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 제61장. 다시 만나는 일월신마 냉소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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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무경은 인원을 추려 정찰조를 보냈다.
난주성에서 무위성까지 군을 이동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난주성을 지나는 황하로 합류하는 북쪽 방면의 지류인 장랑하(庄浪河) 강변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사방에 넘실거리듯 솟아있는 구릉지를 지나쳐서 가다 보면 장랑하의 방향이 서쪽으로 조금씩 꺾이면서 좌우로 기련산맥의 험준한 산세가 앞을 가로막게 된다. 하지만, 양쪽의 산세가 점점 좁아지는 지점에서 북쪽 구릉지를 넘게 되면 그 험준하게만 보이던 산줄기 사이로 높이가 완만한 지대가 나타나 산세를 넘어갈 수 있게 되니 이곳이 바로 오초령(烏鞘嶺)이었다.
이 오초령이 바로 감숙의 비단길, 하서주랑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었다.
오초령도 강이 흘러 북쪽으로 빠져나가기에 농작물의 경작이 가능했고 실제로 농경과 교역을 주로 하는 거주민 마을도 있었다. 오초령을 넘어 산에서 내려가면 고랑현(古浪顯)이 나오고 조금 떨어진 곳에 바로 무위성이 있었으니 무위난주 전선에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무경의 정찰조는 이 오초령까지 움직였고 오초령에 적군의 진지와 더불어 거기까지 가는 동안 구릉지 사이사이를 이동하면서 수시로 위치를 바꾸는 매복군도 발견했다. 일부는 적룡단도 포함된 부대도 있어서 누가 봐도 오초령을 방어하기 위한 유격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조태상과 고소덕 그리고 천무경은 자신들의 군사와 조직들을 분할하여 조합 및 재편하였다.
조태상과 고소덕은 후군을 이끌었으며 조태번을 비롯한 두 장군의 장수들이 총 4개 군을 통솔하여 천무경이 배치한 무림인들과 함께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군세는 장랑하를 따라 강 건너 좌우의 구릉지들을 탐색하면서 지나갔고 곧 각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조태번군이 적룡단을 포함한 이천 군세의 습격을 받았으나 격퇴하였습니다! 현재 오부지(五部地)를 지나고 있습니다.”
“양막(羊莫)군이 사부지(四部地)에서 두 번째 교전 중입니다.”
“순숙(荀淑)군이 오부지에서 세 번째 유격군을 격퇴했습니다.”
전령들이 차례로 각 군의 상황을 보고했다.
부지(部地)는 난주성을 출발지로 하고 목표인 오초령을 십부지(十部地)로 삼아서 어디쯤에 각 군이 위치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태상이 정한 명칭이었다.
“진군 속도가 대체로 나쁘지 않군요.”
“그래도 적룡단이 포함됐을 때는 피해가 조금 있는 모양입니다.”
“흐음, 무림인들이 군에 포함돼도 그렇게 되는 건가?”
“군 체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고……, 일전에 한 번 부딪치면서 만만치 않다고 여겼을 테니 무림인들을 피해 일반군을 노리는 방법도 시도할 겁니다.”
고소덕이 가진 의문을 천무경이 풀어주었다.
마웅패가 유격군을 운용하는 것은 조태상군과 고소덕군의 피해를 누적시키기 위함이었으니 천무경의 말처럼 무림인들을 직접 맞부딪치는 구도로 싸우려 들지 않는 건 당연했다.
“후군도 전진한다!”
조태상의 명령에 잠시 대기하던 후군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장랑하변을 따라 나아가는 후군은 강의 오른쪽 강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좌측은 기본적으로 혹시 모를 적습에 대비한 정찰병들만 배치했는데 기련산맥과 가까운 구릉지여서 상대적으로 우측의 구릉지보다 산세가 더 험하고 기본적인 경사도 가파른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모로 대응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으니 차라리 강 우측으로 군을 이동시키면서 장랑하를 방벽으로 삼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얼마간 행군을 지속하던 중이었다.
“흐음.”
조태상이 근심 섞인 신음을 살짝 흘렸다.
가까이서 말을 타고 가고 있던 천무경은 그가 왜 그런 신음을 흘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주탄(周炭)군이 신경 쓰입니까?”
“아아, 그렇습니다. 그 군만 진군 속도가 유독 빠르니까요.”
주탄은 고소덕의 장수였다. 대담한 성격에 무력도 뛰어나서 고소덕이 신뢰하고 기꺼이 선봉을 맡기는 장수였다.
그렇기에 조태상이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은 고소덕은 살짝 기분이 나빴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우리 군의 주탄이 조태번 장군보다 먼저 오초령을 점령할까 봐 그러십니까, 조 장군.”
“하하, 누가 먼저 점령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 전쟁이 오초령이 마지막도 아닐 텐데요. 다만 마웅패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파악된 게 없으니 군세가 돌출되는 걸 우려하는 겁니다. ”
“흐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주탄이 어설픈 판단을 내리는 장수는 아닙니다. 그가 공적을 탐내 무리하게 공격하는 일도 없을 테니 너무 염려마십시오. 그렇게 나아가다가도 알아서 속도 조절을 할 것입니다. 장 당주님과 휘하의 고수들이 보조하기에 네 부대 중에서도 전력으론 최강이 아니겠습니까?”
고소덕이 동의를 구하려는 듯 웃으면서 천무경을 바라보았다.
“장태환 장로가 화급(火急)한 면이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
“예에?”
천무경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하자 고소덕도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소덕은 무심코 창천맹의 지원이 늦는다는 일로 장태환이 불같이 화를 내던 모습을 떠올렸다. 주탄의 판단력은 훌륭한 편이지만, 왠지 장태환이 불같이 화내면서 계속해서 전진을 외친다면 어쩐지 그 기세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동시에 불안감도 들었다.
‘흐음, 이거 조금 불안한데…….’
고소덕이 불안해할 때, 앞쪽의 군사들을 지나쳐 전령이 가까이 달려왔다.
“주탄군 상황을 보고드립니다!”
“오오! 그래, 어서 말해봐라.”
“주탄군은 지금 팔부지를 돌파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덟 개의 적 부대를 격퇴했다는 소식도 알려드립니다!”
전령은 주탄군의 엄청난 공적에 희열을 느끼며 힘찬 목소리로 보고했다. 하지만, 곧 손으로 이마를 짚는 고소덕의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조태상쪽을 쳐다보았다.
“아아…….”
원래라면 주탄의 공적에 기뻐했을 테지만, 조태상과 천무경의 염려를 들어버렸기 때문에 고소덕으로선 도무지 기뻐할 수 없었다.
조태상도 불안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천무경보다 더할 리는 없었다.
창천맹으로부터 아직 답신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늦어지고 있음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천무경이 혹시 모를 정파의 입장을 변호하였을 때, 장태환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맹주인 천무경의 결정을 존중했다. 하지만, 자기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기도 하였는데 마교도 토벌에 정파의 조력 따위 필요 없다는 걸 자신이 보여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태환답다고만 생각했지, 우려하지는 않았는데 무시무시한 진군 속도를 듣고 나니까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떠오르려 하는 것이다.
‘장형……, 부디 무리한 판단은 삼가시구려.’
남월당의 주축은 천혼당 일부와 대부분의 지혼당 그리고 상당한 실력을 갖춘 외부 고수들의 영입으로 이뤄낸 절정고수 조직이었다.
남월의 남(藍)은 청출어람에서 람의 의미를 가져온 것이고, 월(越)은 남월당의 일원이 되기 이전의 자신을 뛰어넘는 경지를 이루라는 목표 의지를 담은 의미였다. 그만큼 장태환이 가하는 훈련의 강도는 혹독했으며 거기에서 해방된 그들은 실력, 자신감, 단결력 등 모든 부분에서 네 당 중 최고의 기세를 이루고 있었다.
“또 이겼다!”
군사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위치는 벌써 팔부지, 그리고 여덟 번째 조우전에서의 승리에 군사들의 사기가 최고조에 달해있는 건 당연했다. 심지어 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기세에 더욱 바람을 넣고 있는 장태환의 계속 진군하자는 요구들에 주탄도 올라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멈춰야 한다…….’
주탄도 선봉에서 적진을 돌파하며 적극적인 격전을 치르는 걸 좋아했지만, 자신들의 진군 속도가 빠르다는 것 정도는 깨닫고 있었다.
작전 회의 때 부지별로 예상 돌파 시점도 논의했었는데, 그때 예상했던 팔부지 돌파 시각은 내일 정오쯤이었다. 그런데 기일 전날인 오늘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시점에 벌써 팔부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사방에 적군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패잔병들은 도망친 상황.
아직 죽지 않은 적들의 가슴에 창대를 꽂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겸하여 쉬고 있는 상황에서 주탄은 말을 몰아 장태환이 어디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곧 무림인들끼리 모여서 뭔가 얘기하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고 거기에서 장태환을 찾을 수 있었다.
“장 당주님!”
주탄이 부르는 소리에 장태환이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직전까지 대화하던 자에게 손짓했고 곧 이십여 명의 인원들이 경공을 펼치면서 북쪽 산세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 시진 전쯤에도 육부지 정도 위치에서 비슷한 광경을 이미 한 번 봤었기 때문에 주탄은 장태환에게 가서 우려를 나타냈다.
“당주님, 여기서 잠시 군을 물리고 조금 쉬는 게 좋겠습니다. 계획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 다른 부대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더 가다간 분명 집중적으로 노려져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나도 이쯤에서 쉬자고 얘기하려고 했네.”
주탄은 이 말에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의문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럼 방금 나간 자들은 무엇입니까?”
“당장 진군하지 않더라도 탐색은 해둬야 하지 않겠나?”
“여기가 팔부지쯤 됩니다. 일부러 적을 찾아 격퇴하면서 온 만큼 이제 남아있는 숨은 적들도 거의 없을 텐데 굳이 찾지 않고 방비만 해도 충분할 겁니다. 그냥 돌아오라고 부르십시오.”
주탄은 남월당 무림인들의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걸 지난 전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로 보아 보초만 서주더라도 야음을 틈탄 불시의 기습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탄의 지적이 적절치 않았다고 느꼈는지 장태환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팔부지까지 와서 뭣 하러 유격군을 찾겠는가? 그 정도는 노부도 잘 알지.”
“그럼 뭐 때문에……, 설마?”
“당연히 오초령이지.”
“예?”
“여기까지 온 마당에 오초령까지 정찰을 시도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리 파악해 놔야 다른 부대가 도착하면 연계해서 움직일지도 결정할 수 있는 게지. 안 그런가?”
“하아, 그거야 그렇지만…….”
주탄이 걱정하는 기색을 드러내자 장태환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할! 노부가 그동안 너무 진격하자고 재촉만 한 거 같구먼. 이보게, 노부가 그리 앞뒤 분간도 못 하는 늙은이로 보였는가?”
“그럴 리가요.”
“그럼 어서 야영할 자리나 알아보세. 먼저 도착한 만큼 푹 쉴 수 있으니 내일은 더 힘차게 활약할 수 있지 않겠나? 후후!”
아무리 주탄이 나름 자부심 높은 장수였어도 장태환 앞에선 역시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같이 싸우는 건 영광이었지만, 기가 너무 세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탄은 군사들에게 시체 확인을 멈추도록 지시한 후, 후방의 숲 쪽으로 군사들을 물릴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하늘이 붉게 물들 때쯤에는 그렇게 물러난 숲속에 야영을 준비하면서 챙겨온 건량들로 저녁 식사를 때우고 있었다.
보통 남월당 무인들이 정찰을 나갔다 돌아오는 데는 반 시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까운 지역을 우선하여 수색하고 적군이 발견되면 보고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리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간 자들은 늦은 밤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두 시진 째 시간이 흐르도록 아직 소식이 없는 건 아무래도 오초령의 높은 산봉우리까지 올라 적진을 면밀하게 살피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주탄은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른 부대보다 돌출된 전선에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 만약 마웅패가 오초령 진지에 있어서 그들이 이곳에 있음을 알고 습격을 해온다면 이 군사와 남월당만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반면 장태환은 별로 긴장한 기색도 없이 느긋해 보였다. 자신의 두 자루 일월고검을 앞에 내려놓고 가부좌를 튼 채 평온한 표정으로 명상하고 있었다.
주탄은 자신의 초조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그런 장태환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건량 하나를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