게 되었으니 그의 마공의 위력은 미처 거두기도 전에 환마강진을 깨뜨려버릴 정도였다.

환마강진이 금태하의 힘을 담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콰아아아-!

“크헉!”

“큭!”

“으윽!”

마교의 세 절대고수들이 깊은 신음을 토해내며 밀려나면서 얼굴에 이미 패배의 기색이 드리워졌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금태하는 환마강진을 펼쳤던 선우도가 백제성에서 염황마종 마인들의 몸을 숨겼던 고약한 환술의 주인인 환도신마라는 걸 알아채고는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손을 번쩍 들자 그의 등 뒤에서 검은 장막이 일어나 선우도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 순간 선우도도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칠흑마장!”

칠흑마장은 이미 그의 부름을 듣기도 전에 쇄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칠흑마장이 마령검을 휘두르자 검게 변해가는 선우도의 하늘이 잿빛 검기에 갈라졌다.

“이건 또 뭐야?”

금태하는 재밌다는 표정이 되어 선우도는 무시한 채 칠흑마장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칠흑마장의 두갑(頭鉀) 일부가 꿈틀거리며 갑주 안 주인의 눈과 입을 포함한 얼굴 일부를 드러냈다.

“검마 양자성이다.”

“하!”

잿빛 마기를 품은 마령검과 빛을 삼켜대는 어둠을 닮은 흑색 마기를 두른 주먹이 선우도의 머리 위에서 충돌했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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