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칼의 귀신-301화 (301/432)

301화 – 제56장. 매복작전의 목적 (1)

“으윽!”

빌게포첸은 신음을 내뱉었다.

온몸이 저릴 정도의 생각보다 큰 충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안효철의 공세는 더더욱 폭풍같은 기세로 이어졌다.

퍼퍼퍽! 꽈꽝!

바깥으로 경력이나 강기 따위를 형성하여 공격하는 방식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오로지 진신 공력을 자신의 신체 부위에 실어 부딪쳐오는데 그 내재된 힘의 무게감이 엄청났다. 내공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더 큰 힘을 사용하려 할수록 기운이 바깥으로 표출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오히려 안효철의 무공은 안으로, 더 안으로 압축하고 그것으로 더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빌게포첸도 적수공권으로 싸우는 박투에 일가견이 있음에도 안효철이 싸우는 방식은 신기원처럼 느껴졌다.

기물에 의존하는 하수로 보았으나 실체는 한 단계 위의 고수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쌍류 철우고(鐵牛靠)

꽈꽝!

“크윽……!”

안효철이 지근거리의 박투 속에서 기어코 틈을 찾아 헤집고 들어와 어깨를 부딪치자 그 충격에 빌게포첸의 신형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이것이 천하오절의 저력인가……. 흐음! 끝낼 때가 되었군.’

빌게포첸은 허리를 활처럼 당기면서 쌍수의 권격을 준비하는 안효철을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그의 열린 입술은 신음을 토해내면서 동시에 진언을 외고 두 손은 합장하고 있었다.

“malla vimalāmala-mūrtte ehy-ehi(말라 위말라말라 무릍떼 에혜).”

모든 마라를 지워버린 해탈자여, 오소서.

빌게포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안효철이 파마격을 움켜쥐고 그를 향해 쇄도하는 순간, 그의 눈앞에 황금빛 광채로 휩싸인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났다.

바라밀법(波羅密法)

대수인(大手印)

쿵!

그것은 단순히 기공에 의한 물리적 충격으로 발생한 굉음이 아니었다.

물질과 정신에 그 권능이 두루 미치고 그 여파로 인한 파장이 마치 제천이 부른 천둥처럼 무거워 흥경 전체에 울렸다.

그 울림이란 짧으나 명료하고 두려움보단 묘한 떨림을 남겼다.

무림은 대수인을 밀교나 포달랍궁의 성명장공(成名掌功)처럼 여겨왔으나 그 너머엔 무상에 이를 수 있는 법문 수련을 의미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대수인이란 낙연(落緣)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명연(明緣)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무념연(無念緣)에 의지하지 아니하는 까닭에 삼연을 떠난다고 한다.”

“모든 사념을 짓지 않고, 명공불이(明空不二), 제법각리(諸法覺理), 자심요달(慈心了達)하면 법신(法身)의 선정(禪定)이며, 환화(幻化)의 경계에 따르지 않으면 이것이 대수인의 선정이고, 체성(體性)에도 휘둘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대지(大智)의 선정이다.”

오랜 시간 동안 깊게 쌓아 온 공력과 법력은 그저 물리적 위력에 지나지 않고 선정의 공능이 함께 존재하니 그 위력의 깊이를 범인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대수인의 저력 때문인지 빌게포첸 뿐만 아니라 때마침 장내에 도착한 진도건과 이혁성도 안효철에게서 일어난 변화를 목도할 수 있었다.

키아악!

단말마의 고주파 귀곡성.

파마격의 돌진조차 잊어버렸다.

안효철이 거리는 반밖에 좁히지 못하고 멈췄는데 자세를 연 채로 서서 고통에 몸을 비트는 그의 일그러진 나신이 일시적으로 보였다. 벗겨지려는지 달라붙으려는지 탈혼갑이 피부에서 박리될 듯한 상태로 크게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커헉!”

안효철이 비틀거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에겐 그동안 탈혼갑을 착용한 뒤로 겪어본 어떤 공격보다도 치명적이었다.

“안 대협!”

진도건이 안효철의 앞을 가로막듯 그의 곁으로 다가올 때, 이혁성은 바로 빌게포첸에게 돌진했다.

천뢰삼검식 일섬뢰.

카칵!

섬전처럼 뻗어나간 쾌속의 검기가 땅을 긁으며 허공을 갈랐다.

이미 둘의 접근을 느꼈던 빌게포첸이 아슬아슬하게 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혁성을 향해 한 번 더 대수인을 펼쳤다.

이번엔 진언이 따르지 않은 오직 공력만 담아 철저히 무공으로서 위력만 높인, 마공으로 몸을 더럽힌 성혈신마로서의 절기였다.

마라대수인(魔羅大手印).

쩌엉!

“큭!”

손바닥의 장광(掌光)은 이전보다 크지 않았지만, 거무튀튀한 탁기가 전해오는 충격만큼 심지(心志)를 저릿하게 할 섬뜩함을 가져왔다.

뒤로 주르륵 밀려난 이혁성이 재차 달려들려고 할 때, 빌게포첸이 왼손바닥을 펼치며 앞으로 내밀었다.

이혁성이 마라대수인을 의식하여 멈칫했으나 이번엔 아무런 공격도 없었다.

대신 흘러나온 건 빌게포첸의 목소리였다.

“싸움은 그만. 그대들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더 힘을 쏟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유리한데 그만둘 이유가 없지.”

이혁성이 싸늘하게 말하는데, 빌게포첸이 희미한 미소를 품었다.

“적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말입니까?”

“뭐라고?”

이혁성이 당황해 되묻자 빌게포첸이 바로 서서 합장을 하며 고개를 슬쩍 숙였다.

그 사이 안효철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는데 진도건의 부축을 거절할 정도로 내상이 심하지 않은 눈치였다.

“당신……, 방금 내게 뭘 한 거지?”

“시험해보았소.”

“시험?”

“보통의 법력이나 도력으로는 탈혼갑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소. 소승은 가능했고, 보고자 했던 것을 보았으며, 그대가 탈혼갑에 잘 견디고 있다는 걸 확인했소이다.”

“무엇을 보려 했던 것이지?”

빌게포첸은 안효철이 던진 질문을 무시했다.

“소승이 한 가지 충고하자면 절대 무리한 싸움에 뛰어들지 마시오. 소승이 보아하니 탈혼갑이 이곳에 왔다는 건 곧 검과 만나게 될 운명이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아홉 죽을 길 속에 살길 하나쯤 열릴지도 모르겠소.”

“뭐?”

퉁!

안효철이 되물으려는 순간, 빌게포첸의 땅을 박차며 날듯 달아났다. 그런데 그 방향이 황궁이라는 걸 인지하자 이혁성과 진도건이 아차 싶어서 급히 그를 뒤쫓았다.

황제 암살.

그 말이 머릿속에 어른거렸는데 두 사람은 곧 빌게포첸의 의도가 거기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빌게포첸의 목적은 황제 이인효가 아니라 사금령의 시신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서파파가 자리를 비웠고 주변엔 별 능력 없는 내관이나 병사들 몇몇만 있었기에 순식간에 나타나 사금령의 시신을 들고 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경공의 움직임도 매우 빨랐는데 진도건으로서는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그의 목적이 황제 암살이 아니면서 동시에 직전에 남겼던 말 때문에 무리하게 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일단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니 저희도 정리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감하네. 난 황검당을 살피러 가볼 테니, 자네는 안 대협에게 가게.”

“예, 당주님.”

이혁성이 남문쪽으로 가고 진도건은 곧장 안효철에게 돌아왔다.

안효철은 몸을 웅크린 채 부르르 떨고 있었는데 성도성에서 보았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괜찮습니까?”

“버틸 만하네.”

다행인지 안효철의 얼굴에서 고통스러운 기색은 금방 가셨다.

그는 안정됨을 느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진도건을 보았다.

“내게 적중시킨 그 장법, 아마 서장의 대수인일 테지. 그게 탈혼갑과 나를 일부 잠깐이나마 분리시킨 것 같은데, 다시 달라붙으려 하니 내가 저주를 받아들였을 때의 고통을 다시 느끼게 되었군.”

진도건은 안효철의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온몸을 감싼 칠흑의 갑주가 더 괴이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이런 건 이 세상 물건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당대에 존재하는 갑주를 구성하는 어떤 구조적인 양식이나 질서 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오직 철과 같이 단단한 한 가지 재질로 만으로 하여 온몸을 덮고도 모자라 움직임에 지장이 없다는 건 직접 두 눈으로 봄에도 현실성이 없게만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빌게포첸이 남긴 말들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성혈신마가 한 말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네에게 알릴 시간이 없었는데, 월왕부를 기습하여 이인우와 가족들을 구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바로 그였어.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뜻을 오롯이 신뢰하긴 어려워도 분명 보통의 마교도와는 다른 의도를 가졌다고는 볼 수 있지 않겠나?”

“신뢰가 조금 생긴 모양이군요.”

“어찌됐든 같은 편인 살문 살수를 직접 죽이기까지 했으니 말이지. 내부의 적이라도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안 대협을 대하는 걸 보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진도건의 말에 안효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건은 잠시 호흡을 그리면서 자신이 겪었던 마교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떠올려보았다.

일월신마, 흑풍신마, 사혈신마, 환도신마 그리고 자신은 스쳐 지나갔던 광혈신마에 천마 단지운까지.

어떻게 본다면 그들 주력의 절반에 조금 모자라는 전력을 마주쳤지만, 제대로 쓰러뜨린 적은 둘밖에 없었다. 성혈신마는 살아 돌아갔고 살문주 사금령은 구주마종 신마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멀게만 느껴지지도 않는 것이 이미 창천맹이 깃발을 들어 중원무림의 주 전력을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고 그 기점이 지금 감숙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될 터였다.

어떻게 전쟁을 치르고 이길 것인지는 하기 나름일 것이다.

대립의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어디까지 밀고 나가며 또 후퇴할 것인지도 하기 나름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단지운…… 넌 분명 멈추지 않겠지. 이 전쟁이 막을 내리기 위해선 결국엔 어느 한쪽이 완전히 멸망하는 수밖에 없어.’

마침내 천마신교의 사주를 받았던 살문이 무너지고 저의를 숨긴 성혈신마 빌게포첸도 흥경에서 사라졌다.

마구트 장군은 징집했던 군사들을 움직여 흥경 안에 잠재한 소란을 제거하면서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 일을 마치면 징집을 해산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마침내 자유를 찾은 이인우가 군사 증원의 기조를 되돌리겠다고 황제께 고하겠다는 결정을 추밀원에서 내렸기 때문이었다.

늦은 밤, 이인우는 소란이 정리되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가족들을 월왕부에 돌려놓고 자신은 관복을 갖추어 황궁으로 향하였다.

이인우는 황궁 앞에서 그의 아들인 제국충무왕 이언종을 만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입궁하여 서하 대백고국의 황제 이인효를 알현하였다.

이인우는 즉시 납작 엎드렸다.

“폐하, 소신 월왕 이인우가 폐하께 고합니다. 소신의 큰 잘못을 대체 무슨 말로 변명할 수 있겠나이까? 모든 관직과 봉호를 내려놓고 폐하께서 내리시는 벌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사형을 내리셔도 그 또한 달게 받겠사옵니다.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이언종은 무거운 눈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한발 앞서 나가 이인효를 향해 엎드렸다.

“폐하, 소신들이 부족하여 나라와 황실을 욕되게 만들었사옵니다. 이 모든 죄는 죽음으로 갚아도 부족할 것이옵니다. 다만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을 물을 주모자는 서방 무림에 따로 있고, 그들의 억압이 비단 추밀원에 그치지 않았었다는 점만은 참작해주시길 간곡히 호소하옵니다.”

이인효는 잠시 눈을 감고 침묵을 지켰다.

사실 그는 이미 진도건을 만났을 때부터 이 사단이 벌어진 전반의 과정을 되돌아보았고, 진도건이 사금령을 죽였다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는 어떻게 수습할지도 고민을 끝낸 상황이었다.

이인우의 읍소는 의미 없는 변명거리가 없었고, 이언종의 읍소는 죄지은 아비의 아들로서 그리고 일국의 친왕으로서 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이인효가 마침내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저간의 사정은 짐도 알고 있는바, 황제로서 아우의 고충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하된 자로서 나라의 백성들을 역도들의 전쟁에 투입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은 물어야 마땅하다. 내일 조정에서 짐은 월왕의 봉호는 유지하되 추밀원사직은 박탈할 것이다. 또 일부 전답을 몰수하고 근신을 명하며 향후 20년간 추도제를 직접 지휘하여 봉사할 것일 명할 것이다.”

“폐하, 죽여주시옵소서!”

이인효의 얘기를 듣고 이인우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읍소했다. 그러자 이인효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대백고국의 역사가 작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여 년은 황실과 외척간 알력다툼으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 환란이 선왕의 대에 이르러 종식되고 다행히 짐의 대에 이르러서도 안정되고 있었는데 다시 짐의 손으로 친왕의 피를 보라는 요구는 또 다른 불씨를 만드는 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짐은 선대에서 벌어진 그 과오를 다시 번복할 생각이 없노라. 아우의 각오가 그 정도라면 짐이 내리는 벌을 달게 수용할 수 있을 터. 그만하고 돌아가라. 밤이 깊다.”

이인효는 용상에서 일어나서는 침소로 돌아가기 위해 그대로 측문을 통해 걸어 나갔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월왕 이인우와 제국충무왕 이언종은 황제가 돌아가는 길을 향해 깊이 엎드리면서 감읍하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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