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 제56장. 매복작전의 목적 (3)
그 시점에서 마웅패의 표정에 드러났던 고뇌의 찌푸림이 사라졌다.
적을 찾아 깨부순다.
적장을 찾아 돌파하여 목을 친다.
그것이 가능한 힘을 얻은 이후로 줄곧 적룡단에 이어져 온 그의 방식이었다. 굳이 서하군 일부를 떼어서 적룡단 주변을 호위하는 진형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부딪치면 이긴다는 자신감이 적룡단의 기본태세 아니던가?
마웅패가 눈을 감고 기감에 집중했다.
전방으론 10리 밖까지 전진하여 매복군과 싸우는 고소덕군의 군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거리만큼 사방 전체까지 아울러 숲속 동물들이 내뿜는 옅은 생명의 기운들까지 감지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
처음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응?”
하지만, 잠시 기다리자 그의 감각 안에 들어오는 사람의 기운들이 있었다.
서넛에서 수십에 이르더니 수백 명이 느껴졌다.
문제는 보통의 군사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종류의 평범한 기운들이 아니었다.
“왜 그러십니까? 있었습니까, 쥐새끼들이?”
마웅패가 뭔가 느낀 듯하자 이의종이 흥분해서 물었다.
번쩍 눈을 뜬 마웅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아……, 있구나. 그것도 보통 쥐새끼들이 아니구나.”
“에?”
마웅패는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북쪽과 남쪽 산림에서 무서운 속도로 접근해오는 적들.
북으로 2천, 남으로 2천여 명쯤 되어 보이는 이 적들은 평범한 군사들이 아닌 무림인들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해라!”
마웅패가 바로 소리쳤다.
“예? 예! 모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마웅패의 명령에 이의종과 테시가 조금 당황하면서도 곧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의 명령은 곧장 적룡단 전체로 쩌렁쩌렁 울려 퍼져나갔다.
그러면서도 두 부단주는 마웅패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어떤 적들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전투 준비를 외치는 명령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공력이 실린 명령과 함성이 일제히 터져나온다.
“창천단은 전력을 다해 마교를 소탕하라!”
“천무방이여, 백무당이여! 마교를 멸하라!”
우와아아아아!
그제서야 이의종과 테시도 적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산림 사이사이로 우르르 쏟아지듯 달려오는 적들의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다.
마웅패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이의종! 테시!”
“예!”
두 부단주가 일제히 대답했다.
“놈들에게 알려줘라. 서량의 붉은 용이, 나의 적룡단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말이다.”
“복명!”
마웅패가 으르렁거리며 내리는 명령에 이의종과 테시도 씩 웃으면서 일제히 복명을 외쳤다.
적룡단은 약 6천여 군세를 이루고 있었으며 단주와 부단주들 그리고 세 명의 천호장(千戶長)들이 각각 천 명씩 맡았다.
두 부단주가 천호장 한 명씩 대동하여 각각 2천의 적룡단 기병을 이끌고 남북으로 갈라졌다.
마치 똬리를 틀고 있던 여섯 마리의 붉은 용 가운데 네 마리가 뛰쳐나간 형세였다.
두두두두두!
‘감히 적룡단을 상대로 정면으로 달려오다니. 그 건방진 꼴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적룡단이 적들을 향해서 속도를 올리며 돌진하는 가운데 이의종과 테시 그리고 다른 천호장들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 적룡단을 마주하여 집단의 중심, 선봉에서 달리던 창천단과 백무방의 수장, 구치상과 남궁평이 눈을 빛내며 한 손을 번쩍 들었다.
무질서하게 내달리던 두 집단이 진형이 변화했다.
적룡단의 선봉에 직접 뛰어들 것 같았던 구치상과 남궁평이 경공을 펼치며 집단의 좌측으로 이동했다. 일부 인원들도 그 뒤를 따라 좌측으로 움직이면서 대형의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얕은 수작을, 큭큭! 그대로 종심돌파하여 유린해주마!’
그때만 해도 적룡단 측은 창천단과 백무당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이 얇아졌으니 그대로 돌파해서는 천호대 2개대인 점을 활용하여 그대로 좌우선회기동하여 다시 측면을 노릴 의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돌격이 위력적인 것과는 별도로 단순한 공격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양측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창천단과 백무당이 일제히 달리던 방향을 급격하기 틀어 좌측으로 뛰었다. 또 중앙과 좌측은 서로 보조를 맞추면서 속도를 높여 적룡단을 지나치려고 할 듯이 달리자 전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진창성.
이틀 전.
“사선대형(斜線隊形)입니다.”
조태상이 탁자 위 장기말들을 배치해놓고 목소리에 힘주어 말했다.
그 탁자 주위엔 ‘위수협 매복작전’에 동원되기로 한 두 조직의 수장, 구치상과 남궁평이 조태번의 옆에 서 있었으며 놀랍게도 천무경과 천무방의 두 장로 백두기, 남태환까지 당도해 있었다.
천무경은 두 부맹주들에게 정파의 정예조직을 규합해달라고 요청한 후에 먼저 창천맹에서 길을 나섰었다. 그러다 조태상군이 천수성에서 농성하지 않고 진창성으로 퇴각한다는 소식에 속도를 내서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관중에 적군을 들이는 건 금 황실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악수라고 생각했기에 조태상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구치상과 남궁평은 조태상이 제갈무문의 추천에 따라 매복작전을 맡기기로 했는데, 작전 설명을 위해 두 사람이 먼저 와서 들을 수 있도록 요청하여 따로이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백두기와 남태환은 남궁평이 부당주에게 백무당의 인솔을 맡긴 채 진창성으로 먼저 간다는 얘길 듣고 따라서 온 것이었다.
천무방은 사당(四黨) 체제로 전환한 뒤로 기존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정비하여 조직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집단전은 정말 오랜만인 데다가 군사적 충돌까지 예상되는 마당에 좀 더 전문적인 공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태상의 임의초청이 두 장로들에겐 하나의 기회처럼 느껴진 것이었다.
“우익을 내주고 좌익으로 때리겠다는 생각인 거 같은데…… 자칫 중앙의 허리도 약해질 수 있지 않은가?”
의심 많은 남태환이 조태상의 말을 듣고 바로 되물었다.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무엇입니까? 우익으로 적의 돌격을 받아내어 좌익으로 놈들 허리를 때리겠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우익에 선 녀석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 큰 것 같은데요?”
남궁평도 백무당을 통솔해야 하는 입장이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조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노림수는 명확하니 모두 이해가 빠르시군요.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시점에 대형을 갖추어서 적들을 교란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제가 요청드리고 싶은 것은 무림고수들로 이뤄진 두 조직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해서 피해도 줄일 수 있도록 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조태상은 장기말들을 쥐고 무림인들로 펼치는 사선대형에 대한 자신의 발상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다시 관중으로 향하는 위수협의 육반산 구릉지.
창천단과 백무당의 불규칙한 횡대는 정말 짧은 시간을 두고 대형의 변화를 일으켰다.
적룡단과 그들이 충돌하기까지 불과 10여 초의 시간.
먼저 구치상과 남궁평의 위치 이동을 시작으로 단원, 당원들이 맡은 위치를 찾아 횡으로 이동했다. 누군가는 짧게, 누군가는 길게 이동하는데 하늘에서 본다면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무질서하게 돌격하다가 적들의 돌격을 맞이하기 직전에 사선대형을 구축해야 합니다. 구성원의 경공술 등 몸놀림을 감안하여 포진을 배치해주십시오. 그럼 적들은 기마돌격이니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에 절대 대처할 수 없습니다.”
보통의 군에선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경공술과 보법으로 빠른 방향 전환과 긴 거리를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활용한 개진이었다.
또 전체적인 대형 자체도 좌익을 향해 사선으로 움직이자 적룡단이 정면으로 마주하는 지점이 중앙이 아닌 우익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뭐, 뭐야!”
테시만 놀란 게 아니었다.
이의종이나 다른 천호장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딪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갑자기 대형이 한순간에 바뀌어버리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무림인들은 장애만 없다면 언제든 그 신출귀몰한 몸놀림을 보이면서 달리던 방향을 급격하게 틀 수 있지만, 기마는 그렇지 못했다.
말이라는 동물 자체가 측보가 거의 불가능한 신체 구조상 한계가 있었다. 제자리에서 말머리를 돌리는 것도 보통 사람보다 느린데 하물며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달리는 중의 방향 전환이라면 무조건 크게 선회하는 방식만 강요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바로 조태상이 노린 지점이었다.
멀리서부터 대형을 짜서 움직인다면 적룡단도 목표를 바꿀 수 있겠지만, 무림인의 신속한 경공술과 보법으로 지척에서 대형을 바꿔버린다면 절대 반응할 수 없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선대형에서 좌익의 파괴력도 중요했지만, 적룡단의 돌격을 제어하는 우익의 역할도 중요했다.
“우익이 적의 돌격을 피하는 건 상책이 아닙니다. 차라리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서면 적의 돌격속도에 대한 상대적인 충격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자기방어에 능력이 뛰어나다면 적들이 당황해 기세를 잃어버린 돌격 앞에서 전력을 보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개!”
적룡단과 부딪치기 직전, 조장의 외침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우익이 앞으로 달리던 속도를 확 죽여버리더니 뒤로 몸을 날렸다.
뒤로 몸을 날리되 누군가는 몸을 띄우고, 누군가는 지면에 낮게 포진한다.
의도가 명확하다.
상원(上員)은 사람을 상대하고, 하원(下員)은 말을 노린다. 그리고 이는 적룡단원들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다.
자신이냐, 말이냐.
콰드드득!
적룡단의 돌격과 내지르는 창격에 갈려 나가는 무림인들도 있었지만, 선봉의 기마 몇 기가 고꾸라지면서 바짝 쫓아와 뒤를 받치던 후열의 기마들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걸려 내동댕이 쳐진다.
“끄악!”
짓쳐드는 칼날이 육신을 가르고 쏟아지는 육중한 기마에 깔려 압사당한다.
예봉을 꺾어냄과 동시에 산개하는 우익의 창천단원과 백무당원들은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
그렇게 적룡단의 예봉이 꺾일 때, 창천단과 백무당 좌익의 선봉에서 달리는 구치상과 남궁평이 적룡단 기병종대의 허리를 노리고 몸을 날렸다.
칠성도법 파군유성도.
콰콰콰콰콰!
유성처럼 쏟아지는 도강 세례.
화경의 고수가 쏟아내는 공력의 힘을 당해낼 적룡단원은 없었다.
천하오절 칠성도존 구치상의 명성에 어울리는 위력이었으며 그 여파로 만들어진 틈을 노리고 좌익의 집중된 전력이 허리를 착실하게 끊어낼 때,
북쪽에서도 남궁평이 자신의 전력을 보인다.
그것은 이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궁가의 몰락한 제왕의 무공.
남궁평의 신형이 좌익에서 이탈할 듯하다 할 정도로 앞서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천풍신법(天風身法)의 바람처럼 가벼웠던 발돋움이 땅이 팰 정도로 무겁고 큰 보폭으로 변화한다.
그것은 제왕의 발걸음(帝王步).
거대한 패기가 발산되어 뒤따르는 자들의 사기를 드높임과 동시에 전방의 질주하는 군마들에 중압감을 던지니 마치 중력이 배가된 느낌을 받고야 만다.
“모두 죽으리라!”
그 속에서 남궁평이 기합과 같은 일성을 내지르며 자신의 검을 앞으로 찌르듯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무수히 많은 검영이 남궁평이 만들어낸 중압의 공간 속에서 일제히 노도와 같이 일어났다.
이것이 남궁평이 부활시킨 실전된 ‘제왕검형(帝王劍形)’이었다.
퍼퍼퍼퍽!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제왕검형을 펼친 순간 공간을 지나치는 자들은 모두 검영들에 꿰뚫려 버렸다.
여기저기 사람과 말의 고깃덩이가 날아오르고 핏물이 치솟으며 끔찍한 참사가 전개된다. 그리고 남궁평의 뒤에서 제왕의 기세를 등에 업은 백무당 좌익이 하나의 거대한 갈퀴가 되어 앞에서 내달리는 적룡의 허리를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