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20화 (320/432)

320화 – 제59장. 그는 천재(天災)로 돌아왔다 (5)

황검당을 품은 혈랑대의 질주가 앞쪽 언덕 하나를 둘러 지나쳤을 때, 진도건과 안효철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합류하는 걸 보았다. 그리고 절벽 속에서 벗어나 하늘로의 시야가 조금 트이게 된 혈랑대도 어느덧 지척까지 이른 모래폭풍을 발견하고 기겁했다.

“뭐, 뭐야! 뭐 저렇게 커? 제기랄!”

“저걸 정말 진도건이 일으켰다고?”

“미, 미친!”

혈랑대의 협곡 질주가 더 다급해졌다.

모래폭풍이 벌써 후미에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면 아마 혈랑대 전체를 덮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진도건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꽂혔다.

“멈추지 말고 달리세요! 모래폭풍은 여러분들에게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상한 바람이 혈랑대 전체를 휘감으면서 그들 모두 몸이 살짝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콧속을 뚫고 폐부로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 때문에 찰나간 정신적 몽롱함을 느끼는 순간 사방이 어둠으로 뒤덮이는 걸 느꼈다.

모래폭풍 속에 삼켜져 버린 것이었다.

“이, 이럴수가……!”

그보다 차분한 탄성은 없었다.

마치 뭔가에 둘러싸여 보호받는 것처럼 질주하는 혈랑대의 반경 십여 장 안으로는 어떤 폭풍의 기류도, 휘날리는 모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좌우와 앞뒤, 하늘까지 시커먼 모래폭풍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이 내달리는 공간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공기의 흐름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꿈을 꾸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혈랑대의 선두에서 주인 없이 달리던 두 필의 말 안장 위로 두 사람이 날아와 사뿐히 내려앉았다.

진도건과 안효철이었다.

진도건이 군자검을 뽑아 높이 들었다.

흑검이 폭풍에 가려져 뒤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선봉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기백이 단숨에 혈랑대의 황망한 정신을 일깨웠다. 그리고 진도건이 터뜨리는 호령(號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래폭풍으로 적군은 모두 혼비백산한 채 머리를 숙일 것이오, 혈랑대는 오직 종심을 노리고 돌격하니 그 앞에 머리 숙인 자들을 가차 없이 짓밟고 뚫어낼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적진의 종심에 도달할 것이니! 오늘이 바로 적룡기가 혈랑대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첫날이 될 것이다! 전대(全隊), 돌격하라!”

“크하하하하! 그래! 돌격하라! 다 죽여버려! 다 쓸어버려! 이 혈마를 위하여 잔뜩 피를 뿌리거라!”

그 돌격 명령과 동시에 진도건에게서 불꽃처럼 뿜어져 나간 붉은 마기가 물결처럼 혈랑대 머리 위로 흘러 지나쳤다. 그리고 그 붉은 기색을 보고 흥분이라도 한 것처럼 혈랑대뿐만 아니라 황검당조차 단전에서부터 끓어올라 정수리를 때리는 전율 속에 전투의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선인의 바람에 올라타 산등성이를 내달리는 혈랑대는 어느새 모래폭풍을 뚫고 나온 목책을 맞이했다.

콰앙!

진도건이 검기를 뿌리자 목책은 일격에 박살 나 폭풍에 휩쓸려버렸고 혈랑대는 그렇게 만들어진 길목을 관통하듯 지나쳤다.

진도건은 사방의 기척과 장애물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었으며 적룡단이 모여있는 마기의 중심지는 더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혈랑대를 선두에서 인솔하면서 앞에 걸리는 적군은 날려버리되 충돌을 최소화하면서 적진을 지나쳤다. 그 때문에 뒤따르는 혈랑대나 황검당은 꿈속을 달리는 기분이 여전한 가운데서도 간간이 폭풍이 미치지 않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파오의 끝자락이나 목책, 병사들이 보일 때마다 현실을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곧 적룡단! 황검당은 앞으로!”

중위에서 달리던 황검당이 그 지시에 혈랑대 선두로 올라왔다. 그 상황 속에서 황검당은 엄청난 양의 붉은 마기를 끌어모으고 있는 진도건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 광경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는 자가 없을 때,

“황검당은 기선제압 후에 돌입합니다!”

진도건이 그 외침을 끝으로 말에서 뛰어올라 전방을 여전히 새카맣게 가리고 있는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뛰어든 진도건의 앞으로 폭풍이 갈라지면서 길이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파천혈마공 혈주광뢰.

콰콰콰콰콰-!

쩌쩌쩌쩡-!

모래폭풍보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붉은 기류의 소용돌이 속에서 벼락의 폭풍마저 동반하여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이틀의 시간, 그는 천재(天災)로 돌아왔다.

그것이 안효철과 이혁성이 품은 공통된 감상.

두 사람 모두 번거로운 말에서 뛰어 내려와 진도건의 일격에 휩쓸린 적들을 향해 쇄도하여 전력을 다한 권경과 검기를 분연히 폭발시켰다.

어찌 됐든 자그마치 일천 명의 절정고수를 상대로 50명의 절정고수만이 사실상 직접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모래폭풍이라는 천군만마를 등에 업었다고 하더라도 진도건과 안효철, 이혁성은 말 그대로 전심전력으로 적진을 휩쓰는 중이었다.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희선의 경우에는 모래폭풍 때문에 음파를 퍼뜨릴 수가 없어서 그저 옥적을 휘두르는 수준밖에 활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 됐든 모래폭풍으로 시야뿐만 아니라 오감 전체가 혼란에 빠져서 아무런 상황 인지도 못 하고 있던 적룡단으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수준의 재앙을 맞닥뜨린 것이었다.

특히 이 매우 짙은 모래폭풍으로 인하여 적습이 일어났다는 걸 깨달은 시점은 이미 적룡단의 삼분지 이 가까이가 붕괴한 후였다.

“저, 적습이야!”

설령 누군가 그렇게 공력을 실어 외치더라도 그것이 진영 전체에 퍼질 일도 없었다.

폭풍 속에서 모래 알갱이들이 부딪치는 소음은 여희선의 음공조차 무용(無用)할 정도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혈랑대도 가차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어떤 좋은 기회를 빌리더라도 적룡단을 직접 상대하기에는 그들은 그야말로 범 앞의 하룻강아지들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대협곡을 가로지르는 중에 안효철과 이혁성 등은 언제나 직접 싸우지 말고 자신들이 처리한 자리를 쫓아서 전투불능이 된 적들의 목숨을 끊는 데 집중하도록 일러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말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진도건과 안효철, 이혁성을 포함한 총 53명의 고수들이 전력을 다하여 적들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뒤따르면서 부상에 신음하는 적들의 목과 심장을 노리고 창칼을 꽂아 넣었다. 또 적의 수가 많음을 고려하여 아랑대에 함께 했던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분하려는 노력은 포기한 채 일격에 끝내는 수준의 조치들로 매우 단호하게 전개되었다.

그 단호한 행동들이 모여서 북정진에 모여있던 적룡단 일천 명을 상대로 죽음의 파도가 되어 덮쳤다. 그리고 어느새 본격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백여 명의 군집 외 나머지는 전멸해버린 상황 속에서 진도건은 모래폭풍의 기류를 흔들어서 그 기세를 잠재우고 있었다.

폭풍이 가라앉으면서 요란을 떨어대던 모래 구름도 흩어지는 바람에 떠밀려 북정 바깥으로 서서히 흩어져갔다.

그렇게 점점 트여가는 시야 속에서 오직 살아남은 적룡단원들만이 필사적인 긴장감으로 저항하고 있었을 뿐 그들에게 통제받던 일만오천의 군사들은 대부분이 그저 폭풍이 지나갔다는 생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그런 모순된 분위기 속에서 다만 혈랑대가 뚫고 지나온 자리의 병사들만이 뭔가 지나갔다면서 작은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헉! 헉! 웨, 웬 놈들이냐!?”

“이게 대, 대체 무슨 날벼락……!”

살아남은 적룡단의 꼬라지는 매우 볼품없었다.

모래를 뒤집어쓴 데다가 공력의 폭풍까지 얻어맞은 탓에 다들 여기저기 터지고 피가 흘러서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자가 매우 드물었다.

그런 마당에 폭풍이 걷히고 난 후 일단의 기마병들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기마병들의 팔뚝에 매여진 휘장을 알아보고 소리친다.

“저놈들은 혈랑대?”

“뭣?”

무리 중에서 그 이름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자가 나왔다. 그리고 그 반응을 내비친 자를 혈랑대 속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네 이놈! 량견(凉犬), 이 배신자! 당장 그 목을 내놓아라!”

조위발이 분노에 휩싸인 채 호통을 쳤다.

적룡단 속의 량견이 조위발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정말 혈랑대였다.

그는 곧 류단아와 호주골 등 눈에 익은 면면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혈랑대가 모래폭풍을 뚫고 이 같은 참극을 만들어낸 걸 쉽게 믿지 못하였다. 방금까지 눈앞에서 번쩍거리며 적룡단을 덮치던 엄청난 공세들은 분명 혈랑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방을 호위하듯 에워싸던 청해의 부족 군사들의 군세도 거의 그대로인 듯 보였다.

그런 점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을까?

당장 그들을 덮치던 공세 속에서 운 좋게 벗어나 있었는지 또는 주위를 둘러싼 혈랑대 뒤로 즐비한 적룡단의 시체들을 보지 못했는지.

“이 개자식들이 분수도 모르고 여기까지 침입해오다니!”

적룡단의 조장급 고수가 뛰쳐나갔다.

그곳에 하필 안효철이 서 있었다.

훅!

적룡단원이 언월도를 휘두르는 순간, 안효철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졌다. 그리고 이내 그의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정수리를 노리고 주먹이 내리꽂혔다.

쾅!

어깨가 움찔거릴 정도로 선명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투구 채로 쇄골 아래까지 짓눌리며 박살 났으니 그 안의 머리통이 남아날 리 없이 엄청난 피와 허연 뇌수를 어깨 위로 뿜어낸다.

섬뜩하다.

그 끔찍한 광경은 아무리 마적단으로서 살인을 많이 저질렀던 그들이라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 식어가는 동료의 시체 위에서 안효철이 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탄 섞인 말을 내뱉는다.

“하아, 하아……, 제길. 너무 전력을 다한 탓인가, 힘 조절이 안 되는군. 후우!”

적룡단의 고수를 일격에 참살해놓고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중얼거리는 안효철의 목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폭풍의 여파로 거세게 부는 바람에 펄럭이는 거구의 장포자락 아래로 거무튀튀한 갑주가 어쩐지 인상 깊다.

설마 ‘그자’란 말인가?

푹!

그때 막 한 적룡단원의 목줄을 움켜쥐고 있다가 뒤에서 아랑부족이 아니라는 혈랑대의 말을 듣고는 망설임 없이 심장에 검을 꽂아 넣는 남자.

“류 대장이 말해주시오. 복수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주면 그놈들 빼고 다 죽일 테니까. 어차피 살려 보내봐야 방해만 될 것들.”

다시 검을 뽑아서는 검신에 묻은 피를 터는 이혁성이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로 류단아에게 물으니 그 모습을 본 적룡단 뿐만 아니라 혈랑대까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이혁성도 정말 오랜만에 자신이 사파제일방 천무방의 일원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살업이 주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 것이 천무방 이하 한 당의 당주라면 응당 가져야 할 태도인 것을.

그의 그런 냉혹한 모습에 공감했던 것일까?

“이미 많이들 쓰러뜨리셨어요. 우리도 많이들 복수했고요. 이만큼 했으면 이젠 배신을 주모(主謀)한 모극 출신으로 마무리해야죠.”

류단아가 안장에 걸어두었던 각궁을 꺼내 세 발의 화살을 쥐고 하나씩 시위에 걸어 각기 다른 사람에게 쏘았다.

핑! 핑! 핑!

화살이 몸에 맞을 리는 없었다. 그들은 마공을 익힌 고수들이었기에 아무리 각궁이 위력적인 무기여도 화살을 쳐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같잖은 공격을……!”

량견이 성질을 내다가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 이런 소용없는 공격을 한 것이었는지 방금의 말과 엮어 순간적으로 이해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양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자신처럼 화살을 막아내고는 성질을 부리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니 더 명백해졌다.

“량견, 우두발(牛頭發), 자인치(字引齒). 저 셋은 목숨만 붙여주세요.”

류단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세 사람의 귀에 꽂혔다.

이혁성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도건과 안효철 양쪽에 시선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그들 세 사람이 삼각으로 포진하여 적룡단을 중심에 몰아세운 채 서 있었다.

“생포는 우리 셋이 맡읍시다.”

“여전히 적룡단 수가 더 많으니 힘들 더 쓰셔야 합니다.”

“적절하군.”

이혁성, 진도건, 안효철이 차례로 목소리를 내자 량견과 우두발, 자인치가 불같이 화를 내며 외쳤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오냐! 어디 한번 누가 죽을지 싸워보자꾸나!”

“모두 죽여랏!”

그들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진도건과 이혁성, 안효철이 선제적으로 그들을 먼저 덮쳤다. 사방에서 경력이 소용돌이치더니 피가 튀었고 그 사이로 아예 몸이 떠올라 나가떨어지는 자들도 있었다.

저항할 수 없는 자라면 가차 없이 혈랑대의 칼날이 떨어졌다.

황검당도 과감하게 적룡단 잔당들을 향해 돌격했다.

적룡단은 이미 세 명의 강력한 고수들이 난입하면서 삼분지 일이 죽거나 크게 다쳤고 그로 인해 잠깐 들불처럼 타올랐던 기세가 파도에 젖어버린 꼴이 되어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혈랑대는 자리를 지키면서 구경하는 듯했지만, 그들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 주위로 일만오천의 군사들이 병장기를 갖춘 채 포위하고 있었으니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적군 측도 누구 하나 공격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없었다.

혈랑대의 적은 숫자 따윈 아무렴 상관없었다.

혈랑대가 가리고 선 곳은 북정진 지휘부의 중심.

이미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무너진 파오나 기물들 사이로 구백여 구의 적룡단 시체와 그들이 흘린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참혹한 광경은 모래폭풍이란 재해를 맞닥뜨렸던 황망한 감정에 더해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장벽으로 감히 접근을 불허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군사들은 침묵과 부동을 유지한 채 그들을 경계하는 혈랑대 너머 지휘부 중심지에서 들려오는 적룡단의 비명을 움찔거리며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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