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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39화 (339/432)

339화 – 제63장. 사부라 부르지 못할까! (4)

일대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공력이 실려 더 우렁찼던 외침이었다. 당연히 돌아볼 수밖에 없고,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퉁!

강도혁이 두 발로 지면을 강하게 밀어내는 순간, 그의 신형이 양자성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단숨에 접근하여 바로 멱살이라도 잡을 듯 왼손을 힘껏 뻗었다. 그러나 그 뜻은 이뤄지지 못했다.

후대선도 불기둥을 두른 채 그를 쫓아 날아오는 데다가 양자성의 앞을 그와 함께 움직이던 이국적 용모의 사내, 스칸다가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썩 꺼져라!”

강도혁이 분노하여 백염극원의 검을 휘둘렀다.

앞뒤로 덤벼드는 두 고수에게 강도혁의 검강이 파고들었다.

쩌엉!

불기둥이 백염검강(白燄劍罡) 앞에 무참히 갈라지자 화들짝 놀란 후대선이 급히 방향을 틀어 피했으며 스칸다도 가진 무기에 강기를 일으켜 막아냈으나 위력 모두를 막지 못하고 크게 떠밀려져서 제법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양자성은 잠깐 멈춰서서는 두 고수를 맥없이 후퇴시키는 강도혁을 바라보며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역시 백령검왕입니다. 못 보던 검기인데, 경지를 이룬 걸 축하드립니다.”

강도혁의 귀에 양자성의 칭찬 따위 들리지 않았다.

“왜 대사형이라 부르지 않느냐?”

강도혁이 노기를 거두지 않고 물었다.

그때 스칸다와 후대선이 다시 강도혁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양자성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 강도혁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사제의 연을 끊고 지금은 태상교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게 사형은 이제 천마 단지운 교주뿐입니다.”

“하하핫! 사제의 연이라는 것이 혼자 끊겠다 하면 끊어지는 것이더냐? 그리고 마교의 주구들을 끌고 오다니. 사부님께 검까지 겨눌 모양이구나!”

“……염황신마를 구원하여 데려오라는 천마령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감히!”

강도혁이 격노하여 검을 내리쳤다.

어차피 스스로 마교의 주구임을 자처한 이상 사정 따위 봐줄 이유가 사라졌다.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기에 그의 검은 염황마종의 삼화룡을 노릴 때처럼 새하얗게 타오르고 있었다.

스칸다와 후대선이 움찔거리는 데 그칠 뿐, 미처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캉-!

피륙이 갈라지는 소리 대신 둔탁하고 무거운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양자성이 오른손을 마령검에 결속하여 강도혁의 검을 막아낸 것이었다. 마령검의 검신을 타고 흐르는 잿빛 마기가 백염극원의 검기와 맞대며 힘을 겨루는데 그 기파가 주변을 위협하고 있었다.

강도혁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양자성이 사라졌을 때, 두 사형제의 무공의 격차는 지대했었다. 아무리 양자성이 남다른 재능으로 인정받았다고는 하나 강도혁은 강호무림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였다. 그런데 거의 전력으로, 기습적으로 내려친 검을 이렇게 반응하여 막아냈다는 건 지난 3, 4년 동안 양자성의 무공이 속성으로 얼마나 강해졌는지 나타나는 대목이었다.

반면 양자성도 강도혁의 검력에 무척 놀라고 있었다.

특히 마치 불타는 듯 새하얗게 일렁이며 검과 전신을 감싼 저 기운은 양자성도 처음 보는 성질의 무공이었다. 백양소혼신공으로부터 나온 것이 분명한데도 처음 본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내겐 전수하지 않았거나, 그동안 새롭게 개척한 경지이거나…….’

일순간 의심이 들었음에도 양자성은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고 여겼다. 강정학이 그를 무척 아꼈던 걸 잘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강정학이 그렇게 통이 작은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쿠웅……!

지축의 육중한 울림이 무겁고 조용하게 울려 퍼지면서 전장을 한 차례 흔들었다.

제법 떨어진 거리의 진원지를 전장의 모두가 느끼면서 동시에 강정학과 염황신마의 대결이 모두의 머릿속을 함께 스치고 지나갔다.

“기흉(奇凶)! 염파(廉破)! 후대선을 도와라!”

스칸다의 외침에 강도혁이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마교도 둘이 더 접근하여 후대선과 함께 삼각대형을 이룬 채 강도혁을 포위하였고 양자성은 스칸다 쪽으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기흉과 염파는 마니사 안에서도 가장 강한 실력을 보유한 자들로서 구마진 다음으로 위타천의 시험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만큼 강도혁의 피부에도 꽤 위협적으로 느껴졌는데 후대선과 함께 포위진을 구축하여 경계하니 절대 경시할 수 없게끔 느껴졌다.

“서두르시오.”

스칸다의 말에 양자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경공을 펼치며 다시 전장을 벗어나자 강도혁이 노기를 감추지 못한 채 호통치듯 소리쳤다.

“양자성, 네가 감히 사부님께 검을 겨누려 드느냐!”

강도혁은 두 사람을 쫓고 싶었지만, 눈앞의 상대들이 녹록지 않아 다른 생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게다가 마니사 마구니들이 난입하여 적들이 다시 늘어나면서 사위검총을 위시한 검림의 검객 모두 치열한 혈투를 벌이고 있어서 자신이 여길 떠난다면 전세는 확 기울어질 게 틀림없었다.

그때 창윤이 후대선의 근처로 다가왔는데 끊어진 절편도 대신 다른 죽은 자의 칼을 들고 있었다.

“나도 돕겠다. 저 새끼를 여기서 반드시 죽여야 해.”

화염도절 후대선은 나찰화승 무량보다 더 큰 불이었다. 그는 오직 혁련제가 가는 길이 맞다고 생각하고 오직 그만을 쫓아 오직 염룡마공만을 익힌 염황신마의 잠재적 후계자였기 때문이었다.

즉, 무량과의 조합보다 후대선과 조합을 이루는 것이 더 위협적이라는 얘기였다.

여기에 기흉과 염파도 각기 다른 마도의 마공으로 도울 태세를 갖췄으니 창윤은 지금이 강도혁을 죽일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강도혁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 네놈들 누구도 내 검 아래에서 살아나갈 생각 따윈 하지 말아라!”

쿠쿠쿠쿠……!

백령검왕.

무당파 소요자의 등장으로 위상이 계단 하나만큼 내려가긴 했으나 신검(神劍)을 제외하면 검객들 중 으뜸이기에 검왕(劍王)이라 부르는 것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저력이 드러나는 법.

분노를 고스란히 실은 패도적인 기세에 백염극원의 가공할 기운까지 겹쳐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 순간, 그를 포위한 네 사람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

천하오절.

무영각으로부터 그 다섯 명의 이름과 무공에 대한 특징, 이룩한 경지와 개개인의 성격 등에 대한 정보들을 전달받았을 때, 여덟 명의 신마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우물 안 개구리, 허울만 가득한 명성이라고 했으며 또 누군가는 비슷한 수준의 강적을 상대로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무관심한 자도 있었으며 사족을 덧붙여 다섯 명의 절대고수들에 대한 평가를 일찍이 내리는 자도 있었다.

혁련제는 염황신마로서 염황마종과 함께 상당한 시간을 중원에서 숨어지냈었다.

즉, 새외에서 힘을 키우던 다른 구주마종과 달리 그는 중원무림 속에 머물면서 그 저력의 실체를 가장 가까이서 접하는 자였다.

적들이 눈앞에 있으니 얕잡아보는 건 허용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며 특히 천하오절이라는 거대한 명성을 차지한 자들이라면 더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두려워하거나 높여 보는 일 따위는 오히려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로 여긴 것이다.

비록 그 생각이 강정학과 첫 대결에서 한 팔을 상실한 이후로 바뀌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경계심과 자신감 둘 모두를 키워주게 되었다.

혁련제는 미뤄두었던 마성의 각성을 얻어냈으며 그로써 더 대등하고 치열한 재대결을 기다려 왔었다.

‘……이것이 천하오절이라는 명성, ……천하제일검의 무력인가……!’

그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라 취급하진 않았어도 은연중에 그런 맥락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텐데, 불구대천의 원수관계가 되어 생사결을 펼치는 백령신검 강정학과 검을 맞대어보니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자신들이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혁련제는 그 부정적인 판단을 부정할 수 없다는 현실과도 칼을 맞대며 싸우고 있었다.

대화염(大火炎)의 소용돌이는 일대의 눈들을 모두 녹이고 증발시키다 못해 끝내 불붙일 정도로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혁련제가 일부러 피워낸 불길이 아니었다.

혁련제는 강정학과 대등하게 싸우기 위하여 모든 공력을 자신과 화룡도에 극도로 집약된 채 타오르도록 염룡마공의 잔화참백도 유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붉은 물감이 흰 천에 물들어 번지듯 퍼져나가는 불길들은 모두 강정학이 혼신을 장작 삼아 불태우는 백염극원의 검과 충돌하여 튀어 오른 불씨들의 여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카카카카캉-!

강정학과 혁련제는 엄청난 기세와 속도로 도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옷가지 모두 전혀 정상적이지 않게 넝마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몸에 더해지는 자상이나 화상 등의 상처들만큼 체력과 기력 모두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두 절대고수가 한 치도 물러섬 없이 벌이는 격돌의 지속에 산천이 모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듯했다.

“벌써 힘에 부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입은 상해(傷害)는 전체적으로 혁련제가 더 무거웠다.

“닥쳐라!”

강정학의 조롱에 혁련제가 격렬히 저항했다.

염룡마공 제삼화룡(制三火龍).

일순간 주변으로 흩날리던 불길이 똬리들을 틀며 뭉치더니 세 개의 화염구로 변해 강정학을 덮쳤다.

콰콰쾅-!

아무런 기폭제 없이 화염구만으로 일어날 만한 폭발이 아니었다. 혁련제는 사방에 잔존하는 불길로 자신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전이시킬 수 있는즉, 극도로 응축된 염강(炎罡)이었다.

“크흠……!”

도검의 검투로 싸우던 양상 속에서 혁련제의 기습적인 기공 전환은 강정학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애초에 그런 전투방식이 더 성정에 맞았으니 위력적인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는 강정학이 노렸던 상황이기도 했다.

공력을 분할해서 사용했다는 건 잔화참백도의 방호력이 약화됐다는 뜻이었다. 강정학 자신은 아무리 화염기공에 충격을 받았어도 백염극원이 깨질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세 사이에 틈이 존재할 수 없었다.

푹!

강정학의 백령검이 찰나 간 존재했던 기세의 틈을 파고들어 혁련제의 왼쪽 쇄골 부근을 꿰뚫었다.

“크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혁련제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염황종 마인들이 봤으면 기겁할 일.

강정학이 백염극원의 극양기를 믿고 혁련제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어깨로부터 빠져나간 백령검을 재차 휘둘렀다.

카앙-!

백령검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화룡도가 자루에 주인의 피를 묻힌 채 손에서 벗어나 날아올랐다.

이전만치 못한 잔화참백도로는 백염극원의 검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으니 충돌하는 순간 충격에 손아귀가 터져나가면서 화룡도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절호의 순간을 강정학이 놓칠 리 없었다.

“끝이……!”

재차 베기 위해 백령검을 당기면서 소리치다가 ‘다’를 붙이지 못하고 말이 끊어졌다.

화룡도를 놓치며 크게 흔들릴 줄 알았던 혁련제가 돌연 두 눈에 광기를 품고 온몸을 활짝 열며 덮치자 끝내 왼팔을 붙들린 것이었다.

꽝!

혁련제가 강정학의 팔을 세게 당기면서 두 노인의 이마가 세게 부딪쳤다.

백염극원의 열기가 혁련제의 호신강기를 뚫고 손바닥과 이마를 태우고 있었다. 고통스러울 법한데도 혁련제의 눈빛은 모든 걸 각오한 듯 흔들림 없이 만면에 광기에 찬 웃음마저 띠고 있었다.

“더럽게 안기는 꼴이라니, 마지막 발악이구나!”

강정학이 이마의 충격을 느끼며 소리쳤다.

백염극원은 여전히 강력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저항과 사라져 버린 검의 간격 때문에 당장 베거나 찌르기 어려워졌다. 백령검을 손에서 놓고 이기어검을 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백령검에 백염극원을 실을 수 없게 되고 그건 오히려 혁련제에게 노림수만 제공할 공산이 컸다.

강정학은 아직 승기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퍼퍽!

두 사람의 무릎이 지척에서 부딪쳤다.

강정학은 떼어놓기 위해, 혁련제는 빗겨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혁련제는 동시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강정학의 왼팔을 그의 허리 뒤쪽으로 꺾었다.

“윽!”

그리고 다시 혁련제의 왼쪽 손아귀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힘이 실렸다.

으득!

“큿!”

왼팔의 하완을 비틀면서 끝내 상완과 어긋나도록 팔꿈치 관절에 충돌을 일으켰으니 끝내 부러져 강정학의 입에서도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팔의 근력이 사라져 저항할 수 없게 되자 혁련제는 강정학의 왼팔을 붙든 그대로 상대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바짝 붙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어안은 채 공중으로 도약하고는 다시 한번 이마를 부딪치며 울부짖는다.

꽝!

“내가 염마(炎魔)다!”

갑작스러운 난관에 더해진 이마의 충격으로부터 정신을 잃는 걸 경계한 강정학이 신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적의 가득 찬 눈빛이 부딪치면서 강정학은 혁련제의 눈동자에서 심연의 불꽃을 엿보았다.

“세상 모든 불길의 주인이 나, 염황신마란 말이다!”

혁련제가 피를 토하며 강정학의 면전에 대고 소리쳤다.

부딪친 그대로 맞댄 이마에서 느껴졌던, 강정학의 왼팔을 붙잡으면서 느껴졌던 그리고 온몸을 맞대면서 느껴졌던 타는 듯한 고통이 멈췄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혁련제는 자신의 모든 걸 깰 각오와 함께 최후의 한 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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