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11화 (311/432)

311화 – 제58장. 류단아(劉丹牙) (1)

그 시기 진도건과 안효철 그리고 이혁성의 황검당은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서하인이나 몽골족과 같은 유목부족들이 텡그리 사막이라고 부르는 지대였다.

사실 그들이 출발할 당시에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던 지점은 육반산맥과 위수협을 사이에 둔 진창성과 천수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확률로 천수성 북서쪽의 난주성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어떤 곳이든 간에 전장에 합류하고자 했다면 굳이 사막을 건널 필요는 없었다.

물론 현시점에서 전선은 위수협의 매복 작전을 기점으로 진창성에서 다시 난주성으로 순식간에 이동했지만, 어쨌든 전장에 합류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일차적으로 원주도호부가 있던 고원성으로 이동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전선의 변화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창성으로부터 도착한 전갈에는 단 네 글자와 짧은 문구만이 적혀있어서 그들을 잠깐 당황하게 했다.

진마(進魔) 그리고 유검(遊劍).

‘본군에 합류하지 말고 각자의 역할을 다하라.’

당황스러움은 잠깐뿐이었다.

‘유검’이란 단어를 직해(直解)해서 흥경의 일을 무사히 해결하였으니 황검당은 검을 놀게 해도 된다는 식으로 쉬라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잠깐 나왔다. 그러나 곧 그들이 받아들인 건 ‘유군(遊軍)’으로서 역할을 하라는 의미였다.

50인뿐인 황검당이 본군에 합류하여 전장의 한 축을 맡기엔 적절치 않지만, 그들이 유군이 되어 적들의 후방을 노리는 유격전(遊擊戰)을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냐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진마’라는 글자.

마교를 향해 나아가라는 단어.

이미 그런 방향성을 당연시하여 움직이는 마당에 굳이 쓴 이유가 무엇인지 모두가 의문을 표할 때, 진도건이 덧붙인 말로써 정확한 해석이 가능해졌다.

“제 성(姓)이 이 진(進)자입니다.”

결국 ‘진마’, ‘유검’을 나눠 써서 전한 것은 진도건과 안효철 그리고 이혁성의 황검당 양측의 역할을 구분 지은 셈이었다. 그리고 두 조가 목표하는 지점에는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움직여야 할 당장의 방향은 일치할 것으로 여겨지기에 함께 일단 함께 텡그리 사막을 건너기로 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사막은 몹시 추웠다.

11월로 접어드는 시기라 사막 위로 대단히 한랭건조(寒冷乾燥)한 기후가 채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내공이 깊은 무림인들이라도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오래 버티긴 힘들어 모두 두꺼운 털옷을 준비하여 입은 상태였다.

“정말 오지게 춥군!”

황검당의 누군가가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한겨울이 되면 더 춥네. 미리 옷섶을 열고 찬 바람에 조금씩 적응해두는 게 나을 거다.”

“에이, 설마 그때까지 사막을 건너려고?”

“굳이 사막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있으면 중동(仲冬:음력 11월)일세. 서역 상인들한테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마교가 있는 신강 일대는 중원보다 훨씬 춥다고 하더군.”

황검당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에 공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사막의 기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시점에서 특히 건조한 공기가 추위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래서 대부분 두꺼운 털옷 안에서 운기를 통해 열을 발산시켜 체온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하나가 있었다.

“어? 저거 뭐야?”

한 사람이 북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이런 제기랄, 모래폭풍이다……!”

때마침 적당히 높은 사구 위로 올라갔을 때 언제 다가왔는지 모래폭풍이 제법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음에도 생전 처음 맞이한 진도건과 황검당 등은 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말들이 알아서 주저앉아 웅크리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사람들도 말에서 내려오게 된 상황에서 경륜이 깊은 서파파가 침착하게 소리친다.

“다들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말 뒤에 숨도록 하거라!”

자연의 천변만화를 어찌 한낱 무공만으로 회피할 수 있을까?

황검당의 막내부터 최연장자 서파파 그리고 절대고수 중의 절대고수 천하오절 안효철까지 오기 부릴 생각도 없이 서파파의 말대로 목에 둘렀던 천을 끌어 올려 코와 입을 가리고 웅크려 앉았다.

모래폭풍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와 그들을 덮쳤다.

퐈아아아-!

아래에서 위로 또는 횡으로 세차게 부는 바람이 모래와 함께 후려치듯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살갗이 드러난 부분은 보통 사람이라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따끔거렸다. 이 자리의 모두가 내공이 뛰어남에도 버텨볼 생각 따위 하는 사람 없이 옷자락 등을 당겨 피부를 가렸다.

일부는 아예 주변을 살필 생각 따윈 포기하고 코를 덮었던 천을 더 위로 끌어올려 아예 얼굴까지 가리기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버틸 만하겠군.’

그 가운데 안효철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이미 탈혼갑이 손목과 발목을 넘어 덮고 있는 데다가 언제나 장포를 머리까지 깊게 덮어쓰고 있었으니 바람에 등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가끔 모래가 장포 안으로 들어와 얼굴에 튀곤 했지만, 한 손으로 얼굴을 대충 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쾌감을 줄일 수 있었다.

‘……응?’

그때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눈을 꺼내놓고 있던 안효철의 시야에 진도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과 똑같이 웅크리거나 말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건 안효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안효철의 눈에 비친 진도건은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일어선 모습이었다.

‘언제 일어났지?’

일어난 시점에 대한 의문은 곧 잊어버렸다.

옆모습으로 진도건의 얼굴이 오할 이상 보이는 것만으로도 그가 모래폭풍에 맞서듯 서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녀석, 뭘 하는……. 응?’

모래폭풍의 방향은 분명 등 뒤에서 부는 것이지만, ‘폭풍’인 만큼 눈앞을 스치는 모래 알갱이들의 궤적은 그 방향이 뒤죽박죽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필 이곳에 있던 말과 사람들에 부딪힌 바람은 더욱 소용돌이칠 것이었다.

안효철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기에 내공으로 안력을 높여서 진도건을 바라보자 모래폭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믿을 수 없는 광경이 그의 눈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폭풍 속의 소용돌이.

진도건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을 휘도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만큼은 제멋대로 날뛰던 모래 알갱이들이 오직 진도건의 주위에서만 일정한 방향으로만 소용돌이치듯 맴도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 험난한 모래폭풍 속에서도 진도건의 붉은 머리카락은 큰 나부낌 없이 잔잔하게 가라앉은 채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듯 물결치고 있으니 안효철이 보기에 마치 그 혼자 다른 세상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기분은 당사자인 진도건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처음 모래폭풍을 맞닥뜨렸을 때, 그도 생전 처음 겪어보는 변화에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바람에 모래가 날아오르는 이 모래폭풍의 현상 원리가 궁금해졌을 때, 그는 이미 감각을 열어젖히며 기류가 어떻게 흐르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래 알갱이가 그에게 날아와 막 부딪치려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고민하느라 주저할 필요도 없고, 또 무작정 해본다고 거창하게 펼칠 필요도 없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내 주변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어떻게 했냐?”

“응? 뭘?”

“지금 네가 하는 짓 말이다. 염력까진 나도 인지하겠는데 말이야. 그 바람 일으키는 건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나도 설명하기엔 애매모호하단 말이지.”

“모르고 펼치는 게 어딨느냐?”

“너 때문에 보름 뻗어있다가 깨어난 뒤로 어느 순간부터 바람이 잡히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그 뒤로도 스승님의 인도를 좇기만 했을 뿐이지 어떤 기작으로 작동하는지 물어본 적도, 스스로 고민한 적도 없는 것 같네.”

“쳇. 알려주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얘기해라.”

“거짓말이 아니란 거 정도는 너도 알 텐데.”

“됐다. 신선의 바람이라는 등 얘기하는 걸 보니 뭔가 도술 같은 게 아닌가 싶은데 내가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아닌 듯하고, 어차피 싸우는 데 별 쓸모도 없는 힘인데 이 혈마가 그깟 거에 욕심을 내겠느냐? 그냥 궁금했던 거지.”

“흐음.”

혈마는 더 얘기하지 않았지만, 싸우는 데 쓸모없는 힘이라는 얘기에 문득 진도건의 머릿속에는 ‘정말 그럴까?’라는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 무심코 고개를 살짝 돌렸던 진도건은 시야를 어지럽히는 모래폭풍 속에서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안효철과 눈이 마주쳤다.

‘이런…….’

약간 민망해지면서도 혈마의 그 ‘쓸모도 없는’이란 표현에 겹쳐 ‘쓸데없는’ 짓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폭풍은 그리 오래지 않아 잦아들었다.

바람이 줄어들고 모래가 가라앉아 시계가 트이자 몸에 쌓인 모래를 털면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들도 일어나면서 투레질과 함께 콧김을 쒹쒹! 뿜어댔다.

진도건도 바람을 풀고 약간의 모래를 맞았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게 몸을 털며 일어날 수 있었다. 안효철 때문에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굳이 그 일로 말을 걸어올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모래폭풍이라는 거, 참으로 지독하네요.”

“괜찮소?”

“괜찮기야 하죠.”

여희선이 투덜거림에 이혁성이 받아주는 모습은 진도건이 보기에 여전히 어색했다.

옆에서 서파파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막에서 모래폭풍은 드문 일이 아니라네. 듣기로 심할 때는 열흘 넘게 몰아칠 때도 있다고. 특히 이 텡그리 사막 북쪽에는 몽골족들도 조심하는 거대한 고비(говь:몽골어로 거친 땅) 사막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불어온 모래폭풍은 어마어마하다고 하네. 그러니 다들 적응할 각오 정도는 하는 게 좋을 게야.”

“끔찍한 얘기군요.”

“더 큰 모래폭풍이 있다고요?”

“제발 가는 동안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말기를!”

호흡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특히 무림인이라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공의 축기도 그 시작은 호흡이니 당연했다.

그런 그들에게 사막의 모래폭풍은 호흡을 불쾌하게 만드는 현상이니 이토록 거부반응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불쾌감을 피했던 진도건이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

“후후! 모두 모래들 터셨으면 이만 출발하시죠.”

진도건과 안효철, 이혁성의 황검당은 다시 말에 올라타고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공기는 무척 깨끗했고 어쩐지 햇볕도 직전보다 좀 더 뜨겁게 느껴지면서 체온과 균형이 맞아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간 달렸을까.

지면에 듬성듬성 보이는 사막초와 자갈 모래들에 의해 사막의 풍경이 지루해질 때쯤이었다.

“어? 저건 또 뭐야? 또 모래폭풍인가?”

황검당원 중 한 사람이 동북방을 바라보며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쏠렸다.

그의 말마따나 멀리서부터 모래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눈썰미가 있는 자들은 그것이 종전에 만났던 모래폭풍에 비해 초라하고 형태도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같은 비슷한 풍경을 이미 몽골초원의 메마른 땅 위에서 본 경험이 있는 진도건이 정확하게 추측해 내었다.

“사막의 마적단일 것 같군요.”

그리고 잠시 뒤 일행은 일단의 마적단을 맞닥뜨렸다.

두두두두두-!

“끼얏호우!”

탕! 탕!

땅땅땅땅땅땅-!

마적단은 기괴한 비명을 지르고 채찍으로 허공을 때렸으며 금속 악기 같은 걸 요란하게 두들기면서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숫자만 어림잡아 천여 기는 되어 보였는데 제법 흉흉한 냄새를 뿌리면서 금방 진도건 일행의 주변을 에워싸듯 계속 말을 달려 빙빙 돌았다.

황검당 염탄(廉綻)이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린다.

“이 새끼들이 또 모래 먼지를 일으키고 지랄들이야…….”

거리를 둔 상태에서 말들이 계속 달리게 하니 모래 먼지가 둥그렇게 피어올라 조금씩 다가왔다.

직전에 모래폭풍을 만난 입장에서 당연히 기분이 더러워질 일인 것인데 황검당의 누구도 마적단을 위협으로 인지하지 않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안효철이 진도건을 흘깃 보았다.

“얼추 천여 명 정도 되는 제법 규모 있는 마적단 같은데, 마교도의 수작일 가능성은 없는가?”

그의 물음에 진도건이 고개를 저었다.

“별로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

안효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혁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갈 길도 바쁘니까 적당히 달래서 보내주는 게 어떻겠나?”

의견을 물어옴에 이혁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알아서들 도망가겠지요.”

어쩐지 싸늘하게 들리는 당주의 목소리에 황검당원들이 피식거렸다. 그리고는 각자 검을 뽑는 가운데 스르릉! 거리는 발검 소리 속에서 서파파의 홀홀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홀홀홀! 어디 마적이란 아이들의 수준이나 어떤지 함 보자꾸나.”

천여 기의 흉흉한 마적들을 앞에 두고 황검당은 두려울 게 없었다.

천하오절이라는 절대 고수까지 곁을 지키고 있는데 설령 마교 도당들이라 한들, 적룡단이라 한들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진도건도 막 검을 뽑으면서 먼저 마적들에게 선제적으로 공격할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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