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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44화 (344/432)

344화 – 제64장. 해제(解除), 해방(解放) (4)

꽈앙!

협곡 전체와 주변 설산들이 통째로 떨 정도의 충격파가 양측의 중심에서부터 퍼져나갔다.

강도혁을 위시한 검림 검객들도 휘청거릴 정도였고 마교의 포위진도 대열이 흐트러질 정도의 충격파였다.

강정학이 그 파장을 뚫고 양자성에게 쇄도해 검을 찔렀다.

카앙!

“큭!”

백령검이 양자성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양자성이 아슬아슬한 순간에 반응하여 마령검을 들어 쳐내려 했으나 심장에 구멍 날 결과를 피했을 뿐이지 몸 밖으로 완전히 밀어내는 건 실패한 것이다.

양자성은 어깨에서 백령검이 붉은 피를 머금은 채 뽑혀 나오는 걸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회수되어 방향을 트는 백령검을 따라 움직인 시선의 끝에서 진정 살의를 담은 강정학의 눈빛과 마주쳤다.

‘죽는다……!’

하필 오른쪽 어깨가 꿰뚫린 바람에 다시 검을 들어서 막을 수도 없었다.

오직 홀로 새하얗게 불타는 백령검은 반드시 제자의 숨통을 끊겠다는 의지로 강정학이 대부분의 진기를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 검기 앞에서 호신강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 양자성은 죽음을 예견하고 눈을 감았다.

‘난 틀리지 않았어……!’

으득!

서컥!

그 순간 섬뜩한 두 개의 소음이 양자성의 귀에 감지되었다.

충격파의 소란 속 찰나의 순간에 벌어졌던 강정학의 공격이었다. 후대선이나 스칸다가 개입할 여지 따윈 없었던 기습이었다. 그러나 소음의 진원지가 강정학에게 비롯되었다는 것이 청각적으로 분명하게 인지되고 있었다.

양자성은 바로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백령검이 손목부터 잘려 나간 주인의 손과 함께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검신을 감싸던 새하얀 불꽃은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하늘 높이 들린 자신의 오른팔과 마령검을 차례로 인식했다.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던 오른쪽 어깨의 감각이 꺼림칙한 느낌 속에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마령검이 그의 오른팔을 움직여 강정학의 손목을 베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마령검이 귀물이라 한들 강정학의 검보다 빠를 리 없었다.

그 의문이 강정학의 뒤로 나타난 그림자로 인해 해결되었다.

“아슬아슬했군.”

정체불명의 노인.

그의 두 손엔 오묘한 빛을 내는 끈들이 있어 강정학의 두 팔과 몸을 휘감은 채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으니 마령검이 강정학의 손목을 벨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양자성은 노인이 내뿜는 마기의 기색을 천도환위진의 경험에서 떠올렸다.

환도신마 선우도였다.

“크으윽!”

갑자기 들려온 신음에 양자성이 시선을 다시 돌렸다. 그리고 강정학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백령검에 실었던 기운이 사라지면서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거야……!’

양자성의 짐작대로 강정학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만큼 내공도 상당히 소진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아슬아슬한 진기의 배분으로 고통을 차단해 몸이 버틸 수 있게 하고 검의 날카로움을 유지했던 것인데 손목이 잘려버림으로써 백령검에 극한으로 실었던 진기가 유실되고 혈맥도 일순 불완전해지면서 더는 고통을 차단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강정학이 정상적이었다면 단 한 순간이라도 양자성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 양자성의 눈에 비친 강정학의 눈은 흰자위마저 까뒤집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으로 떨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죽여라.”

양자성이 흠칫 놀라면서 고개를 들었다.

선우도가 그에게 말한 것임을 바로 인지했다.

“저 오른팔은 백령신검 그 자체라 불려도 될만한 가치의 것이오. 그런 손목을 잘랐으니…….”

“죽여라.”

선우도는 양자성의 의견을 거부했다.

그는 천마신교 교주 단지운이 가장 가까이에 두는 신마로서 스칸다와 후대선이 대신 죽이겠다고 나설 수 없게 만들 정도로 말에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양자성도 압박감을 느낀 채 강정학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젠 오른팔에 다시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고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조차 노려보지 못할 정도로 고통에 떠는 강정학의 모습은 단순히 안쓰러움을 떠나 이만큼 초라해 보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양자성은 승리하여 증명하길 바란 것이지 한때 사부였던 자를 죽임으로 기뻐하는 자신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강도혁과 검림 검객들이 이쪽을 보며 이름을 부르고 저주를 퍼붓는 소리는 하등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신이 하시오.”

양자성이 몸을 반쯤 돌리면서 거절 의사를 명확히 했다.

선우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때 장내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안효철이었다.

“……설마 검림인가? 대체 무슨 싸움이었길래 이 지경이……!”

안효철은 장내에 돌입하면서 한눈에 상황을 파악해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적을 앞에 두고서 환도신마에 의해 함정에 빠졌다는 식의 생각 따위 접어둔 채, 투기를 마음껏 개방하고 있었다.

쿠쿠쿠쿠……!

“오너라! 지금부터 내가 상대해주마!”

안효철이 뿜어내는 거대한 투기가 일대를 휘감았다. 단숨에 이목을 끌어 위기에 빠진 강정학이나 검림에게 활로를 열어보려는 생각이 앞선 것이었다.

그 위압감은 강정학이 나타났을 때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 검림을 포위하고 있던 마교도들이 극도로 긴장하게 만들었음은 물론 스칸다와 후대선, 양자성 모두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를 끌고 들어온 선우도만큼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침착했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양자성에게 머물러 있었으니,

“그깟 정 때문에 마령검의 힘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것이다.”

“뭐?”

양자성은 그 말을 듣고 선우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그의 오른손에서 빛나는 구 형태의 술진을 발견했다.

“훔쳤던 의식의 고리를 돌려주마. 이제 깨어나라.”

선우도의 말이 끝난 순간 그의 손에서 빛나던 구 형상의 술진이 일순간 두 개의 고리로 갈라졌다. 그리고 양자성과 안효철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마령검의 검신에, 탈혼갑의 가슴에 술진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윽!”

“윽!”

양자성과 안효철이 거의 동시에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마령검과 탈혼갑이 격렬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마령검에서 흘러나온 조직이 양자성의 피부를 파고들 듯 휘감아 어느새 절반가량 아물었던 어깨까지 덮으면서 아예 인체조직 전체를 복구시켜 버렸다. 그와 함께 마령검의 의식이 양자성의 머릿속으로 거세게 흘러 들어가면서 양자성으로선 그동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정신적 고통을 일거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끄아아악!”

양자성이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비명 가지고는 부족했는지 아예 바닥까지 구르면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때 강정학은 비로소 고통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지면서 정신을 차리던 상황이었다.

기력은 거의 바닥이 나서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눈빛은 돌아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들과 양자성의 상태 모두 바라볼 수 있었다.

고막을 찢을 것처럼 내지르던 비명이 어느 순간 끊어졌다.

벌떡 일어난 양자성의 눈빛은 눈동자와 흰자위 구분도 어려울 정도로 잿빛 안개로 덮여 있었다. 발을 한 걸음 디디면서 몸동작이 이상한 모양으로 삐거덕거리는 모양새였지만, 다섯 걸음을 그렇게 떼자 비로소 동작이 바로 섰다.

그것이 마치 육신까지 완전히 지배가 끝났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런 양자성의 신형이 고통에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안효철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그때 안효철은 이미 두어 차례 겪어본 적이 있던 극심한 고통에 떨고 있었는데 양자성이 순식간에 접근해 마령검을 휘두르는 순간 뒤로 땅을 박차며 뛰어올라 검격을 피해냈다.

흥경에서 빌게포첸을 만난 이후로 그는 의식적으로 탈혼갑이 진기의 흐름에 간섭하던 걸 억제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덕분인지 쉽진 않아도 이전처럼 꼼짝도 못 할 지경은 피한 것이다.

“큭!”

하지만, 그것이 탈혼갑을 자극하였는지 안효철이 검격을 피해내자마자 다시 강력한 간섭이 들어오면서 그만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고 말았다.

텁!

그리고 어느새 다시 접근한 양자성의 왼손이 안효철의 어깨를 움켜쥐었고 오른손의 마령검이 안효철의 심장을 겨눴다. 그리고 그 순간 안효철의 가슴을 감싸고 있던 부위의 탈혼갑 조직이 움직이면서 왼쪽 가슴에 피부가 드러나도록 동그랗게 공간을 열었다.

‘네놈이 그간 날 삼키지 못하더니 이젠 이런 식으로 죽여서 흡수하려고 하는구나!’

안효철의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검을 겨누는 양자성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 잿빛 안개에 뒤덮인 눈과 맞물려 섬뜩한 얼굴이 되었다.

그것이 먹이를 노리는 마령검과 탈혼갑의 감정일 터.

하지만, 안효철은 양자성이 아니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화경에 이른 고수였으며 이는 단순히 내공의 고저를 떠나 어떤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근본적인 심지(心志)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콱!

마령검이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순간, 안효철이 탈혼갑의 구속을 이겨내고 두 손으로 검신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검 끝이 가슴을 찔렀지만, 그 깊이는 고작 손톱만큼도 되지 않았으니 안효철의 눈동자에 굳어지는 양자성의 표정이 비쳤다.

키리릭! 키릭!

탈혼갑과 마령검이 동시에 변화를 보였다. 탈혼갑은 갑주가 뒤집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육신을 파고들었고 마령검으로부턴 자루와 호수 부근에서 가시 같은 조직이 튀어나와 안효철의 두 손과 열린 왼쪽 가슴을 재차 찔렀다.

하지만, 이미 안효철은 강력한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으니 그것으론 어떤 위협도, 고통도 줄 수 없었다.

“한낱 귀물 주제에 감히!”

안효철이 호통을 치면서 호신강기를 체내에서부터 체외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탈혼갑이 뒤집히면서 육신을 공격하는 순간, 육신과 조직 간 결합을 이뤘던 상태가 늘어나면서 틈이 발생하였고 안효철은 그 틈을 자신의 강기로 채우려 한 것이었다.

트드득!

“끄으으으……, 으아아아아!”

콰드드득!

탈혼갑이 호신강기에 밀려 피부조직으로부터 뜯기듯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두 손은 마령검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쥐어 손바닥에 피가 흘렀지만, 마령검도 고통을 느끼는지 양자성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탈혼갑은 미세하지만, 계속해서 육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고 탈혼갑 자체에서도 균열이 일어나며 더더욱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그 광경을 선우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탈혼갑을 스스로 밀어내려 들다니……!”

탈혼갑이 착용자들을 잡아먹었던 역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것은 한번 착용한 이후론 절대 벗을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이 제법 오래 착용 중이라는 정보에 따라 확인한 결과로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안효철로 밝혀졌을 때도 별수 없을 것이라 여겼었다.

탈혼갑이 이 세상의 물건이 아니라는 특징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천마조사 단용후조차 먹힐까 봐 착용을 포기했던 것이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였다.

선우도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환도술로 할 수 있는 건 마령검과 탈혼갑의 영적 흐름을 다시 차단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가 지시받은 건 그 반대였으니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탈혼갑이 안효철의 육신으로부터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피륙에 결합되었던 조직이었기에 이미 안효철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이 엄습해오고 있었지만, 그는 오직 탈혼갑의 저주로부터 해방된다는 일념 하나에만 몰두하여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오히려 안효철의 호신강기로 인해 밀려난 탈혼갑의 조직들이 서로 간에도 강기의 광망이 새어 나올 정도로 떨어지고 멀어지니 이대로면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안효철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마주 보던 양자성의 회안(灰眼)이 그 빛을 목격했다.

“썩 꺼져라!”

콰드득!

쩌엉!

안효철이 진원진기마저 끌어올렸다. 그의 진원진기가 녹아든 호신강기가 더욱 눈부신 광망을 뿜어내면서 폭발적으로 확장하려 들었다. 그 호신강기에 양자성의 육신도 타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점점 짓눌리고 뭉개지는 그 순간, 그의 신형이 뒤로 쭈욱 미끄러지듯이 이동했다.

동시에 팽창하는 호신강기에 떠밀려서 산산조각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탈혼갑의 조직들이 마침내 안효철을 향한 결속을 놓으면서 한 지점에 뭉쳤다.

그렇게 뭉친 탈혼갑의 조직들이 화살처럼 양자성에게 날아가 제일 먼저 닿은 가슴부터 시작하여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마침내 저항력이 사라진 호신강기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사라져버렸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 한가운데 두 사람이 있었다.

탈혼갑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수십 년 전에 입었던 옷가지가 해지고 빛바랜 채 몸에 달라붙듯 여기저기 밀착된 상태로 온몸이 출혈과 상처투성이가 된 안효철이 한 사람이요, 용의 비늘과 같은 철갑이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완전히 뒤덮고 마령검조차도 육신과 탈혼갑에 연결되어서는 오직 잿빛 안광만 드러낸 채 우뚝 서 있는 양자성이 다른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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