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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귀신-336화 (336/432)

336화 – 제63장. 사부라 부르지 못할까! (1)

염룡이 태양을 삼킬 듯이 승천했다. 그러나 지상의 화염이 태양의 열기를 삼킬 수는 없었다.

카카캉!

공중에서 강정학의 백령검과 혁련제의 화룡도가 순식간에 십여 합을 나누었다. 염황신마라는 이명처럼 그가 일으킨 불길이 자유롭게 춤을 추면서 순식간에 하늘을 화염으로 덮었다. 그러나 새하얗게 타오르는 강정학의 검기는 오직 혁련제의 화룡도 앞에서만 조금 주춤할 뿐 사방으로 뻗어나가 일대를 휩쓸고 있었다.

콰콰콰콱!

“피, 피해!”

“으악!”

미처 반응하지 못한 자는 그대로 휩쓸려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 죽음의 범위 바깥에 있던 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두 절대고수가 충돌하는 곳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슈악! 핏!

“크윽!”

강정학의 검기가 어깨를 스치면서 혁련제가 침음성을 삼켰다. 다행히 이미 잃어버린 왼쪽 어깨여서 움직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나 이 타는 듯한 고통은 그가 알던 과거 강정학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머리를 노리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백령검에 혁련제가 화룡도를 들어서 막았다.

카앙! 쿵!

도검이 충돌하는 순간, 검력에 밀려난 혁련제의 신형이 지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두 발로 착지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두 다리의 떨림까진 완전히 제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 멈칫하는 혁련제의 머리 위로 열 개의 새하얀 검강이 나타나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첫 경합부터 기세를 압도하는 느낌이었기에 강정학의 검강들이 일으킨 충격과 굉음,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는 염황종 마인들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염황마종 전체를 화마(火魔)라 볼 때, 염황신마 혁련제는 그 화마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 꺼져서는 안 될 중심의 가장 큰 화염(大火焰)이었다. 삼화룡이나 다른 마인들은 혁련제에 비하면 그저 화마에 기세를 더할 불쏘시개, 소화(小火) 그리고 화마가 지나가고 남은 잔화(殘火)에 불과하다 볼 수 있었다.

가장 큰불이 죽으면 잔화는 진압되기 마련이다.

염황신마는 그만큼 대체 불가능한 큰불, 무력의 상징이며 혁련제는 큰불을 담을 최고의 장작(長斫)이었다.

화르륵……, 파아아아!

그 순간 눈보라를 뚫고 거대한 불길이 격렬하게 일렁거렸다.

그것만 봐도 삼화룡이나 마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 압도적인 불길의 기세는 혁련제가 아직 살아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창윤, 무량! 계속해서 움직여라!”

화염과 눈보라가 함께 휘몰아치는 그 사이로 혁련제의 목소리가 뚫고 나왔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에 창윤과 무량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신마님!”

“가라!”

짤막한 대화 사이로 눈보라와 화염이 흩어지면서 혁련제가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에 새빨간 불길을 휘감은 그는 어느 때보다 전심전력으로 싸울 태세였지만, 그것은 마치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퇴각 행렬의 최후방에서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졌으니 누구 하나 쉬이 그 명령을 이행하고 싶은 자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혁련제의 말은 끝내 창윤과 무량을 멈춘 발걸음을 다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염황의 마도가 무엇인지 기억하거라!”

움찔!

혁련제가 내뱉은 지엄한 명령에 창윤과 무량은 물론이거니와 마인들 모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황의 마도.

염황마종의 그들은 사제지간을 이루지 않은 집단이었다.

불길을 직접 다루는 극양공을 실현하기 위하여 같은 마도를 걷고자 하는 그들 각자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 목숨들을 대가로 지불하였다.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많은 목숨을 살상하기도 했지만, 자기 자신을 장작으로 삼으면서 때때로 대가를 치른 역사가 수십 년이었다.

그 역사 속에서 피어난 가장 큰불이 바로 혁련제였다.

그의 방법은 염황마종 모두에게 전파되었고 각자가 큰 개선을 이루어 세력 자체도 선명함을 구축하게 되었다. 천마신교 내에서 가장 강력한 마도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길을 혁련제의 것으로 개선해야 했지만, 순수하게 혁련제의 길을 걷는 자는 시간만 주어지면 반드시 나올 것이고 새로운 염황신마도 나타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염황의 마도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그것이 혁련제가 염황마종의 마인들을 최대한 살리려는 이유였다.

불씨만 살아있다면 언제고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법.

“모두 움직여라!”

창윤의 명령이 떨어지자 혁련제의 외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마인들이 삼화룡을 따라 즉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혁련제는 거대한 화염을 일으켜 강정학이 마인들을 노리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그러나 강정학은 그저 웃음 띤 얼굴로 여유롭게 기다려주고 있었다.

“이전에 두 번 싸울 때도 그렇고, ……마교도 주제에 부하들을 끔찍이도 아끼는구나.”

진주탄폭포에선 바로 도주했으나 숲에서 교전했을 때, 끝내 부하들을 퇴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혁련제가 최후방에서 강정학과 검림을 떨쳐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만큼 그가 일으키는 화염은 거대한 만큼 위협적이었었다.

“살아남은 불씨가 다시 산을 태우는 법이다.”

“네놈이 그럴 줄 알고 도혁이와 다른 검객들이 이미 우회하여 앞지르고 있느니라.”

강정학의 말에 혁련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염황종이 다급하게 도망치느라 호수 낀 설원으로 숲을 빠져나갔을 때, 강정학은 그들 뒤를 침착하게 쫓으면서 지리적인 변화를 예민하게 주시해왔었다.

그 결과 염황종이 지나친 우측면 산자락 반대편으로 완만하고 폭넓은 협곡지대가 깊이 이어져 있음을 발견하고 강도혁 등을 우회하도록 했다. 그리고 굳이 검림 검객들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없어진 강정학은 전력으로 산을 타고 넘어와 따라잡은 것이었다.

‘이런……! 차라리 모두를 등에 업고 강정학을 포위해야 했단 말인가?’

염황마종이 무서운 것은 각자가 일으킨 화염이 서로서로 동조하면서 더 큰 기세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강정학 한 사람만 상대하는 구도를 만들었다면 혁련제는 삼화룡과 마인들의 불길을 빌려 싸울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 점을 간파한 강정학이 오히려 대담하게 덮치면서 허장성세(虛張聲勢)의 계책을 실행했니 그의 전술적인 판단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었다.

“이제 제대로 놀아보자꾸나.”

키에에엥-!

눈 덮인 협곡이 기세에 떨며 울부짖었다.

백령검을 치켜든 강정학에게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하더니 그의 옷자락 일부가 기운에 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협곡의 칼바람에 떨어져 나가면서 맨몸이 드러났고 혁련제의 눈에 그가 남겨 놓았던 화상의 흉터가 함께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흔을 넘긴 노검객의 탄탄한 육체도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지만, 혁련제의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그가 남긴 화상 흉터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었다.

‘뭐지?’

이미 강정학과 전력으로 부딪쳐 본 기억이 있었던 혁련제에게 적의 백양소혼신공이 갖는 기질(氣質)이나 기색(氣色)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강정학에게서 느껴지는 기질이나 기색은 홍천환 사태 그때의 기억이나, 직전의 숲에서 일전에서의 기억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절망할 준비가 되었느냐?”

강정학의 메마른 목소리가 섬뜩하게 귀에 꽂혔다.

혁련제의 얼굴에 분노와 열화된 웃음이 함께 맴돌았다.

“아아, 물론이다. 네놈을 불태울 준비가!”

혁련제가 일으킨 거대한 불길이 일순간 똬리를 틀며 염룡으로 화한다.

염룡마공 초열겁화도(焦熱劫火刀).

염황의 화룡도가 그려낸 궤적을 쫓아 염룡의 열기가 주변 일대에 덮인 눈을 녹이다 못해 즉각적으로 증발시킬 정도로 강렬하게 일어난다. 그 모든 기세가 화운(火雲)처럼 일어나서 오직 한 사람만을 집어삼키기 위해 덮쳐졌다.

쿠오오오!

그 순간 강정학은 이미 백양소혼신공을 운기하여 막대한 양의 검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어디 최선을 다해보아라.”

강정학이 보이는 오만함에 혁련제가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이번엔 온몸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주마!”

화르르륵……!

콰콰콰콰!

혁련제의 뜨거운 화염이 눈 덮인 일대를 녹이면서 강정학을 덮쳤다. 그러나 강정학은 셀 수 없이 많은 검기를 일으키면서 불길 속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감히 그의 몸에 닿지 못했으며 오히려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진 채 혁련제의 화룡도와 검을 섞었다.

카카캉-!

쾅-, 쾅-!

도검이 충돌하고 기운이 폭발하면서 일으킨 소음으로 인해 협곡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만약 설산에 누군가 있어서 먼발치서 이 광경을 보고 들었다면 분명 화룡과 백호가 협곡에서 마주쳐 힘을 겨루는 것이라고 말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화룡으로 일컬어질 당사자의 눈에는 눈앞의 대적이 백호 따위로 보일 리 없었다.

그보다 더 상징적이고 위대한 무언가를 찾아야 할 듯한 강력한 기백.

그가 일으킨 화염의 권역 안에서 다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터럭조차 그슬리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혁련제의 눈빛에 심중의 두려움이 감춰지지 못하고 드러났다.

반면 강정학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그가 전신으로 뿜어내는 투지는 혁련제의 염룡보다도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상적인 심신의 다스림.

거기서부터 압도되기 시작하는 이 현실을 혁련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뭐란 말이냐? 첫 대결에서도 이렇지 않았거늘……!’

천마신교의 무영각에선 염황이 구주마종의 삼강에 들고 그 잠재력이 일월에 버금간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다. 그 근간에는 극양공의 이면에 깔린 불확실성과 주화입마의 위험을 제어해냄과 더불어 그들이 일으킨 불꽃이 자연적인 위력 이상으로 기운 자체를 불태우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화마(火魔), 그래서 염황이었다.

그렇기에 절정에 이른 검술과 검기의 날카로움이 천하제일이라는 강정학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극(相剋)이라 여기고 전력을 배치했던 것이었다.

비록 혁련제가 한 팔을 잃을 정도로 강정학의 무공이 과소평가된 감이 있었으나 그의 오른팔과 얼굴에 남긴 화상은 염황의 무력을 증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닿지 않고 있다.

마치 어떠한 위협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처럼.

오로지 화룡도에 극도로 집약된 도강만이 위협이라는 듯 백령검을 맞대고 있을 뿐, 거대한 불길 따위 흩어지는 눈발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전신을 둘러싸고 있는 저 하얀 기운……!’

백령검과 강정학의 온몸을 타고 짙은 하얀 기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혁련제가 느끼기엔 그 기운으로 인해 염룡의 화마 속에서도 다른 공간에 존재하듯 영향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의문을 가져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좀 더 따라붙어서……!’

화염의 심부는 더 뜨겁고 강력하니 강정학을 감싼 막을 불살라보겠다는 심산.

카카카칵-!

화룡도를 더욱 격렬하게 휘두르며 백령검과 한바탕 춤을 춘다.

지고한 검법의 경지 앞에서 화룡도의 궤적이 상대적으로 다소 투박할지라도 역으로 허초를 쫓아 품으로 파고드는 건 그의 경지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 걸음 간격을 파고드는 것만으로도 왼팔이 있었다면 금나수를 펼쳤겠지만, 아쉬운 대로 칼날 대신 자루를 쥔 주먹의 손등으로 상완을 때렸다.

퍽!

치익-!

“큭!”

손등으로부터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 혁련제가 침음성을 삼켰다.

줄곧 거리를 유지하려던 강정학이 오히려 왼손을 뻗어 혁련제의 빈 어깨를 붙잡고는 그대로 목을 노려 백령검을 찔렀다.

카앙!

혁련제가 급히 화룡도를 당겨 넓은 도신으로 파고드는 검끝을 막아냈지만, 다시 한번 어깨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급하게 강정학을 걷어차면서 거리를 벌렸지만, 그가 떨어지는 게 아쉬웠는지 강정학이 검으로 반원을 휘두르자 다섯 가닥의 검강이 일어나 쇄도했다.

콰콰쾅-!

쿠웅……!

쉴 틈 없이 퍼부은 공세에 밀린 혁련제의 신형이 멀찍이 날아가 가파른 설산의 바위벽에 처박혔다.

“크학-!”

혁련제가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통스럽게 토해냈다.

천지를 뒤덮었던 불길은 어느새 사라졌고 그의 얼굴이나 몸 곳곳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움푹 파인 바위에서 몸을 빼내는데 흙먼지로 얼룩진 자신의 꼬락서니도 우스웠지만, 손등에 남은 그슬린 자국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염황의 몸에 화상이라니?

“네놈 덕분이다.”

강정학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멀리서부터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오는데 꺼진 그의 불길과 달리 노검객의 몸은 여전히 새하얀 기운이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네놈 덕분에 백양소혼신공의 극의(極意)를 개척할 수 있었다.”

강정학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날아와 비수처럼 꽂혔다.

혁련제의 눈빛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내 덕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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