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 제56장. 매복작전의 목적 (4)
흑풍대의 야율제와 비교했을 때, 적룡단의 마웅패는 그들 부대와 장수로서의 역량도 한 급(級) 아래로 여겨졌다.
양측 모두 전투에 임하는데 있어서 싸움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비슷했지만, 야율재쪽이 좀 더 군사지식이 풍부한 데다가 야율신이라는 걸출한 부장이 있어서 평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룡단은 태생이 마적단으로서 그들이 겪어온 전장의 구도라는 건 대부분이 매우 단순했다.
이런 이유로 천마신교의 구주마종의 일주를 담당하는 신마로서도 마웅패의 마공은 야율재보다 일찍 완성된 경지에 도달했지만, 상대적으로 어린 야율재의 잠재력에 군사적 능력까지 고려되면서 구주의 서열상 적룡마종은 흑풍마종보다 한 단계 아래로 보임되었다.
그렇다고 마웅패가 야율재를 시기했던 건 아니었다.
활동하는 지역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적룡단이 취할 이득에 침해되는 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쟁을 치르면서 마웅패는 알게 모르게 자신도 야율재만큼 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응? 저건!”
마웅패는 남북방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똑같은 전투의 전개양상에 깜짝 놀랐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창천단과 백무당의 대형변화 자체도 놀랍지만, 사선으로 갖춘 대형으로 하여 허리가 무너진 적룡단이 난전으로 고전하는 광경은 두 눈을 의심케 했다.
적진 돌파에 성공했다면 적룡단은 군세에 순풍을 맞는 격이 될 터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격랑을 만나 배가 흔들리는 형국이었다.
마웅패는 판단을 서둘렀다.
“울투루! 테시 쪽을 지원해라! 난 이의종에게 갈 것이다!”
“예, 단주!”
마웅패는 적룡단을 노리고 기습해오는 적들이 지금 나타난 두 무리가 끝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수상한 낌새가 없었고 그의 기감도 그들이 전부라고 얘기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네 개의 천호대가 진형이 무너져 피해가 누적될 걸 기다릴 게 아니라 군사를 증원하여 수적 우위를 가져감으로써 피해를 줄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특히 남쪽에서 한 남자가 보여주는 존재감은 그도 긴장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웅패와 울투루의 부대는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콰콰앙!
“뭐, 뭐야?”
갑작스러운 굉음에 울투루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마웅패는 이미 한 박자 빨리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고 그곳을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놀라움으로 굳어졌다.
공력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그 속에서 붉은 가죽갑옷을 입은 적룡단의 인마들이 구름같은 먼지 속에 연달아 하늘에 솟구치는데 아직 미지의 적들을 맞닥뜨리지 못한 후열의 적룡단원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건 마웅패가 적룡단의 선봉에 서서 적군을 박살 낼 때나 볼 수 있던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자신들로 바뀐 꼴이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대체 무슨 상황이냐? 적습이야?”
울투루가 황당해하며 묻는데 때마침 상황을 파악한 적룡단원이 다가와 대답한다.
“적습입니다! 그런데……, 적이 단 셋뿐이라고 합니다!”
“뭐?”
울투루가 당황해하며 되물을 때, 마웅패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단 셋에 저 꼬라지면 천하오절이나 그만한 강적이 나타났다는 것이겠지.”
“그게 정말입니까?”
마웅패가 고개를 돌려 가까이에 있는 한 단원을 보았다. 그 단원은 적룡기를 들고 있는 기수로 항상 마웅패 근처에 있다가 지시를 받는 임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퇴각 나팔을 불어라.”
“예!”
뿌우우우-!
그의 명령에 묵직한 뿔나팔 소리가 전장에 퍼져나갔다.
그사이 마웅패가 울투루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넌 부대의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챙겨라.”
“단주님은……?”
“놈들의 상판대기를 좀 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적룡단, 퇴각하라!”
울투루의 지휘 아래 적룡단이 다시 말머리를 돌리는 사이, 마웅패가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달려나가자 적룡단 대열에 곧장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열린 길 사이로 공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중에 떠오른 적룡단원 몇 기의 광경이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적룡단은 나타난 적 셋을 중심으로 기마를 선회시키는 원진으로 포위를 구축하고 말에서 내린 자들이 나서서 차륜전의 형태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쌍칼을 휘두르는 노인이 원진의 한쪽 벽을 덮치기 위해 몸을 날린 순간, 마웅패의 기마가 원진을 이룬 적룡단원들의 벽 위로 뛰어올랐다.
“흐앗!”
마웅패가 인마일체(人馬一體)가 되어 노인을 향해 월극(鉞戟)을 내리쳤다.
차앙-!
그동안 바깥으로만 퍼져나가던 충격파가 이번엔 위아래로 퍼져나갔다.
말 위의 마웅패가 원진 안에 착지하면서 자신의 공격에 튕겨 나갔다가 바로 몸을 세우는 노인을, 그리고 다른 두 적들을 차례로 노려보았다.
세 사람 모두 반백 이상의 흰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진 노인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하고 얼굴에 활력이 가득해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모두 키가 큰 데다가 다른 두 노인의 몸집이 크고 단단해 보여서, 자신의 공격을 받은 노인은 오히려 마르고 날카로운 듯한 모습이 대비되어 보였다.
“웬 놈들이냐?”
마웅패가 으르렁거리면서 소리쳤다.
싸움이 멈추고 세 노인의 시선이 마웅패에게 향한다.
적룡단도 이미 벌써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마웅패가 나섰다고 해서 긴장감을 놓는 이는 없었다.
마웅패가 위엄을 드러내며 그들의 정체를 물었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진 상태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상치 않은 상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방금 부딪친 노인도 그 공력의 깊이가 만만치 않았지만, 다른 두 인물도 그에 못지않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최초 보고받은 건 ‘적이 세 명’이라는 내용이었으나, 실제로 싸우고 있는 건 둘 뿐이었다.
포위진의 중앙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백이 느껴지는 노인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네가 적룡신마냐?”
마웅패와 부딪쳤던 노인이 되물어왔다.
마웅패는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래, 내가 천마신교의 적룡마종이자 적룡단의 단주 적룡신마 마웅패다.”
그의 패기 가득한 대답에 노인이 중앙의 노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방주, 제 발로 나왔으니 그냥 잡아버리는 게 낫지 않겠소이까?”
“허허허! 더 좋은 자리가 있을 거라는 조 장군의 조언이 있었으니 그 말에 따릅시다.”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문답에 마웅패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날 얕잡아보는 놈이라, 그만한 수준이 되는지 어디 정체나 밝혀보아라.”
마웅패의 말에 다른 쪽에서 싸우던 태산 같은 체격의 노인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훗, 난 천무방의 장로 백두기다.”
“남태환이다.”
이어 자신과 부딪쳤던 노인도 이름을 밝혔다. 그리고 ‘천무방’이라는 소속에 집중하게 된다.
천무방의 세 장로 중 한 사람은 일월신마에 의해 사망했다는 이력이 3년 전에 있었음을 떠올린 마웅패는 자연스럽게 남은 적룡단의 원진 중심에 선 노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했다.
“그럼 네놈은……?”
“반갑네. 내가 천무경일세.”
천무경이 씩 웃으며 친히 대답해주었다.
그 말에 가까이서 원진을 이루던 적룡단원들 사이에서 소란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웅패는 정말 오랜만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천무방이 문제가 아니라 창천맹주가 내 앞에 있는 것이다. 본교의 제일적(第一敵)이……!’
천무방 전력의 핵 삼인방이 모두 한 자리에 나타난 것이며, 무엇보다 당금 무림의 천하제일인으로 통하는 창천맹주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창천맹주의 왕림이라니, 이거 대단해 놀랍군! 얼마나 나와 적룡단을 얕보았으면 단 셋이서 상대하겠다는 오만을 부린단 말이냐?”
마웅패가 분노하여 버럭 소리쳤으나 천무경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격에 맞춰서 사천 명이나 동원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난 자네들의 교주처럼 무례하지 않다네.”
전자의 사천 명은 남쪽과 북쪽에서 적룡단과 싸우고 있는 창천단과 백무당을 말하는 것이었고, 후자는 청성파 참극을 일컫는 말이었다.
“큭……!”
마웅패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얼핏 생각했을 때는 현재 전장의 구도가 불리한 건 아니었다.
물론 그는 남쪽 전장에 또 다른 천하오절 중 한 사람인 창천단주 구치상의 존재를 아직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으나 전체적인 군세도 어쨌든 우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적룡단 전체를 아예 말에서 내리게 해서 전력을 다해 싸우면 창천맹주를 처치하는 공로를 세울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웅패는 퇴각 명령을 철회하지 못했다.
천무방의 두 장로만이 상대라고 한다면 벌써 결정을 내리고 남았겠지만, 천무경의 무력을 머리로 가늠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가슴의 본능은 끝없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구주의 신마 둘셋이 모인 게 아니라면 천무경을 직접 상대하지 말라 했던가……!’
그와 유일하게 대결해서 처참하게 깨졌던 일월신마가 천마신교 전체에 전파한 말이 떠올랐다.
마웅패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싸울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 여유가 매우 불쾌하군.”
“상대해줄 용의는 있다네. 하지만, 도중에 멈추는 건 불가능할 걸세. 그렇다면 난 자네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창천맹주가 두 장로만 데리고 전장 한복판에 나타나 내 적룡단을 상대로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나서서 싸울 생각이 없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대체 무슨 속셈이냐?”
“자네에게 고맙다고 얘기해주고 싶군.”
“무슨 헛소리냐?”
“적룡단이 매복작전에 대응해서 바로 움직였다면 우리가 여기에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야. 서하의 백기군과 적룡단이 전장 안에서 섞인 상태로는 고소덕 장군을 회유하기엔 불리한 조건이니까 말이야.”
“뭣이?”
“그런데 조태상 장군은 확신하더군. 적룡단주는 적룡단을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거기까지 얘기하면서 천무경을 비롯하여 백두기와 남태환 모두 동시에 조태상이 한 말을 떠올렸다.
“고소덕군이 불리한 게 아니라면 적룡단주는 알아서 처리하도록 놔둔 채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적룡단에게 있어서 고소덕군은 어디까지나 주 전쟁을 대신해서 치러줄 소모용 군사들이니까요.”
“그래서 공격적으로 배치할 매복군의 편성을 소규모로, 그것도 수비적인 형태로 구축하겠다는 것인가? 미안하지만, 너무 안이한 생각 아니오? 그러다가 적룡단이 나서기라도 하면 매복군은 전멸을 면치 못할 텐데?”
“후후! 제 아우조차도 매복군에 없다면 적룡단은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웅패는 천무경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을 듣고 지금의 전장이 조태상의 계략에 의해 만들어진 전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조태상, 이 개자식이 또……!’
마웅패의 분노가 점점 차오르는 때에 적룡단원 하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단주님, 고소덕군이 퇴각하지 않고 전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보고에 마웅패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단원은 작은 목소리로 보고했지만, 듣지 못할 리가 없었던 천무경의 여유로운 미소가 더 짙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머릿속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그 결과 내려진 결론은 단 하나.
반군(反軍)의 가능성.
하지만, 명확하게 떠오르는 사유는 없었다. 천무경을 위시한 무림 세력이 적룡단을 잠시 붙잡아두는 건 가능해도 수만의 군사가 퇴각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대체 왜……!’
으득!
“적룡단은 포위진을 풀고 모두 퇴각하라!”
이미 후열의 상당수가 퇴각하면서 공간이 열렸기에 포위진을 구성하고 있던 적룡단도 명령이 떨어지자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최후방을 지키면서 함께 퇴각하는 마웅패는 여전히 멀어지는 천무경에게서 섣불리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여유로운 자세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야만 했다.
“후후! 또 보세.”
적룡단이 충분히 멀어지자 천무경은 흔들던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바로 백두기가 입을 열었다.
“창천단과 백무당 쪽도 적룡단 부대들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해가 적었으면 좋겠군.”
“습격이 성공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이 남태환이는 적룡신마를 놓아준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조태상 장군의 생각대로 전개가 되었으니까 그를 존중해줍시다, 남 장로님.”
투덜거리는 남태환에게 천무경이 웃으면서 위로했다. 장로전 서열 2위이면서 천무경보다는 7살이나 많은 천무방 최연장자의 날 선 심기를 다독일 수 있는 건 방주인 그와 백두기가 유일할 것이다.
백두기가 천무경의 뒤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고소덕 장군이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천무경은 적룡단이 떠나간 반대 방향으로 아예 몸을 돌렸다. 그리고 100여 기의 호위병들을 대동한 채 다가오는 고소덕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