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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37화 (337/432)

337화 – 제63장. 사부라 부르지 못할까! (2)

백양소혼신공은 근본적으로 양강(陽剛)한 내공심법이자 신공이었다.

즉, 혁련제의 염룡마공과 근본적인 계통이 유사한 면이 있다는 얘기였다.

강정학이 양강한 기운으로 검에 실은 기운이나 검강 등을 더 날카롭게 벼려낸다면, 혁련제는 풀무질하듯 자신의 불길을 더 뜨겁고 거세게 만드는 것이다.

강정학은 염황신마가 그의 오른팔에 남긴 화마의 흔적에 집중했다. 반복되는 신경통과 세맥에 잔존하여 기혈을 건드리는 마공의 흔적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지만, 비록 마공이라도 양강한 기질은 그가 가진 것과 다른 새로운 길을 개척할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화경에 이른 강정학에게 있어서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계단을 발 앞에 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검객은 적을 베고자 할 때, 검에 혼을 담아 휘두른다.

백양소혼신공은 그것이 단순한 정신집중에 의한 상승효과 정도로 그치지 않고 진정한 위력으로서 작용하도록 한다.

중단전에 머무는 혼은 무한한 장작과도 같아서 하단전의 기가 중단전을 거쳐 뻗어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특질이 반영되는 법이다.

극의의 경지에 도달한 노검객의 혼이란 누구보다 날카롭게 벼려낼 수 있는 원천이었지만, 강정학은 거기서 한 단계를 더 뛰어넘어 상단전의 신까지 더해 혼신(魂神)을 사르니 그 열기란 태양처럼 뜨겁고 강철처럼 굳세어서 지상의 화염 따위 범접할 수 없도록 하였다.

화르르르…….

백양소혼신공 이극의(異極意) 백염극원(白燄極元).

“너의 불꽃, 내 검에 스러지리라.”

두려움으로 물들었던 혁련제의 눈빛에 전의가 다시 담겼다.

자신의 거대한 화염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겉으로 드러난 기세는 아주 작았지만, 분명 진정으로 혼을 담아 새하얀 기색의 불꽃으로 일렁이고 있었기에 붉은 화염 속에서도 스스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혁련제는 자신이 아주 중요한 부분을 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그런 달라진 마음가짐을 눈치챘는지, 혹은 기회라 여겼는지 강정학의 신형이 일검집중의 기세로 쇄도해 들어왔다.

슈악!

콰드드득!

한순간 지근거리로 좁히며 선회하는 검기를 내지르니 혁련제가 뒤에 두고 있던 금이 간 바위가 완전하게 산산이 부서졌다.

혁련제의 신형은 어느새 공중으로 도약해 강정학을 뛰어넘었다. 그렇게 착지하는 그를 강정학이 놓칠세라 다시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카카카캉!

화룡도와 백령검이 다시금 격렬하게 부딪쳤다.

종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혁련제가 화염으로 사방을 뒤덮을 정도로 펼쳐내지 않고 자기 주변으로 집약시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큭큭큭……! 이거 내가 너무 실례를 범했군. 천하제일검을 앞에 두고 이전의 기억에 젖어서 사활(死活)을 걸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내가 바로 염황신마다! 이 몸이 불태우지 못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콰르르륵-! 콰앙!

일순간 강정학도 깜짝 놀랄 정도로 눈앞이 환해지면서 혁련제를 중심으로 불기둥이 치솟았다. 도검을 강하게 맞부딪치면서 경합하고 있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강정학은 충격을 느끼며 뒤로 밀려났다.

‘……응?’

불기둥으로부터 거리를 벌린 강정학은 이상을 느끼고 자신의 행색을 살폈다.

불기둥에 잠깐 휩쓸린 것만으로도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라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백염극원의 호신강기를 뚫고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강정학이 다시 고개를 들어 전면을 바라볼 때, 어느새 불기둥은 사라지고 혁련제가 고고히 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째선지 익숙한 느낌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기꺼이 산 하나를 통째로 불사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염룡겁화(炎龍劫火)를 일으킬 수 있음에도 혁련제는 오롯이 자신에 집중하여 아우르는 불길로써 다스리고 또 다스렸다.

적절한 표본이 바로 앞에 있었으니 머릿속으로 그려낸 이상(理想)을 구체화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마침내 완성하였으니,

염룡마공 극마경(極魔境) 잔화참백도(殘火斬魄刀).

“네놈만이 그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새 성장했는가, 염황신마여. 허허허! 이제야 벨 맛이 나겠구나.”

염룡과 검기들의 요란하고 창연(敞然)한 축제는 더 이상 없다.

차분하게 정련되어 강도와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되, 화로에 극한으로 달궈져 쇠조차 녹일 정도로 열화(熱火)를 머금은 도검처럼,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음에도 두 노인은 얼굴로는 짓궂은 아이처럼 미소를 품은 채 눈빛을 마주쳤다.

일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자리에서 꺼졌고, 둘 사이 한가운데서 나타났다.

충돌하는 백령검과 화룡도, 화룡도와 백령검.

황색의 불꽃 파편이 구름까지 치솟은 다음에야 굉음과 충격파가 차례로 협곡을 두들겼다.

콰르르릉-!

* * * *

“스승님이……, 스승님이 살아계셔……?”

진도건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암지대를 두들기는 말발굽 소리 때문에 그 떨림까지 느껴지진 않았으나 눈시울은 살짝 붉어져서 그가 얼마나 순간적으로 감정이 올라왔는지 엿볼 수가 있었다.

“아니, 네 스승은 분명 죽었다. 몽골초원에서 우화등선한 게 맞아.”

“하지만, 방금……!”

“본좌도 진정 선경에 든 영성을 엿보았을 뿐이다. 지난 종남산에서 그에게 압도되었던 그 인상이 뼛속까지 각인되어있었기에 알아보았던 것인데, ……거기서 그가 본좌를 그런 식으로 찾을 줄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지.”

진도건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냉소평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냉소평도 지금 이 달리는 상황 속에서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려 해봐야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조차도 그때의 경험이 가져다준 충격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최초로 접촉한 건 조강선의 영성이었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본좌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고 이 땅에 실재하는 위험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본좌를 무저갱 바닥으로 인도하더군. 본좌는 기꺼이 몸을 던졌고 그 결과 주백자도 만날 수 있었다. 며칠 뒤엔 단원진이 밀어서 무저갱으로 추락하게 된 유변도 만날 수 있었고. ……큭큭큭! 유변을 그런 식으로 마주하기 전 며칠 동안 본좌가 목도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네 녀석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직접 보라는 얘기군.”

“그렇다.”

진도건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채 냉소평에게서 시선을 떼고 앞으로 향했다.

구르반사이한 산줄기 끝자락이 때마침 좌우로 지나쳐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이젠 정말로 모래언덕과 바위 지대로 이뤄진 황량한 고비의 땅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말을 타고 조금 높은 언덕에 오르자 사방의 시야가 트인다. 그리고 아주 멀리 보이는 지평선 부근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와 고개를 내민 설산들이 손톱만 한 크기로 눈에 들어왔다.

천산산맥의 끝자락이었다.

저 산맥을 따라 내달리면 용암비동이 숨겨져 있는 박격달봉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천마신교의 본거지였다.

적진 한가운데로 침투하는 셈이니 목숨을 건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끝에 스승을 뵐 수만 있다면 목숨 정도는 충분히 걸어볼 만한 일이다.

두두두두…….

한참을 바람처럼 달리던 중이었다.

진도건의 감각에 마기의 기척 하나가 희미하게 잡혔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그 존재는 일전에 불타는 절벽에서 보았던 무영 연과 비슷한 수준에 듬직한 남성의 체격을 가진 자라는 게 느껴졌다.

그 기척은 냉소평의 곁에 이르러서야 경공을 펼치는 상태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니 내심 환영술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무영 국이었다.

국은 모습을 드러내면서 진도건을 흘끔 보기도 했는데 과거 진도건이 냉소평의 손에 쓰러졌을 때, 그를 의원 모홍도가 있는 마을로 옮긴 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성혈신마의 무영들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움직이는 듯합니다.”

“클클! 어쩔 수 없지. 빌게포첸이 본좌를 껄끄러워하는 거야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지만, 이 빨간머리 녀석까지 동행하고 있으니까 이상하다고 여길 수밖에. 이 정도면 오래 버텼어.”

“흐음, 제거할 수는 없나?”

진도건이 그 말을 옆에서 듣고 물었다.

“무영들도 마공을 익혔으니 싸울 능력이야 물론 있지. 환상무영술이 이 녀석들의 밥줄인 만큼 보통의 고수들 목은 가볍게 딸 수도 있지만, 같은 무영 상대로는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 더.”

진도건의 질문에 대한 냉소평의 대답이 끝나자 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신궁의 사정에 큰 변동이 생긴 듯합니다. 후퇴했던 광혈마종이나 스칸다, 마니사 전력까지 다시 전진시켰고 교주도 함께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상교주가 무영각주를 통해 배후에서 무영각을 은밀히 통솔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단원진의 행적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느냐?”

“요마산에서 북쪽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 아직 상세한 부분까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앞으로 더 어려워질 텐데 수고가 많다.”

“그럼.”

국이 환상무영술로 모습을 감추고 진도건의 감각에도 기척이 멀어졌다.

“……처음 들어본 이름도 있군.”

“스칸다?”

“마니사도.”

“마니사는 천마신궁 내에 있는 천마를 부처처럼 모시는 사찰이다. 이곳 출신의 교도들은 본좌의 일월교처럼 외부 출신이 아닌 천마신교에서 직접 육성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충성심이 남다르지.”

“그래도 마공을 수련하니 실력은 있겠군.”

“그래.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은 있지만, 속성으로 마공을 익혔으니 가진 능력은 절정고수급에 준할 테지. 혈기왕성해서 자기를 제어할 줄 아는 놈도 드물 테고. 하지만, 네놈도 알지 않느냐? 그게 곧 실력은 아니라는 걸.”

“……스칸다는?”

“녀석은 진짜다. 천마의 위타천이라는 지위만 아니었다면 능히 구주의 신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지.”

“너와 비교하면 어떤 수준이지?”

“훗! 본좌의 상대는 아니지.”

냉소평이 턱을 높이며 거들먹거리자 진도건이 실소를 흘렸다.

“웃어?”

“오만함에 기가 차서 그렇다.”

“클클클! 본좌가 더 우위에 있다고 치는 자는 여태껏 단 셋뿐이었다. 천마 단지운과 주백자 그리고 조강선. 본좌는 단 한 번도 모든 전력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는 몸이시다. 네놈이 본좌와 은원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덤빌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이건 진심 어린 충고야.”

“내 실력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면서 그리 단언하다니. 그런 걸 오만하다고 하는 것이다.”

“허! 건방진 놈이, 교주님께서 충고하면 공손히 받아들일 것이지…….”

진도건이 냉소평을 비꼬자 금강수라 하후무가 뒤에서 으르렁거리며 눈을 부라렸다. 모포 자락에 비록 가려졌으나 큰 근육질의 몸으로 움찔거리는 것이 겉으로 티가 났다.

“피식!”

진도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콧방귀를 뀌었다.

“저, 저…… 대갈통만 뻘건 놈이……!”

“클클클! 뭐 이놈 말이 틀린 건 아니니, 하후무는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자중하거라.”

“크흠! 알겠습니다.”

냉소평이 진도건을 흘겨보며 다시 말을 걸었다.

“네놈 실력이 말도 못 하게 급성장한 건 본좌도 인정한다. 사혈이야 독공이 까다로운 상대일 뿐이지만, 야율재를 잡아낸 건 칭찬할 만해. 단 교주를 상대로도 제법 발악도 했고.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본교의 삼대수라를 넘을 수는 없다. 금궁 신평이 살아서 사대수라를 유지했다면 염황도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야.”

진도건은 빌게포첸 정도를 제외하면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나 진배없기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마기를 감지하는 그의 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로 인해 수상한 작은 낌새에도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삼대수라가 일신에 지닌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면밀한 파악을 마친 뒤였다.

‘앙검과 금강은 기질은 다르나 엇비슷한 수준. 하지만, 일월수라의 수준이라면…… 셋을 상대할 때는 확실히 까다롭겠어…….’

진도건은 냉소평의 그런 호언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내심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낮춰 평가하는 거라는 자신감도 품고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태상교주는 우위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 건가?”

진도건의 물음에 냉소평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냉소평도 진도건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단원진을 향한 의문은 그들이 동행하는 목적의 중심에 있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본좌가 본 게 전부라면…… 호각지세. 뭐 좀 더 후하게 쳐준다면 근소하게 밀리는 정도겠지. 하지만, 이면의 무엇에 본좌가 모르는 힘이 있다면…… 넷으로 늘려도 무방할 것이다.”

진도건은 냉소평의 진지한 대답을 들으면서 내심 그 염려가 맞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태껏 그는 마도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청성산에서 강력한 면모를 보았던 천마 단지운을 쓰러뜨려야만 한다고 여겨왔었다. 그러나 냉소평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 묘하게 교주인 단지운보다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는 태상교주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는 중이었다.

“또 사막이로군.”

문득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진도건이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사암지대에서 벗어나 다시 모래언덕을 달리게 되자 뒤에서 곽비가 투덜거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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