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 제62장. 죽음 위에 서서 죽다 (1)
겨울은 이미 오고 있었지만, 그날은 유독 더 혹독하게 추웠던 날이었다.
진도건이 이미 느끼고 있던 고비의 냉엄한 추위가 충분히 아래 지방까지 덮친 상황에서 황무지 위나 산림이 우거진 곳의 기온이 조금은 다를지언정 그 공기에 갇힌 자들에겐 똑같이 살을 에는 듯했다.
끼리리릭…….
드드득……!
진지 곳곳에서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장수 주탄은 병사들을 시켜서 조금 전 점령한 오초령 진지의 시체들을 바깥으로 치우고자 했다. 일단 먼저 시체들을 군데군데 모으게 하고 때마침 수레가 있어서 그걸 이용해 바깥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었다.
새벽에 점령하였으니 피로가 가득할 만해도 시체를 옆에 끼고 휴식을 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군사들은 불만을 입에 담으면서도 몸은 시키는 데로 움직이고 있었다.
진지는 비교적 온전했고 적군도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동이 트기 전에는 다행히 대부분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수면을 취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곧 끝날 어둠을 의지하여 군사들은 병장기들을 품에 낀 채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번을 위하여 자지 못하긴 했지만, 구할 이상의 대부분은 남월당 무림인들이 역할을 대신해줌으로써 모두 안심하고 눈을 붙였다.
한 시진 정도가 흘러 동쪽 산등성이에 태양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바람이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오초령을 차갑게 껴안는 동안 햇볕도 슬그머니 웅크린 품을 파고드는 손길처럼 은근한 온기를 선사하기 시작했다. 오들오들 떨리던 턱의 움직임도 잦아들고 잠이 들어 감긴 눈꺼풀 아래로 햇볕의 따스함을 느끼고 눈꺼풀이 동글동글 움직인다. 절로 그려지는 희미한 미소로 아침의 단잠이 주는 달콤함이 어떤지 짐작하게 한다.
전투로 고양된 기분과 긴장감이 새벽 아침의 달콤한 수면으로 매듭이 풀려가던 시각.
“윽!”
작은 단말마의 비명이 진지 어디선가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초령 진지 내부는 평온했다.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적군의 기척 같은 건 없었고 내부는 다들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근처에 그 소리를 누군가 들었어도 그저 걷다가 돌부리에 발끝을 찧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만한 그런 일상적인 느낌이었다. 혹은 새벽잠이라 가위에 눌려 끙끙거리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그걸 위험으로 간주하지 못했다.
진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란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끄르륵……!”
“카카카칵!”
“끄어어어……!”
한순간 진지 전체에 기괴한 신음과 괴성이 조용히 맴돌기 시작했다. 남월당 무인들은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이 작은 소란이 무슨 이유로 일어나고 있는지 막사들을 돌아다니며 살피기 시작했다.
“헉!”
그들은 발견했다.
두 눈은 녹광으로 빛나고 피부엔 붉은 혈관이 불거지다 못해 터져 피의 꽃이 피었다. 입으론 피거품을 문 채 악취를 풍기면서 가까운 자들을 공격한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것 같은 움직임은 공격의 의도를 미처 느끼지 못한 채 얻어맞거나 할퀴어지고 그렇게 발생한 상처들로 인해 그들이 품은 죽음의 기운과 흉성이 전염되어 간다.
피로 더럽혀졌으나 익숙한 군장.
그들은 주탄군이었다. 그리고 아군이었던 그들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은 다른 이들을 소스라치게 만든다.
적을 찾아 헤매다가 나를 공격하는 게 가까이서 잠을 청하던 내 동료라는 걸 자각할 때, 혼란은 더욱 증폭된다.
“장군! 당주님!”
남월당 무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들이 찾지 않아도 주탄과 장태환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미 이상징후를 감지한 상황이었다.
“피를 뒤집어쓰지 마라! 달라붙게 하지마!”
이 사태가 어떤 기작으로 전염되는지 간파한 장태환이 진영을 누비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눈치 빠르게 파악했기에 지금의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장태환의 안색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 가득한 채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대부분 시체를 옮긴 일반 군사들이 감염되었지만, 일을 도와주거나 군사들과 가까이 있었던 부하들도 일부 감염을 피할 수 없었어. 하지만, 대체 어떻게……. 죽은 자들이 이 상황을 만든 것이지?’
기작은 유추할 수 있어도 사태를 촉발시킨 근원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분명했기에 장태환의 머릿속도 복잡하게 돌아갔다.
“크와아아악!”
그때 바로 근처를 지나던 막사의 입구 천막이 펄럭이면서 그림자가 장태환을 덮쳤다.
스컥!
기민하게 반응한 장태환이 그림자를 흘려내면서 그의 월고검이 목을 썰어버렸다.
‘빌어먹을……!’
목을 치고 나서야 그가 아끼던 남월당 부하의 얼굴이 공중에 맴도는 게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장태환의 얼굴에 분노로 눈에도 핏발이 서는데, 그런 그의 귀에 주탄이 고함치는 게 들려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야!”
장태환은 주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아직 멀쩡한 군사들을 통솔하여 진지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급히 부하들과 함께 목소리를 쫓아 주탄을 찾았다.
“어르신! ……크, 크윽!”
주탄이 장태환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를 들은 장태환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주탄은 이미 감염된 듯한 자신의 부장에게 붙들린 채로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장태환이 그들을 발견했을 때는 부장이 이미 주탄의 팔을 물어뜯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턱 힘이 셌던지 완갑까지 부수고 들어가 살갖을 파고들어 출혈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장태환은 서둘러 다가가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스컥!
“으악!”
주탄의 왼팔이 어깨에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러면서 버티려는 힘이 사라지자 부장이 물고 있던 팔과 함께 그대로 주탄의 위로 쓰러졌다. 그걸 장태환이 다시 발로 걷어차서 떼어놓았다.
퍽! 우당탕!
장태환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쌍고검에서 검기까지 피워내며 그대로 괴물이 된 부장에게 쏘아 보냈다.
콰콰콱!
장태환은 빠르게 주탄의 잘린 팔뚝 부근을 점혈했다. 두꺼운 팔이 뭉텅 잘려 나갔으니 완벽한 지혈은 불가능했지만, 급한 대로 동맥을 통한 과다 출혈을 막으려 한 것이었다.
“당장 멀쩡한 군사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네!”
장태환이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팔이 떨어져 나간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괴물이 되어버린 부하에게 물렸던 충격 때문인지 주탄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장태환과 함께 온 남월당 무사 중 하나가 다른 부장을 근처에서 구해내면서 뿔피리를 불게 할 수 있었다.
뿌우, 뿌우, 뿌우-!
퇴각 신호를 들으며 장태환은 선두에서 멀쩡한 군사들을 덮쳐오는 감염자들을 베어 넘겼다. 그들이 뿌린 피가 몸에 닿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검기를 폭발시켜 떨쳐내는 데 집중했다.
곧 그들을 중심으로 남월당과 멀쩡한 군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나갈 수 있다! 정신 차려!”
그때쯤엔 주탄도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부하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장태환은 자신의 냉정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쿵쿵쿵쿵……!
이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장태환이 박살 냈던 목책문은 어설프게 다시 엮여 만들어진 채 출입구를 막고 있었는데 밖에서 뭔가가 두들기고 있는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설프게 만들어진 만큼 벌어진 나무 틈 사이로 장태환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녹광의 흉성을 두 눈에 품고 이지를 상실한 채 문을 두들기는 광인(狂人)의 무리를. 그리고 얼핏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바로 바깥으로 치워놓았던 적군의 전사자들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강시……!’
아니, 다르다.
목석처럼 움직인다는 기록과 달리 이것들은 오히려 생명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천 성도에 나타났다는 천혈강시조차도 빙의한 시전자가 없다면 목석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진도건이 산산조각 내버린 천혈강시의 사체 조각은 돌처럼 단단해서 유연함이나 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설명은 일찍이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은 마치 굶주린 아귀의 영혼이 시체에 들어간 것만 같다.
‘아귀(餓鬼)……!’
아귀가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당주님! 왜 그러십니까? ……헉!”
문환이 덤벼드는 아귀들을 물리치면서 급히 장태환을 찾다가 문밖의 소란을 그도 확인하고 표정이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즉시 경공을 펼쳐 목책문 바로 옆의 경비탑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더욱 해쓱해졌다.
밖으로 옮겨놨던 오천구의 시체들이 모조리 아귀로 변해버린 채 진지를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대체……!”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문환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바깥과 안을 번갈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바깥쪽을 내려다보던 문환의 시야에 뭔가가 감지되었다.
펄떡펄떡 뛰어대는 시체들 사이로, 똑같이 몸에 굳어버린 피딱지들을 뒤집어쓴 채 빛나는 녹광의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시체 하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요란한 몸부림과 듣기 싫은 괴성 사이에 존재하는 한 점의 정적은 위화감과 위험을 동시에 감지하게 하여 판단을 흐리게 했다.
번쩍!
그 순간 검기가 솟구쳐오르면서 문환의 목을 관통했다. 공중에 피를 뿌리며 맴돌던 문환의 머리통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장태환의 앞에 떨어져 그와 눈을 마주쳤다.
“뭐……?”
문환이 경비탑에 올라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던 장태환으로서는 그의 머리가 발 앞에 굴러다니는 광경이 매우 이상했다. 그리고 사방에 가득 차 넘실거리는 사기(死氣) 속에서 생기 넘치는 마기가 하나둘 빠르게 증식하듯 늘어나는 이 감각은 더 이상했다.
혹시 모르는 그 불길한 상상의 결과가 발 앞의 풍경이라면,
콰앙!
그 순간 문이 박살이 나며, 그와 함께 조각난 시체들이 덮쳐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떨쳐내자마자 살아난 시체들이 달려와 장태환과 남월당 무인들 그리고 군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콰아아!
장태환이 일월쌍고검의 검기를 뿌려 덮쳐오는 시체들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나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그 기세 모두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빌어먹을……!”
간신히 생존자들끼리 뭉쳐서 방진을 구축했던 것이 쏟아지는 사체들로 인해 순식간에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움직이는 시체들보다 더 문제인 건 적룡단의 옷을 입은 시체들이었다.
그들만큼은 마치 흉성에 정신이 완전하게 잠식되지 않았는지 일신에 가졌던 무공까지 펼치면서 덤벼드는 것이었다.
더더욱 막을 수 없는 시체들의 파도.
이제는 완전히 생존을 다투는 사투가 되어가고 있었다.
섬뜩하게 드러내는 이빨과 발톱, 칼날들을 피하면서 정신없이 하나둘씩 목을 쳐내는 동안에도 먼저 쓰러진 아군들이 시체가 되었다가 다시 일어나 공격을 해오는 그 모습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놓아버릴 듯했다.
“끄으으윽……! 당주님……!”
주탄의 고통에 찬 신음을 듣고 장태환이 무심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녹광으로 번들거리며 죽음이 차오른 눈빛과 기괴하게 비틀려버린 근골의 상태를 발견한 순간, 장태환은 이 아비규환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란 처음부터 없었음을 깨달았다.
후회하는 것조차 마땅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무엇을 후회할지조차 몰랐다.
이 역천의 참상을 연출한 자 누구인가?
“끄으으으……! 천마신교, 이 악귀 같은 새끼들……!”
경험 많은 백전노장 장태환조차 참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절규를 내질렀다.
퍽!
그의 쌍검이 주탄의 목 앞에 교차했다가 그대로 펼쳐졌다. 그사이에 걸려 끝내 잘려버린 채 땅에 툭 떨어지는 주탄의 얼굴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흘린 눈물 때문에 금방 흙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